길에서 만난 사람들 - 하종강이 만난 진짜 노동자
하종강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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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부터 2004년까지 한겨레 21에 하종강이 실은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그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진짜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주역이 아니면서도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는 아름다우면서도 슬프다.

자기 자리에서 꾸준히 일하는 사람들. 자기를 위해 맹목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라, 이 사회의 모순을 조금이라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하종강이 적고 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렇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많은 사람을 감옥에서 괴롭힌 '장기수 배출 최우수국'이다. 이 책에 실린 강용주 같은 분들은 '계속 온 몸으로 말해오고 있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민노총의 멋진 총각 한혁씨 이야기에서
돈이건 내 몸뚱이건, 능력이건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그 모든 것은 이 더러운 자본가 세상을 뒤엎기 위한 투쟁에 쓰여야 할 소중한 혁명의 자산이며, 혁명이 내게 잠시 관리를 위탁한 것이다...는 말을 읽으면서, 이런 사람도 있어 세상은 완전히 썩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가진 단지 몇 명의 학생들에게 희망을 걸고, 계속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할 수 있는 훌륭한 교사가 될 자신이 없더라고, 그렇게 참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계속 해야지. 그렇지만 나는 도저히 자신이 서질 않는거야. 이게 도대체 수업인가 싶은 생각만 들고... 자신이 없으면서도 적당히 수업을 하면 월급은 꼬박꼬박 받을 수 있지. 그렇지만 그것은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더라고..."
이렇게 교단을 떠나서 버스 운전을 하는 이병식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수업 듣기를 원하지 않는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하는 것보다, 버스 기사는 최소한 사기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는 양심가. 그에 비하자면 나는 얼마나 양심불량인지...

80년대의 열악한 운동 상황과 연관지어 황정란씨의 일갈을 매섭다.
본인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으면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일하겠다는 좋은 뜻으로 들어왔던 젊은 실무자들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옳은 게 아니라는...

이 다음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세상이 되어야지요.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모르지만, 꼭 해야하는 일...이라는 풀꽃 세상의 정상명의 이야기는 옳고, 또 옳다.

남들이 보면 대단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신은 결코 대단하지도 않고 투철한 의식이 있는 것도 아니며, "그냥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겸손한 사람들...을 하종강은 많이도 만난다. 풀무학교 정민철에서 나온 이야기.

간호사 김용금 이야기에서 "어느 시인이 그랬지요. 짐이 무거워 투정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짐때문에 자기가 바르게 중심을 잡으며 걷고 있더라고... 노동조합은 내 인생에 그런 의미"라는 이야기엔 뼈가 있다.

협박으로 정신병에 걸린 권기한씨가 그 고통을 이겨낸 단 한마디는 이 책의 모든 인터뷰의 골간을 꿴다.
"내가 하는 일은 잘못이 아니라, 잘못을 뜯어 고치는 일이니까요.
동지들을 두고 떠나는 것, 그것이 나에겐 더욱 힘든 일이에요."

이 어두운 사회가 그나마 이만큼 환해 진 것은 이런 빛과 소금같은 분들이 계셨기 때문이다. 겉만 보고 썩은 내 진동한다고 코를 돌릴 것이 아니라, 내가 소금으로 녹아 들어야 할 자리에서 도망가지 않는 용기를 내어야 함을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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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1-1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 너무 부끄러울 것 같아서 미루고 또 미루는 책인데요.

글샘 2008-01-14 12:46   좋아요 0 | URL
부끄럽죠. 많이 부끄럽죠.
그래서 매일 성경 읽듯 뭔가 읽어얄 것 같네요.

순오기 2008-01-18 0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놓고 펼치지 못하는 책이에요.
글샘님 말씀처럼 읽어야 할 것 같군요. 섬김이 뭔지 제대로 배우려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