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땅이 받아줍디까
한승오 지음 / 강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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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학식하던 날, 버스를 두 대 대절하여 직원 여행을 갔다.
순창의 강천산으로 갔는데, 걷기에 참 좋은 길이었다.
신발을 잘못 신고 가서 발에 맞지 않고, 물까지 스며들어 불편하긴 했지만,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산책 길이 참 부드러웠다.

아, 흙길을 밟아본 지가 얼마인가를 한참 생각했다.
나무로 세워둔 산책로에선 피톤치드의 냄새가 대기중에 가득했다.

나도 몇 년 뒤면 시골에 가서 살아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대도시에 적응된 내 몸이, 또 아내의 몸이 과연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안 되는 바도 아니지만, 60에 정년을 하고 100살까지 살게된다면, 그 남을 시간에 농사 외엔 어떤 일도 삶을 메울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농촌에 가게 된다면, 모든 일을 새로 배워야 할 것이지만, 새로운 삶을 설계하는 가슴뜀도 남아있다.

한승오는 출판사를 하다가 훌쩍 농촌으로 갔다.
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도 배우고, 개도 키우는 일을 겪는다.
온갖 곡식들과 대화를 나누는 법도 익혔고, 물보다 낮은 논의 뻘흙 속에 제 발을 묻을 줄 알게 되었다.

똥이 귀한 줄도 알게 되었고, 정화조에서 흘러가는 물이 흙을 썪게 만든다는 것도 배웠다.

흙에서 배우지 못하는 인간이란... 불쌍하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오늘도 지구는 숨도 쉬지 못하게 콘크리트로 아스팔트로 뒤덮이고 있다. 편리한 만큼 슬픈 세상이다.

비료도 많이 주고 실하게 자란, 더군다나 수익성도 좋은 흑미같은 넘들이 바람이 불면 더 빨리 쓰러져 버린다니... 가진 것의 불편함이 가르치는 역설이 들판에서도 그대로 들려온다.

큰바람이 지나간 자리... 같은 글을 중학생 정도에게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다. 쌀에 대해, 흙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 학교는 다 가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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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12-31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짜에서 뒹구신 한 해는 어떠셨습니까?...가짜마저도 단순히 가짜가 아니라는 것이 우리의 딜레마 아니겠습니까..^^ (자꾸 어려워지나??)
새해에는 복 많이 만드시구 ..저도 덕 좀 보게 해주십시오.^^

글샘 2007-12-31 13:14   좋아요 0 | URL
가짜 맞죠. 다 가짜... 학교도 가짜고, 알라딘도 가짜입니다.
그렇지만, 100% 가짜라면 확 버리고 뜰텐데, 요넘들이 50%를 조금 넘긴 얼치기 가짜라서 발 디디고 설 수밖에 없네요. 좀더 바꾸고 바뀌면 진짜 쪽으루다가 가깝게 갈 수도 있지 않나 하는 희망을... ㅎㅎㅎ
농촌 생활이 만만한 것이 결코 아니지만, 그리고 한국의 농촌은 확 망해먹은 거라지만... 저는 꼭 농촌으로 가고야 말 것입니다. 제가 농촌으로 가면, 덕 좀 보게 해 주죠... ㅎㅎㅎ 새해 안해랑 예찬이랑 복 많이 짓고 받으시우.

드팀전 2008-01-01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새해 첫 날 일하러 나왔는데...그런 건 ..저쪽이 진짜고 이쪽이 가짜인 건 잘 모르겠군요.그렇게 나누기에 훨씬 더 다층적인 차원이 있는 것 같아서 저는 이쪽과 저쪽 사이에 대해 다른 차원의 접근을 해보고 있습니다.이쪽과 저쪽은 농촌/도시 개념은 아니구요.
10년전에 개론서로 읽었던 라캉과 지젝을 올해는 좀 더 읽어보려고 합니다.아주 쉬운 책이라는 첫 계단에서 이미 한 챕터를 서너번씩 다시 읽고 있고 예전에 읽었던 자료들을 다시 꺼내 봐야하는 험난한 독서가 시작되었답니다.그런데 과거에 그냥 그랬나보다 하고 넘어갔던 개념들과 비유들이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현실 속에 다시 구체화되고 이런 의미였구나 공감하게 되는 느낌이 좋네요.세상을 읽는 여러 가지 갈래길 중 또 하나의 길이 어렴풋이 보여서 쉽게 포기할 것같지는 않습니다....

올해도 공연장에서 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샘 2008-01-03 00:18   좋아요 0 | URL
진짜와 가짜는 내 안에도 있고, 사회 모든 구석에도 있지요.
라캉...은 골치아픈 삼각형으로 기억이 나는군요. ^^
저는 올해 골치아픈 독서에서 좀 벗어날 계획이랍니다.

그래요. 가끔 공연 좋은 거 있음 같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