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 21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사회평론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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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윤리...를 가라타니 고진이 들고 나온 것은... 20세기가 너무도 큰 전쟁의 시기였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동감하는 부분도 많지만, 나는 자본주의의 생리가 전쟁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지, 새로운 윤리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고진을 잘못 읽은 탓이리라...

원인을 밝히는 일은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다. 한국 사회에서 과거사 규명은 원인을 밝히는 문제다. 아직도 원인을 밝히는 문제는 요원하기만 한데, 국립 현충원에 모신 두 전직 대통령들에 얽힌 사건들도 그렇고, 숱한 학살들과 사법 살인, 국가의 폭력으로 죽은 의문사와 광주들이 그렇다. 책임의 문제가 아니다. 책임만을 물으면 마녀 사냥이 되기 쉽다.

사물의 본질을 바라보는 데에는 (괄호)치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샘'이란 제목으로 제출했을 때, '더럽게 변기를?'하고 보면 더럽지만, 거기 볼일보는 일을 괄호치고 보는 눈이 필요하다는 것. 누드화도 마찬가진데... 벗은 여자를 보고 흥분하면 안 된다. 그럼 예술이 아니고 외설이 되고 만다. 벗은 여자는 괄호치고, 그 그림을 보아야 예술미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예술의 형식을 통해서 윤리의 본질을 유추하는 방식도 재미있다.
우리는 사물을 판단할 때 인식적(참,거짓), 도덕적(선악), 미적(쾌,불쾌) 판단을 동시에 행한다. 그것들은 혼합되어있어 확연히 구별되진 않는다. 과학자는 도덕적, 미적 판단을 괄호에 넣어서 인식의 대상을 판단한다. 미적 판단에선 사물의 허구, 악은 괄호에 넣어진다. ...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다. 괄호에 넣도록 '명령'을 받고, 그것에 익숙해지면 괄호에 넣었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린다...(197)

자유도 '자유로워지라'는 명령에 의하여 존재한다...

생각할 것을 많이 던져주는 이야기다.

일본의 패전 문제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천황을 처벌하지 않은 것, 원인을 제대로 캐어 책임을 묻지 못한 것이 결정적으로 일본인들을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게 한 것이라는... 그 책임은 동아시아의 공산주의 확산을 방어하기 위하여 천황을 명책하기로 한 미국 정부에게 있겠지.

책과는 상관없이 가라타니 고진...이란 이름을 들으면 柄谷行人 무늬진 골짜기를 걷는 나그네... 가을이라 단풍이 붉게 퍼진 숲길을 고요히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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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바람 2007-11-10 2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쓰메 소세키의 <行人>이 너무 좋아 개명했다고 해요.
고진 책들 중에 제일 먼저 읽은 것인데
윤리21을 젊은 윤리학이라고 부르고 싶더군요.

글샘 2007-11-12 08:52   좋아요 0 | URL
그렇더군요. 보통 윤리학이라면 고리타분하기 쉬운데... 이 책은 신선한 바람으로 화~ 했어요. 젊은 윤리학... 좋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