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 문학읽기 - <파우스트>에서 <당신들의 천국>까지, 철학, 세기의 문학을 읽다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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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는 '바 bar 안에서 만드는 사람 bar + ista'이란 뜻이란다.
소믈리에게 포도주 전문가라면, 바리스타는 보통 커피 전문가라고 알려져 있다.
최근에 유행한 드라마 덕에 널리 알려진 말이라고 한다.

이 책은 대단한 바리스타의 수다다.
이 바리스타의 전공은 철학이고, 수다 거리는 문학의 고전들이다.

보통 고전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읽어본 적이 없는 책들이 많을 것이다.
나처럼 읽었다 한들, 그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읽었을 따름인 사람들도 많을 것이고. 읽는 순간에는 주제가 이런 거겠지? 했던 것들이 십몇 년 지나고 나면 다 잊혀져 버리게 마련일 것이다. 그래서 순간을 회상하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리뷰를 남긴다.

쟁그랑~ 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은은한 촛불들이 반겨주는 카페에 들어가면...
온 몸을 감싸도는 커피향 또는 옅은 계피향이 섞여 있고,
제법 큼직한 커피잔에 든 커피들을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앉아있는 곳.
거기서 만난 바리스타는 우리에게 날마다 다른 차를 한 잔씩 권한다.

좀 흐릿한 날엔 캬라멜 향이 그득한 마끼아또를 권해주기도 하고,
각막에 생채기라도 낼 듯 날카로운 햇살을 등진 날엔 진한 에스프레소를 내놓기도 한다.
비가 추절추절 내려서 금세 기침이라도 날 듯한 날엔 따끈한 잔에 든 코코아를 내밀기도 하고,
우연히 시간을 내서 일찍 들른 아침 나절엔 거품 가득한 카푸치노를 자랑하기도 하는 그...

그는 입으로 말하지 않지만, 찻잔 속의 차 안에 갖가지 의미를 담기도 한다.
이 바리스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유명한 이야기들이다.
괴테의 파우스트로 시작해서 헤세의 데미안,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세익스피어의 오셀로, 카프카의 변신, 샤르트르의 구토,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카뮈의 페스트, 최인훈의 광장,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오웰의 1984,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이야깃거리다.

왜 파우스트로 시작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마쳤을까?를 생각해 본다.

파우스트는 '자기'를 이야기한다. 개인의 탄생이라고 할까?
프루스트의 이야기는 '회상'에 대한 이야기다.

이 나이든 바리스타는 자기의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를 철학과 문학에 빗대어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자기는 점점 성장한다. 성장 소설의 백미는 역시 데미안이다.
이 자기는 사랑과 질투에 대해 고민한다. 사랑하는 이들이 읽을 책 어린 왕자와 질투의 녹색 눈동자, 오셀로...

이제 구역질나는 일터에서 의미없는 일을 하는 톱니바퀴같은 존재로 전락한다.
구토와 변신의 바퀴벌레,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부조리한 시간들처럼... 그는 어쩔 수 없는 시지프스가 아닐까?

그는 저항함으로써 존재 이유를 찾기도 한다. 그 마음 속에선 유토피아를 꿈꾸기도 하지만, 세상은 이미 디스토피아로 전락한 듯 하다.

이런 일련의 철학적 심상들을 회상하는 일,
우연히 폐부를 파고 드는 시나몬 향(계피)으로 떠오르는 옛 애인의 얼굴과, 생생하게 기억나는 그 애인의 옷, 그 때 흐르던 음악의 데시벨과 그 날의 햇살의 룩스까지가 기억나는 회상의 추억으로 이 바리스타의 수다는 멈춘다.

인생을 훑어 보는 것이 곧 철학이고,
우리가 별 것도 아닌 사실들을 경험하는 개인의 역사가 추상적이기 때문에,
그걸 구체화시켜 형상있는 존재로 만든 것들이 문학이기 때문에...
문학은 '사실'보다 더욱 '진실'한 존재의 이유를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바리스타는 오늘도 에스프레소의 새초롬한 잔에서 진한 인생의 향기를 우리에게 들이미는 것이다.

사실은 구수한 원두 커피를 아주 엷게 마시고 싶지만,
그가 진한 에스프레소를 내민다고 해도, 오래 머금고 있으면서 나를 내세우지 않는 오늘...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마치 그런 것처럼...> 하루를 이겨낼 힘을 그에게서 얻을 수도 있고,
페스트가 창궐한 오랑에서 <버티고 앉았어야> 내일을 볼 힘을 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다시 쨍그랑 * *  * ** 하고 문이 열렸다 닫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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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10-10 08: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리스타, 옆지기가 자칭하기도 하고 제가 가끔 불러주는 이름이기도 해요.
그래야 만들어주는 커피 한 잔 마시죠.^^ 이 책 담아갑니다. 에스프레소 향이
은은히 느껴질 것 같아요. 글샘님 글도 참 좋습니다.^^

글샘 2007-10-10 12:01   좋아요 0 | URL
가을을 타는지... 글이 좀 제멋대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