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리라이팅 클래식 7
진은영 지음 / 그린비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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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 이 책으로 칸트를 들여다보려한 내가 잘못이었는지 모른다.

칸트의 개념들을 방학을 이용해서 오랜만에 한번 보려도 들었던 책인데,
저자는 의외로 시인이고,
툭하면 푸코와 들뢰즈이야기를 들먹이며,
니체도 끄집어온다.

칸트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도 아니겠으나, 이물감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칭찬 하나 하자면, 고딩용 누드 교과서처럼 개념을 박스에 넣어서 설명하려한 점은 가상하다만...

계몽의 시대 18세기의 한복판에서 청교도부모의 영향을 받은 칸트는 고전문학, 물리학, 철학을 대학에서 공부했다. 뉴턴 물리학의 성공은 기존의 형이상학적 사유를 반성할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감히 알려고 하라, 너 자신의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가져라! 이렇게...

경험 속에 들어있는 '인식 능력'을 '경험 자체'보다 더 사랑한 칸트.

물자체를 상정하고 그것이 우리의 인식 능력에 따라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우리 이성은 그걸 갖고 논다.

칸트를 엿보면서, '순수이성비판'에서 제일 유명할 법한 구절 : 내용이 없는 사고는 공허하고, 개념이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는 말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내가 하는 교육이, 이 땅에서 교육이란 이름으로 저지르고 있는 온갖 양태가 바로 내용이 없는 사고에 불과하단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행태의 정치적 사회적 문제들에는 개념이 없는 맹목적 직관들의 '군림'이 근본적으로 깔린 것이 아닐까 하는...
게다가, 실천적 도덕률이라고는 듣도 보도 못한 지경의...
그리고 판단을 내일 수 있는 '교육, 독서,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문외한들의 맹목을...

칸트를 처음 만난 것은 당연히 고등학교 윤리 교과서였지만, 그건 암기용이었고, 다음엔 대학 시절, 온갖 변증법 철학서에서 곁다리로 꼬여있는 칸트를 경험한 것이 내 공부의 전부였다. 그의 순수이성비판을 사두긴 했지만, 지금도 서재어딘가에 쳐박혀 있겠지만, 좀 가벼운 필체로, 손쉽게 칸트를 만나려 했던 내가 잘못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대학시절 읽던 철학서 공부의 오류(비판을 위한 책이다 보니 내용이 깊지 않고 산만한)를 이 책에서도 읽는 느낌이어서 불편했다.

그리고... 숱한 철학적 개념을 만들어낸 칸트를 쳐다보면서, '번역'의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생각한다. 일본을 통해서 들어왔을 것이 뻔한 그런 개념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철학으로 머리가 가득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숱한 개념을 나타내는 단어들의 범주에서 내 머리가 멀어지는 느낌이랄까... 다음 방학을 이용해서 칸트를 제대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해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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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9-05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 하면 아직도 "윽~ 머리야" 소리가 먼저 나와요. 요즘 "열하일기"를 리라이팅한 책을 재미있게 읽어서 '리라이팅' 이라는 단어가 붙은 책은 좀 쉬울까 했는데 그게 또 아니군요. 음~. 언제쯤 "철학"이 쉽게 다가올까요?

글샘 2007-09-06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히나 칸트는 머리아픈 사람이죠.
철학이 쉽게 다가올 나이쯤 되면, 저 세상이 더 가깝지 않으려나?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