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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흐를 좋아하세요? - 송영의 음악 에세이
송영 지음 / 바움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직업과 상관없이 뭔가 예술과 사랑에 빠진 사람을 보면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착각을 구하려 나도 피아노를 매만지며 손가락을 삐꺽거리는지도 모르겠다.
알라딘에도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다. 그 분들의 페이퍼를 참조하면 좋은 음반들을 구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틈나면 끼리끼리 모여서 축구를 하고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과 나는 별로 친하지 않다.
몸을 움직이는 일에는 내 평생을 게을리 했으니 그런 데 눈을 빤짝이는 이들과 어울리긴 힘들다.
그렇지만 음악을 듣는 일은 자금을 조금만 투자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나처럼 꼼지락대기 싫어하는 사람에겐 좋은 취미다. 뒹굴며 책을 읽으면서도 곱으로 누릴 수 있는 호사다. 그런데도... 나에겐 LP판으로 20장 정도 음반밖에 없다. CD는 이제 사 볼까 생각 중인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대학 시절, 광장의 집회와 교문 싸움은 일상을 점거했더랬다.
학기 초 정도엔 집회와 교문 싸움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는데, 나는 붓글씨 쓰는 서클에 들었다가 먹보시만 가득 하고 다녔다. 4년간 한 작품도 걸지 못하고 붓을 놓고 말았다. 집중해서 작품 쓸 때 실력이 느는 데, 항상 작품전시회 할 무렵이면 광장에 나가 있곤 했으니... 먹 갈다가(한 시간 갈면 한 시간 쓸 양이 나온다.) 술집으로 직행하곤 했다. 팔자에 없으려니 했다.
붓글씨 쓰러 갈 시간도 제대로 없을 때면, 학생 회관 1층의 음악 감상실에 간혹 드나들곤 했다.
자리가 200석 정도 되었으려나? 아마도 가득 차진 않았던 것 같다.
구석자리에 앉아서 컴컴한 자궁같은 공간을 가득 메운 클래식 선율들은 광장에서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공간을 무한 우주 저 너머로 날려 보내곤 했는데, 제정신이 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대학을 다시 간다면... 도서관과 음악감상실은 정말 애용하고 싶은 공간들이다.
송영이라고 하면 '선생과 황태자' 등의 소설을 쓴 작가로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무언의 로망스' '송영의 음악 여행'등의 음악 이야기도 제법 쓴 모양이다.
나는 테크닉의 개발에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굳이 자신의 테크닉에 대해 자기 분석을 하지 않아도 내겐 애초부터 모든 것이 가능했지요...
색채를 연주한다는 호로비츠의 말이다.
굴드의 <프랑스 모음곡>, 빅토리아 포스트니코바의 <무언가>도 꼭 듣고 싶게 만드는 글들이다.
난 무언가 無言歌를 읽으면서 꼭 부사 '뭔가'가 떠올랐다. 뭔가... 뭔가, 무언가를 상상하게 만드는 무언가... 기회가 되리라.
무엇보다 탱글우드의 캠프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미국의 탱글우드에서 음악 캠프가 열리는데, 새로 작곡한 곡을 명연주자들이 한 달 연습하는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연주회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명연주자들에게도 피나는 연습이 필수적임을 평범한 사실을 보여주는 멋진 장면.
어린 시절, 천부적인 재능을 보여주는 연주자들이 자라면서 평범한 사람이 되는 일들도 안타깝다. 그러나... 인간은 원래 청소년 시절까지, 신의 세포를 다 사용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청소년기, 사춘기를 지나면서 인간의 육신은 땅의 그것에 속하게 되어 버리고, 천재성과 순수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나 아닌지... 이런 생각을 한다.
아름답기 그지없는 아이들의 모습과, 어린 시절 그토록 다재다능했던 아이들이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멍청한 어른이 되는 것을 보면 그렇지 아니한가 말이다. 그의 '아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그의 음악 편력에서 사회주의 국가의 예술혼에 대한 생각은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것이었다. 특히 천민 자본주의의 결정판인 이 땅에서 '음악하는 이들'에게 돌아가는 배고픔과 '연주기'로서의 악사, 그리고 관객없는 공연과 죄의식없이 무단 복제하는 세태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와 음악의 발전은 뭔가 삐걱거리는 불협화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떤 공연장에는 가득 관객이 들어차는데 어떤 공연에는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곳.
하긴 나도 문화회관에서 5분 거리에 직장이 있고, 시민회관에서 5분 거리에 집이 있으면서도 1년에 한 번 공연장을 찾을까 말까 하니 할 말 없다.
아이와 아내와 손을 잡고 조용히 음악을 듣는 한 시간을, 연극을 보는 한 시간을 누리는 것이 이제 내려가는 삶에 필요한 시간들이 아닐까 싶다.
음악듣는 사람들 이야기를 읽노라면... 음악이 듣고 싶어지고, 연주도 잘 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이란 선물을 '가지고 있는' 인간인 것이 그닥 불행하지만은 않단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의 비평들을 읽으면 '인간은 말종'이란 생각이 들다가도, 피아노 건반을 누르고 음악 이야기도 읽노라면 그런 세상을 싸-악 잊게 된다.
바흐의 무반주 조곡이나 브란덴부르그 협주곡을 듣고 있으면 그는 수학의 천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아마 피타고라스 선생이 바흐를 만났다면, 별 여섯 개를 주었을 것이다. 근데, 그의 음악은 주제와 변주의 무한 반복으로 듣기에 조금 지루하기도 하다. 그걸 피아노로 연주할 것을 생각하면 무섭기도 하고. 흐~~~
바흐를 좋아하세요? 하고 묻는다면, 잘 모르는 아직은 좋아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모르겠다. 나중에 바흐까지 치게 되면 그가 웬수같이 여겨 질는지도. 지금 체르니가 미워지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