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이야기
러셀 셔먼 지음, 김용주 옮김, 변화경 감수 / 이레 / 2004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미셸 투르니에의 글을 읽을 때, 간결하면서도 오랜 생각이 함축된 말들의 아름다움에 반한 적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아포리즘, 아포리아라고 한다는데, 격언이나 경구와 비슷하면서도 상당히 문학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었다. 꼭 문학적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이 니체의 <인간적인...>이나 까뮈의 <시지프의 신화>, 파스칼의 <팡세> 같은 글들을 읽을 때도 비슷한 느낌을 강하게 받은 걸로 보면, 서양의 철학적 글쓰기의 한 방향일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해 본다.

그 내용이 철학적이면 철학에 가까울 것이고, 감성의 표현에 치중하면 문학에 가까울 것이고.

이 책은 그 내용이 피아노와 피아노 연주에 대한 것이니까, 당연히 예술에 가깝긴 하지만, 그 글에서 느껴지는 맛은 사뭇 철학적이고 그 표현은 상당히 문학적인 책이다.

그런 것을 뭉뚱그려 '후마니타스' 즉, 인문학이란 말로 일컬어지는데, 학생 시절, 또는 책을 읽을 때, 그 인문학적 바탕이 필요한 이유를 이런 책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선 이과를 가려면 수학과 과학만 기똥차게 잘 하면 됐지, 그 아이들이 문학적 감수성까지 갖출 필요는 없다고 보는 것 같다. 역사관이나 세계관에 대해서는 더욱 심한 지경이다. 그렇다고 인문학도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닌 걸 보면, 이 땅은 학문의 불모지라고 볼 수도 있겠다.

피아노 학원을 4년 전에 넉 달, 올해 여섯 달, 합해서 10달 다닌 주제에, 이런 피아노 이야기를 읽는 것이 내겐 무리였다. 그리고 음악을 듣는 일에도 깊은 관심을 두진 않았던 내 삶의 토양에서 이 책의 많은 부분들은 받아들이기엔 너무 어려운 말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 책은 나처럼 음악에는 초보라도 삶을 절반 정도 살아온 사람에게, 그리고 나이와 상관없이 새로운 것을, 하고픈 것을 시도하려는 사람에게 큰 용기를 주는 책이다. 음악에 대한 깊은 지적 심연과 함께, 비유적 표현을 덧붙인 구절들을 읽으면서 '천재'는 이런 인간이다...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국인 피아니스트 아내가 맨 첫장에 바쳐진 헌사임을 알고는 조금 더 친근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는 여전히 여느 인간과는 다른 저 위의 인간이다. 분명, 그는 천재다.

요리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를 남긴 요리가이면서 화가이자 발명가, 과학가, 의학도였던 인문주의자의 최고봉,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맞보는 느낌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 글이다.

이 책을 내가 피아노를 한 10년 치고 난 뒤에... 그 때 읽어보면 어떤 느낌을 갖게 될까?

위대한 골프 선수 벤 호건의 이야기를 들먹인다. 골프가 피아노보다 훨씬 복잡하고 난해하다. 아마도 훨씬 더 늦은 시기에 골프를 배우기 때문에... 이를테면 30대가 되어서 처음 피아노를 배우면 몸을 통제하기가 골프처럼 어려울 것이다. 사실 골프와 피아노는 둘 다 훈련된 내성을 요한다는 점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특히 참담한 좌절감을 느끼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25) 나는 골프는 배우지 못해 그 유사점을 맛보기엔 떨어지지만, 30대에 처음 건반을 두드린 내게 피아노의 훈련은 참담한 좌절감을 매 순간 주기도 한다.

피아노를 <게임>에 비유한 첫 장. 나이든 이는 역시 게임을 쉽게 배우기 어렵겠지. 피아노 연주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 사랑의 달콤한 향기뿐만 아니라 하찮은 벌레, 독사, 수증기, 은하계도 모두 피아니스트의 손 안에 있다... 소리는 우주를 지탱하고 채우는 정기다.  칸타빌레(노래하듯이)는 소리 두 개를 이어주는 연골 조직이고, 섬 두 개를 이어주는 비단실... 선택된 극소수의 피아니스트는 네 손으로 연주한다. 엄지손가락이 호른이 되고 비올라가 된다. 그것은 마치 휘어진 공간 속에서 수많은 물체가 멀리서 또는 가까이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과 같고,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환상과 현실의 고정된 중심축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과 같다...(20-21)

피아니스트로 성공하려면 지능지수가 110이하이거나 140 이상이어야 한다.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의 왕성한 호기심은 피아노를 연주하고 피아노의 물리적 구조적 복잡성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인내심에 방해가 된다... (23)

피아노란 게임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그 게임의 법칙은 여느 게임과 마찬가지다. 주변의 기가 막히게 게임의 고수도 있는데 그를 보면 기가 팍 죽는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레벨로 올라가려면 차근차근 밟고 오르는 수밖에 답이 없다. 그리고 모든 게임은 공정하지 않다. 누군 조금만 연습해도 휘리릭 오르는 단계를 누군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조금 느리더라도 노력하면 비슷해질 확률은 높다. 김득신이 돌대가리였단 이야기도 있지 않던가.

작가는 피아노 연주자이기도 했지만, 훌륭한 선생님이었다.

대부분의 선생들이 학생에게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가르치며, 학생이 모르는 것을 가르치는 선생은 거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이것은 정신이 번쩍 들엑 하는 사실임에도 일반적으로 무시되고 있다.)을 이야기하는 선생은 잘 없다. 이런 선생에게 배워야 한다. 그리고 이런 선생이 되어야 한다. 학생이 모르는 것을 가르쳐야 그게 교수-학습 아닌가?(109)

레가토를 가르치는 선생님... 동물들의 자연스러운 민첩함이 좋은 본보기와 자극이 된다. 뱀조차도 부드러운 레가토를 표현하는 데 필요한 음에서 음으로 기어가는 듯한 연주의 본보기가 될 수 있다. ... 아, 훌륭한 비유는 인생에 대한 통찰에서 나온다. 그런 이가 훌륭한 교사다.... 건반을 따라 미끄러지듯 움직일 때, 손가락과 손과 팔과 상체가 하나의 선을 이룬다. 그리고 이 선의 바늘구멍 사이로 온몸의 무게가 빠져나간다... 아, 바늘 구멍과 온몸의 무게의 비유란... 피아노 앞에서...

3장에서 상관관계를 이야기한다.

지성과 감정의 고질적인 분열만큼 우울한 것은 없다.(157) 기술교육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모든 교육은 정서 교육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교육의 골자는 실제 체험으로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상상력의 의미는 제대로 해석될 수 없다. ... 교육 기관에서 감각을 자극하는 방법은 오직 예술 작품을 연출하게 하는 것밖에 없다.(159) 옳고 또 옳다. 예술과 교육의 상관성. 그런데 이 땅에선 음악, 미술은 공부로 치지 않는다. 쳇. 발도르프 학교에서 학년을 마무리할 때 연극을 꾸미게 하는 것은 얼마나 올바른 교육인가.

진정한 예술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다. 모방할 수 없으며, 표현할 수 없다. (185)
교사가 가르칠 수 없는 두 가지. 문화와 분위기.
이런 말들을 듣는 일은 얼마나 황홀한가.
진정한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 모방할 수 없고, 표현할 수도 없는 절대 수준의 아름다움과, 인간이 말이나 어떤 수단으로 전달할 수 없는 '문화와 분위기'... 그 감정과 지성의 절대 경지의 상관관계를 인간의 언어로 정의할 순 없으리라.

4장에선 악보를 이야기한다.

작품의 여러 가지 구성 요소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데, 그것을 지네가 다리 한 개를 움직이면 나머지 아흔 아홉 개의 다리에서 미묘한 동조 반응이 일어나는 것으로 비유한다. 작품의 상호의존성과 유연함, 복잡성을 지네의 다리에 비유하다니...(216) 하긴 악보란 건 그런 것들의 집합이다. 하나하나의 음표의 길이와 높이, 그것들이 둘셋 모인 화음, 이들이 이루는 멜로디와 리듬감. 적절한 연주와 적절한 휴지. 그 소리들의 크기와 빠르기들이 모였다 흩어지면서 어울렸다 멀어지는 느낌들을 연주하는 일도 쉽지 않고, 감상하는 일도 만만하지 않다. 모든 것의 유기체란 얼마나 어려움을 느끼게 하는 말인지...

고전 음악이니 낭만 주의니 하는 것들을 알 필요도 없지만, 시작은 거기서 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쿼크 같은 과학적 비유를 쓰기도 하고, 스킬라(괴물이름)같은 문학적 비유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 악보 부분에서는 다양한 곡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다 읽어 넘기지 못했다.

마지막이란 뜻의 코다부분이 제일 마음에 들어 두 번이나 읽기도 했는데,
반주로서의 왼손은 청지기, 집사, 시종, 가정교사, 유모, 완벽한 신사, 배의 선장, 심판, 자선가에 비유한다. 멜로디로서의 오른손은 저돌적이고 변덕스럽고 조울증적이고 까다로우며, 자비의 천사이다. 이 둘은 공존하며, 때로는 사이 좋게 지낸다. (341)

많은 책들이 비록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용두사미격이 되기 쉬운 반면, 이 책은 코다 부분에 와서 화려한 시작과 함께, 장엄한 마무리를 짓고 있다. 비유의 절정이어서 이 책을 놓게 될까봐 마음 졸이며 읽는 추리소설의 마지막 장과도 같다.

교육적 수준의 하락은 학군제의 팽창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여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교사의 지위의 하락도 연관이 있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이들의 천재성과 독립성의 무작위적인 부산물이다. 그러나 창조작업을 설명하고 찬미하는 교사들에게는 위정자의 특권과 존엄성이 부여되어야 한다. 이들은 나라와 문명의 안녕을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347) 동감이다. 천재를 기를 수 있는 것은 평범한 평균의 교사가 아님은 분명하다.

손가락 끝은 음에서 꿀을 추출하는 꿀벌이다. 손가락 끝은 음의 유혹적인 불꽃의 표적이 되는 나방이다. 손가락 끝은 각 건반의 여울목과 힘줄을 따라 기어가는 애벌레이다. 아... 이런 아름다우면서도 자연스런 비유를 나는 자주 접하지 못한다.(355)

레가토는 피아니스트가 짊어져야할 난제이자 십자가이다... 레가토는 마음가짐이다. 배를 타지 않고 바다를 건너는 것과 같다. ... 악절의 구조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검은 건반은 거품 같은 흰 건반의 바다 위로 솟아오른 빙하와 같다. 이 위에 내려앉는 것이 훨씬 더 쉽다. 교훈 : 균형과 기교와 균등을 위해서는 흰 건반에 조금 더 집중해야 한다. 맞다. 악보 읽을 때는 검은 건반 많으면 짜증나지만, 연주할 때는 검은 건반이 헷갈릴 일은 잘 없다. 흰 건반의 바다와 검은 건반의 빙하... (365)

천재를 만난 기쁨. 그렇지만 그 천재를 만난 기쁨을 100% 가까이 누릴 수 있으려면 그 만난 이가 비슷한 천재여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나처럼 그저 잠시 좋아하다 말 것이다.

이런 책의 장점은 수시로 어느 면이든 뒤적거릴 수 있는 글이란 점인데, 이 책은 십년 뒤든, 이십년 뒤든 내 시력이 남아있다면 다시 한 번 읽어야할 운명이 될 것 같기도 하다.

좋은 책을 권해주신 예찬이 아빠, 고맙습니다. *^_^*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팀전 2007-07-18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마이 플레줘...^^ 건반 누르시는 분이 읽으니 더 좋은 리뷰가 나오네요.100번 보는 것 보다 1번 하는게 낫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언젠 러셜 셔먼이 부산에 오면 함께 공연 보러가지요.몇 년전에 한번 오신 걸로 아는데.숨은 실력자라서 공연가격도 음반잡지를 도배하는 화려한 연주자들에 비해 저렴했던 걸로 압니다... 저도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요.예찬이가 크면 함께 해야 할 듯...연주하시면서 음악도 많이 들으셨음 좋겠네요...클래식팬 한번 만들어보려고 ^^

글샘 2007-07-18 2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ㅍㅎㅎㅎ 건반 누르시는 분...
그렇네요. 피아노를 연주할 실력은 안 되니... 오늘도 건반 누르고 왔습니다.
오늘 밤엔 연습을 좀 많이 해야 할까봐요. 금욜에 레슨받으려면 연습 많이 해야됩니다.
건반 누르는 이야기에는 많이 동감하면서도, 음악 이야기를 깊이 들어가거나 하면 전공자를 따라갈 수 없었지요. ^^ 담에 언젠가 셔먼 선생 오시면 같이 갑시다.
저도 학원은 아들 따라 간 거였어요. ㅋㅋ 좀더 크면 아이랑 손잡고 가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