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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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숫자 문화는 독특하다.

부처님 오신 날, 석가 탄신일 대신에 4월 초파일이란 말도 있지만,
3.15 부정선거, 3.1운동, 4.19 혁명, 5.16 군사 정변, 5.18 광주민주화운동, 6.10 유월항쟁, 6.15 남북회담, 6.25 전쟁, 7.4 공동성명, 8.15 해방, 10.26 사태, 12.12 사태 등... 사건을 숫자로 둔갑시키면 그 사건에 대한 <좋아하고 싫어함>의 감정이 삭제되어서 화자의 평가가 들어가지 않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5.18을 광주 항쟁으로 부르는 것과 광주 사태로 부르는 것은 천지간의 차이가 나듯이.

386 문화라는 말도 희한하다. 90년대 후반,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김대중이란 2번 대통령이 탄생하던 그 무렵, 30대의 나이로,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던 60년대 출생한 사람들, 곧 사회 개혁의 선봉에 서야 한다고 만든 조어가 386이란 조잡한 조어다. 컴퓨터 치고는 펜티엄으로 진화하기 이전의 버벅대는 버전에 불과하지만...

그 386에 걸었던 기대감은 컸지만, 김대중 정권이 IMF를 지혜롭게 돌파하지 못하여 카드빚에 몸을 던지는 가족을 양산했고, 러*앤 캐*같은 사채업자들만 득세를 한다. 급기야 2번이 대통령이 되는 두 번째 카드인 노무현도 많은 개혁 정책을 제시했지만 발목을 잡혔고, 불행하게도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체결 등으로 이완용 버금가는 인물로 거론되기도 한다.

현대사, 알면 다쳐~ 하던 시대가 바로 386의 시대였다. 그러나 386의 뜨겁던 시대엔 전두환처럼 무식하게 밀어붙이는 공공의 적이 있었기에 그 대척점의 스펙트럼들을 묶어서 재야든, 민주든, 진보든, 개혁이든 뭐로든 하나가 된다는 착각을 할 수 있었다. 그 코 앞엔 광주의 피비린내 진동하는 비디오 테이프가 놓여 있었고... 날마다 벌어지는 투석전과 구속, 간첩단들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한홍구 같은 이가 과거사의 진실을 밝힌다고 국가 기관과 일을 하는 이런 판국에, 정말 미치겠는 것은 앞의 그 스펙트럼이 완전 흐려졌다는 것이다. 재야란 말은 사라진 지 오래고, 통일 세력, 민주, 진보, 개혁 세력은 늙어 돌아가시거나, 딴나라당으로 편입되거나, 잘해야 열우당의 멍텅구리로 전락해 버린다. 그 스펙트럼은 '무지개'가 아닌 허상이었던가...

역사이야기 4권은 비교적 최근의 이야기여서 읽으면 읽을수록 혈압이 오른다. 그렇지만 한홍구의 글맛은 읽는 이의 눈길을 쫀득하게 잡아 당겨 금세 끝까지 내달려 읽게 한다.

군대 문제에 대한 비판들은 끝도 없지만, 국립 현충원과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의 차이는 한국 사회의 봉건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같은 크기의 미국 묘지와는 천양지차로 동작동 국립묘지엔 상놈과 양반과 귀족의 무덤 차이가 휘번덕하게 크다. 이것이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양극화가 커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원래 친일파부터의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했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양극화를 조금도 치유하지 못했던 것, 그래서 최소 생계비도 안 되는 29만원으로 문어대가리 살인마는 잘도 살아가는 것이다. 정말 더럽다! 퉷!!! 니들 무덤에 침을 콱, 뱉는다.

아주 사소한 거지만, 한홍구가 실수한 게 있다. ㅋㅋ 162쪽에 '민나 도보로데쓰'의 도둑놈은 도보로가 아니라 '도로보'다. 왜 내 눈엔 요런 사소한 것만 보이는 거냐!!! 한홍구처럼 지랄같은 세상은 무섭기만 하고...

광주를 읽는 눈도 상당히 넓어졌다. 미국을 보는 눈도 많이 차가워졌다. 그렇지만 갈수록 미국은 내 곁에 아늑하게 누워있다. 그 따스한 미국의 품은 언제 내 모가지를 조를지 모르는 농부 아낙의 낟알 주는 손과도 같이 우리와 함께 한다. 한국 정부의 사법권을 이기는 미국 기업의 권리를 적은 'FTA  문건'을 비밀이라니... 낟알만 받아 처먹다가 뒤지란 소린지...

아직도 국가 보안법이 튼튼하니까, 미국의 따스한 손길이 우리 모가지를 낚아채기까지는 충분한 마취제가 되리라. 한홍구의 대한민국 史는 정말 희망일까? 희망이 있다고 믿어야 할까? 역사가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 양녕대군의 후손이라던 프린스 리란 *새끼가 초대 대통령이었고, 전쟁 7년만에 혁명을 일으킨 민족이라고? 20년 해먹은 박통의 유신공주 박공주가 아직도 설쳐대고 그 얼굴에 칼을 댔는지는 몰라도 소문만 났던 지모씨는 징역을 살고 있고, 그래도 김대중과 노무현이 대통령이 돼서 희망이 있다고?

모르겠다, 모르겠다. 나는 정말 모르겠다... 희망이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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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5-22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었습니다. 저의 우리 역사에 대한 무관심에 반성을 하고 있답니다. 그러면서 답답함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