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 끓는 시간 사계절 1318 문고 19
박상률 지음 / 사계절 / 200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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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은 비가 나리는 때에만 받는 것이 아니라 젖어 있는 마음은 언제나 우산을 받는다.
그러나 찢어진 지우산 같은 마음은 아무래도 젖어만 있다. 신동문, <우산>에서...

이 동화는 알라딘에서 알게된 분이 아이 읽히라고 보내 주신 것인데, 잠자리에서 중학생이나 된 아들 녀석에게 몇분씩 읽어주다가 재미있어서 내가 주루룩 다 읽고 말았다.

이렇게 늘 젖어있는 마음이 순지의 마음이었다.
상대적으로 그럭저럭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내가 교사가 되어 '인간 극장'이나 '이것이 인생이다'에 나올 정도로 파란만장한 어린 아이들의 삶을 대하면, 내 마음도 금세 지우산처럼 젖어버리고 만다.

사고로 아이처럼 된 엄마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술마시고 폭행을 일삼던 아버지가 정신을 차리나 했더니 새엄마를 데리고 들어오고, 새엄마는 완전 팥쥐엄마인데, 아빠는 사고를 당해 손가락을 잃는다. 그나마 할머니가 아이들 셋을 데리고 가셔서 건사를 하시는데, 외삼촌이란 인간이 통장까지 발겨가 버린다.

학교도 다니는 둥 마는 둥, 누구도 어른들은 도움이 되어주지 못하는데... 중학생 순지는 <행복이라는 것은 어쩌면 조금은 덜 불행한 것, 불행이 덜 넘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행복은 행복한 그 순간엔 잘 모르는 것이라고... 하지만 불행은 불행한 그 순간에 이미 잘 알고 있다고... 그게 행복과 불행의 차이인지도 모른다고... 모르고 지나느냐, 알고 겪느냐 하는 차이...

이런 것들을 아는 아이들이 세상엔 많이 있다.
내가 초임 시절, 어떤 아이가 아파트 딱지에 대한 글을 적은 것을 보았을 때 정말 삶의 현장에 선 느낌이 들었다. 그 아이의 글 말미는 이랬다. <나는 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안다>고. 수업 시간에 늘 떠들고 까불이라서 쉬는 시간이면 늘 교무실 어느 선생님 옆자리에서 벌을 받고 야단맞던 그 아이가 그런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선생님들은 그 아이를 야단칠 만큼 세상을 살지도 못했으면서 말이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손길을 느끼며 <살림이란, 아니 삶이란 이처럼 지나간 손길 위에 또 하나의 손길을 얹는 것>이란 생각을 하는 순지. 할머니의 손길 위에 <이제 어른이 된 나의 손길>이 얹힌다. 물론 <모든 것은 그대로 있다. 그대로 있으면서 삶은 계속 이어지는 것>.

이런 생각들이 아이의 머릿속에 들어있으랴... 하고 생각할는지 모르지만...
세상의 아이들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리석지도 않고 어리지도 않다.
사실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걱정보다 훨씬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걱정이기도 하다.
세상이 너무도 팍팍하니까... 아이들에게 너무도 선배들이 잘못사는 모습만 보여주고 있으니까...

현이는 올해 만난 아이다. 처음엔 두번 잠자다가 걸려서 감점표에 자기 이름과 죄목을 쓰고 갔는데, 그 담부텀은 늘 튀어 보인다. 큰 소리로 인사해서 맨 뒤에서도 늘 눈에 띄려 하고, 복도에서도 쫓아와서 인사를 한다. 특활도 내 부서로 와서 반장을 하겠다고 한다. 담임샘이 음악샘이라서 음악실 키를 빌리려고 가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녀석은 누나랑 둘이 사는 아이라 한다. 그래서 애정 결핍인 표시가 났던 거였다.

엄마가 없는 아이들은 밥냄새가 얼마나 그리울까... 엄마가 있는 아이들은 <가끔> 엄마가 없기를 꿈꾸지만 엄마가 없는 아이들은 <늘> 엄마가 그리울 것이다.

아이들에게 엄마는 못 되어주더라도, 밥냄새를 맡게 해주진 못하더라도, 아침 일찍 보충 듣겠다고 오는 아이들에게 초코파이라도 하나 사들고 들어가야겠다. 현이 녀석도 하나 주고...

순지의 고난이 그저 동화였음 좋겠다. 전쟁이 끝난 60년대의 <엄마없는 하늘아래>도 아니고, 요즘도 달동네에 사는 순지와 순동이, 순달이 같은 아이들이 들꽃처럼 지천으로 흔한 것을 보는 일은 너무도 마음아픈 일이다. 지천(至賤)이란 말처럼 흔한 것은 지극히 천한 것과 동의어인지도... 그 일에서 벗어나려고 올해 담임을 빠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차라리 내게는 이런저런 잡무를 많이 하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이다. 쉬는 동안 배터리를 가득 충전해서 더 많은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이 되는 연습을 꾸준히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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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3-3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가슴 저릿저릿한 대목들이 많지요. 님이 책도 읽어주시는군요.
정말 좋은 아빠 맞아요.^^

글샘 2007-03-31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잘 읽었습니다. 아이가 잠자리에서 책읽어주는 걸 참 좋아해요^^ 아직 애기같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