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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 살롱
조용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나는 천성이 느리고 여유가 있다. 남들이 어려운 일에 닥쳐서 허덕거리는 일은 나는 쉽사리 해치운다. 미리미리 준비하는 성질이기 때문이다. 임시에 닥쳐서 일을 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고, 여유있게 해두고 쉬는 스탈이다. 그런가 하면, 늘품성이 없어서 여느 사람들이 세 개를 가지면 열 개를 벌 생각들을 할 때, 나는 세 개를 쓰는 데 열중한다. 남들 다 한다는 주식이나 펀드 같은 데 아예 관심이 가질 않는다.
아마도 내 사주 팔자를 풀어 보면, 다 드러나 있을 것이다. 장난삼아 컴퓨터 점 같은 데서 보면 절대로 돈에 욕심내지 말란다. 욕심나지 않으니 그것도 다행이다. 대학도 남들 다 들어갈 수 있는 법대, 상대를 다 버리고 사범대를 고른 것도 지금 곰곰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안일하다 싶을 정도로 잘 아는 일, 잘 할 수 있는 일을 고른 것으로 생각된다. 나는 천성이 보수주의자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워낙에 오른쪽으로 의식화가 강하게 되어있는 탓도 없지는 않으리라.
그렇지만, 나는 마르크스를 읽으면서도 늘 그에 푹 빠진 사람들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렸고, 특히 주사파들이 읽는 문건이나 책들을 읽으면서는 이런 게 무슨 '사상'인가, 하며 허탈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중뿔나게 데칸쇼를 읽어댄 것도 아닌 어중이 떠중이지만...
용기가 없으니 운동권에도 푹 빠져들 수 없었고, 늘 관심은 있지만 아웃사이더는 아닌 어정쩡한 자리에서 에두른 젊은 시절을 보냈다.
이제, 혁명의 시대는 가고 다시 가진자들의 시대가 오고 있는 모양이다. 혁명가들은 기나긴 겨울을 버티기 위해 칼을 벼리고 겨울잠을 준비해야 하는 때인지도 모르겠다.
다음 대통령으로 지목되는 명바기가 나는 왠지 총명스러 보이긴 하지만 얕아서 싫다. 그 이름이 주는 明과 薄이 만든 느낌일는지도 모른다.
미국은 38도선 이남을 차지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서울에 있는 잡다한 대학들을 끌어모아 <국립종합대학>을 설립했다. 지금의 서울대학교는 그렇게 어정쩡하게 생겼다. 그 서울대학교를 나온 '뛰어나는 인재들'이 하는 짓이 지금의 한미 FTA다. 가진자들의 가계는 '더욱더욱 융성하'겠지만, 결국 미국의 뱃속을 불리는 것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나는 참 보수주의자이고 싶다. 학교 선생이란 직업이 얼마나 보수적인지는... 누구나 알지 않는가. 혁명적인 교사는 사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가장 보수적인 이 자리에 앉아서도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은 시대가 슬픈 까닭이다.
조용헌의 살롱은 조선일보에 실렸던 짧은 글들을 모은 이야기책이다. 이거 화장실에서 읽기 딱 좋은 책이다. 화장실에 장편소설 갖고 갔다가는 치질걸린다지만, 이 책은 화장실용으로 제격이다.
내가 좋아하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짧게 실려있다. 한시가 등장하기도 하고, 사주 팔자나 주역에 대한 풀이도 있고, 이런저런 인물들의 이야기도 간략하게 실린다. 무엇보다 인류 문화가 남긴 문학과 역사와 철학에 대한 넓은 이야깃거리들이 돌출하는 것을 즐기는 재미는 쏠쏠하다.
고수들을 찾아 다니는 조용헌의 이야기를 듣는 살롱의 차맛은 제격이다.
그런데도,.. 이런 책을 읽으면서 웬디 케틀런지 하는 자의 꼬락서니에 구역질이 나고, 기자단까지 폭행한다는 한국의 경찰은 쪽팔리고 증오스럽다. 보수주의자를 길거리에 내몰고 주먹질하게 하고 혈압오르게 하는 것은 올바른 정치가 아니지만, 약소국의 보수주의자는 애초에 그른 말이 아니었을까? 약소국에서 수승화강의 양생법을 배우며 열받지 않게 화를 내리고, 물기를 올리는... 그래서 水火기제의 주역의 괘를 이미 이룰(旣濟) 수는 없는 것인지...
아, 나는 보수주의자이고 싶다...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