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사색 - 한국인의 인간관계에 대하여
강준만 지음 / 개마고원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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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은 좀 난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꼼꼼하고, 그는 비판적이고, 그의 글쓰기는 독보적이다.
혹자는 그를 짜깁기 수준이라고 폄하하지만, 그것은 꼴꼴난 한국의 학자들이 연구도 하지 않으면서 논문이랍시고 내놓은 것들의 짜깁기 수준을 조금이라도 안다면, 강준만의 짜깁기 솜씨가 얼마나 오묘하고 절묘한 것인지를 말할 것이다.

강준만은 오버한다. 잘난 사람은 오버할 수밖에 없다. 오버하는 사회라는 좀 어쭙잖은 책도 있지 않은가.
강준만을 보면서 다만 안타까운 점은, 강준만이 왜 욕을 먹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 사회 안에 숱하게 많은 지식인 중에 한 명일 뿐인 강준만이라면 그가 욕을 먹을 일은 드물 것이다. 그렇지만, 이 좁은 사회 안에는 지식을 팔아 먹고 사는 지식상인의 기득권자들과, 현실을 밝히고 비판하고 미래를 탐색하려는 홀대받는 지식노동자들이 몇 되지도 않는 판에, 이 지식 노동자들은 기존 기득권자들로 이뤄진 권력의 세계에서 욕을 듣기도 하고 잡스럽다고 폄하되기도 하는 듯 하다.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한국에서 남성으로, 아버지로, 어머니로, 할머니로, 노동자로, 사장으로, 이주노동자로, 창녀로, 애인의 남성,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그 다양한 역할들 중 수십 가지를 한 사람이 떠맡아 살아가는 것이 삶일진대, 모든 페르소나를 완벽하게 소화하기를 요구하는 것은 다만 한국의 특성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 사색'으로 제목을 정하지 않고 '인간 사색'으로 정한 것은 조금 모순이거나 오류다. 하긴, 우린 한국인만 인간으로 취급하는 특성도 가진 특이한 민족이기도 하다.

한국의 급격한 농촌 경제와 공동체 의식의 붕괴, 식민지 이후 독재 정권 하에서 모질게 이어져온 무의식 교육, 그러다 보니 '민주 공화국'이라는 국가의 정체 중, 민주주의는 형식적으로나마 이루어졌지만, 그 공화국의 공공성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 나라. 그래서 '개인'의 영달을 위한 진학과 출세가 국가의 가장 큰 화두가 되어버린 나라...라는 복잡 다단한 특성을 가진 한국 사회에서 '인간'으로, 그것도 엄청나게 많은 페르소나를 뒤집어쓴 인간으로 산다는 일은 결코 만만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이 기획된 것이다.

이 책의 장점, 재미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이 책의 단점, 재미없는 부분도 상당히 있다. -_-;; 이런 리뷰란...

역설의 틈바구니를 헤집고 드는 강준만의 시선은 날카로우면서도 끈질기고, 한국의 현실과 역사를 종횡무진 씨실과 날실을 아우르면서 생각의 천을 짜내는 선수다.

1장은 사랑의 이야기를 한다.

고등학생에게 섹스가 닫힌 사회, 그러면서도 세상에서 성매매가 가장 쉬운 사회.
윗사람을 깍듯이 대접해야 하는 사회, 그러면서도 뒷담화가 무성한 사회.
음지의 돈으로 각종 회식이 만연하는 사회, 그러면서도 겉으로는 청렴한 선비를 표방하는 사회...
온갖 러브호텔이 한국처럼 많은 나라도 있을까? 그렇지만, 길거리에서 뜨거운 키스 아니라 가벼운 키스라도 하는 사람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한국인은 음습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일까?

2장에선 욕망을 이야기한다.

이놈은 사랑이란 주제와는 달리 광신주의 물질적 욕망, 뜨거운 한국인과 쿨한 세태, 각종 정치 이야기가 뒤섞이면서 아주 어수선한 책으로 변주되기 시작한다.(이맘때쯤 많은 독자들이 강준만의 짜깁기를 욕하리라.)

3장은 청춘이란 주제다. 1,2장에 비해 생뚱맞은 주제라고 보인다.

청춘이라기 보다는 한국의 나이문화에 대한 이야기다. 한국어의 특징인 높임말, 젊어 보인다면 무조건 좋아하는 현 세태와 노인 인구의 급증에 따른 노인 부양의 문제... 제목을 청춘으로 붙인 것은 좀 어색하다.

4장은 진실이란 주제를 다룬다. 이 장은 주로 정치적 가십들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 책이 인간 사색이란 제목으로 거창하게 시작한 데 비하여 꽤나 실망스런 부분이다. 강준만의 여느 책들과 차별성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숱한 '추상명사'를 화두로 두고 온갖 이야기를 끼워 넣은 후반부는 다소 실망스럽기도 하다.

강준만의 글쓰기가 좀더 단단하게 다져졌으면 좋겠다. 그의 책을 집에 사서 두고두고 보고 싶도록...
아직도 그의 책은 사두기엔 좀 본전 생각이 나는, 그렇지만 도서관에서라도 찾아 읽게되는 수준의 좋은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던 부분은 '신념' 파트에서 러셀의 말을 인용한 부분이었다.
인칭의 변화에 따라 같은 내용이라도 표현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정의에 따라 분노한다, 너는 화를 낸다, 그는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날뛴다.'는 식이다.
'나는 그것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너는 변심했다. 그는 한 입으로 두 말을 했다.' 이런 것.

한양대 교수 권혁웅은
'나는 용감하고 순수하며 세심하고 열정적이고 절제하며 불의를 참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무모하고 단순하며 소심하고 욕정적이고 억압돼 있으며 분노에 빠지기 쉬운 사람이 된다."
중요한 것은 덕목이 아니라, 누가 주인인가 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덕목을 고르는 일이 필요한 때다...

똑같은 것이라도 보는 이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을 찾게 되는 것.
이런 걸 보면서, 내 행동을 돌아 본다. 나는 당연하다고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남들이 보기엔 얼마나 우습게 볼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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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2-23 0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제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어떤 책에 대한 이야기라도
그것이 모이는 한 곳이 느껴집니다.
강준만에 대한 소견은 저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본인 스스로가 겪어야 할 성찰부분을 제외하면
우리 사회에 이런 사람도 꼭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새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직 봄의 약속이 마음 속 한구석에 있군요....
술 한 잔 기회되면...

글샘 2007-02-23 10: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럽시다... 기회되면... 근데 봄방학이 너무 짧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