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그녀 반올림 4
이경화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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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중3 머시매다. 엄마가 죽고 아빠는 백수고 할머니가 빌딩집세를 받아 먹고 산다. 집안은 좀 콩가루가 폴폴 날린다.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잃고, 판타지 소설에 몰두한다. 이런 아이들은 우리 주변에 너무도 흔하다.

고모들이 간혹 간섭하는데, 과외를 많이 붙인다. 논술 과외도 그 중 하나다.

논술 과외 선생이 32세, 아이는 16세. 논술 과외 선생을 사랑하는 감정을 품는다. 열여섯 머시매라면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논술 과외 선생은 아주 부드럽게 그 사랑의 감정을 품어 준다.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 품어주는 것. 이 소설이 아름다운 것이 이것이다. 연속극이라면 둘이서 난리부르스를 떨겠지만, 사실 세상이란 연속극처럼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은 것이다.

논술 선생님의 배려로 아이는 건전한 방향으로 성장한다. 여자 친구와도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작가는 아이들에 대한 시선을 놓치지 않고 충분히 습도 높은 감성을 가지고 따라 붙는다.
방황하는 아이들이라면, 야 이눔아, 꿈을 가져라! 하고 윽박지르기 전에 이렇게 충분히 공감하며 품어주어야 할 것이 어른 노릇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과외 선생에게 빠진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내 초임 교사 시절 생각이 나기도 했다.
그 땐 교무실에 출근하면 아이들이 예쁜 꽃병에 제철에 맞는 꽃들도 갖다 꽂아 두곤 했다.
활짝 핀 백합과 봉오리들이 엉긴 화병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날이면, 교무실 분위기가 하루 종일 즐겁다.
어떤 날은 아이들이 산에서 꺾은 진달래 가지 몇이 올려져 있기도 했고...

요즘 아이들은 학원에서 좋아하는 샘을 찾는다. 어떤 학원의 누구에겐 그래서 아이들이 몰리기도 한다. 당연한 노릇이다. 인터넷 강의로 관심이 쏠리기도 한다. 실력도 있고 잘생겼으며 젊은 선생님은 학교에 없으니까.

내가 교직에 발 들인지 18년 지났다. 학교는 그대로 늙어갔고, 내 나이보다 항상 높은 교사 평균 연령은 아이들에게서 재미없는 학교를 만들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교육의 실패 원인의 가장 큰 이유는 교사 수급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줄어들면 학급당 아이 수를 줄여야지, 교사를 뽑지 않으니 아이들은 늙은 교사들과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서 마음이 통하는 젊은 교사를 만날 길이 요원하다. 불행한 일이다. 여고생들도 마음 설레게 할 총각 선생님 한번 만나지 못하고 졸업한다. 마음밭이 풍성해질 좋은 기회를 박탈한 처사다.

선생이 뭐 중요하냐고 할는지 몰라도, 어른들이든 아이들이든 선생님에 따라서 학교 생활이 얼마나 유의미하기도 하고 무의미하기도 한 것이었던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학교는 일정 프로그램을 돌리는 국가 시스템의 일부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얼굴을 맞대고 서로 성장하는 공간인 것이다. 교학상장이라 그랬다. 가르치고 배우면서 서로 성장한다고... 교사와 학생이 서로 성장해야 하는 공간이라고... 그런데, 요즘 학교엔 월급 받는 교사들이 많아졌다. 나도 그렇게 늙어간다. 학부모가 촌지를 보내오면 어떻게 돌려보낼까로 고민하는 이쁜 젊은 선생님들을 만나기 힘들어진 학교. 과연 희망이 있는 것일까?

이 책에서 학교란 공간은 불량한 복학생이 삥이나 뜯는 일이 일어나고, 아이들은 시험에나 관심있고, 관심없는 아이들과는 말도 하지 않으며, 화장실에선 담배를 마구 피워도 누구도 지도하지 않고, 오히려 수학 선생은 아이가 확 밀면 자빠져서 울기나 하는 나약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었다.

현실과 그닥 다르지만은 않으리란 생각을 한다. 학교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최적의 환경은 아니겠으나, 국가가 그리고 교사들이 제발 좀 아이들 가르치는 일에, 그리고 아이들 만나는 일에 관심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 올해부터 교원평가가 학교에 도입된다. 많은 일반 국민들이 오해하는 것과 다르게, 교원평가는 교사의 품성을 합리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조작이 가능하고 현행 진급 제도에서는 진급의 디딤돌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교육 운동에 관심을 가진 교사들을 억압하는 기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너무도 큰 제도임은 명약관화하다.

아이들은 수학여행을 데리고 가면, 창밖을 보지 않는다. 멋진 제주도의 바다 경치를, 한라산 오름들의 신록의 찬란한 빛깔들을 바라볼 여유가 그들에겐 없다. 아이들은 제 가슴에 지펴진 불씨 하나로도 감당이 불감당인 시절인 것이다.
어른들이 여행을 가면 별로 떠들지도 않고 다들 창밖을 바라본다. 가슴에 별로 불씨들이 남아있지 않아 시선이 저절로 창밖의 대자연을 응시할 엄두를 낼 수 있었으리라.

아이들의 열정을, 혈기를, 무한한 가능성과 미확정적인 미래를 어른들의 시각으로 싹자르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공부를 하기 위해 태어난 것도, 대학을 가기 위해 자라는 것도, 민족 중흥의 사명이나 조국에 대한 애국심으로 필요한 '자원'이 아니잖은가. 아이들은 있는 그대로 푸르르고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들이지 않은가... 아이들에게 활동할 공간을 주고, 시간을 주어야 하는데, 그러면 또 학원으로 달려가겠지?

올해는 수능을 쉽게 낸다고 한다. 논술을 치를 능력이 대학들은 없다. 숱한 아이들이 수능 뒤에 재수를 하게 될 것이다. 내년엔 다시 원위치 하겠지...

조선일보에서 한국의 교육은 '영어 한마디 못 가르치는 교육, 날마다 바뀌는 입시, 뒤처진 공교육...'등으로 매도했지만, 그 욕이 틀린 것 하나 없어서 조선일보가 얄밉지만 아이들이 더욱 불쌍하다. 앞날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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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1 2007-01-29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이맘때 쯤 지인들의 가족과 함께 영주 부석사를 여행했습니다. 저희 큰아들이 수학여행때 왔던 곳이라고 하면서 안내를 잘 해 주었습니다. 소수서원과 선비촌등 아이가 장황하게 설명하는 얘기들을 들으면서 학교의 수학 여행이란 제도가 꽤 괜찮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수학여행 중 차 속에서는 환타지 소설에 코를 박고 있었거나 아니면 친구들과 마블게임이나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건저오는 것도 있더군요. 환타지 소설이던, 만화책이던 책과 가까운 아이들은 그래도 순수한 면을 많이 보여주는것 같아요.

글샘 2007-01-2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네요. ^^ 건져오는 것이 있었다니... 아직도 학교에서 아름다운 날들이 만들어 지기도 하지만 너무 불필요한 무한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