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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
한학수 지음 / 사회평론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에 존 그리샴과 로빈 쿡이 있다. 둘다 스릴러 소설을 쓰는 이들인데, 전자는 법과 관련된 소설을, 후자는 의료와 관련된 소설을 쓴다.
그 둘의 공통점을 찾자면 이렇다.
1. 평범한, 그렇지만 똑똑한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들은 보통 커플로 이루어지며, 지극히 평범하다.
2. 평범한 그들에게 우연히 검은 그림자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3. 그들은 평범하기 때문에, 그 실마리에 크게 관심갖지 않지만, 그들은 똑똑해서 의심을 갖고 있다.
4. 우연한 기회에 그들은 사건에 본격적으로 연관된다.
5. 실체를 알 수 없는 '악마'는 엄청난 권력, 금력, 폭력, 행정력을 동반하여 평범한 그들을 억압한다.
6. 도저히 이길 수 없을 듯한 '악마'에게 주인공들은 큰 상처를 입고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
7. 그러나, 아주 우연한 계기로 '악마'의 본질을 직시하고, 정의의 사도를 만나 악마를 퇴치한다.
8.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 평범한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절감하면서 ending...
한학수 PD는 딱 이 주인공이다. 애인은 등장하지 않지만, CP인 최승호와 조연출 김보슬이 커플로 활약한다.
그는 87학번답게 길바닥에서 데모하면서 대학 시절을 보냈을 것이고, 학생회 활동을 했으면 주사파의 영향도 좀 받았던 순박한 청년이었을 것이다. 좀 똑똑해서 언론사 시험에 합격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겠지만, 그저 그런 일에 재미를 붙인 평범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에게 어느 날 제보자가 나타나고... 소설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이 소설은 스릴러 소설이고, 추리 소설이어서 손에 땀을 쥐게 하고,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하지만, 스포일러가 될 염려는 없다. 국민들이 이 소설의 결말을 이미 다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밤을 새워 이 소설 아닌 소설을(소설보다 정말 재미있다.) 읽으면서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다. 그 예감은 이 소설의 속편이 등장할 가능성에 대한 것이란 걸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국가 권력과, 금전력과, 인맥 관계 등은 스릴러 소설이 등장하기 아주 적합한 환경이다. 삶 그 자체가 온통 스릴러다. 운전하는 모든 사람들이 스릴러 속의 인물이고, 붉은 악마로 변할 수 있는 파시스트 애국자의 피로 들끓는 나라다.
황우석이 연구는 안 하고 빨간 넥타이에 번드레한 헤어 스탈로 꼴깝을 떨 적에, 언론들은 왜 그가 사기꾼임을 몰랐을까? 매판 언론은 돈냄새만 맡을 뿐, 구린내에는 선택적 코막힘이라도 걸리는 걸까?
나는 황우석이 쌩쑈를 하고 서울대, 엠비씨가 조사를 하고 검찰로 사건이 넘어갈 때, 아니 그 전부터 황우석이란 인물의 쇼맨십에서 그가 진실한 사람도, 과학자의 양심을 걸 사람도 아님을 느끼고 있었다. 줄기세포로 난치병을 고친다는 그의 말은 황탄하기도 그지없는 상식이었던 것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래도 한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한국이 IT 강국이었기에 과학자들의 기여로 한피디가 사건을 마무리할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이름을 밝히지 않는 과학도들의 상식적인 문제 제기는 권력을 이기는 들풀이 되었던 것이다. 감자캐는 익명의 제보자, 어나니무스 정말 멋지지 않은가? 이런 이들이 한국의 힘이고 미래다. 황우석들의 권력자는 적이요, 악마일 따름이고.
한국 사회에선 어느 곳에서도 이런 일들이 생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노무현의 청와대도, 황우석도, 조선일보도 반성문 제출하지 않고 쌩까고 있는 현실에서,
황우석이가 다시 연구를 재개하고 있다는 말에, 난치병 환자들이 또다시 상처입을가 두렵다.
아, 자기를 버리고, 공을 버리고, 이름을 버리라는 큰 공부를 하지 않은 자들이 '지식 권력'을 지니게 되면 그 일이 얼마나 재앙으로 변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지식 산업 사회에서 전쟁보다 무서운 것은 비루한 지식 권력의 추악함이 '功'과 '명예'에 가려질 확률이 훨씬 크다는 사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