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 서현의 우리도시기행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말하라~"
책제목은 사뭇 명령조이다. 민감한 사람에게는 어찌보면 불쾌하고 거만하게 들릴만큼.
껍질안에 내용물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의 견해를 강력하게(?) 또한 논리적으로 설파하면서,
이 거리를 걷고 있는 시민들이 자신의 거리에 관심을 갖고,
부당한 면들을 개선하는데 힘을 모을수 있기를 강하게 촉구한다.

하긴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거리에 너무 무심했는지도 모른다.
거리를 그저 어느곳에서 어느곳으로의 이동하는 공간만으로 여겼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거리가 조금 불편하고 부적절하더라도
아무런 이견없이 그렇게 여겨왔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건축가 서현씨가 쓴 이 책은,
새로운 시각을 갖게 만든다는 책의 역할중 한가지를 보여주면서,
우리중 대다수가 아무 생각 없이 걷는 이거리가
어떤 역사적인 배경과 중요성을 가질 수 있으며,
이거리가 이렇게 변화하게된 이유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변해야 할건지에 대한
이해하기 쉬운 설명들을 던져준다.

물론 우리가 이 글을 읽었다고 해서 우리의 거리들이 쉽게 변화하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가 거리를 만드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안일한 사고방식에 빠져있는 한은 말이다.
서현씨는 우리가 그런 안일한 사고방식을 버리기를 바라는 것일 게다.
그리고 보다 더 적극적으로,
현재 우리가 걷는 우리의 거리들을 비판하고,
정책입안자들에게 영향을 미쳐 아무생각없이 거리를 만들지 않도록 하자는 것일 거다.

요즘은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내가 걷는 거리를 살핀다.
보도 블럭들은 평평히 잘 깔려 있고, 깨진것들은 없는지.
과연 이 길을 휠체어를 탄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잘 다닐수 있을건지.
보도 블럭 안으로 사람들을 제치고 올라서는 비양심적인 차들은 없는지.
좁은길안에 덩치큰 몸을 들여놓고선, 거리를 비좁게 만드는 매너없는 건물들은 없는지.
그 건물들의 모양새가 그 거리에 어떤 이미지들은 주는지.

내 설익은 감식안으로는(더군다나 좋은 거리를 경험한적도 없는)
아직 어떤게 좋은거라고 판단해야할지 애매모호 하기만 하지만,
어떤 꾸준한 관심은 필요한게 아닌가 싶다.
그 꾸준한 관심이 어느순간부터는 올바른 판단을 할것이고,
이거리가 바뀔수 있는 토대가 되지 않겠는가?

이건 나만의 생각으로 끝나선 안될 일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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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07-07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anicare님께 받은 책을 아직 펼쳐보지 못하고 있었는데.. 님의 리뷰를 먼저 읽게 되네요.. ㅎㅎ
음.. 저는 이곳 김포에 이사오면서 길에 대해, 거리에 대해 더 관심을 갖게 됐어요.. 이곳 길이 심히 심각하거든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저도 조만간 재밌게 읽어야죠..

습관 2004-07-17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마다 산책할만한 멋진 길이 집근처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향료전쟁 가일스 밀턴 시리즈 1
가일스 밀턴 지음, 손원재 옮김 / 생각의나무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이런 방대한 내용의 책을 읽고 나면,
어떤 방향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무척 고민스럽다.

제목 그래도 "향료전쟁"이라는데에 초점을 맞춰서,
그 당시(1600년도) 유럽사회에서 향료가 얼마나 값비싸고 귀중하게 여겨졌으며,
그 향료를 구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모험길에 나서고,
그 모험 덕분에 아메리카 대륙에 사람이 살기 시작해서,
오늘날의 미국이 생겨나고,
그 모험길에 나선 사람들이 또 얼마나 많이 희생 되었으며,
그런 이야기를 하자면, 그 내용만으로도 한참을 얘기해야 할것같다.

또,
지금은 지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반다제도에 존재한다는 런섬이라는 곳이
기름진 육두구 농장을 가지고 있음으로 해서
그 당시에 부의 보고 였으며,
그 섬을 차지하기 위해서,
영국과 네델란드가 얼마나 치열하게 접전을 벌였던지에 대해서도 아마 한참을
얘기해야 할것이다.
아마 지금의 미국 맨해튼을 그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런섬과 바꿨다고 한다면,
그 치열한 역사를 알지 못하는 그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마지막 방향은 제일 눈에 거슬리는
영국의 위대함에 대한거다.
필시 작가는 영국인일 테고,
영국은 네델란드와의 전쟁에서,
원주민에게도, 친절하고 자비로워서 그들의 신뢰를 얻고, 네델란드와의 전투에서도
용감무쌍했으나,
네델란드는 비열하고, 잔인하고 간교하게 그려진다.
런섬을 지키기 위해 4년동안 런섬에 고립되어 네덜란드에 맞섰던고
나다니엘 코트호프란 사람은
가일스 밀턴이란 작가에겐 너무나 위대한 영웅이었던 모양이다.
원제도 "NATHANIEL'S NUTMEG"인걸 보면 더욱더.

"육두구, 메이스, 정향"
내겐 이름도 생소한 이들 향료를 조금이라도 더 얻기 위해서,
유럽사람들은 그 위험천만한 고생을 하고,
병들어서, 포탄과 총탄에 맞아서 저세상으로 가고,
아무 죄없는 순진한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지금 내겐 한없이 무의미해 보이는 전쟁을 벌였다.

너무나 흥미롭게 읽었지만,
읽고난후 입맛이 쓴 책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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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6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민음사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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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시대에 '토마스 만'을 읽는다는것은,
왠지 너무나 따분해 보인다.
시대적 배경도 그렇거니와,
요즘엔 잘 사용하지 않는 장황한 묘사들과,
미묘하며 자세한 심리의 서술등은,
요즘처럼 모든게 급속히 변해가는 시대에,
시대착오적으로 느껴질테니까.

그런데,
난 이런소설들은 무척 좋아한다.
"재미있다."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아마
"좋아한다"라고 표현해야 할게다.
읽으면서 나또한 심하게 따분해 하는 경향을 보였으니까.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은 제목이 보여주듯이,
부덴브로크라는 성을 가진 한 가족의
4대의 걸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역사는,
한 가족의 성향이 어떻게 변하여 가는지를,
그리하여 최종에는 결국 파멸을 맞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뒤에는 이 가족의 역사는 독일시민계급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하지만,
사실 난 그런건 잘 모르겠다.

브덴브로크가의 사람들에게는 무엇보다도,
근면, 성실, 절약, 일에대한 열정만이 최고의 가치를 지닌다.
이렇게 말한다면, 무척이나 몰인정한 사람들이 연상되겠지만,
그렇다기 보다는,
"시민계급"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때 느껴지는
가치를 연상하면 될것이다.
할수 있는한 열심히 일하고, 그만큼 벌고, 번만큼 쓰고,
그렇게 열심히 살다보면,
자신의 계층이 한층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는 희망.

반면에
사랑과 감상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엄격하게 배제되기 마련이다.
2대에 등장하는 고트홀트는 아버님의 의견에 반해,
사랑하나만을 바라며, 결혼을 했다가 집안으로부터 내처짐을 당한다.
반면 사랑보다는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결혼생활을 해 나가는 장은,
그 집안의 든든한 후계자가 된다.
또 3대에 등장하는 크리스챤은 예술적 기질과 감성을 가지는 바람에,
하는사업마다 말아먹고,
결국은 형 토마스로부터도 배척당하면서
우스꽝스러운 삶을 이어간다.
반면 토마스는 브덴브로크가 사람들의 정신적 기치를
잘 지키며 살아가지만,
그의 내면안에는 그런 성향 말고도 다른 성향이 상당 부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그의 모든 행동들은 위선이 되고,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그는 점점 지쳐만 간다.
게다가 토마스의 아들이며, 4대로 등장하는 하노는
감상적이며 예술적 성향만을 지니고 태어나
결국 어린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그들 가족에게 감상적인 성향은, 몰락의 지름길이 되었던 것이다.

사실 토마스 만은 마지막에 등장하는 하노와 같은 상황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실업가였던 아버지와 예술적 기질이 다분했던 어머니 사이에서,
끝임없는 내적 갈등을 경험했을것이다.
아마 그런 내부적 갈등이,
그가 살아가던 시대상황과 맞물려 이 작품을 탄생시켰을 거라고
추측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오랜만에 읽어본 클래식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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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06-30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셉과 그 형제들을 사두고 아직 못 읽고 있었는데.. 님 리뷰를 읽은 계기로 손을 대야 겠습니다..^^ 잘 읽었어요..
 
후아유 - [할인행사]
최호 감독, 조승우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조승우가 사람을 반하게 할 만한 귀여운 미소를 지으며,
이나영을 기웃기웃 쳐다보는 장면이 나온,
어느 사진을 보고선, 무척이나 "후아유"가 보고 싶다는
들뜬 열망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사실 나는 그런 깜찍한 멜로영화를 좋아했던 것이다. ㅠ.ㅠ

"후아유"는 아마도 우리영화 "접속"이나,
통 행크스와 맥 라이언이 주연했던 "유브갓 메일"과
일맥상통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다
현실 공간이 아닌,
인터넷이라는 온라인 세상에서 서로를 알게되고,
그런 서로로 인하여,
현실세계의 사람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을 서로에게 미치게 된다.

그건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알수 없는 사람에게 자신을 더 많이 열어보일 수 있다는거.
99퍼센트 공감하는 이야기지만,
이런 사실은 가끔 혼돈스럽기짝이 없다.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에."라는게 가장 큰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또한 "후아유"는 전형적인 멜로 영화의 틀인,
상처받은 사람들의 상처 치유하기를 보여주고 있다.
서인주는 촉망받는 국가대표 수영선수였다가
청각을 잃음으로서 자신의 꿈을 잃게 된다.
친구에게 "자폐소녀"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녀가
그 상처를 치유하고 세상과 떳떳하게 맞서
대면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이가 바로 온라인상의 "멜로"

소재의 차이일뿐 다 그저그런 이야기일뿐이고,
전개과정도 뻔히 눈에 다 보이는게 이런류의 멜로 영화이지만,
나에게는,
보고 나면 미소짓게 되고,
또 새로운 영화가 나오면 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인걸 어떡하겠는가?

그리구,
극중 조승우는 그동안 내가 그다지 안 좋아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이다.(그 만큼 멋지다는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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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frog 2004-06-09 1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후아유를 보고 조승우라는 배우를 좋아하게 됐어요.. 참... 뭐랄까.. 사람을 끌죠..^^
 
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
웬디 베케트 지음, 김현우 옮김, 이주헌 감수 / 예담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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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나에게 좋은 그림은,  사진이었다. 가능한 실물과 똑같은 그림. 그런 그림을 보면 "와, 참 잘 그렸다."라면서 순진한 마음에 경탄을 내 보이곤 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가면서, 머릿속에 어떤 복잡한 작용들에 의해, 견해라는것과 취향같은 것들이 생겨남에 따라서, 좋아하는 그림의 종류도 달라졌다. 이제는 단순히 사진같은 그림은 그리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물론 내가 그림을 좋아하는 기준을 사실은 나 자신도 정립할 수가 없다. 그저 어떤류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끌리고, "좋다"라고 말하고, 그걸 반복해서 타인에게도 학습시키다 보면 타인도 내가 좋아하는 그림의 팔할 정도는 어림짐작으로 맞춰볼 수 있게 되었다. "이거 니 스탈인데~" 이런거.

웬디 수녀는 유럽미술을 기행하는 자신의 여행을 "그랑투르"와 비유한다. 큰여행이라는 의미의 "그랑투르". 유복한 집안의 자녀들이 어느정도 나이가 들어서 보다 넓은 견해를 가지고, 풍부한 경험을 쌓기 위해 떠났던 여행. 그들이 본것은 분명 그들의 문화양식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건축물들, 그림들, 조각들, 그리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웬디 수녀는 자신의 기행이 그것과 비슷하기를 바랬던 것 같다. 물론 그 분야는 미술작품에 한정되기는 했지만. 그리고 그녀는 그녀가 보고 느낀 것들을 독자들에게 한껏 보여주고 싶어했을 것이다. 그 마음에서 이 책은 완성이 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지식이 미천한 나에게는 이 책을 읽은 후의 느낌이, 유럽미술이라는 특색있는 미술의 한 분야가 보이기 보다는, 미술이라는 것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고 해야 하려나, 그런 느낌이다. 물론 그 인식이라는것이 전혀 몰랐던 것을 알게 되기 보다는 그 동안 알면서도 그리 크게 간주하지 않았던 한 부분을 퍼뜩 깨달았다는 걸로 설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는 한다. 당장 필요한 도구에서부터 그다지 필요하지 않아 보이는 예술작품들까지. 끊임없이 만들고, 소비하고. 그 만들어진 물건들은 그 만든사람의 마음이 담긴다. 흔히 "보이지 않는 부분을 보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내가 느낀게 그런거였다. 그저 누구의 그림이구나 하는 그림들. 그게 왜 걸작이라고 하는걸까? 의구심을 자아내는 그림들. 웬디수녀는 설명한다. 우리가 주의깊게 보지 않는한, 그리고 보고서도 그거에 대한 의문점을 갖지 않는한,  볼 수 없는 부분들이 그림에 있다는 것을.  가끔 그 이야기들은 한없이 주관적으로 보이고, 심지어 거짓말처럼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그럴듯하다는것을, 그리고 그럴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아주 사소한 행위나 말투 하나에서 사람의 마음깊은 곳을 보여줄 수 있다고 칼 융은 이야기했었다. 하물며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만큼 많은 정신적인 소모를 하는 행위는 아마도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그 속에 묻어 둘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우리가 그 이야기들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

아마도 그림을 조금 아는 사람이 이 책을 보았다면, 나와는 다른 이야기를 이 책에 찾아내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 책에 있는 몇편의 그림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추측하며 읽어내는 것만으로도 그림이라는 것에 한발짝은 다가서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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