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스케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2
도리스 레싱 지음, 서숙 옮김 / 민음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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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우에는, 아주 사소한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끌기도 한다.

언제 생겼는지 알 수없게 생긴 손톱위의 긁힌 자국이라던지,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동안 굳어버린 나의 말투, 언제나 배경음악처럼 들려왔던 그 음악들... 등등의 수없이 많은것들.

그렇게도 어느순간, 사소한 것에 마음이 끌리는 이유는, 아마 그 사소한 것에 그 동안 깨닫지 못했던, 우리의 인생을 관통하고도 남을 진실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라고 하면 너무 오버하는 걸까??

도리스 레싱이라는 작가의(사실, 나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런던 스케치>라는 이책을 읽는 내내, 나를 사로잡은 생각들은 위에 표현한 그런것들이었던것같다.

이야기 하나하나는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저런 것들이 소설로 쓰여질 수 있는가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뒷통수를 치는 것같은 둔중한 느낌이란...

사실 환상적이며, 있을법하지 않은, 또는 나로서는 절대 겪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책은 읽는 내내 약간의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작은 참새의 행동거지에 대한 네다섯페이지 정도의 설명, 지하철을 타고가는 동안 마주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동물원 짐승들의 쫓고 도망가는 이야기, 공항 까페에서 두 자매의 대화등등. 이 곳에 나온 각각의 이야기들은 어디서나 있을법한 정말 사소한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진지하게 책을 탐독한 사람이라면,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말로 명료하게 표현하긴 힘들지 몰라도 어느순간, 런던이라는 도시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서를 깨닫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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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5-01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봐야 겠네요...님의 리뷰를 읽으니...
 
삶이 있는 도시디자인
얀 겔 지음, 김진우 외 옮김 / 푸른솔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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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학교다닐때, 설계수업과정중에 아파트 단지를 계획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몇번의 거듭된 고민끝에,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아파트를 배치했었다. 그 형태는 조형적으로 (내눈에조차)멋들어지게 보였었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동소이한 형태들과는 확실한 구별이 되었기에 충분히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었던거 같다. 물론 교수님들의 평가도 좋은축에 속했던거 같다. 그때는 나름대로 그 형태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개념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이 있는 도시디자인'이라는 이 책을 읽은 지금, 내가 설계했던 그 아파트 단지가 실질적으로 그 땅위에 세워졌더라면, 하는 상상을 하면, 얼마나 아찔하게 느껴지는지. 어쩌면 그 아파트 단지는 머지않아 슬럼가가 되어 버렸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이나 도시를 디자인 하는 사람들이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그림을 그리거나 형태를 만드는데 있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평면상으로 아름다운 도면들(곧은 직선, 좌우대칭의 건물들의 배열이라던지, 기하학적인 문양들...), 아름다운 형태의 매스들은 어느경우에는(거의 대부분의 경우가 되고 있기도 한것 같다.)삶과 아무런 연관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사람들이 어울려 살기 좋은 도시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유럽의 중세시대에 형성된 도시들은 결코 곧은 직선이나 기하학적인 형태의 길이나 배치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들은 필요에 따라 조금씩 덧붙여지고, 편리한대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느낌대로 천천히 변형되어 가서 오늘날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그에 반해, 디자이너란 직함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설계한 도시나 건축물은 어떠한가??
그것들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보기 흉하게 혼자 우뚝 서 있으면서, 일반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기도 하며, 길들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차를 위해서만 만들어진듯, 사람들이 그 길들을 걷기는 힘겹기만 하다.

흔히 예술을 논할때, 건축또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곤 한다. 하지만, 건축은 예술과는 다르게 작가의 영감에 따라서만 만들어질 수는 없다. 건축에는 사람들의 삶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 삶이란것은 누군가의 강제적인 틀 속에 갇혀 버릴만큼 규칙적이며, 정형적인것이 아니다. 삶은 끊임없이 변하고, 부딪히고,다시 만들어지고 하면서 또다른 삶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도시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 삶을 디자인 안에 담아내기 위해서 디자이너는 자신의 영감만을 따를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논리적인 많은 고려를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위에 얘기한것들에 관한 많은 깨달음을 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것들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만다. 그래서 아마 사실은 많은것들을 알고 깨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잊고 넘어가 버리기 마련일 경우가 많다. 이 책의 내용들은 새로운 사실들은 아니다. 아마 누구나 한번쯤은 스쳐 지나가면서 생각했었던 이야기들일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깊게 그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잊어먹지 않으려 하거나, 어딘가에 적용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개울아래 쌓여있는 돌멩이처럼 아무런 흥미도 끌지 못하는 사실들이 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는 그 돌멩이들을 그 하천에서 건져내어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게 될 것이며,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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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 - 영혼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티베트 소년
사브리예 텐베르켄 지음, 엄정순 옮김, 오라프 슈베르트 사진 / 샘터사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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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나는, 다리를 사용하지 못하고 손을 사용하지 못할지언정, 눈만은 멀고 싶지 않았다. 내가 살면서 즐기는 것들이 눈을 이용해야 하는 것들이 대다수인탓이리라 싶다. 시력을 잃느니, 죽어버리는게 낫겠다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한때는 점점 나빠지는 시력때문에, 고통스러운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티베트의 작은 시골마을에 사는 타쉬는 어느날 무서운 열병을 앓고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그것은 타쉬의 어머니가 허락도 받지 않고, 노간주 나무로 집 울타리를 지은것에 격분한, 노간주나무에 기대어 사는 귀신의 짓이라고 타쉬와 그의 식구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타쉬는 그 귀신을 용서한다.

사람의 감각에 있어서 너무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력을 잃고서도 타쉬는 그다지 절망하지 않는다. 시력을 잃음으로써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만났기 때문이다. 아마도 시력을 읽지않는 정안(正眼)을 가진 사람들은 평생 알 수 없는 세계일것이다.

소리로 이루어진 세계, 냄새로 이루어진 세계. 시력은 그 미세한 감각들을 무디게 만든다. 하지만, 타쉬는 시력을 잃음으로서 그 감각들을 체득하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우연히 로사라는 곳에 있는 시각장애아를 위한 학교를 알게 되고, 그곳을 찾게 된다.

너무나 선한 마음을 가진 타쉬 주변의 사람들을 보며, 난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게 사실은 못내 의심스럽기만 하다.

우리 나라 같은 곳에서 누군가가 눈이 멀게 된다면, 그 사람은 심한 마음고생에 시달릴것이다. 하지만 타쉬의 주변사람들은 모두 타쉬에게 용기를 준다. 오히려 타쉬에게 새로이 생긴 재능(이야기를 상상하고 그걸 풀어내는 재주)에 열광하기까지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눈먼 삶을 개척해 가는 타쉬에게 감동하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주변의 사람들의 선한 마음에 감동받는다. 내가 눈이 멀더라도, 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많았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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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푸른 점
칼 세이건 지음, 현정준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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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심 우주여행이라는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인간의 탐구심은 끝이 없지만, 모든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믿고 있었고, 인간의 기술력도 우주여행까지는 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물며, 우주안의 어느 행성 하나를 골라 이주한다는 생각은 더없이 비현실적으로만 생각되었다.

그러던 내가 이 책을 읽음으로써 우주여행이라는것,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라는과업이 일어날 일, 아니 꼭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물론 그 일들은 나의 세대에서 이루어지지 않을거라는 생각은 여전하긴 하지만 말이다.

인류 최초로 우리가 발 디디고 있는 이 지구라는 행성을 벗어난 우주비행사들은 하나같이 지구라는 우리의 삶의 터전이 얼마나 연약해 보이는가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마치 한손에 쥐고 조금만 힘을 주면 으스러지는 푸른색으로 채색된 속이 텅 빈 유리 구슬처럼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게 연약해 보이기만 한 지구가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세살먹은 어린아이도 아는 사실일 것이다. 환경오염은 더욱 심화 되어 지구의 온도는 점점 올라가고, 예전에는 모르던 떠돌이 혜성 충돌의 위기, 시간이 지날수록 확장되는 우주안에서의 지구 위치의 변화.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는 아마도 지구라는 행성위에서는 어떤 생물도 살고 있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니 지구자체가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행성이 되어 있을는지도 모른다.

이런 모든 일들은 인간의 힘으로 변화 개조시키기가 불가능한 일들이 될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서 더 이상 지구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어디론가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생성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여행이라는것, 지구과학이라는 학문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얼마나 중대한 학문인가란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지금 그나마 지구에서 가까운 금성이나 화성이 먼 훗날에는 우리가 살 수 있는 별로 변모되어, 인류는 그곳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별들에 대한 정보를 먼저 체계적으로 모아야 할 것이다.

암스트롱이 달에 한 발자욱을 내민뒤로는, 우주에 대한 관심이 하락 일로를 달리고 있는 듯하다. 더 이상 우주가 대중들의 관심사는 아닌것 같다. 하지만, 더 먼 앞날을 본다면, 우리가 우주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그리고 창백한 푸른점 우리의 지구를 더 오래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노력도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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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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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여행에 대해서 환상과 동경을 가지는데 반해, 난 그다지 여행을 동경하지 않는다. 기묘한 풍물을 보고, 평소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는것이 신기하고 흥미롭지 않을리 없지마는, 몸이 게으른 탓인지 아니면 성격자체의 이상인지 여행은 나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일인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러던 내가 이 책을 읽음으로서 여행에대한 동경을 열렬히 갖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것은 아니다. 분명, 사람손에 길들여지지 않는(엄밀히 얘기하면 이런것도 아니지만) 자연속을 걷는다는것은, 쉽진 않은 일일것이고, 새로운것과도 많이 조우할 수 있을것이며, 알지못하기에 더욱 두려울 테지만, 그 모든 일을 겪고 난 후에는 정말 가슴 뿌듯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책은 훌륭한 본보기를 보여준듯하다. 충동적으로 이유를 만들어가며, 애팔레치아트레일 종주를 결심하는 작가의 모습. 막상 떠나기 며칠전 이런저런 어려움을 깨닫고 두려워하는 모습. 처음 도전하는 사람들의 어리숙한 모습. 이런저런 어려움을 겪으며 떠나는 험난한 여정. 중간중간 보상처럼 주어지는 행운들. 여행의 후유증.

아마, 이 여행이 잘 끝나고, 그걸 회고하는 내용이었다면, 그 감동은 덜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이 더욱더 맘에 와 닿았던 것은 결국은 트레일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그들의 모습에서였던거 같다. 완벽하지 못함이 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여행을 떠날 생각도 갖지 못하고, 책을 붙잡고 앉아있던 나에게 위안을 주었던 것일까??

어떤 이유였던간에, 완성되는 것만이 여행의 묘미는 아니라는 것에 한표를 던지고 싶다. 그들은 종주를 완성하진 못했지만, 트레일을 걷는 동안 너무도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하지 않는가?? 그것으로 충분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빌의 친구 카츠에 대한 이야기. 어리석어 보이고,인생에 별 도움이 되지 않으것 같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책을 읽는 내내 너무나도 정감이 가던 캐릭터.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난 여전히 길을 잃을지도, 야생동물로부터 위협을 받을지도 모르는 숲길을 내 몸의 절반만한 배낭을 지고 걷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빌 브라이슨이 느꼈다던 자연의 거대함과, 신비함과 아름다움, 그가 흘렸던 땀의 느낌을 느끼고 싶어한다면, 정말 어이없는 욕심이겠지,싶다. (하~ 생각해보니 이게 여행에 대한 동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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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ho 2004-05-01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별 기대없이 읽었는데 흥미롭고 좋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