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있는 도시디자인
얀 겔 지음, 김진우 외 옮김 / 푸른솔 / 2003년 1월
평점 :
절판


학교다닐때, 설계수업과정중에 아파트 단지를 계획하는 과정이 있었다. 그 당시 나는 몇번의 거듭된 고민끝에,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아파트를 배치했었다. 그 형태는 조형적으로 (내눈에조차)멋들어지게 보였었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동소이한 형태들과는 확실한 구별이 되었기에 충분히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었던거 같다. 물론 교수님들의 평가도 좋은축에 속했던거 같다. 그때는 나름대로 그 형태가 나올 수 밖에 없는 개념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지금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삶이 있는 도시디자인'이라는 이 책을 읽은 지금, 내가 설계했던 그 아파트 단지가 실질적으로 그 땅위에 세워졌더라면, 하는 상상을 하면, 얼마나 아찔하게 느껴지는지. 어쩌면 그 아파트 단지는 머지않아 슬럼가가 되어 버렸을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건축이나 도시를 디자인 하는 사람들이 가장 저지르기 쉬운 실수는, 그림을 그리거나 형태를 만드는데 있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평면상으로 아름다운 도면들(곧은 직선, 좌우대칭의 건물들의 배열이라던지, 기하학적인 문양들...), 아름다운 형태의 매스들은 어느경우에는(거의 대부분의 경우가 되고 있기도 한것 같다.)삶과 아무런 연관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흔히 사람들이 어울려 살기 좋은 도시들이라고 일컬어지는, 유럽의 중세시대에 형성된 도시들은 결코 곧은 직선이나 기하학적인 형태의 길이나 배치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들은 필요에 따라 조금씩 덧붙여지고, 편리한대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느낌대로 천천히 변형되어 가서 오늘날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그에 반해, 디자이너란 직함을 달고 있는 사람들이 설계한 도시나 건축물은 어떠한가??
그것들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보기 흉하게 혼자 우뚝 서 있으면서, 일반인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기도 하며, 길들은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차를 위해서만 만들어진듯, 사람들이 그 길들을 걷기는 힘겹기만 하다.

흔히 예술을 논할때, 건축또한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곤 한다. 하지만, 건축은 예술과는 다르게 작가의 영감에 따라서만 만들어질 수는 없다. 건축에는 사람들의 삶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 삶이란것은 누군가의 강제적인 틀 속에 갇혀 버릴만큼 규칙적이며, 정형적인것이 아니다. 삶은 끊임없이 변하고, 부딪히고,다시 만들어지고 하면서 또다른 삶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도시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 삶을 디자인 안에 담아내기 위해서 디자이너는 자신의 영감만을 따를것이 아니라, 너무나도 논리적인 많은 고려를 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위에 얘기한것들에 관한 많은 깨달음을 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대부분의 것들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만다. 그래서 아마 사실은 많은것들을 알고 깨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잊고 넘어가 버리기 마련일 경우가 많다. 이 책의 내용들은 새로운 사실들은 아니다. 아마 누구나 한번쯤은 스쳐 지나가면서 생각했었던 이야기들일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깊게 그것에 대해 생각하거나, 잊어먹지 않으려 하거나, 어딘가에 적용해 볼 생각을 하지 않았기에 개울아래 쌓여있는 돌멩이처럼 아무런 흥미도 끌지 못하는 사실들이 되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다면, 우리는 그 돌멩이들을 그 하천에서 건져내어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게 될 것이며, 그것들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