핑거포스트, 1663 1 - 네 개의 우상
이언 피어스 지음, 김석희 옮김 / 서해문집 / 2004년 12월
평점 :
절판


몇몇의 사람들이 똑같은 상황속에서 똑같은 일을 겪는다 하더라도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또는 상당한 부분에 있어서 아주 다른 기억을 갖게 된다는것은 어찌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MBTI(마이어스-브릭스 심리유형검사)의 한 항목중, 오감형인 사람과 직감형인 사람은 사물을 기억하는 성향이 아주 다르다고 한다. 오감형인 사람은 사물의 세세한 부분을 아주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기억하지만 직감형은 사물을 대했을때 느낌이나 감정 같은 정서적인 면만을 기억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 두 유형의 사람들의 기억을 상기시키면, 둘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사람의 성격에 따라서도 이렇게 기억이라는게 쉽게 뒤틀려 질 수 있는것인데, 성격뿐만 아니라 오만가지 컨디션이 하나의 사건에 개입된다면, 아마 누군가의 기억이라는것만큼 객관성이 없는것 또한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언피어스의 "핑거포스트"라는 역사 추리 스릴러 분야로 분류할 수 있는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점이었던거 같다. 한가지 사건에 대한 네가지 견해. 또 견해일뿐만 아니라 그로인해 굴곡되기까지 하는 사건의 진실에 대한 접근. 핑거포스트는 그렇게 뒤틀려진 사건의 진상에 대해 진실한 길잡이를 가르켜 주는 하나의 굳건한 기둥으로서 당연히 맨 마지막에 서술되어진다.

사실 스토리는 좀 지루하기 조차 하다. 보는 관점에 따라 하나의 이야기가 수십개로 변주될 수 있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하나의 이야기를 네번 반복하는 결과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좋은말도 세번이상 들으면 지루해지기 마련이라는데, 하물며 이런 긴 이야기야 말 할 수 없을 것이다. 더구나 하나하나의 이야기는 별개로 완성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그 각각을 따로따로 봤을때,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이 빛을 발한다면 그것은 바로 모든 이야기가 한 곳에 모여 있을 수 있고, 핑거포스트라고 지칭한 앤소니 우드의 이야기가 가장 나중에, 제법 정확한 기억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자신의 편의성에 따라서 과감한 생략법을 사용한 다콜라의 스토리가 가장 처음에 위치한 그 치밀한 순서와도 결코 무관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 약점으로 인해 이 소설은 읽는 내내 아주 크게 나의 흥미를 끌진 않았던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이건 분명 많은 사람들의 평가에 대비한 상대적 개념이다.더구나 이 책을 읽는 내내 단숨에 읽어 치울 만한 개인적인 시간을 갖지 못해 책 읽는 시간이 길어진 탓도 있을 것이다.)다만 진실이 무엇인지는 어느정도 궁금한건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이야기가 훌륭한축에 낀다고 아무른 의구심 없이 얘기할 수 있을것 같다. 나로서는 조금 지루한 과정을 거쳤을는지도 모르지만, 네가지 변주가 완성해내는 하나의 화음은 충분히 흥미로운 컨셉이었고, 내가 살아가는 동안 생각해야할 또 하나의 꺼리를 던져주었으므로. 더불어 소설속에 훌륭하게 표현된 역사적인 당시의 사회상은 흥미롭고 유쾌한 장식음은 아닐런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구름을 사랑한 과학자 - 구름의 분류법을 고안해 낸 19세기 기상학자 루크 하워드의 삶과 업적
리처드 험블린 지음, 조연숙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은 이후로 가끔씩 하늘을 보며 구름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하지만 여지껏 권운이니 층운인니 적운이니 하는 따위의 이름과 형태를 완전히 매치시켜서 딱 보면 저게 무슨 구름인지 알겠다 따위의 전문적인 지시는 할 수가 없다. 단지 난 가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면서 저렇게 변화 무쌍하고 잡을 수 없을것 같은 형태를 지닌 구름에 누군가가 이름을 부여했고 그로인해 구름학(neophology)이라는-현재의 나에게도 생소한-이라는 학문이 탄생했고, 기상학의 변화에도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 모든 일들이 무척이나 신기하게 여겨지기만 할 뿐이다.

루크 하워드는 엄격한 퀘이커 교도였던 아버지 뜻에 따라 엄격한 규율 아래서 생활을 해 왔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어린 하워드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은 거대한 하늘에서 갖가지 모습으로 흘러다니며 같은 모습을 10분 이상은 결코 유지하지 않았던 구름을 관찰하는 일이었다고 하는데, 참 대견스럽기 그지 없는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나중에 구름의 명명법과 구름 류법을 발표한걸 보면 말이다. 어린시절의 관심사를 어른이 되서까지 그토록 꾸준이 가지고 가는 사람도 참 드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루크 하워드의 삶은 참 재미가 없다. 우리가 영웅이나 좀 유명한 사람에게서 기대하는 스캔들이나 삶의 굴곡같은건 루크 하워드의 삶에선 전혀 보이지 않는다. 루크 하워드는 아버지의 뜻을 전혀 거스르지 않고 기숙 학교를 잘-비교적 모범적으로-다녔고, 그 후에도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역시나 엄격한 퀘이커 교도였던 사람-이름이 생각 안남-의 도제로 들어가 약제사 수련에 들어간다. 이렇듯 루크 하워드는 별 굴곡 없는 삶을 살아가면서도 특이하게 구름에 대한 열정은 항상 간직하고 살아왔던 것 같다. 그리하여 결국 기회가 왔을때,-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여가 시간과 경제적 상황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자리 제의가 들어왔을때-그것을 수락함으로써 그토록 잠재적으로 열망하고 있었던 구름연구에 심열을 기울일 수가 있었다. 물론 그 환경에는 한창 과학에 대한 관심이 사회 전반적으로 많았었다는 사실과 과학 관련 클럽들이-루크 하워드도 정기적으로 연구논문을 발표하곤 하던 한 과학 클럽의 회원이었다.-우후죽순격으로 생겼던 것도 큰 역활을 했겠지만 말이다.

사실 각각의 구름 형태에 이름을 붙여주고, 구름 형태를 분류하자는 아이디어는 루크 하워드만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도 새털구름이니 양떼구름이니 뭉게 구름이니 하는 말들이 있듯이 예전부터도 각기 나라마다 구름에 무수히 많은 이름을 붙여 불렀을 것이다. 멀게는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탈레스도 구름에 대해 연구를 했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루크 하워드가 명명한 구름 분류법이 가장 유명해지고 유력해졌던 것은 그 분류법이 세계 어디서나 통용될만한 것이었고, 무엇보다도 과학적이고 논리적이었으며, 누구나 쉽게 구분할 수 있을만큼 잘 만들어졌다는 이유 때문일 것이다. 물론 구름의 이름들이 정착하는 과정에서는 그것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는 경쟁자들도 많았고, 그 이름을 거부한 반대자들도 많았지만,현재 우리 모두가 알다시피 권운이나 층운 적운이라는 이름은 우리 학창시절의 교과서에도 실릴만큼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이후에 영국의 보퍼트는 구름의 명명법에서 힌트를 얻어 유명한 보퍼트 풍력계급을 만들었다고 한다. 가끔 이름을 짓는것 하나만으로 어떤 분야에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켰다는게 참 어이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 이면에는 나름대로의 타당한 이유가 있긴 하지만,(가령, 날씨마다 구름모양이 다르다는거라던지 역사적으로 지식을 축적하기 위해서 공통된 명칭이 있어야 백년전의 구름모양과 현재의 구름모양을 토대로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는것)얼마나 쉬운 일처럼 보이는가? 이건 마치 콜롬버스의 달걀을 상키시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 빈치 코드 1
댄 브라운 지음, 양선아 옮김, 이창식 번역 감수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4년 7월
평점 :
절판


참 신기한 일이다.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읽은 이 책이 알라딘에서 리뷰가 몇개 안 보인다는 사실이. 내가 가능하면 너무 알려진 베스트셀러를 기피하는 현상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읽었을것이 분명하기에, 리뷰쓰기가 많이 주저되리라고 생각된다. 내가 훌륭한책이라는 많은 사람들의 검증된 의견에도 불구하고 베스트셀러라면 약간은 주저하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새 아주 오랫동안 베스트셀러계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아주 유명한(?) 이 책을 읽게 된 데는, 한동안 독서의 맥과 함께 책에 대한 관심이 끊기면서부터 다시 책을 읽고 싶단 기분이 들었을때, 쉽게 고를 수 있던 책이 없었던데 그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서 검증된 책이라 읽고 나서 딱히 후회할 것 같진 않았고, 나름대로 그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다. 딱 예감대로였다. 후회스럽지 않을만큼 내용은 흥미진진했다. 책도 너무나 속도감 있게 읽히는 바람에 너무 금방 읽어버려서 좀 아쉬운 감도 있었다. 내가 꿈꾸는 일중에 하나는 아주아주 두꺼운 책을 야금야금 아주아주 오랫동안 읽는일이기에.

이 책은 얼마전 흥미롭게 봤었던 "내셔널 트레져"란 영화를 자꾸 상기시키는 소설이기도 했다. 당근 소재가 비슷해서이다. 시온 수도회가 무언가 대단한 보물을 어딘가 숨겨놓았다는 것도 그렇고, 그 보물이 십자군 전쟁을 통해 템플 기사단이 찾아서 어딘가 또 숨기고 그 보물을 찾는다는 큰 골조는 상당부분 비슷했다. 물론 세부적인 디테일과 그 보물의 내용은 둘 사이에 큰 차이점을 보이긴 했지만.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것도 아니고, 그 방면에 그다지 관심도 없지만, 이젠 우리나라에서도 절반 이상이 기독교를 종교로 갖고 있는 상황에서 기독교 역사의 부정확함을 고발한다는건 아마 대부분의 사람의 흥미를 자극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흥미진진하고 속도감 있게 풀어가기 위해 수많은 자료조사와 현지탐방을 했다던 저자의 노력도 한몫 단단히 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아마 이 책이 오랫동안 베스트 셀러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한다.

근데, 사실 이 책은 너무너무 재밌게 읽었는데, 무언가 조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어라고 딱 꼬집어 말 할 수 없게 말이다. 그래서 별이 세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김열규 지음 / 궁리 / 2001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세상에 등장했을때, 각종 언론매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금기시했던 죽음에 대해서 파헤쳤던 이유 탓일까? 아마도 그랬을 거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달리 죽음에 대한 주제를 갖고 책을 쓴 사람을 본 적이 없으니까.(내가 못봤을 경우도 많을테니 확실한 장담은 하지 못하겠다.) 간혹 외국에서 들어온 책들은 본 적이 있는 듯하다. 걔중에서 "자살"이라는 이름의 책을 한창 흥미진진하게 읽어서 주변 지인들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했다. 불길한 책을 읽는다고 말이다. 그저 알고 싶고 흥미로워서 읽는 것인데도, 그런걸 읽는것 자체가 불길해 보일만큼 죽음은 우리사회에서 금기시되는 모양이다.

"메멘토 모리"(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처럼 이 책은 그저 금기시되어 생각하고 인식하기를 거부해버리는 죽음이라는 실체를 직접 대면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것 같다. 우리는 항상 그렇게 교육 받지 않는가. 무언가 힘들고 어려운일이 닥칠때, 피하고 숨기고 하기보단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고. 그래야 그 일을 어길 수 있다고. 이 책 또한 그런 의도인거 같다. 죽음을 피하고 무시해서 없다고 여기고 지내기보단 당당하게 대면하자. 죽음을 항상 기억하자. 어차피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죽음이 아닌가.

저자 김열규씨는 우리나라의 매장 문화에서부터 장례의식, 우리 생활속에 담긴 죽음에 대한 인식들을 보여준다. 그곳에서 우리 사회는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거부해 버리는 없다고 쳐 버리는 미숙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죽음을 기억해야 될 때가 아닌가?

이 책은 참심한 의도를 가지고 씌여진 몇 안 되는 책 들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내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그저그런 우리 사회에 대한 죽음의 강의록 같은 느낌이다. 사실 책날개에 보여진 어머니의 언문 제문 에 대한 언급부터 "뭐야 이 사람 글깨나 쓴다고 잘난척 하는 사람아냐?"라는 거부감부터 들었다. 그리고 문장들은 왠지 내게 양반인척한다는 비아냥이 들게 만들었다. 읽는내내 조금은 지루했던 책. 죽음에 대한 깊은 통찰력, 그게 안 된 다면 단말마의 감동이라도 느낄 수 있길 기대했던 내게 그저 평이한 내용에 양반스런 어조만을 갖춘 이 책은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양미술사 (반양장)
E.H.곰브리치 지음, 백승길 외 옮김 / 예경 / 200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 다니던 시절, "서양 미술사"수업을 들은적이 있다.
첫시간에 받은 수업 계획서엔 참고서적으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가 적혀 있었다. 그때 당시 내게 그 책의 제목은 무척이나 생소한 것이었지만, 그 수업을 듣는 내내 그 책은 "서양 미술사"에 있어서 손꼽히는 참고서적임이 드러났다.
서양 미술사란 것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내게, 그 책을 언젠가 꼭 읽어야 겠다는 생각은 하나도 이상한 일을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학창시절엔 그 책을 전혀 보지도 못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서야 그 책을 읽게 되었다.
미술관련 서적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지만,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는 다른 서적과는 조금 다르다는 느낌을 줬다.
가령, 서양 건축사 서적의 태반은 그리스 양식, 로마양식.....중세...르네상스...뭐 이런식으로 양식적으로 분류되어진 설명이 대부분이었다.
시대에 따른 양식의 분류에 따른 형태적 특징과, 그 실례를 보여주는게 대부분 책의 서술 형식이었다.
물론,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시대적 순서에 따른 서술방식을 택하고 있긴 하다.

한데,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난 예전에 현대가 아닌 오래전 세대의 그림들을 보면서, 왜 이런 그림들이 명작이라고 선택받게 되었는지, 왜 그토록 유명한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현대의 무명작가들의 그림들이 오히려 그런 유명한 그림들보다 훨씬 훌륭하게 보이곤 했다.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그런 면에선 탁월한 설명을 보여주는것 같다. 명작이 명작일 수 밖에 없는 이유. 한때는 명성이 자자하던 그림들이 지금은 잊혀지기도 하고, 그 당시엔 무시되어지던 그림들이 지금은 명작으로 칭송받게 된 이유.
사실 나와같이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들이 미술에 입문할때, 가장 궁금해하는 사실들이 그런게 아닐까 싶다.그런면에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내게도 가장 적합한 서양미술사 책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더구나 풍부한 도판들과 개정판에서 보여지는 크기를 좀더 크게 보여주기 위해 접어 넣는 방식을 사용한 도판들은 책의 가치를 더욱 높여 주었던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