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 키우면서 어디 이런 공연 보러가기가 쉽나?  시간도 시간이지만 애들한테 들어가는 돈이 장난이 아닌지라, 10만원 가까이 하는 이런 대형 콘서트를 내 돈 주고 본다는 것은 거의 미친 짓에 가까웠다.

그래도 행여나 기회가 생길까, 가끔씩 kbs 홈페이지에 들어가 각 라디오 프로그램마다 몇명씩 콘서트에 초대하는 초대권을 받을 수 있을까 사연도 적어봤지만 어디 그게 쉽나?

그런데, kbs에 비해서 회원이 훨씬 훨씬 적은 모 오디오 사이트에서 이런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니 내가 빠질 수 있나? 그런데, 가족사진을 올려야 한다네? 마감시한이 다 되도록 8명 밖에 지원을 하지 않다니.. 아무래도 가족사진을 올리는 것이 부담이 되었나? 나까지 접수하면 9명이니, 경쟁률이 2대 1이 채 되지 않는군. 초대권 증정 기준은 자기들 맘대로라는데... 그렇다면, 알라딘에서 키워온 글빨로 한번 도전해 보자!!!

다른 사람들은 덜렁 가족 사진들만(별로 단란하지 않아 보이는 사진도 있었다) 올려놓았지만, 나는 구구절절한 사연으로 사이트 관리자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도록 한다면 좋은 승부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다.

그래서 올린 글

안녕하세요..

저희 부부는 3살짜리 아들과 2살짜리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혼수품으로 모던 쇼트 스피커 5ch을 들이고 좋은 AV 생활을 했으나, 연이어 터지는 두 아이의 출생에 우리의 음악 생활은 아쉽지만 한동안 접어야 했습니다. 물론 그 좋은 음악들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 우리 아이들이라는 사실은 당연한 사실이지요..

한번은 첫째 애가 스텐드가 부실한 리어 스피커를 만지작거리다가 안고 넘어지는 바람에 다칠 뻔 했던 적이 있어서 (스피커는 다침) 그 뒤로는 리어스피커는 아쉽지만 접어야 했습니다.

요즘도 씨디장에 있는 씨디는 두 아이의 장난기 어린 소행으로 모두 마룻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기 일쑤이고, 갑자기 리시버의 볼륨을 확 올려서 가족 모두가 놀라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놀고 떠들고 12시까지 절대 잠을 자지 않으니 제대로 된 음악을 집에서 듣기란 사실 쉬운 것이 아니었지요..

양가 부모님도 모두 지방에 계신 관계로 아이들을 맡길 수도 없어 아이 출산 후 3년 정도의 기간동안 영화관 제대로 간 적이 몇 번 없네요.. 나날이 늘어가는 양육 비용에 비싼 공연 보는 것은 접어야 했었고요..

아내의 생일이 9월 16일인데, 하필이면 추석 연휴 전날입니다. 부지런하지 못해 부산가는 차표를 16일 아침차도 겨우 구했기에 그날 아침부터 아내는 시댁에 가야 합니다. 물론 시댁에서도 아내의 생일을 챙겨주겠지만, 자신을 챙기기보다는 아이들을 그리고 시댁 어른들을 챙겨야 할 아내에게 많이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이처럼 좋은 기회가 저에게 온다면, 아내에게 멋진, 그리고 비밀스러운 생일 선물이 될 수 있겠네요... 4.3kg짜리를 기어코 자연분만으로 낳고 산후조리원 산모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던 내 아내... 그가 있기에 저도 있습니다.

네 식구가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얼마 없네요... 제가 주로 찍새가 되다 보니 아이들과 아내 위주로 찍어서 그런가 봅니다. 무럭 무럭 자라서 이 나라의 보배가 되길 바랍니다.

글만 쓰면 한없이 착해지는 이 마음. 이런 가증스러운 나의 글을 보고 아내는 혀를 찬다. 가식적이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은 모양이다. 그러면서, 이런 건 생일 이벤트로 몰래 자기를 놀라게 해야 하는거 아니냐고 나의 전략 부재를 탓하기까지 하면서.. (으, 나도 연애땐 이벤트의 왕자였는데..)

이벤트가 시작되어서야 얍실하게 그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했다는 것이 당첨에 가장 큰 걸림돌. 그렇지만 앞으로 오디오 바꿀 일 있으면, 거기다 의뢰하면 되지 않느냐? (향후 10년간 계획 없음)는 항변을 하고 싶었다.

마감시함이 지나고 게시판에 뜬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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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관리자입니다. 포에버 아랑훼즈 공연 티켓 증정 이벤트 당첨자를 발표 하겠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드리고 싶지만 수량이 한정되어 있어 어렵게 다섯분을 선정하였습니다. 이점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첨자 명단

1. 서두진 (tjdudtjq)  2. 권진혁(cw95)  3. 이상기(egonage)  4. 서림(chajmin)  5. 김경환(tazo87)

 이상 다섯분이며 당첨 되신걸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당첨 되신 분들께는 개별적으로 다시 연락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응모해주신 모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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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호!!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S석 8만원짜리 두 장이 어디냐?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기타 연주, 그리고 멋지고도 멋진 아랑훼즈 협주곡이 아니더냐? 그리고 거장 스페인의 로메로 형제가 아니더냐?

여러가지로 신나는 공연이 될 것 같다... 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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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05-09-12 1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어머나 대단하십니다! 아렝훼즈의 협주곡 연주회에 가신다니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글발 대단하시고요, 장원감이고말고요 ^^; 축하드립니다.

비로그인 2005-09-12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상당히 가증스럽습니다, 흐흐흐.
그래도 정말 좋은 생일 선물 하셨네요.
연주회로 염장지르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대요? ㅜ.ㅡ

바람돌이 2005-09-12 1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나 서림님 축하드려요.
근데 오늘도 한수 배웠어요. 이런 이벤트에 당첨될려면 저런 작전이....
저도 언젠가 꼭 써먹어야겠어요. 물론 제가 한다기 보다는 저도 서방을 하도록 채찍질을....^^

인터라겐 2005-09-12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선물을 준비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이런 가증스런 글이라도 쓸 줄 아는 남자와 살아봤으면 싶어요...ㅎㅎ 오늘 부터 울 남편은 해가 뜨는게 괴로워 지겠죠.... ..

엔리꼬 2005-09-12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장원은 무신... 사실 글 제대로 쓴 사람은 저밖에 없었어요.. 말빨로 승부하는 곳이 아니어서 가능했겠지요?
별사탕님... 그런데 로메로 형제가 이제 늙어서 테크닉이 잘 안나온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었네요.. 걱정되네요.. 그래도 뭐 그 실력 어디 가겠어요?
바람돌이님... 님도 남편분을 깜짝 놀래키는 이벤트를 하시와요.. 이벤트는 남자만 해야 한다는 편견을 버리세용.
인터라겐님.. 감사합니다. ㅋㅋ 맨날 가증스러우니 아내가 혀를 찹니다.. 겉모습과 실제 모습이 너무 다르다며, 언젠가는 내가 다 불고 말테야.. 하고 있습니다.. ㅎㅎ

icaru 2005-09-12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이 버벅대서...댓글 달기가 잘 안 되네요~ (세번째 시도 글)
많이 부럽단 말씀 할라고 했는뎅... 저도 기타연주회라면 열일 제쳐두고 가보던 시절이...어느 천년 전인지...가물가물하지만..
앙헬과 빼빼라면... 또 얼마나 익살스러운(?) 공연을 보여 줄까요...
내일이네요~ 좋은 시간되세요..

paviana 2005-09-12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넘 부러워요..(아 첫인사를 이런 말로 드리네요)
저도 알았으면 가증스럽더라도 가짜 가족 사진이라도 구해서 응모하는건데 ㅎㅎ
나이들었다고 로메로 형제의 실력이 어디가겠나요?
거기다 아랑훼즈라니 그 두분 눈감고도 연주하길겁니다.
전 개인적으로 1악장보다 2악장을 많이 좋아하는데,
가을밤 좋은 추억 많이많이 만들어 오세요..
근데 설마 이 공연으로 생일선물 대신 하시겠다는 깜찍한 생각은 안하시겠지요?

물만두 2005-09-12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히나 2005-09-12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쓰면 한없이 착해지는 서림님, 축하드립니다.. ^^

마냐 2005-09-12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상에...알바 뛰세요. '지금은 라디오시대'나 뭐 이런곳에 열씨미 보내시면, 매달 냉장고, TV, 컴 등은 줄줄이 생길 수 있을거 같슴다. ㅋㅋㅋ

엔리꼬 2005-09-12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icaru님... 에고 저도 고생했어요.. 요즘 알라딘에러가 장난이 아니네요.. 익살스러운 공연이란 뜻이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요.. 설명해주시면 안될까요?
paviana님.. 저도 반갑습니다. 저도 정식으로 인사를 못드린 것 같은데..(물론 이름은 아주 낯익지만..) 제가 알라딘에 이 공모 사실을 안알린 이유는 아마도 경쟁자가 생기면 안되기 때문이 아닐까요? ㅎㅎ 아, 기타에 대해서 많이 아시는 분들이 많으시네요... 로메로 형제 유명한 사람 맞죠? 그리고 생일선물로 이거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가계 경제를 위해서.. 쿨럭~ 아무튼 반갑습니다.
물만두님.. 감사합니다. ^^
snowdrop님.. 저도 저만의 이중생활에 이제 깊이 빠져서 그 맛을 탐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드립니다.. ^^
마냐님.. 그럴 여유도 없고, 재미있게 글 쓸 재주도 없어요... 여기 사이트에는 워낙 사람들이 응모를 안하고 글도 없이 덜렁 사진만 올려서 제가 용기를 내본 것이고요.. (그런데 사진 삭제하고 싶은데, 공연 끝나고 사진 삭제하면 욕먹을까요?)

▶◀소굼 2005-09-12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축하드립니다~

nemuko 2005-09-1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런 가증이라면 울 서방도 좀 떨어주었음 좋겠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아영엄마 2005-09-12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축하드립니다! 두 분이서 좋은 시간 보내시길~~ ^^

날개 2005-09-12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축하드려요..^^* 울 옆지기가 저런걸 좀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아~

엔리꼬 2005-09-1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굼님.. 감사해요...
네무코님... 에이. 평상시에 잘 하시면 되지요.. 저는 실생활에선 못하고 글로만 하는건데요 뭐...
아영엄마님... 네, 오래간만에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날개님... 저도 천년만에 이벤트 당첨되었어요... 절 너무 좋게만 보지 마세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