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마술
나카지마 가즈코 지음, 아키사토 노부코 그림, 김숙 옮김 / 북뱅크 / 200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할머니손은 요술쟁이 같다는 말을 작은 딸이 어릴 때 한 적이 있다. 자기가 원하는 걸 척척 만들어 주는 할머니의 손이 마치 마술사의 손처럼 신기하고 고마워서 그런 표현을 한 것이다. 할머니는 인생의 오랜 경험과 그로 얻은 지혜로 마술사다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건지 모른다. 하지만 할머니는 기력이 떨어지며 어느날엔가는 아이와 이별을 하게 될 것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게 되며 마음은 조급해지기도 하겠지만 오히려 넉넉해질 수도 있다.

할머니의 이런 인간적인 감정이 여기 할머니 마술사에게도 그대로 있다. 동글동글한 얼굴과 풍만한 몸이 정겨워보이는 삽화다. 히말라야 산 깊은 숲 속에 혼자 사는 할머니 마술사는 눈이 오는 겨울이면 너무 조용한 산이 싫어진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할머니는 그런 내색을 하기도 싫어한다. 할머니는 머리맡에 두었던 마술빗자루를 타고 마을로 내려가기로 한다. 어라, 빗자루도 낡아 마술의 힘이 다 됐다. 할머니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마법의 힘도 다 되어간다는 생각에 뭔가 '그럴 듯한 것'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죽기 전 뭔가 그럴 듯한 것 하나쯤 되거나, 남기거나 해야겠다는 강박증을 갖듯이 말이다.

할머니는 꽃 중에서도 수선화, 자유로이 나는 새, 뭐 그런 것들이 그럴 듯해 보여 변신해보려고 시도를 하지만 시들시들한 수선화, 새 중에서도 까마귀, 이런 것들로 바뀌는 자신의 모습에 서글프다. 이 부분이 아주 재미나다. 2학년 정도의 아이들이 읽기에 좋을 만큼이지만 내가 보아도 웃음이 난다. 연필로 간단히 그린 삽화와 함께 우스꽝스러운 상상을 할 수 있다.

마을로 가기로 한 할머니. 오르막을 힘들게 오르는데 갑자기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는 무엇이 있다. 이게 무얼까. 작고 오동통한 두 손. 할머니와 '용기'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한다. 아이의 얼굴은 해맑다. 할머니의 얼굴과 닮아있다. 녹나무 아래에서 잠시 쉬다가 할머니가 마지막일지도 모를 마술을 부려 변신해보기로 작정하는것은 다름 아닌, 긴 나무의자다. 아, 그런데 이게 정말 마지막 마술이 되고만다. 괴로워하는 할머니는 점점 자신의 마음이 바뀌어가는 것을 느낀다. 뭇사람들이 이 나무의자에 앉아 휴식을 얻고 쉬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나중에 찾아온 '용기'라는 아이의 한 마디가 할머니의 마음을 넉넉하게 풀어준다.

우리는 의식하든 안 하든,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죽음을 준비하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죽음은 생의 끝이 아니라 또하나의 시작이란 말은 이미 상투적이다. 어느 님의 서재에서 본 네팔인의 글처럼 죽음은 '나눔'으로 승화될 때 그 의미가 더욱 가치롭다 하겠다. 육체적, 정신적 나눔으로 죽음이 의미화된다면 누구든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을 듯하다. 죽음이나 늙음에 대한 두려움이 외모지상주의를 낳고 온갖 장수식품을 불티 나게 팔리게 하는 것 같다는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참, 할머니나무의자는 지금도 그 녹나무 아래에서 많은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그럴 듯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