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보다 : 겨울 2023 소설 보다
김기태.성해나.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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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태의 보편 교양과 성해나의 혼모노와 예소연의 우리는 계절마다_를 완독. 오랜만에 읽는 한국현대단편. 기대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김기태를 발견한 기쁨이 제일 크다. 성해나와 예소연 또한 담담하게 읽을 수 있었고. 소설은 바운더리가 없어서 그게 좋다. 흔히 말하는 세상사가 소설 안에는 다 들어있지 않나. 물론 그 속에서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고 현실에서 매일 보는 이들의 모습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역시 이래서 소설은 좋구나 다시 느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제일 잘한 일은 역시 이 시리즈를 낸 거 아닌가 싶다. 그것도 겨우 3500원. 커피 한잔 값도 안 되는 가격을 책정한 것도. 앞으로 이 시리즈는 봄여름가을겨울 빼뜨리지 말고 사서 읽어보도록 하자_ 싶다. 이런 마음이 든 건 역시 김기태를 발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현대소설에 거의 관심이 없는 몸을 살짝 잡아끄는듯한 강렬한 움직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모든 글이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글이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킨다면 무슨 공산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그런 황당무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청소년들을 위해서도 이렇게 작은 시리즈들이 만들어진다면 좋을 텐데. 고등학생이었을 때 그런 꿈 꾸었던 기억 나서. 오래 방황하는 동안 오래 읽지 않았고 그 오래 읽지 않았던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서 미친듯 읽지는 말자_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만 갑이요, 다른 이들은 을이라는 태도는 항상 읽고 쓰는 자들이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먹물들이 싫더라_ 라고 언젠가 내 친구는 술에 취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도 읽고 쓰는 자이니만큼 먹물 싫어_라고 말하고 다니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했더니 친구는 어린 시절에 또 그렇게도 이야기했다. 내가 읽고 쓰는 자이니 다른 읽고 쓰는 자들이 얼마나 지 잘난 맛에 사는지 알기에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 아닌가_라고 해서 나 역시 맥주를 마시면서 그도 맞는 말이네, 했다. 좀 많이 겸손해졌다. 시니컬해지지 말자_ 라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시니컬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 특히 좋은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그 소설을 곱씹는 동안에는. 흔히 말하듯 세상 살아가는 일은 더불어 살아가는 거다. 나 잘났다고 갑질하는 이들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그걸 하기 싫어서 읽고 쓰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날이 그걸 느낀다. 김기태 읽고 성해나 읽고 예소연 읽는 동안 다시 느꼈고. 커피 한잔 값보다 더 저렴하게 자신의 영혼을 달래고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김기태의 다른 단편을 읽고 싶어 책 한 권을 더 주문했다. 오늘 도착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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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12-23 1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기태… 라고 따라 적다가 3,500원?! 😳😳 우아 저도 다음 주문 때 한 권 넣어야겠어요!

수이 2023-12-23 11:48   좋아요 0 | URL
단발님은 어떻게 읽으실까 궁금합니다. 저 이제 책방 가요! 겨울 감기 조심해요. 따뜻한 거 많이 마시고!

단발머리 2023-12-23 11:42   좋아요 0 | URL
아들한테 옮은 듯 ㅋㅋㅋㅋ 콜록콜록!!

수이 2023-12-23 11:48   좋아요 0 | URL
그래도 메리 크리스마스_ 집에서 꼼짝 말고 있어. 밖에 추워!
 

김기태 좀 쓰는데_ 라는 말이 저절로 나옴. 일단 다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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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밀을 갖고 싶어하는 건 엄마일까? 딸일까? 모든 걸 공유해야 한다는 건 딸의 입장이 아니라 엄마의 입장 아닌가. 모든 걸 알고 싶다_는 바람이겠지. 가스라이팅이 제일 잘 작동되는 건 가장 가까운 관계일 때_ 그러니까 부모자식이거나 부부 혹은 연인이거나 나는 널 정말 아껴, 나는 널 정말 사랑해, 라고 수시로 말하는 친구들이나 선후배 관계 정도 되지 않을까. 그 누구보다 너는 내가 제일 잘 알지. 나 이 말 정말 싫어하는데 이 말 들을 때는 좀 소름 돋는다. 그 비슷한 말도 그렇고. 넌 그렇고 그렇잖아. 내가 이제까지 널 봐와서 아는데 넌 좀 그렇더라. 아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을 들으면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아는데, 개나 줘, 그런 말은. 하고 저절로 속에서 나온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관계성이라는 것도 생각을 해서 함부로 하지 않지만 속에서 그런 말이 시니컬하게 나올 때는 어쩔 수 없다. 물론 저는 개를 사랑합니다. 맥락상 그렇게 이야기를 해야 할 거 같아서 한 거임. 나는 따로 하고 싶은 게 있는데 자꾸 나를 꼬드겨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이렇게 하면 네 삶에 도움이 될 테고_ 그런 짓 하면 천벌 받아 큰일 난다, 이런 식의 말 싫다. 엄마는 대체 왜 그래? 라는 말은 얼마 전에 딸아이가 내게 한 말이다. 그러면서 내가 내게 무엇이 제일 좋을지 잘 아는 거 아닌가. 그냥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해서 미리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아이는 말했다. 사라 아메드를 읽고 있는데 사라 아메드의 신간이 나왔다.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올 뻔 하긴 했다, 아까. 엄마는 대체 왜 그래? 혹은 엄마는 대체 나한테 왜 그랬어? 물론 나도 안다. 왜 엄마가 내게 그렇게 이야기하는지를. 내가 딸아이에게 말을 할 때 조언이나 충고랍시고 하는 그 마음의 바탕이 어떠한지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분노가 일어나는 건 어찌할 수 없지. 꼬드긴다고 넘어가는 게 바보 아닌가. 물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공들여 꼬드기는 마음을 함부로 내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나를 위해서 그런다고 하는데 어쩌겠는가. 나도 모르게 실망이 배어나올 때 있다. 차라리 말을 나누지 말걸, 그런 이야기도. 내가 이혼을 한 수많은 까닭 중에 하나, 엑스가 내게 넌 항상 그렇고 그렇고 그렇잖아, 그 말을 참 듣기 싫어서 한 까닭도 있긴 하다. 가장 가까운 관계, 살도 섞고 몸도 나누었으니 영혼이야 말하나마나. 그래서 잘 안다는 그 착각 속에서 깃든 가스라이팅을 온전한 정신으로 당하면서 잘 살아왔다, 라고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자주 한다. 하지만 엄마와는 이혼이 불가합니다. 엄마가 나를 가스라이팅한다고 해서 내내 그러는 것도 아니고 내내 같이 살아가는 것도 아닌데 절연하는 것도 오바라고 생각하긴 한다. 가스라이팅이 심한 건 비단 우리 엄마 뿐만은 아닌 거 같던데, 딸한테 가스라이팅 당하는 엄마들도 많고.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 새삼 깨달았다. 엄마와 사흘 내내 붙어 지내다가 아아아아아악 나도 모르게 비명 소리가 나오긴 했다, 내적인 육성으로. 지랄맞음을 꾸욱 눌러참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대체 왜 그래. 이 말은 쏙 빼고.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내가 잘 아는데 왜 나한테 내가 하기 싫은 걸 내 삶에 보탬이 되리라고 생각을 하면서 마음대로 그걸 해라 저걸 해라, 그러는 거야? 대체 왜? 그래도 이렇게 지랄하고나면 엄마도 생각하겠지. 내 큰딸은 겁나게 착하다고 여겼는데 다 내 착각이었어. 가슴을 치면서. 말 없이 가만히 웃고 있으면 다 착하고 다 바보인 줄 알더라. 그게 더 바보 같지 않나. 엄마가 차 안에서 문득 물었다. 왜 이혼을 하겠다고 갑자기 그런 거니? 그 바탕 속에는 내가 나를 위하는 마음이 제일 크긴 했다. 내가 나를 이렇게 위하는 마음이 큰데 왜 내가 기껏 이렇게 대접 받고 살아가는건지 그걸 알 수가 없었다. 발바닥의 때만도 못 여기는 그 마음이 이제는 마주하기조차 지겨워진 것도 있었다. 너는 내가 당하고 사니까 되게 만만해 보이지? 그러다가 내가 내 본색을 드러내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냐? 나는 여름부터 묻고 또 물어보았다. 뭔가 기회를 주긴 줘야겠다 싶어서. 그때는 뭐 끝이지, 네가 네 본색을 보이면. 그럼 내가 이제까지 당하고 산 것처럼 계속 당하면서 내 시커먼 머리가 파뿌리처럼 시들시들 새하얗게 변할 때까지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 물어보았다. 그럼 당하지 말고 살아. 라는 엑스의 대답도 도화선이 되기는 했다. 아 당하지 않고 살아갈 수도 있는 거구나, 내 마음대로, 나 하고 싶은대로. 눈이 반짝반짝거리는 걸 보고 앗차 말을 잘못 한 건가, 엑스는 표정이 잠깐 굳기도 굳었지만 오래 함께 걷는 내내 남산 꼭대기까지 걸어올라가는 동안 나는 이제 당하지 않고 살고 싶다, 너는 너 하고 싶은대로 하고 살고 나는 나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각자 살자, 한 번뿐인 인생 아니겠냐, 매미는 울어대고 너무 더워 헐떡대면서 그런 말을 했다. 나는 엑스가 내 손을 처음 잡아주었던 그때를 아직까지 기억한다. 당신이 내 손을 놓기 전까지 저는 이 손을 놓지 않을게요_ 라고 짧은 연애를 했을 때에도 편지 속에 써넣었다. 수시로 이혼 이야기가 오고 가고 단 한 번도 나 스스로 먼저 이혼 이야기를 꺼낸 적 없이 이미 떠난 마음은 잡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이혼에 흔쾌히 응하면서도 아 두렵고 불안하긴 했다. 이혼 직전까지 번번이 갔다. 이혼도 해보았다. 다시 취하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올해 여름 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다가 문득 알았다. 내가 먼저 손을 놓아버리면 우리는 영영 끝나가는구나_ 이건 중의적이다. 이 손과 저 손이 달랐기에. 잠을 자지 못하고 미친년처럼 서울 거리를 매일 세 시간씩 걸으면서 이 손과 저 손 사이에서 나는 한참동안 말없이 방황을 하기도 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누구에게도 묻지 않았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왜 이혼을 하겠다고 갑자기 그런 거니? 엄마는 새삼 물어보았다. 언저리 이야기는 많이 한 거 같은데 엄마가 그런 식으로 단도직입적으로 너는 왜 이혼을 하겠다고 한 거니? 물어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내 인생이잖아. 그런데 옆에서 배 놔라, 감 놔라, 내가 그 소리 듣기 싫어하는 걸 알았지. 한 번뿐인 내 삶인데 내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나 즐겁지도 기쁘지도 않은데 그런 소리 들으면서 참고 살아봤자 나한테 득 되는 게 아무것도 없던데. 엄마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잖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세세하게 아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것도 잘 모르잖아. 남편이랑은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구나 그걸 알려준 사람이 있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의 손을 잡고 싶지 않아졌고 그는 너무 일찍 내 손을 놓아버렸어. 설령 내 손을 잡고 있었다고 해도 그건 단순히 민이 엄마로서 그런 거고. 그러니까 나도 내 삶을 살아야 하잖아. 뭐 하러 허수아비 손을 잡고 살아가? 하긴 내가 이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도 처음에 간곡히 내 손을 잡으면서 말하긴 했다. 참고 살아라, 그게 여자 삶이다. 그때도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올뻔 하긴 했다. 세상이 지금 어느 시대인데 대체 엄마는 왜 그래? 라고. 수없이 울고 또 울면서 참아온 엄마의 삶을 어린 시절부터 봐온 까닭도 있지만 뭐 내 삶이 엄마 삶이랑 또이또이 그렇게 될 거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본 적 없지만 막상 그렇게 되고보니 아 나도 그냥 참고 살아야 하나, 친구들도 다 하나 같이 이혼을 간절하게 말리는데 했다가 어느 순간 아 하지 않으면 안될 순간이 오긴 오겠구나 광화문을 걷다가 알긴 했다. 불행해지고 가난해질까봐 이혼을 미루고 미루면서도 언젠가는 아 하겠구나 계시처럼 그런 생각이 들 적마다. 이혼을 하겠노라고 했더니 친한 친구들이 대차대조표를 써보라고 해서 대차대조표를 써보려고 노트를 꺼내 펼쳐들었다가 가운데 줄을 쫙 긋고난 후에 쓸 필요가 하나도 없구나 알았는데 가운데 줄을 긋자마자 이혼으로 인해 얻게 될 것들은 쓰기도 전에 쫘라라락 머릿속에서 두루마리 펼쳐지듯 목록이 나오는데 이혼을 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지속할 경우 내가 얻게 될 것들은 나한테 플러스로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까지 내 다이어리 속 한 페이지는 가운데 줄만 달랑 그려져 있다. 무모한 것은 그 누구보다 나 스스로 가장 잘 알았다. 더 이상 잔인한 소리를 주고받지 않아도 되니 좋다 느낀다. 잔인하고 고드름보다 더 뾰족하고 차가운 말을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주고받다보니 마치 얼음 공주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가 아직까지도 내 선택과 결정에 대해서 아쉬워한다는 걸 오늘도 느꼈다.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지겠지. 순간 울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그렇게 살게 내버려뒀으면 좋았잖아. 왜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불행과 고통을 겪게 만들어, 소리를 지르면서 미친년처럼 소리를 지르고 싶기도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결국 그 달콤한 말에 넘어간 건 나였잖아. 내가 선택했고 내가 결정했잖아. 그걸 누구한테 덮어쓰게 하려고 하는 거냐, 더구나 엄마한테 그러면 나쁜 딸년이잖아. 사람들은 엄마는 두 눈을 휘둥그레 크게 뜨고 놀라겠지만 그래도 되는 거라는 걸 안다. 나쁜 딸년_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아도 다른 이들이 남몰래 귓속말을 주고받아도 어쩌겠는가. 그냥 생긴대로 사는 거야. 그걸로 족하기로 했다. 엑스에게는 그런 적 있다. 왜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불행과 고통을 겪게 하느냐. 대체 왜? 내가 이혼을 한 까닭은 또 있다. 나는 엑스와 같은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가 싫었다. 그런 식의 생의 태도를 내 걸로 삼고 싶지 않았다. 흔한 말로 내가 하면 연애요, 다른 이들이 하면 불륜이라는 걸 내 삶 안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당신의 세컨드가 되어도 괜찮아요, 라는 말을 듣고 좀 화가 나기도 했다. 나는 그냥 하나면 족하지 굳이 둘은 필요 없기에. 저는 에너지가 그렇게 남아도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님 손을 잡겠다고 한다면 일단 제가 이혼 좀 하고 올게요. 전 별로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 않거든요. 그랬더니 모랄리스트라며 웃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나도 내가 모랄리스트인 줄 몰랐네, 에피큐리언인 줄 알고 그동안 오래 착각하면서 살아왔는데_ 대꾸했다. 사실 굳이 누구 말을 충고랍시고 들을 필요는 없다. 그런 순간들이 닥쳐온다. 살아가다보면. 말을 하고 페이지를 넘기다보니 알겠더라. 운전하고 있는 엄마 옆모습을 바라보고 또 말했다. 엄마, 나는 사랑이 하고 싶었어. 그래서 이혼한 거야. 라고. 그냥 남들 사는 것처럼 살기 귀찮고 그런 거 번거로워서 그래서 심플해지고 싶어서 이혼한 거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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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 2023-12-21 15: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때 엄마들은 다 강요다운 강요를 하셨죠^^
전 절대 그러지 않으리라 딸과 엄마 사이가 어떠해야하는지 내가 보여주리라 맹세했거든요. 우리딸한테 엄만 대체 왜 그래. 하는 말은 ... 저도 별로 듣고 싶진 않네요~~ 아직 안듣고 잘 살고 있으니 저 성공한거 같아요
사라 아메드는 저도 곧 입문해보려구요.
우리에게 책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말입니다^^

수이 2023-12-22 10:54   좋아요 1 | URL
사라 아메드 강추합니다, 은하수님. 사유의 지평이 달라지는.

엄마는 대체 왜 그래, 저는 자주 듣습니다. 부족하지만 뭐 그런대로 서로 맞추면서 살아가면 성공 아닐까 싶어요.

건수하 2023-12-21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엄마와 내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완전 끌리는데요!

수이 2023-12-22 10:54   좋아요 0 | URL
저도 곧 ^^
 









12월 21일이다. 날이 춥지만 오늘은 단단하게 여미고 밖으로 나갔다 오려고 한다. 어제도 죽을 먹었고 오늘 남은 죽을 아침에 데펴서 먹었다. 아이는 싫어했다. 온종일 죽만 먹으니까 싫어! 하고 딱 다섯 숟가락 먹고 갔는데 아 그냥 더 열 숟가락 퍽퍽 퍼먹고 가면 얼마나 좋은가 싶었지만 그냥 사과만 먹는 걸 허락했다. 술을 많이 퍼마시고 다니던 시절에는 죽집에 가서 죽을 많이 먹었다. 내 몸은 술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내 소화기관 역시 약하기 그지 없다. 조금만 질기고 조금만 역한 걸 먹으면 어린 시절에도 심하게 배앓이를 하며 끙끙 앓았다. 신경줄이 예민해서 큰일이라고 나를 키워준 할머니들은 말씀하시곤 했다. 이 험한 세상에 신경줄이 예민하면 좋지 않다고. 할머니들보다 더 직설적인 우리 엄마는 승질머리가 개 같아서_ 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개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승질머리가 개 같아서 그런가. 지나가는 개들을 보면 안녕 귀여운 멍뭉아, 라고 이제는 말이라도 건넬 태세다. 못 마시는 술을 미친듯 퍼마시던 때, 본죽 말고 할머니들이 이모님들이 하시는 죽집을 골라서 가곤 했다. 그 죽을 먹고 있노라면 행복해서 때때로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했다. 대체 이 아름다운 음식은 누가 발명했단 말인가 하고. 광화문 뒷편에 할머니 두 분이서 하시는 죽집이 있었다. 공간도 협소했고 환기도 잘 되지 않았지만 항상 밥때가 되면 직장인들이 줄을 서서 먹던 곳. 그 죽집의 모든 메뉴를 섭렵했다. 밥때 줄 서는 거 싫어해서 그 전이나 그 후에 가곤 했다. 뭔가 살기가 싫어지는구나 그런 마음이 들 때도 그곳을 찾곤 했다. 어머님들이 해주시는 뜨끈한 죽 한 사발을 다 먹고나면 온몸에서 기운이 넘쳐 흘렀다. 연로하셔서 언제 문이 닫힐까 걱정이 되었는데 다닌지 채 2년도 되지 않아 가게 문은 닫혔다. 공간이 사라져 괴롭고 슬퍼서 그 닫힌 가게 앞에서 영업 종료_라고 커다랗고 굵은 매직펜으로 대충 휘갈겨쓴 문구를 바라보며 그 앞에서 오래도록 담배 한대를 폈다. 어머님들이 건강하시기를 빌었고 만일 소천하셨다면 좋은 곳으로 가셨으면 싶은 마음을 담아 향에 불을 켜고 제단 앞에 놓듯 그렇게 그 앞에서 오래도록 담배를 폈다. 종로2가의 지하 재즈 카페 엘르 다음으로 그냥 상호명도 없이 죽집_이라고 쓰인 그 공간에서 얼마나 수많은 위로를 얻었는지 모른다. 사람이 낯선 사람에게 무언가를 건네줄 경우가 생긴다면 거기에 마음이 일부나마 담겨 있다면 좋은 일이로구나 그걸 깨달았다. 천명관의 고래를 이미 읽은 이들은 단톡방에서 기괴하다는 말을 제일 많이 하고 있다. 그 기괴함이 인간 얼굴의 한 면모 아닌가요, 나는 그렇게 타이핑을 치다가 딜리트 버튼을 눌러 문장을 올리지 않았다. 천명관의 고래를 다 읽고난 후 너무 좋아서 오빠를 졸라 천 작가님 한 번만 만나게 해주라 아무리 졸라대도 오빠는 못 만나게 했다. 나빴네, 흥! 삐쳤던 20년 전의 내가 보이는 것 같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독서가 취미라고 시간만 나면 책을 읽는다고 우리집에는 책이 많다고 넘쳐서 속갈이해주듯 한 번씩 내다버린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이들을 보면 어릴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그냥 가만히 침묵한다. 책에 미친 인간들 사이에 뒤섞여 책에 미쳐서 일정 시간을 살아본 후 어디 가서 함부로 책 좀 읽는다고 나대지 말자, 어린 시절에 언니오빠들을 보면서 생각했다. 더 이상 밤을 지새워 책을 읽지 않는다. 몸을 아끼기 때문이다. 친구 남편이 병에 걸려 일을 관뒀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나마 내가 일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어. 아이들도 지금 항상 클 때고. 병에 걸려 일을 관두고 병원에서 3개월 넘게 입원해 큰 수술을 했다고 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더라, 돈 벌겠다고 지금 한창 벌어야 할 때라고 노후 자금 모아서 노년에 고생하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벌어야 한다 그랬는데 사람이 아프고 나니까 알겠더라. 돈은 아무것도 아니더라. 친구는 오랫만에 회사 사람들과 송년회를 했다면서 소주를 마셨다면서 이야기했다. 친구가 술에 취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통화를 끝내고난 후 엄마가 해준 점쟁이가 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마음이 있어야 기도가 제대로 하늘에 가닿는다고 했던. 마음이 이미 떠났는데 이차저차해서 거짓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린다면 하늘에 가닿기는 커녕 그 안 좋은 마음을 하늘이 아시고 오히려 벌을 내리실 수도 있다고 한. 그러니 이미 떠난 마음으로는 뭔가 소원을 빌지 말라고 조언을 받았다고 엄마는 이야기했다. 상스럽고 속되게 내 마음을 거울 위에 립스틱으로 형상화하고 싶기도. 민이가 먹다 남긴 사과를 먹으면서 커피를 마신다. 아이는 노래와 영상과 문자 속으로 자기 자신을 통째로 내던져 지내고 있다. 전기값이 평소보다 조금 더 많이 나왔다. 서로가 서로에게 바라는 것들을 아이와 함께 이야기했다. 아이가 강의 하나 더 듣고 갈게, 먼저 자고 있어_ 했고 응, 엄마 좀 졸린듯. 난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스크팩을 얼굴에서 떼어 집어던지고 불을 끄자마자 3분도 채 되지 않아 잠들었다. 새벽에 발딱 일어나 죽을 데피는 동안 만일 뭔가를 해야 한다면 죽을 이것저것 배워 죽집을 차릴까 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가 관뒀다. 돈까스를 튀기는 1년 동안 그 시간이 겹쳐졌기에. 그곳에는 어떤 낭만도 어떤 여유도 없다. 나는 넉넉한 시간을 그리고 낭만을 원하고 있는지라 그건 아무래도 무리다 곧 알았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아름답고 예쁜 것들이 좋고 그 사이에 마음을 집어넣을 수 있다면 더 좋다. 요리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는 제부는 내게 이야기했다. 다시는 음식 만들어 파는 일은 하지 마, 누나는 이쪽 사람이 아니야. 그 말이 서운하기도 했고 또 좋기도 했다. 난 그냥 아빠 말대로 그렇게 내가 내 마음을 통째로 집어넣을 수 있는, 지쳐 간혹 슬라이스라도 해서 던질 수 있는 그런 작업들을 하면서 살아야겠다_ 하고 오늘 아침에 다시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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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3-12-21 10: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호명도 없는 ‘죽집‘에서 얻는 위안과 안식, 그러니까 벌써 20년 전이겠네요. 그곳에서 수이님을 위로하던 그 음식과 마음이 전해지네요. 역시 사랑은 음식으로 나눠지는 건가. 맨날 대충 먹이는 엄마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 걸 알지만... 또 한 번 마음에 찔림을...ㅋㅋ

내가 수이님의 새우 감바스를 포기할게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합니다.

수이 2023-12-22 10:55   좋아요 1 | URL
감바스 정도야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는데 ㅋㅋㅋ 대충 먹여도 잘만 커주니 감사하죠. 단단하게 키우죠. 하긴 먹는 게 중요하긴 한데 하지만 요리 못하니까 그런 엄마를 만난 걸 아쉽게 생각하지 말고 맛있는 걸 스스로 만들어 먹으렴, 아가들아 말해주고 싶은 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12-21 13:0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들어 속이 부대끼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얼마 전에도 속이 한번 뒤집어져서 며칠 동안 죽으로 연명했었답니다. 저희 동네는 본죽만 있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그곳만... 아쉬워요. 수이님의 추억의 죽집 넘 좋았을 것 같습니다. 마치 제가 그 공간에 서서 죽그릇을 들고 먹고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떻게 나이들어도 안 아프고 노년을 보낼 수 있을까 그러려면 결국 돈인가... 머리아픈 지점입니다^^; 어쨌든 그래도 아프지 않아야 뭘 해도 가능하니 건강을 더 신경써야겠죠.

수이 2023-12-22 10:57   좋아요 0 | URL
나이들면 아픈 건 당연한 거 같아요. 피하고 싶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지점은 아닌 거 같은. 좀 더 건강해진다거나 몸에 안 좋은 것들은 안 하려고 애쓰는 정도. 그래도 병에 걸리면 이것도 다 소용 없어지지만. 결국 돈은 최종 지점은 아닌 거 같아요. 물론 도움이 되는 지점은 존재하지만. 저는 스트레스를 가능하면 덜 받고 살자_ 이 주의입니다. 그럼 산 속으로 들어가 살아야 하나 -_-;;;;;

청아 2023-12-21 15: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에게는 국밥이 수이님의 죽같은 음식이었어요. 굴국밥,설렁탕,순댓국밥...음식이 주는 위로도 만만치 않죠.
수이님의 예쁘고 아름다운 글 요즘 자주 올라와 좋네요! ^^

수이 2023-12-22 10:58   좋아요 2 | URL
오 저도 굴국밥 좋아해요. 굴 들어가는 건 무엇이든지 다 좋아함. 미미님이랑 겹치는 지점이닷! 음식이 주는 위로가 있는데 어렸을 때는 그걸 잘 모르면서 살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맛있는 것만 찾아서 먹으러 다니는 이들 보고 막 비웃기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제가 그러합니다 크크. 제 글이 예쁘고 아름답다고는 여기지 않지만 미미님께서 그리 봐주신다면 감사합니다.
 

프로이트 어조를 좋아하는 거였네, 어린 시절에. 왜 여태 호감을 지니고 있나 했는데 알아버림.

흥분이나 방심, 주의력 장애와 같은 정신 생리학적인 요소들은확실히 설명의 목적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저 상투어일 뿐이며 이상한 칸막이 같은 것으로서, 우리는 그 이면을 바라보는 것을 단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오히려 문제되는 것은, 무엇이 그와 같은 흥분과 특별한 주의력분산을 일으켰느냐 하는 물음입니다. 소리의 영향과 어휘의 유사성, 또 어떤 단어에서 생겨나는 관습적인 연상들 또한 의미 있는것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의미의 변화가 가능한길을 가르쳐 줌으로써 잘못 말하기를 부추기는 작용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길이 내 앞에 놓여 있다고 해서 내가 그 길로 가리라는 것이 자명하게 결정됩니까? 내가 그 길을 가도록 결정하는 데는 어떤 동기가 필요합니다. 이외에도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만드는 힘이 필요합니다. 이와 같이 소리와 어휘 관계도 육체적인 소인들과 마찬가지로 잘못 말하기가 쉽게 이루어지도록 도와줄 수는 있지만 그것을 근본적으로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셀 수없이 많은 대다수의 다른 경우에 나의 말은 내가 사용하고 있는 말이 소리의 유사성으로 인해 다른 것을 기억나게 한다든가, 그것의 반대말과 내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든가, 또는 습관적인 연상이 그로부터 생겨나기 쉽다든가 하는 상황으로 인해 방해받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철학자 분트W. Wundt의 설명처럼, 육체적인 피로의 결과로 연상 작용을 일으키는 경향이 그 밖의 다른 정상적인 언어 의도에 대해 우위를 점할 때 잘못 말하기가 생겨난다고 한 것을 참고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경 - P60

우에 육체적인 요인이, 또 다른 경우에서는 잘못 말하기를 조장하는 연상 작용이란 요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경험적 증거를 통해 모순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이 이론의 설명은 매우 그럴듯하게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특별히 재미있는 것은 여러분의 다음 질문으로,
서로 함께 간섭 작용을 불러일으키며 나타나는 두 개의 경향을어떻게 확인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아마 짐작조차 못 하실 것입니다. 그 두 개의 경향 중에서 하나의 경향, 즉 방해받는 것은 언제나 의심의여지가 없이 확실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실수를 범하는 사람은 그것을 알고 있고 그것을 인정합니다. 의심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다른 경향, 즉 원래의 의도를 방해하는 경향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경우들에서는 이 다른 경향도 방해받는 경향만큼이나 분명하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은 바 있고 그 사실을아직 잊지 않으셨을 줄 압니다. 그것은 잘못 말하기의 <효과>를 통해 암시되는데, 우리가 이러한 효과를 인정할 용기를 가지기만 하면 됩니다. 원래 의도했던 말과 정반대되는 말을 하는 실수를 저지른 국회 의장의 예를 들어 봅시다. 그가 그 회의를 개회하려고 했던 것은 확실합니다만, 또한 그에 못지않게 회의를 끝내 버리고 싶었던 것도 확실합니다. 그것은 너무도 확실해서 의심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방해하려는경향이 원래의 것을 그저 왜곡시키기만 했을 뿐이고, 자기 자신을 표출시키지 않는 다른 경우에는 그러한 왜곡 현상에서 방해하는 경향을 어떻게 알아낼 수 있습니까? - P61

그러나 그러한 간접 증거를 사용하지 말아야 할 이유 또한 없습니다. 학문이란 엄정하게 입증된 명제들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오류이며 또 그렇게 요구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이러한 요구는 자신의 종교적인 교리를 다른 것으로 보충하려는 그것이 과학적인 것이라 해도 욕구를 가진 권위 편집증적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과학은 그 자체의 교의 속에 단지 아주 적은 양의 명징한 정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른 것들은 그저 일정한 정도까지의 확률로 뒷받침된 주장들일 뿐입니다. 확실성에 대한 이러한 근사치만으로도 만족하고 마지막 확증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건설적인 작업을 계속해 나간다면, 그것이야말로 과학적 사고방식의 징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P67

반복적이고 복합적인 실수 행위는 확실히 실수의 종류들 중에서 가장 찬란한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수 행위들이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만이 문제였다고 한다면, 우리는 처음부터 여기에만 우리의 노력을 한정시켰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실수에서는 아무리 둔한 사람일지라도 그 의미를 곧 알아차리게 되며, 가장 비판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도 그 의미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수 행위의 반복은 어떤 집요함을 드러내 주는 것으로서, 그 집요함이란 우연적인 일에는 결코 수반되는 법이 없으나 의도에는 잘 어울리는 것입니다. 개별적인 여러 번의 실수가 차례차례 이어지고 나서야 드디어 실수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이고 본질적인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실수에 이용되는 형식이나 수단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스스로가 이용하는 또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도달되어야만 하는 의도가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에게 반복된 망각의 한 예를 설명해 보려 합니다. 존스가 보고하기를, 그는 언젠가 자신도 알 수 없는 어떤 동기에서 편지 한 통을 며칠 동안이나 책상위에 놓아두었다고 합니다. 드디어 그는 그 편지를 부치기로 작정했는데 얼마 후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왜냐하면그가 주소 쓰는 것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는 겉봉에 주소를 쓰고 나서 우체국으로 가져갔으나 이번에는 우표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 편지를 보내는 데 대한 거부감을 스스로에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 P75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발이 걸려 뒤뚱거리거나 넘어지는 따위가 그것입니다. 그외의 전조의 다른 부분들은 어쨌거나 주관적인 행위의 성격이 아닌 객관적인 사건의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한 사건의 경우에 그것이 이쪽에 속하는지 아니면 다른 쪽에 속하는지를 결정한다는 것이 때때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여러분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행위는 종종 수동적인 체험의 형태로 변장하고 나타나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중 지나온 긴 인생 경험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작은 실수들을 전조로 해석하고 그 속에 숨겨져 있는 의도의 징조로 실수들을 평가할 수있는 용기와 결단력만 갖고 있었더라면, 많은 실망들과 고통스러운 경악들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런 태도는 과학을 옆으로 우회해서 미신적인 생각을 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모든 전조들이 다 들어맞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우리의 이론을 통해 이해해야 할 것은, 모든 내용들이 그렇게 다 들어맞을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 P79

실수 행위에 대한 분석은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합시다. 한 가지 점만은 여러분에게 확실하게 강조해 두고 싶은데,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이러한 현상들을 다루어 왔던 그 방법을 모범적인 것으로 머릿속에 간직해 두시라는 것입니다. 우리 심리학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여러분은 이러한 예에서 간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현상들을 단순히 묘사하거나 분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들을 영혼 속에서 힘이 상호 작용하는 징조로 해석하고, 함께 혹은 서로 대립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경향들의 표현으로 이해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신적 현상들의<역동적인 해석>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견해에 의하면, 이러한 경향성은 단지 우리가 가정하고 있을 뿐이기는 하지만 인지되는 현상들에 비해 더욱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수 행위의 문제들에 더욱 깊이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역의 넓은 부분들을 잠시 한번 일별하고, 거기에서 잘 알려진 것들을 재발견하며 몇몇 새로운 것을 추적하는것이 좋겠습니다. 그러면서 이미 처음에 작성했던 잘못 말하기의 세 개의 군으로의 분류에 따라 잘못 쓰기와 잘못 읽기, 잘못 듣기, 또 잊어버린 대상에 따른 소분류(고유 명사, 외래어, 계획, 인상들)가 포함된 잊기, 착각, 잘못 놓기, 분실 등을 다루어 보겠습니다. 우리의 관찰 영역에 들어오는 오류들은 부분적으로 잊어버리기와 부분적으로는 착각과 연관이 있습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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