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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겨울 2023 ㅣ 소설 보다
김기태.성해나.예소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3년 12월
평점 :
김기태의 보편 교양과 성해나의 혼모노와 예소연의 우리는 계절마다_를 완독. 오랜만에 읽는 한국현대단편. 기대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김기태를 발견한 기쁨이 제일 크다. 성해나와 예소연 또한 담담하게 읽을 수 있었고. 소설은 바운더리가 없어서 그게 좋다. 흔히 말하는 세상사가 소설 안에는 다 들어있지 않나. 물론 그 속에서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이들을 만나기도 하고 현실에서 매일 보는 이들의 모습을 마주하기도 하지만 역시 이래서 소설은 좋구나 다시 느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제일 잘한 일은 역시 이 시리즈를 낸 거 아닌가 싶다. 그것도 겨우 3500원. 커피 한잔 값도 안 되는 가격을 책정한 것도. 앞으로 이 시리즈는 봄여름가을겨울 빼뜨리지 말고 사서 읽어보도록 하자_ 싶다. 이런 마음이 든 건 역시 김기태를 발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국 현대소설에 거의 관심이 없는 몸을 살짝 잡아끄는듯한 강렬한 움직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모든 글이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모든 글이 모두의 취향을 만족시킨다면 무슨 공산주의도 아니고.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그런 황당무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청소년들을 위해서도 이렇게 작은 시리즈들이 만들어진다면 좋을 텐데. 고등학생이었을 때 그런 꿈 꾸었던 기억 나서. 오래 방황하는 동안 오래 읽지 않았고 그 오래 읽지 않았던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서 미친듯 읽지는 말자_ 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만 갑이요, 다른 이들은 을이라는 태도는 항상 읽고 쓰는 자들이 경계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나는 먹물들이 싫더라_ 라고 언젠가 내 친구는 술에 취해 이야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너도 읽고 쓰는 자이니만큼 먹물 싫어_라고 말하고 다니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했더니 친구는 어린 시절에 또 그렇게도 이야기했다. 내가 읽고 쓰는 자이니 다른 읽고 쓰는 자들이 얼마나 지 잘난 맛에 사는지 알기에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거 아닌가_라고 해서 나 역시 맥주를 마시면서 그도 맞는 말이네, 했다. 좀 많이 겸손해졌다. 시니컬해지지 말자_ 라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시니컬함이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 특히 좋은 소설을 읽는 동안에는. 그 소설을 곱씹는 동안에는. 흔히 말하듯 세상 살아가는 일은 더불어 살아가는 거다. 나 잘났다고 갑질하는 이들은 세상에 차고 넘친다. 그걸 하기 싫어서 읽고 쓰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나날이 그걸 느낀다. 김기태 읽고 성해나 읽고 예소연 읽는 동안 다시 느꼈고. 커피 한잔 값보다 더 저렴하게 자신의 영혼을 달래고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김기태의 다른 단편을 읽고 싶어 책 한 권을 더 주문했다. 오늘 도착할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