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보러 오랜만에 법원에 갔다. 1년 전에도 느낀 거지만 역시 오늘도 그때와 비슷한 풍경들을 마주하면서 인간들 사는 게 참 야멸차구만, 이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딸아이 관련으로 필요한 서류가 있어 오랜만에 엑스와 통화를 했다. 이제 남남이잖아, 나도 살 길을 찾아야지, 라고 말했더니 엑스가 말했다. 그래, 이제 우리가 아니라 남남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왜 그걸 해줘야 하냐고. 난 싫다구. 예상을 하지 못했나, 예상을 했나 그것과 무관하게 이 인간이고 저 인간이고 참 야멸찬 인간들만 상대했구나 알았다. 통화를 끝내고난 후 법원에서 일을 보고난 후 딸아이를 기다리면서 광화문 어느 카페에서 눈을 감고 십여분 정도 울었다. 이종영에 따르면 내가 상대한 그 인간들이 나의 모습인 거다. 그러니 내게도 그런 야멸찬 괴물 같은 속성들이 있다는 이야기가 될 거다. 퓨즈가 나가고 오열을 하게 되면 딸아이를 만날 시간 즈음에 퉁퉁 부은 얼굴을 보여줘야 해서 마음을 다스리고 심호흡을 했다. 딸아이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상황을 알아차렸다. 일단 상황을 한번 보도록 하자, 아가. 지금 내가 할 일이 그거밖에 없는지라 추이를 보기로. 더디게 헛발질을 하는 케이스가 될 지도 모르겠지만 사태가 어떻게 흘러갈지 그 여정이 궁금한 건 나도 마찬가지인지라. 다 울고난 후 동생에게 때마침 전화가 왔다. 흐느끼는 소리를 듣고 뭐가 그렇게 억울한가 물어 답했다. 이렇게 야멸찬 인간이랑 17년 이상을 함께 산 나 자신이 미칠 정도로 어리석고 어리석어서. 어느 한켠에 어떤 감정으로 헛발질을 하고 실수를 했던가 싶어 다시 뒤돌아보아도 어느 지점인지는 알 수 없다. 혹여 야멸차게 행하지 못해 당하는 건가 연달아, 라는 자아비판의 시간도 커피를 마시는 동안 가져보았다. 귀가해서 딸아이와 저녁을 먹고 엑스들에게 선물받은 책들을 상자 안에 담아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한켠에 내놓았다.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은 통으로 버리기 아까워 이거 너 가질래? 하고 동생에게 물어보니 가지겠다 해서 동생에게 주기로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담배를 끊는 게 아니었는데 하늘을 보면서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하지만 오늘은 참기로. 술을 마시면 또 어떤 난리법석을 피울지 몰라 술도 마시지 않고 딸아이와 딸기를 먹고 간단하게 에스프레소로 입가심을 하고난 후 책을 연달아 정리하고 80권 딱 수를 맞춰 버렸더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이종영을 다시 읽을 일이 있겠는가 싶어 이종영도 버리려고 했다가 페이지를 들춰보다 그만 딱 눈이 멎어 한번 더 읽고 버리자 했다. 괜찮다, 지나간다, 이 순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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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2-26 2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토닥토닥... 속상하셨겠어요. 지나가요. 그게 맞는거 같아요. 그렇게 지나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