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곧 인종 간 간극을 메우는 가장 빠른 과정은 언어를 통해 이뤄진다는 걸 배웠다. 소웨토는 마치 용광로와도 같았다. 저마다 고향과 부족이 달랐다. 흑인 거주구에 사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기들의 모국어만을 썼지만 나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기에 다양한 언어를 배웠다. 엄마는 내가 제1언어로 영어를 꼭 쓰게 만들었다. 남아공에 사는흑인이 영어를 쓴다는 건 큰 도움이 된다. 영어는 ‘돈의 언어‘다. 영어능력은 지능과도 같다. 직업을 구할 때도 영어가 취업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법정에 설 때도 영어 구사력이 벌금으로 끝나느냐, 감옥에 갇히느냐를 결정한다.- P86

나는 흑인 아이들이 있는 B반으로 옮겼다. 내가 모르는 아이들과함께 전진하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과 후퇴하는 쪽을 택했다. H. A. 잭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나는 내가 흑인이라는 걸 자각하게 됐다. 그 쉬는 시간 이전까지는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야만 하는 순간이 오자 나는 흑인 쪽을 선택했다. 세상은 나를 유색인으로 봤지만, 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살았다. 내 주변 사람들을 통해 나 자신을 보는데, 내 주변 사람들은 흑인들이었다. 내 사촌들도 흑인이고, 내 엄마도 흑인이고, 내 할머니도 흑인이다. 나는 흑인으로 자랐다. 백인 아빠를 두었고, 백인 주일학교에 다녔기에 백인 아이들과 어울렸지만, 그렇다고 내가 백인 아이무리에 속한 건 아니었다. 나는 그들 부족의 일원이 아니었다. 하지만 흑인 아이들은 나를 품어 주었다. "이리 와." 그들은 말했다. "우리랑 같이 놀자." 흑인 아이들과 함께일 때 나는 구태여 어떤 사람인 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됐다. 흑인 아이들과 함께할 때 나는 그냥 나이기만 하면 됐다.- P94

열네 명 아이들의 저녁 식사는 닭 한 마리가 전부였다. 엄마는 고기 한 점, 국물 한 입, 육즙을 빨아먹을 뼈 한 조각이라도 얻기 위해 더큰 아이들과 싸워야 했다. 그나마 저녁 식사로 먹을 음식이 있을 경우의 얘기였다. 먹을 게 없으면 엄마는 돼지 사료를 훔쳐 먹었다. 개밥도훔쳐 먹었다. 농부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동물들에게 던져 주면 엄마는 그걸 낚아채려 뛰어들었다. 배가 고팠다. 동물들이야 어떻게든 먹고살겠지. 때로는 정말 흙을 먹기도 했다. 강둑에서 진흙을 퍼 와 물에 타면 희끄무레해졌고 그걸 우유처럼 마셨다. 배가 찰 때까지 마셨다. 그래도 엄마에게 다행이었던 건, 엄마가 사는 마을의 미션 스쿨이 정부의 반투 교육 정책에도 불구하고 문을 닫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거기서 백인 목사가 엄마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엄마에게는 음식도 신발도, 심지어 속옷 한 벌도 제대로 없었지만, 그래도 영어는 배웠다. 엄마는 읽고 쓸 줄 알게 됐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자 농사일을 멈추고 근처 시내의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재봉틀 앞에 앉아 교복만드는 일을 했다. 매일 일이 끝나면 보수로 음식 한 접시가 제공됐다. 엄마는 늘 그게 평생 먹어 본 최고의 음식이었다고 했다. 자기 혼자 힘으로 번 식사였기 때문에. 그녀는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그 무엇도 빚지지 않았다.- P102

엄마는 내 친구에게 변호사 비용을 주었다. 그리고 사촌에게는 내 보석금을 낼 돈을 주었다. 유치장에 있던 일주일 내내 나는 내가 일을 꽤 잘 처리하고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사실 엄마는 언제나 그 모든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너는 내가 널 괴롭히는 미친 늙은 마녀 같겠지." 엄마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널 심하게 몰아붙이고 네게 잔소리를 하는 이유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게 널 사랑하기 때문이란 걸. 내가 네게 한 모든 일은 다 사랑에서 비롯된 거야. 내가 널 혼내지 않으면 세상은 널 더 심하게 혼낼 테니까. 세상은 널 사랑하지 않는다. 경찰은 너를 사랑해서 잡는 게 아니잖아. 내가 널 때릴 때는 널 구하려는 거야. 그들이 널때릴 때는 널 죽이려는 거란다."- P356

지금까지도 나는 그 경찰관들이 거들먹거리며 깔보는 듯한 태도로 엄마에게 말하던 장면을 잊지 못한다.
"진정해요, 아주머니. 진정하라고요. 누가 당신을 때렸소?"
"내 남편이요."
"당신 남편? 왜 그랬대요? 당신이 남편을 화나게 했소?"
"내가……… 어쨌다고요? 아뇨. 그가 날 때렸어요. 그래서 신고하러왔…."
"아니, 아니죠. 아주머니. 왜 일을 크게 만드는 거요, 어? 정말 그러고 싶은 거 확실해요? 집에 가서 남편이랑 말해 봐요. 일단 한번 신고하면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거 알죠? 남편에게 전과가 생길 거란 말이오. 그럼 절대 이전처럼 살 수 없게 될 거요. 남편이 정말 감옥에 가길 원해요?"
엄마는 그래도 경찰에게 진술을 받고 사건을 접수하라고 주장했지만, 그들은 그냥 거절했다. 아예 사건을 기록조차 않겠다고 버텼다.
"이건 집안일이잖아요." 그들은 말했다. "경찰이 끼는 걸 원치 않을 거요. 잘 생각해 보고 아침에 다시 오든가 해요."-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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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콜드 블러드_ 동거남 출근시키고난 후_  책상 위에 있어서 아무 생각 없이 펼쳤다가 두 시간 훌쩍 날아가버렸다. 아이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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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1-01-16 15: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

수연 2021-01-16 20:16   좋아요 0 | URL
억지로 멈췄습니다 안 그러면 아무것도 못하고 내내 읽을 거 같은 이 흡입력!! 실로 오랜만이어요 :)

blanca 2021-01-16 16: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좋죠!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수연 2021-01-16 20:17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리뷰 다 읽었어요 아침에~ 저도 천천히 즐겨볼게요 :)
 
모든 사람은 혼자다 - 결혼한 독신녀 보부아르의 장편 에세이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박정자 옮김 / 꾸리에 / 201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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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이 어딘가로 닿으려고 움직이는 흐름이 좋다. 책 제목은 뜬금없지만 내용은 충만했다. 에너지 상승. 쉬운 보부아르 설명에 키득거리면서 유쾌하게 읽었다. 삶의 지표라는 걸 누군가가 이렇게 다정하게 보여준다면 괴물들이 들끓는다해도 가벼운 차림으로 따라갈 수 있을듯.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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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_

한 순간을 경과하건 아니면 수 세기를 거치건 간에, 대상은 언제나 지속성을 가지고 있다. 존재의 충실성, 그것은 영원성이다. 언젠가 무너질 대상은 진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다음은?"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다시 잡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그의 초월성이 관여하고 있는 이 대상을 그는 언제라도 새롭게 초월할 수 있다. 만일 그것이 파괴할 수 없는 것일지라도 대상은 언제나 우연적이고 유한한 것으로서 나타날 것이다. 또 언제나 초월해야 할 단순한 소여所與donné, the given 로서 나타난다. 대상은 나를 충만하게 하면서 자신도 충만하게 된다. 그러나 반성反省은 초월성이 자발적으로 취하는 형태들 중의 하나이다. 반성의 관점에서는, 대상은 그냥 거기, 아무런 이유 없이 존재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는 인간만이 자기가 모든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허영에 도취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그는 더 이상 삶을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에는 인간만이 있는 게 아니다.- P84

낳아주기를 부탁한 적이 없는, 지금은 건장하고 훌륭한 젊은이가 되어 있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만든 것이지"라고 아버지는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으나 "이 아이에게 내 몸을 바쳤지"라고 말할 수는 없다. 타인이 결정한 목적을 내 목적으로 삼는 경우에만 헌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그 목적을 타인을 위해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순이다. 아들이 원하는 결혼을 막는 권위적인 아버지는 자신이 아들을 위하여 헌신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버지가 아들 대신 이 상황 아닌 저 상황을 선택하여 주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다. 자기가 아들의 행복을 위해 행동하고 있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는 자기 자신의 의지에서 살짝벗어나, 건강이라든가, 부라든가, 명예라든가 하는 기존 가치의 객관성을 제시한다.- P95

이 미래의 위험들은 나의 유한有限성의 이면이고, 나는 나의 종말을 책임짐으로써만 자유롭다. 그리하여 인간은 행동할 수 있다.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는 자신을 초월함으로써만 존재한다. 그는 위험 속에서, 실패 속에서 행동한다. 당연히 그는 위험을 책임진다. 즉 불확실한 미래에 몸을 던짐으로써 그는 자신의 현존을 확실하게 설립한다. 그러나 실패는 자신을 책임지지 않는다.- P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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