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에 나는 에밀리 디킨슨의 유명한 시 <뇌는 하늘보다 넓다>가 의식에 대한 찬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예리한 관찰이라고 생각한다. 이 시의 첫 4행은 다음과 같다.
뇌는 하늘보다 넓다.
둘을 나란히 놓아두면
뇌 안에 하늘이 쉽게 들어가고
더구나 당신도 들어가니까
디킨슨은 의식 있는 마음의 생성 과정에 '당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 '당신'은 나일 수도, 다른 어떤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디킨슨이 관심을 가진 것은 그보다도 그 마음의 크기다. 어떻게 지금 내가 관찰하는 시각적 전경과 청각적 장면이 내 뇌보다 훨씬 더 클까? 디킨슨이 알고 싶은 것은 그것이었다.
뇌는 하늘보다 넓어야 했다. 디킨슨은 뇌가 두개골 속의 물리적인 뇌보다 더 크다고 생각했다. 뇌는 우리 주변의 세계뿐만 아니라 당신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킨슨은 우리 주변의 세계나 우리가 두개골 안에 실제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려면, 우선 우리와 세계가 뇌 크기에 맞춰 작게 줄어들어야 했다. 이렇게 우리와 세계가 작아지면, 우리와 우리의 생각은 그대로 뇌 안에 있으면서도 가까운 우주와 먼 우주의 크기에 맞춰 부풀 수 있었다.
디킨슨은 마음에 대한 유기체적 관점과 인간의 영혼에 대한 근대적인 개념을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하늘보다 넓은 것은 뇌가 아니라 생명 자체였다. 생명은 몸, 뇌, 마음, 느낌, 의식을 낳았기 때문이다. 우주 전체보다 더 큰 것은 생명이다. 물질과 과정으로서의 생명, 생각과 창조를 가능하게 하는 생명 말이다.
안토니오 다마지오


몇 페이지인지 안 적어서 메모지 안에 있던 거 그냥 그대로 옮겨옴. 때마침 에밀리 디킨슨 구절들 읽고 있어서 겹쳐서. 확장 의식extended consciousness 개념도 메모. 요즘 들어서 이 '당신'이라는 호칭? 개념?에 대해서 많은 것들이 쏟아지는데 이건 확실히 첫사랑 관련해서 얻게 된 것들. 내가 그런 개새끼로 사느니 차라리 목숨을 끊지, 라고 영화를 보고난 후 그가 말했다. 라고 스무살 일기장에 적혀 있었다. 30년이 흐르고난 후 본인이 영화 속 개새끼와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다는 걸 만일에 알게 됐더라면? 30년이 흐른 후 인간 노릇 하기를 포기하는 인간이 될 것이다, 라는 사실을 알았다 해도 그 당시에 그를 사랑할 수 있었을까? 타인이 되어버린 마당에도 끔찍하다고 느껴지는 그 지점들. 브리짓 존스 다이어리 시리즈를 훑고 있긴 한데 아 지루하고 괴로워 너무 무채색이잖아, 싶은 것들을 간헐적으로 느끼는 걸 보니 나도 나이가 들긴 들었구나 라는 걸 인지할 수밖에, 영화라는 표피를 둘러싸고 보여주는 것들이 더할나위 없이 상투적일 때 저절로 하품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고. 어떤 식으로 맵핑을 해야할지 서서히 감이 오는 것도 같고. 에밀리 디킨슨을 더 자주 펼쳐봐야겠다. 그의 다른 책은 아직 펼쳐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이 책은 정말 쉽게 쓰기로 작정해서 쓴 게 느껴짐. 쏙쏙 잘 들어옴.


술담배를 365일 중에 360일 내내 10년 동안 달고 살았던 (10년 동안 매일 던힐 한 갑씩 조져버림) 나는 아이를 임신한 걸 알고 맨 처음 번뜩,
아, 술담배 그렇게 해버렸는데 어쩌지, 애가 손가락이 열 개, 발가락이 열 개여야 할 텐데, 아 어쩌지, 술을 그렇게 미친듯 마셨는데 아 어쩌지, 담배도 겁나 피워댔는데 아 어쩌지, 라고 두 다리를 달달달 떨면서 초조해했다. 출산일이 다가와 아이를 딱 낳고난 후 의사에게 바로 물었던 게,
선생님, 손가락 열 개, 발가락 열 개 인가요? 였다.
"술을 하도 마셔서 애가 알코홀 증후군에 걸리진 않을까?"
실리프팅 주사맞기 전에 스킨보톡스 맞기 전에 20키로 빠진 내 얼굴이 브리짓 존스 3편 속 브리짓이었다. 그래서 내내 친근하게 응시함. 딸아이가 왔다갔다 하면서 보다가 완전 우리 엄마네, 하는 짓이, 라고 그래서 미친듯 웃었다. 내 새끼 공부하다가 머리 안 돌아갈 적마다 항상 하는 이야기, 우리 엄마가 그렇게 술담배를 미친듯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훨씬 똑똑했을 터인데, 라고. 그래서 말했다. 괜찮아, 미모를 물려줬잖아. 이번에 4편 새로 개봉할 거 예고편 보니까 르네 젤위거 언니 실리프팅 한 거 같더라. 괜찮아, 중년이 원래 다 그렇죠, 언니, 하고 툭툭. 근데 르네 젤위거가 언니는 언니 맞지?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 일곱 권을 책상 위에 쌓아놓고 하나씩. 오레오는 나는 안 좋아라 함. 꿀꽈배기 먹었음, 라떼랑. 오레오는 내 새끼꺼.
중간까지 봤는데 저 대사 나와서 겁나 웃어버림. 단언컨대 앞으로 미래의 나를 위해서 술담배는 진짜 겁나 조금만 하겠다. 담배는 자체적으로 끊긴 끊었는데 지금 느낌으로는 잠깐 쉰다 이 느낌인지라 아마도 나중에 다시 피울지도. 저녁때 리조또 해먹었는데 와인 없어서 짜증나버렸음. 모레 시내 나가서 와인 사와야지. 열심히 운동해서 딱 아흔살까지만 즐겁게 살다가 가면 좋겠는데 그 전에 병 걸리면 어떻게 할지 그건 좀 생각해봐야 할듯. 빗소리 들으면서 리조또 먹는데 좋아서 창문 활짝 열고 저녁 먹었다. 음악 끄고.



마리가 꿈쩍도 하지 않아 패딩을 입고 나가기로. 1년 전 오늘 오전에는 저렇게 입고 나가 아이스라떼를 마시며 책을 좀 읽었고 요가를 했다. 앞머리가 생겼고 머리카락은 뭉터기로 잘라서 짧아졌다. 비는 내리지 않지만 아마도 오늘도 비가 내릴듯 하다. 바람이 꽤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1도.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를 읽다가 어제 브리짓존스 다이어리 3편을 보고난 후 알았다. 브리짓존스 1편과 2편은 젊은 여성의 서사인지라 그닥 크게 와닿은 게 없었고 30년 전에 감명 깊게 본 영화를 얼마 전에 다시 봤을 때도_ 역시 30년 흐름이라는 게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라는 걸 영화 보고 느꼈고_ 3편은 중년 여성 서사인지라 물론 좀 평이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재미있게 볼 수 있었던듯. 엄마와 아빠 모두에게서 들은 공통된 이야기로는 늙음이라는 걸 절절하게 깨달은 건 내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물론 아빠 같은 경우는 질병의 영향이 더 컸지만. 옛날 애인이 곧 환갑이 된다. 우리 아빠가 환갑에 돌아가셨다. 기분이 아주 묘했다. 태풍이 몰아치는군. 곧 환갑이 되는 옛연인과 한창 사귀는 동안 나눈 이야기인데 내가 나중에 죽은 걸 알게 되면 슬퍼할 건가? 물어서 그건 사랑이 온전할 때 아닌가. 사랑이 있어야 슬퍼하지, 더 이상 사랑하지 않고 그저 옛연인이라고 한다면 아, 하고 나지막히 탄식하는 한숨만 내쉬게 될 거 같은데, 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어서. 건강검진을 받고 폐도 깨끗하고 간도 깨끗하대, 라고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연인이 으쓱으쓱거릴 때 그래봤자 우리는 유한한 존재야, 라고 담배 연기를 그의 얼굴에 내뿜으면서 시니컬하게 말했던 것도 떠올랐다. 겉멋이란 겉멋은 다 부렸던 때였군, 풉. 아가가 딴짓 그만 하고 이제 가방 싸! 소리 질러서 후다닥. 다들 마인드란 표피에 휘둘려서 한 길로 우루루 좀비떼처럼 가는 꼴이 그닥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인간은 다들 행복하기를 바라지만요, 어쩔 수 없이 인간이기에, 라는 영국 철학자 표현에 한참 키득거림 오늘 새벽. 비도 바람도 멈추어 패딩 입고 휘리릭 나옴. 이모! 하고 딸아이 친구가 갑자기 뒤에서 확 안아서 놀랐다. 내 사랑, 하고 뒤돌아 꽉 안았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바닷가의 루시]를 오늘 완독. 재독하고난 후에야 리뷰를 쓸 수 있을 거 같아서 일단 백자평으로 223쪽 문장 하나를 옮겨적는 걸로 대신했다. 침묵과 변덕과 광폭한 움직임 속에서 서로를 존중한다는 일이 얼마나 그릇된 건지 알 수 있지 않나. 윌리엄과 루시의 이야기를 읽는 동안 나는 윌리엄에게 어떤 마음도 가질 수 없었기에 그제서야 내 상처가 깊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0년이 흐르고 20년이 흐르면 다른 감정이 생길지도 모르겠지만 바위와 같이 그쪽으로는 움직일 수 없다는 걸 읽는 동안 다시. 엄마라는 위치에서 계속 읽는 나를 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엄마,라는 걸 그 엄마,라는 입장을 어떤 식으로 정의내릴 수 있을지에 대해서 관심이 일고 있구나. 에밀리 디킨슨의 구절이었는지 다른 시인의 구절이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감히 내 사랑을 짐작하려 하지 말아요, 라는 문장이 완독하고 떠올랐다. 헤아리고 무게를 재면서 사랑을 해본 적도 없거니와 앞으로도 그런 식의 사랑은 하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에게 무엇을 줄 수 있고 인간이 인간에게서 무엇을 빼앗을 수 있는지. 그 보이는 모든 것들과 마주해도 전혀 볼 수 없는 것들 사이로 어떤 물결이 흐르고 있고 그 보이지 않는 현상 너머로 아니 그 현상 그대로를 응시하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것들. 때로는 거짓이 뒤섞일 수도 있고 때로는 악한 마음이 깃들 수도 있다. 의도한 건 아니겠지만 물론 그렇다고 믿지만 인간들 마음이 모두 하나여서 일정한 판형으로 규격화될 수 없으니. 그리하여 그것을 어떤 명명 아래 두어 혼란을 좀 방지하고자 애쓰는 거겠지만 또 그게 선 밖으로 삐져나갈 수도 있는 것이니.
의도치 않게 시간은 잘 흐르고 어느덧 4월 중순이다. 오늘은 날이 좋지 않아 달이 보이지 않겠으나 곧 보름이다. 보름달을 이토록 좋아했던가 싶네. 같은 책을 다른 판형으로 친구가 선물해줘서 좀 쉬었다가 5월에 재독하기로. 아 그러고보니 우리가 마지막에 완벽하게 서로를 끝내겠다, 했을 때 그때도 마주앉아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기도 했던 거 같다. 내 마음을, 내 사랑을, 나를 당신이 감히 짐작하려 하지 마라, 라고. 이성의 끈이 끊기는 이 지점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건지 좀 알기는 알아야 할듯. 어떤 관계에서든지 항상 이 포인트에서 걸렸다는 걸 쓰는 동안 알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