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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코끼리 끌어안기
네이선 파일러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6월
평점 :
쉽게 읽히는 책이 있다. 흡입력 좋게 재미있게 잘 읽을수 있다. 그런데 어떤 책은 처음부터 어려운 책이 있다. 두번 세번 읽어야 겨우 이해될 정도의 책. 뭐 그런책은 글쓴이의 언어실력에 문제가 있다고 보기에 그냥 넘긴다. 문제는 쉽게 잘 쓴 책인데 쉽게 잘 안 넘어가는 책이다. 쉬운데 왜 안 넘어가. 분명 어려운 글귀도 없고 내용 진행도 복잡하지도 않고 책에 나오는 에피소드들도 흥미롭다. 어려운 책도 아니고 이해하기도 어려운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잘 안넘어가나. 그런데 딱 그 시점에서 다시 읽으면 쑥 하고 넘어가게 되는 책이 있는데 바로 이 책이 그런 책이 아닐까싶다.
쉽지만 쉽게 안 넘어가는 책...마음이 아픈데 뭔가 뭉클한 따뜻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단 생각이 든 책이다. 책은 일종의 성장 소설이다. 마음을 다친 한 사람이 조금씩 나아가게 되는 내용인데 우리가 흔히봤던 소재랑은 좀 다른 색다른 성장소설이라고 할만한 책이다.
주인공인 매슈는 그 나이 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그렇듯이 호기심많고 장난끼도 있고 활달한 아이였다. 그리고 그에게는 사이먼이라는 형이 있었는데 다운증후군환자였다. 하지만 사이먼은 동생을 무척 사랑했고 매슈도 늘 형곁에 있었다. 어느날 가족여행을 갔는데 한밤중 매슈가 사이먼을 깨워서 밖에 나간다. 그리고 어쩔수 없는 사고로 매슈는 사이먼을 읽고 만다.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큰 충격이 왔을까...매슈는 자신탓에 형이 죽었다고 생각하고서는 자신과 세상을 향해서 마음을 닫고 만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는 사이먼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일종의 환청...사이먼의 소리를 들을수 있어! 나만이 사이먼을 만날수 있어! 매슈는 자신의 삶에서 사이먼과 함께 갇혀버리게 되고 그는 힘겨운 성장 과정을 겪게 된다는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세상에는 참 어이없는 사고도 많다. 그 사고로 삶을 잃게 될때 그 주위의 사람들이 겪게 될 정신적인 충격도 보통은 아닐것이다. 그것을 극복하기도 하지만 결국 또다른 슬픔으로 남게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매슈는 조금씩 조금씩 나아간다. 아마 언젠가는 사이먼의 목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날이 오지 않을까.
책은 매슈의 시선에서 차분하게 일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느낀것 그가 생각한것 그가 행동한것들을 마치 그의 눈으로 그의 마음으로 보는것처럼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래서 매슈가 느꼈을 슬픔도 묘하게 느끼게 되는거 같았다. 매슈가 더 악화되는듯할때는 참 안타깝기도 했고 끝내 조금씩 나아진다고 여겨질때는 마음에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아 이 녀석 매슈. 이 어쩔수없는 녀석이 참 매력적으로 다가왔다는건 숨길수 없는 사실이었다.
매슈가 걸린 병은 조현병이라는 정신질환의 한가지다. 약을 먹고 꾸준히 재활하면 호전되기도 하지만 병 자체가 쉬운병은 아니다. 이런 소재를 가지고 흡입력있는 책을 쓴 작가가 참 놀랍다. 수많은 문학상을 탔는데 뭐 그리 호들갑을 떠나했는데 읽어보니 그럴만하단 생각이 들었다. 많은 좋은 성장 소설이 있는데 이 책도 그 계보에 충분히 들어갈 책이란 생각이 든다.
책은 매슈의 시선에서 진행이 되는데 매슈의 마음을 잘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러가지 형식을 도입한 점이 눈길을 끈 작품이었다. 그냥 글만 진행한게 아니라 시나 그림이나 편지, 일기등을 중간중간에 적절하게 삽입해서 상황을 좀더 이해하기 좋게 했다. 그래서 전체적인 완성도도 높아졌고 글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것을 더 잘 보여준거 같아서 좋은 안배였단 생각이 들었다.
책 내용과는 별도로 배경이 된 영국의 지역 정신 보건 센터의 존재에 대해선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각 지역별로 정신적 문제를 치료 상담해주는거 같은데 그 시스템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우리에게 없는것이라서 부러웠다. 그 존재가 없었다면 매슈는 결코 사회로 나오지 못했을꺼니까.
이 책은 쉽다. 그래서 처음 읽어도 쉽게 읽힌다. 그런데 빨리 슉슉 읽으면 뭔가 허전하다. 조금 느리게 매슈처럼 사이먼처럼 천천히 가거나 두번 읽으면 딱 좋은 책이다. 분명 슬프다. 슬프긴 한데 뭔가 따뜻하달까. 마음이 아려오는 그런 아픔보다는 따뜻한 슬픔이 느껴지는 그런 책 같았다. 그래서 더 눈이 가는 책이다. 천천히 매슈와 함께 간다면 더 좋을 책.
오랫만에 슬프면서도 웃음을 짓게하는, 웃픈 소설을 보게 되어서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