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고 온 Go On 1~2 세트 - 전2권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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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기본적으로 작가인 더글라스 케네디 이 양반 참 글 잘 쓴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다른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서 글쓰기 스타일이 이런지 잘 모르겠지만 정말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마치 바다가 계속해서 일렁이는것처럼 말이다. 별 대단한것도 아닌거 같은데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그 속에서 사랑과 갈등을 잘 버무려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영화로 치면 롱테이크같은 느낌을 책 두권 내내 들었다.

 

이야기는 크게 봐서 가족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겉으론 평범한듯하면서도 다들 갈등 요소를 안고 있는 가족 구성원과 주인공의 이야기, 그리고 주인공 자신의 사랑 이야기가 서로 주고 받으면서 이야기를 한없이 흘러가게 한다. 주인공 앨리스는 영민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한 면도 있다. 자신의 부모가 끊임없이 불화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큰오빠와 작은오빠는 앨리스와 잘 지내고 있고 특히 큰오빠는 앨리스에게 가장 든든한 우군이다. 이 다섯 등장 인물이 서로 상처주고 보담아주고 사랑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책인데 어찌보면 우리네 삶과도 비슷한 점이 있어서 더 몰입감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시대적 배경은 1971년에서 84년까지다. 당시 미국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고 사회적 정치적인 면에서 사람들이 어떤식으로 생각을 했을까에 대해서 잘 묘사하고 있어서 흥미로왔다. 당시 우리는 독재시절에 딴소리 한번만 해도 잡혀가던 시절이었는데 미국은 미국이다 싶었다. 책은 한적한 교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앨리스에게 큰 일이 닥치면서 급반전한다. 부모의 불화에도 그럭저럭 삶을 이어가던 앨리스에게 가장 친한 친구였던 칼리가 실종이 된 것이었다. 그것도 동급생의 폭행이 있은 후였다. 신문 방송에게까지 나오면서 대대적으로 칼리를 찾았지만 바닷가에 칼리의 소지품이 발견되면서 자살했을꺼라는 심증이 굳어져간다.

 

고향에서의 힘겨움을 벗어나고자 앨리스는 고향에서 먼 곳으로 대학을 진학하게 된다. 거기에서 만난 밥과 꿀같은 사랑을 하게 되지만 그것도 잠시 또다른 사건에 실의에 빠지게 되고 새로운 생활을 위해서 저 멀리 아일랜드로 가게 된다. 미국의 생활에 비해서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았던 아일랜드 생활이었지만 평생의 사랑이라고 할 사람을 만나서 드디어 완전한 행복을 찾는가 했는데 엄청난 큰일이 일어나면서 그 사랑도 끝이 나고 만다. 이제 그녀는 살았는것도 죽었는것도 아닌 상태로 미국으로 돌아온다. 돌아온 미국에서도 만만치 않은 일이 기다리고 있게 되고.

 

사실 앨리스의 삶을 기록한 1인칭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그녀의 나이가 10대부터 20대 중후반까지 고작 10여년인데 정말 엄청난 일을 겪었다. 책읽으면서 느끼지 못했는데 이야기가 끝날때 그녀의 나이는 아직 창창한 나이였다. 그야말로 엄청난 일을 겪었던 것이다.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 내리락 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가 그래도 꿋꿋이 이겨내고 삶을 이어가는것이 어찌보면 경이로울 뿐이었다.

 

앨리스의 아버지는 해병대 출신의 완고하면서도 때때로 소통도 잘하는 비밀스러운 인물이었다. 어머니는 명문대를 졸업한 앨리트였지만 가정주부로 있는것에 대한 불만과 남편과 화합하지 못하는 성격으로 인해 앨리스에게 스트레스를 주었다. 게다가 작은오빠는 어떤 사건으로 인해서 매사에 주눅이 들어서 자신감이 없다. 오직 큰오빠만이 넓은 마음과 유연한 생각으로 앨리스를 위로해 주고 있다. 그러나 그런 어린 시절의 모습들도 나이가 먹어가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고 서로 서로에게 있던 불신과 상처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흐르는 사랑이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지지고 볶고 싸워도 가족이라는 큰 울타리를 벗어나지 않고 어떤일이 있으면 그래도 걱정하고 생각하는 사이였다. 그것은 우리 보통 가정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라서 고개를 끄덕이게 했는데 물론 그렇게 사랑하지 않는 가정도 있을 것이다.

 

가족의 사랑은 그렇게 이어져갔는 반면 이성과의 사랑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다. 고등학교때 만난 아놀드랑 오래갈꺼 같았는데 대학 들어가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고 그 뒤로도 여러 사람들 만나면서 진정한 운명을 드디어 마주보게 된다. 하지만 그 운명도 결국 떠나보내고 나중에는 오랜 친구를 마음의 안식처로 삼게 되는거 보면 참 쉽지 않은 사랑이었다. 그런데 책을 보면 당시 미국 젊은 층의 연애가 상당히 개방적이고 이른바 쿨한 느낌을 주는데 섹스도 다반사로 하고 연애도 금방 만났다 헤어졌다 하는게 쉽게 되는걸로 묘사되는데 진짜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미국이 의외로 그런면에서 보수적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당시만 그랬는지 이 책에서 그런식으로 그렸는지 모를 일이다.

 

이야기는 사랑이야기지만 당대 미국의 모습이 잘 나타난다. 생활비가 얼마가 드는지도 나오고 또 학교 학업 시스템이 어떤것이 있는가도 보여주는데 앨리스가 능력이 있긴 했지만 이 대학 저 대학 학교를 바꾸어서 잘 다닐수 있는 시스템이었던 것이 신기했다. 그리고 보수와 진보의 입장에서 서로 토론을 하는 것도 흥미로왔고 당대 대통령 선거와 당시 있었던 칠레의 군부쿠데타 등 현대사 이야기도 나와서 더 이야기가 다채로왔다. 몰론 당시 미국의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 배경이 주는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겠다. 재미 있는것은 마지막 부분에서 현재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가 잠깐 등장한다는 것이다.

 

내내 흥미롭게 잘 읽었는데 마지막에 앨리스의 큰오빠의 선택은 어찌보면 좀 의아스러운 면이 있었다. 그 누구보다 생각이 깊고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큰 사람으로 나오던 그가 자신의 선택이 어떤 파장을 낳을 것인지 잘 알았던 것인데 전혀 생각치도 않았던 일을 벌인 것을 보면 어떤면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란 것이 전부를 다 알 수는 없는 법. 지은이는 정해진 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없고 누구라도 상상하지 못한 일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그런 경우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오랫만에 참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었다. 책 두권의 이야기가 그야말로 첫단어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단어까지 한 문장으로 이어진 듯 아주 흥미롭게 이야기가 전개되어서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스릴러 같은 긴장감을 주는 책도 아니고 아주 크고 특이한 사건을 배경으로 한 것도 아니고 어찌보면 삶의 소소한 부분을 말하는 내용인데도 물 흐르듯 유연한 글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 지은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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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가 잠든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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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는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강자다. 일단 무지막지하게 많은 책을 써서 국내에도 많이 소개되었는데 그 작품들이 편차가 크긴 해도 흥미롭고 재미있는 책들이 많아서 장르 소설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인기 작가다. 그런데 사실 이 작가가 단순히 미스터리 소설 작가라고만 하기에는 그 능력을 잘 모른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미스터리 추리쪽의 책들을 많이 쓴 건 맞지만 그외에 일반적인 책들도 많이 썼는데 오히려 그쪽 책들이 인기있는 경우도 제법 있다. 이 책은 출판사 홍보로는 휴먼 미스터리라고는 하지만 전혀 미스터리같지 않다. 그냥 휴먼 소설이라고나 할까. 글 잘 쓰는 작가의 진가가 잘 드러난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을 정도로 재미있으면서도 뭔가를 느끼게 하는 내용이었다.

 

가즈마사와 그의 아내 가오루코는 딸인 미즈호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이혼하기로 했는데 어느 날 미즈호에게 불행한 사태가 일어난다. 수영장에 빠져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고 사실상 뇌사 상태가 된 것이다. 그냥 숨만 쉬고 있을 뿐 실질적으로 깨어날 수 없는 뇌사 상태의 미즈호를 두고 부부는 장기 기증을 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런데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러 간 그들에게 미즈호가 반응을 보인다. 미즈호의 손이 움찔한 것이다. 엄마인 가오루코는 장기 기증을 거부하고 집으로 미즈호를 데리고 간다.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딸을 위해서 끝없는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한편 IT 기업을 운영하던 가즈마사는 뇌에서 보내는 신호로 몸을 움직이게 하는 기술을 자신의 딸에게 적용할려고 한다. 그 결과 여러 첨단 장치에 의해 숨을 쉴 수 있게 되고 의식이 없지만 전기 자극에 의해서 팔다리를 움직이게 된다. 하지만 뇌사상태가 나아진것은 아닌데 엄마인 가오루코는 딸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고 점점 더 집착하게 된다. 과연 미즈호는 어떻게 될까.

 

책은 술술 잘 읽힌다. 어떤 주제던지 이야기를 쉽게 그리고 몰입감있게 쓰는 작가 특유의 글솜씨 덕분에 밝은 이야기가 아니지만 빠르게 잘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책에서 주는 주제는 묵직하다. 사랑이란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책에서는 부모와 어린 자식간의 이야기로 설정이 되었지만 사랑하는 어머니나 사랑하는 연인이 같은 상황이라면 나는 어떻게 할까에 대해서 생각해보면 참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도 뇌사상태에서 생명 유지 장치를 달고 수년동안 간병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앞으로 일어날 가능성도 없지만 '살아'있기는 한 상태의 사랑하는 사람을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보내주는 것이 맞는지 쉽게 답을 내리지 못하겠다.

 

사람이 죽는 다는 것은 머리와 심장이 정지한다는 것인데 뇌사는 그것이 살아있기는 한다는 점에서 꼭 죽었다고 하기도 힘들다. 그렇다고 인간답게 움직일 수는 없으니 살아있다고 하기도 그렇다. 사실 그런 상황에서는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를 것이다. 한편 책에서와 같은 장치를 이용해서 조금 움직이게 하는 것은 어떨까. 잠시는 기쁘겠지만 오래는 못 갈 꺼 같다. 결국 살아난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장기 기증을 할지도 모르겠다.

 

책은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과 광기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실질적으로 죽었는데도 죽지 못하게 하는것은 사랑일지 광기일지. 짙은 여운을 남기게 한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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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아워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마이클 커닝햄 지음, 정명진 옮김 / 비채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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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미즘의 화두인 요즘 세상에 시간을 뛰어넘어 '부인'으로 살았던 세 여인의 삶을 통해서 그 시간들을 되새겨보게 하는 것이 바로 이 책 '디 아워스'다. 전에 세월이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었는데 좀더 산뜻한 책으로 돌아왔다.

 

여기는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버지니아 울프, 로라, 진 클라리서. 그런데 이들은 같은 시간에 있던 것이 아니라 모두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 있었다. 책은 이 세명의 이야기를 서로 교차해서 전개함으로써 다른 시대지만 같은 시대의 이야기를 하는것처럼 느끼게 한다.

 

이들에게 공통된 점이 있다면 '댈러웨이 부인'이다. 버지니아 울프가 '댈러웨이 부인'을 썼고 그 '댈러웨이 부인'을 로라가 읽는다. 그리고 클러리서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버지니아 울프는 댈러웨이 부인을 쓰면서 내면의 괴로움을 달래려고 하지만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고 만다. 시대적 배경이 1932년으로 나와있는데 아직도 여성의 지위가 불안정한 지금에 비해서 그때는 정말 답답하던 시절이었다. 그랬기에 울프는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지 않았을까.

 

로라는 평범한 주부다. 남편과 아들이 있고 또 다른 둘째 아이를 출산할 계획이다. 어느날 남편의 생일날이 되어서 아들과 생일 케익을 만들다가 책 한권만을 들고 호텔로 간다. 바로 그 '댈러웨이 부인'을 들고. 평범한 삶을 살던 그녀가 문득 자신의 삶을 다시 깨닫고 자신만의 삶을 살고 싶어한 것인가. 아니면 단순한 도피를 했던 것인가.

 

진 클라리서는 그래도 어느 정도 여성의 지위가 올라간 1990년대를 살고 있지만 그녀 자신의 시간을 갖지 못하고 뭔가에 잡혀서 살아가고 있다. 친구인 리처드에 의해 속박당해 살고 있다. 인공수정을 통해서 낳은 딸이 있는데 그녀는 동성애자다. 여성의 차별에 대한 적극적인 대항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난의 시선을 받지만 그럴수로 그녀는 더욱 리처드에 빠져 든다. 마치 리처드가 도피의 수단인 것 처럼.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도피일까 현실을 외면한 회피일까.

 

이야기는 세 명의 여성을 중심으로 하루에 일어난 났으나 다른 시대 다른 장소의 시공간을 교차로 보여줌으로써 서로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잇고 있다. 이야기의 주된 얼개는 시간의 해석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그리고 매일의 반복되는 일상을 어떻게 생각할것인가. 그것에 함몰되어 나 자신을 잃어버리것인지 새로운 것을 통해서 나 자신을 찾을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남성에 비해서 여러모로 제약된 환경의 여성이라는 구조를 통해서 시간의 흐름에 대한 여러 시선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내용이었는데 한번 읽기 보다 두 번 읽다보면 그 여운이 길게 갈 책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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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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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은 쉽게 읽기가 어려운 책이다. 줄거리가 아주 복잡한건 아니지만 그 줄거리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지식들을 책 한 권에 넣어놨기 때문에 그것을 따라가다보면 내가 책을 읽는건지 책속에 있는건지 아리송할때가 있을 정도다. 방대한 지식을 이야기와 잘 어울리게 잘 쓰는것은 에코만의 장기라고 할만하다. 그래서 한번에 읽기는 힘들어도 최소 두 번을 읽으면 어느 정도 눈에 들어오고 더 읽으면 책에서 많은것을 느낄수 있게 된다.

 

그런데 보통 '장미의 이름'을 읽고 그의 팬이 된 사람들은 그 이후의 저작물들에서 뭔가 다른 느낌을 받게 되는데 장미의 이름에서 느껴지는 압도적인 지식의 향연이 기본적인 형식이면서도 뭔가 다르게 쓰여진다는 것이다. 사실은 글쓰는 능력이 떨어진것이 아니라 매번 책 쓸때마다 다른 형식과 다른 문체로 쓴다고 한다. 그래서 낯선 느낌도 들기도 하는건데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이해하면서 읽으면 더 그의 글이 눈에 들어올수 있을꺼 같다.

 

이 대단한 작가의 마지막 소설이라는 것이 참 아쉽고 또 아쉽다. 언제 또 막강한 지식을 담은 색다른 이야기의 책을 낼꺼같았는데 이 책이 마지막이라니 또 이런 스타일의 작가를 볼수 있을까도 싶다.

이번에 나온 책은 그의 마지막 소설인데 배경이 현대다. 그동안 중세와 근세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썼는데 이 책은 비교적 최신의 시대를 배경으로 써서 좀더 익숙해질꺼 같았는데 에코에게는 배경은 큰 상관이 없는거 같은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책에 활자가 꽉 차있는, 쉼표도 없고 여백도 없는 꽉 찬 살코기같은 이야기가 펼쳐졌다.

 

때는 1992년. 이탈리아가 무대인데 당시는 수년동안 이어져온 정치권과 마피아간의 부패 청산이 일어나던 때였다. 그때 신문을 만드는 과정을 책으로 써 달라는 제의를 받은 콜론나가 주된 이야기의 시초다. 신문예비호라고 할만한 것을 만드는데 말하자면 창간호인셈이다. 책 제목이 제0호라는 의미가 거기에 있다.  그런데 이 신문은 만들기는 만들지만 내지는 못한다. 이 신문의 내용이 어떤 협박이나 겁박에 있기에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압력으로 작용하게 할려고 한다. 그리고 그 신문제작을 위해 고용된 사람들은 진실과 거짓 사이를 왔다갔다한다. 어떤 기사가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결과를 갖게 될 것인지 의도를 갖고 쓴 기사는 왜 그렇게 하는건지 등에 대한 신랄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들의 대화를 통해서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드러나는거 같았다.

 

그렇게 신문 제작에 관한 이야기로 끝날꺼 같았던 내용이 한 기자의 죽음으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그는 무솔리니가 사실 죽지 않았고 그가 다시 나타나서 권력을 잡게 될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관련 자료를 수집하다가 돌연 살해당한다. 책은 무솔리니와 관련된 음모론을 다루면서 진실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이번에 나온 책은 전작들에 비해서 비교적 내용이 적고 가벼운듯 보인다. 그런데 책을 펼치면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란것을 느끼게 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을 빽빽히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신 차리고 읽어야 이야기의 맥락을 잘 잡을수 있다. 하긴 에코의 책은 한번에 통독이 쉽지 않은 스타일이긴 하다.

 

가짜 뉴스가 활개치고 진정한 언론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 세상에 비추어볼때 생각할꺼리가 많은 내용이었다. 이른 시일내에 한번 더 읽고 그의 저작들을 다시 찾아 읽어봐야겠다. 에코의 책은 읽고 나면 큰 산을 넘은듯한 느낌을 준다. 이번에는 마지막 산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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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살해사건 - 은고
김홍정 지음 / 솔출판사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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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신라가 삼국을 통일할때 백제가 제일 먼저 무너졌다. 어릴때는 그냥 백제 의자왕의 실정때문에 국력이 쇠한걸로 알았지만 사실은 백제 국력을 넘는 당나라와 신라 연합 세력에 의해서 멸망당했던 것이다. 역사 기록에 의하면 의자왕은 능력도 있고 싸움에도 능한 왕이어서 신라는 그저 공격을 방어하는데만 급급했다고 한다.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서 당과 손을 잡은것이고 당의 대규모 군대의 침공과 함께 잘 훈련된 신라 김유신 군대의 후방 지원으로 인해서 결국 백제는 무너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의자왕에게 숨겨진 한 인물이 있었는것은 아는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은고다. 의자왕의 왕비이자 백제의 마지막 왕비. 그녀의 활약상에 대해서는 크게 알려진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백제 왕국의 막후에서 큰 영향력을 끼친 여인으로 새롭게 이야기를 펼치고 있다. 그냥 단순히 왕국이 멸망하고 당으로 끌려간 한 인물이 아니라 백제 부흥을 위해서 사력을 다한 철의 여인으로 그려진다.

 

때는 654년. 당시 백제는 사비로 천도하면서 백제라는 이름이 아닌 남부여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부여는 백제의 근원이 되는 나라. 그 나라를 잇고 새로운 국가를 만든다는 뜻에서 남부여라고 이름을 짓긴했으나 당시 남부여는 몇개의 유력한 씨족들이 나름의 세력을 유지하면서 국력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고 있었다. 신라가 골품제의 한계속에서도 화랑이라는 조직과 김유신이라는 걸출한 군부지도자로 똘똘 뭉쳐있던 반면에 남부여는 왕권이 그리 강하지 못했던 것이다. 은고는 그런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 원로귀족인 좌평 흥수를 비롯하여 여러 노대신들의 힘을 빼기 시작한다. 그 자리를 유능하면서 젊은 장군들을 기용함으로써 신라와의 쟁투에서 우위를 점하도록 한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도 압도적인 전력의 적 앞에서는 힘이 부칠수밖에 없었다. 당과 신라의 협공으로 인해서 결국 왕국은 멸망에 이르게 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의자왕과 함께 수천명이 저 멀리 당까지 끌려가게 된다. 하지만 거기에서 은고는 수완을 발휘한다. 당시 중국의 실질적인 통치자인 무측천의 환심을 사면서 백제의 부흥을 위해서 마지막 결단을 내리게 된다.

 

책은 백제말 은고라는 막후의 한 여인을 중심으로 나라의 존망을 건 분투를 그린 소설인데 빈약한 사료를 역사적인 상상력으로 잘 채워서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당시 상황에 맞는 호칭이나 지명이 색다른 느낌을 준다. 지은이는 충청도를 중심으로 해서 그 인근까지 지역의 정체성을 잘 표현하는 작가답게 향토색 짙게 잘 이야기하고 있다.

 

아쉬운건 은고가 막후에서 영향력이 있었다고 해도 당시의 왕인 의자왕이 그렇게 허수아비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책에서는 너무 존재가 미약해서 역사적인 사실과 동떨어진면이 있다. 그리고 대화를 서술할때 ~지요가 자주 나와서 자연스럽지 않은 면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대화체에 좀더 수정이 필요할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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