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이즌우드 바이블
바버라 킹솔버 지음, 박아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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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 글이 빽빽하다. 별로 여유도 없다. 마치 끝없이 펼쳐져있는 아프리카 대초원처럼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서사극. 그 단어에 딱 맞는 소설같다. 아프리카라는 뭔가 스케일 큰 배경을 깔고 있으면서 여러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들이 쉴새없이 이어지는것을 보면 그 낱말에 어울리지 않나 싶다.

 

이야기의 뼈대는 아프리카로 선교를 떠난 한 가정의 일대기를 그린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신의 신념으로 불쌍한 아프리카 미개인들을 새로운 길로 인도하겠다는 투지의 사나이 목사 네이선.

그리고 그를 따라서 낯선 세계로 불안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아내 올리애너와 4명의 딸들인 레이첼,리아,에이다,루스메이. 이교도를 믿는 흑인들로 가득찬 대아프리카땅에서 이 소수의 백인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역시나 짐작한데로 불안의 근원은 아프리카에 있는것이 아니라, 목사 네이선에게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심심치않게 거론되는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독선적인 기독교인이 바로 그 네이선이다. 그는 그 자신만이 옳고 그 자신만이 이 미개한 사람들에게 구원을 줄수있다고 여기고 참으로 열성적으로 힘차게 하지만 독선적이고 무모한 전도를 한다. 그런데 누가 거들떠 보기나 할까.기독교의 초기선교방식처럼 한손에 빵을 든것도 아닌데. 그저 맨땅에 헤딩식으로 무식하게 하니 누군들 관심을 가질리가 만무하다. 그런데 관심 가지지 않으면 그만인 원주민들과는 달리 네이선의 가족들은 큰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러면서 큰 비극이 닥치게 되고 그것을 기점으로 아프리카를, 아니 네이선을 떠나기 위한 가족들의 몸부림이 이어지게 된다.

 

책의 흐름은 아내 올리애너와 4명의 딸들의 각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아프리카 생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각 인물이 느끼고 생각한 것을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어서 우리는 입체적으로 이야기를 바라볼수 있게 한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곳은 아프리카 중에서도 콩고라는 나라다. 우리에게는 잘 들어보지 않은 낯선곳인데 책을 통해서 이 땅이 어떻게 변질되어가는지를 잘 보게 된다. 요즘은 드러나지 않게 하는지 몰라도 냉전시대의 미국은 콩고에서 했던 방식으로 신생국들을 조종하려했다. 국가의 정체성이 민주적이냐 아니냐와 관계없이 무조건 미국에 이익이 되는 정권만을 원했고 그런 정권이 들어서게 하기 위해서 정부 전복도 서슴치않는 그야말로 깡패국가같은 행위를 한것이다. 지은이는 여러 화자의 눈과 입을 통해서 그것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세계사에 어느정도 지식이 있는 사람은 역시나할것이고 그런것을 잘 모르는 사람은 어쩌면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콩고라는 나라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백인 국가에서 파견한 기독교 선교사가 흑인 국가에서 어떻게 원주민과 접목하게 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할수 있게 한 소설이었다.

 

지은이는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에서 산 덕분에 좀더 사실적으로 아프리카를 그릴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여성이어서 그런지 내용 자체가 참 섬세하면서도 굵직하고 꼼꼼하면서도 대범한 필체가 돋보인다. 극중 화자가 각기 다른 여성 인물들이어서 더욱더 그렇게 느껴지는것일지도 모르겠다.

 

출판사 광고 문구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이 책은 이런저런 소식으로 알려진 책이다. 숱한 상을 받았고 미국에서는 학생들이 꼭 읽어야하는 필독서에 속하는 신고전에 해당하는 책이라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론 뜬금없을지 몰라도 하퍼리의 '앵무새죽이기'에 버금가는 책이라 생각이 든다. 한마디로 미국에서 난리가 났던 책인데 1998년에 출간이 되었으니 나온지가 한참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제야 출간이 된다는건 아무래도 헛된 기독교 선교방식에 대한 간접적인 비판내용이 문제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처음에 끝없이 펼쳐진 아프리카 대초원같다고 했는데 그 초원을 시속 200킬로로 달리는 스포츠카를 타고 가는것처럼 빠르게 잘 읽힌다. 과장 좀 보태서. 물론 중간에 아프리카물소떼가 지나가는 통에 거의 기어가다시피한 부분도 좀 있긴 했지만.

한 가족의 가족사를 통해서 현대사와 지역사를 알수있었고 여성의 이야기도 느낄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포이즌우드는 우리말로 독나무(poisonwood)다. 독은 잘 쓰면 사람을 살리는 약이 되고 못 쓰면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된다. 이 책을 읽고 많은 사람들에게 약이 되는 독나무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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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멜빈 버지스 지음, 정해영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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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영화를 소설화하는 것을 그리 탐탁하게 느끼진 않는다. 소설이 주는 재미와 영화가 주는 재미가 엄염히 다른데 원작영화의 소설화는 뭔가 아쉬움이 많아 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원작영화를 소설화한 작품중에 인상적인 책은 그리 보지 못했다.

그래서 이 책, 빌리 엘리어트를 처음 접할때도 은근히 우려했었다. 그저 그런 단순히 영화를 글로 옮긴 수준은 아닐까하고. 게다가 이 영화는 내가 참 좋아하는 영화이기도 해서 영화의 감흥을 깰까도 싶었다.

 

그런데 그 걱정, 기우였다. 원작영화에서 느꼈던 그 느낌이 또다른 느낌으로 전해진다랄까. 잘 쓰여진 영상소설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용은 영국의 어느 광산이 있는 시골도시의 한 소년 이야기다. 여느 영국 아이들과 비슷하게 빌리도 복싱을 배우면서 사는 평범한 아이였다. 전형적인 광부인 아버지와  형, 그리고 약간의 치매끼가 있긴 하지만 빌리를 사랑하는 외할머니랑 살고 있다. 시절은 그리 편하지 않아서 영국 정부의 광산정책에 대항해서 파업을 일으킨 아버지와 형의 처지때문에 넉넉하지 못한 환경이 된다. 이런 때일수록 강해져야한다는 의미로 아버지에 의해 복싱을 배우게 되지만 빌리는 왠지 같은 체육관에서 하는 발레에 관심이 간다. 살짝 동작만 했는데 이내 발레에 관심이 생겨버린 빌리.

 

게다가 빌리는 재능이 있다고 한다! 빌리가 그 누구보다 발레에 재능이 있다고 윌킨슨 선생님도 말한다. 한술 더 떠서 큰 도시로 가서 본격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한다. 오디션을 보라고.

근데 어떡하지. 오디션은 커녕 발레 한다는 사실에 아버지와 형이 가만있을리가 없다. 난리날텐데 어떻게 허락을 받나.

 

발레라는 것을 통해서 소심한 소년에서 당당한 청년으로 커가는 이 책은 일종의 성장소설이다. 그런데 성장하는것이 꼭 빌리라는 이 소년 뿐일까. 어쩌면 이 책은 빌리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재키와 토니의 성장일수도 있다.

단순한 광부로, 그저 그런 삶을 살면서 인생을 보내던 그들에게 빌리는 별종이다. 광산에서의 삶 이외의 것은 생각도 안해봤고 발레라는것에는 여자들이나 하는 것이라는 편견만 있을뿐 별다른 인식도 없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가족인 빌리가 발레를 한단다. 그것도 무지 잘한단다. 자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전형적인 무뚝뚝한 경상도 가정의 남자로 태어난 나로서는 빌리 아버지와 형이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을지 대충 짐작이 갔다. 빌리가 발레를 한다니. 오 맙소사! 처음에 그들이 그렇게 느꼈던 것은 당연했지 싶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빌리의 마음을 들어준다. 삶이란게 그리 단순한게 아니라 또 다른 길이 있다는것을 깨달은것이고 발레는 남자도 멋지게 할수있다는걸 인정한것이리라. 그점에서 그들도 빌리와 함께 성장했다고 할수 있지 않을까.

 

영화라는 영상 매체로 먼저 나와서 그것을 본 사람들이 많음을 생각했는지 이 책은 다중 일인칭 시점이라는 독특한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주인공인 빌리와 함께 아버지나 형등 여러 등장인물들의 시점에서 다양하게 전개시키고 있다. 마치 여러대의 카메라로 빙 둘러가면서 찍는듯한 느낌을 준다랄까. 그래서 좀더 사실적이고 객관적으로 빌리를 바라볼수 있게 한다.

 

이 소설의 백미는 역시나 후반부이다. 빌리가 어떻게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어떻게 오디션에 참가하고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가 숨가쁘게 전개되는데 영화를 본 사람에게는 그 장면이 주마등처럼 지나갈듯하다.

 

원작 영화를 여러번 본 상태에서 이 책을 봤는데 괜찮게 잘 쓰여진거 같다. 영화를 안 보고 이 책을 봐도 좋은 성장소설로 손색이 없을듯하다. 눈물날 만큼 감동적인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교훈을 주는것도 아니지만 그냥, 그냥 마음이 뭉클해진다. 감정이 과잉되지도 않게 적절하게 조절되면서 마음을 참 산뜻하게 해준다고나 할까.

 

좋은 책이다. 쉽게 재미있게 기분좋게 읽을만한 책이다. 더불어 이 책에서 좋은 느낌을 받은 사람은 영화를 안 봤으면 꼭 보기 바란다. 이 책을 더 가깝게 느껴지게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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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와의 이틀 밤
문지혁 지음 / 노블마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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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읽는 한국작가의 단편집이다. 그동안 장편 소설만 읽다가 보니 조금 지루함도 있었는데 색다른 단편집을 읽다보니 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이별과, 추억과, 사랑에 관한 여러가지 일들을 담은 에피소드 모음집이다. 각 이야기들은 서로 독립적이지만 그 속을 관통하는것은 역시 추억과 사랑이다. 그것도 좀 애틋함이 녹아있는.  특이하게도 결말부분이 묘하게 끝나서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배경은 주로 미국과 한국인데 미국의 지명은 뭐 안가봐서 잘 모르겠지만 한국은 익숙한 지명이 나와서 더 편하게 읽은거 같다. 주로 서울이지만 알만한 지명도 나오고 특정 기업의 이름도 자연스럽게 나와서 색다른 맛이 난다. 

첫번째 작품인 '사자와의 이틀밤'을 읽고나서 든 첫번째 생각은, '와 나도 저런 편한 여자친구있었으면 좋겠다'. 책 내용에선 눈물많은 면도 보이지만 기본적으로 정이 많으면서도 쿨한 면이 있는 성격이다. 주인공과 그녀가 뭔가 이루어질듯도 하지만 묘한 느낌을 남기면서 끝난다.  

'안녕, 열일곱'은 도발적인 작품이다. 아직 미성년인 여고생과 어른인 과외선생과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내용인데 보통 연상되는 단아하고 풋풋한 사랑이야기가 아닌 지극히 현실적인 장면이 나온다. 현실이 적절히 가미된 탓에 결말의 슬픔도 그려려니 하는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 그런 일이 17살 여고생에게 닥쳤다면 그 아이의 인생은 어떻게 뻗어나갈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스페이스맨'은 제일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었다. 성이 '우'씨고 이름이 '주인'인 한 청년이 한국 최초의 우주인 선발에 나서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인데 뭔가 우울한듯한 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설정 자체의 발랄함때문에 재미있게 읽었다. .SF단편을 썼던 지은이의 이력이 나타난 작품. 

'마이 퍼니 밸런타인'도 웃으면서 읽은 이야기다. 읽으면서 남자 주인공에게 든 생각은 '이 등신아!' 였다. 어리석은 여자의 모습도 보이지만 역시 멍청한 남자의 모습도 보인다. 요즘 남자들은 책 내용보다는 더 교활하게 일처리할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서울의 익숙한 지명이 나와서 현실감이 있었던 이야기. 

'온 더 댄스 플로어'는 세월이 빠름을 느끼게 했다. 요즘의 1년은 옛날의 10년과 맞먹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거 같다. 아주 오래된 세월도 아닌데 정말 오래된것같은 DDR에 관한 추억을 끄집어낸 이야기. ddr에 관한 자세한 용어설명은 좀 사족같기도 하고. 아무리 군대에 있었다고 해도 세상이 바뀐걸 그렇게 모를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욕 좀 먹어도 싸다 싸. 

'흔적의 도시'는 책의 이야기 중에서 가장 슬프면서도 애매한 이야기였다. 배경은 미국이지만 국내에서도 심심치않게 볼수있는 일...개인적으로 성과 관련없이 다른 사람을 억지로 해하려는 그 행위 자체를 아주 증오하기에 그냥 그 부분을 읽는 것 자체로 짜증이 났다. 어떻게 전개가 될지 궁금했는데 극전개가 뭐가 미스터리하게 진행되는듯하더니만 끝이 난다. 밥먹는데 한숫가락만 먹은듯한 느낌? 좀 찜찜했다. 

'그랜드 센트럴의 연인'은 인연이란것에 대해서 생각해본 이야기다. 극중에 나오는 '공군 소위 존 블래퍼드와 메이넬의 이야기'는 뻔할 뻔자 유치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누구나 그런 로망을 갖고 있기에 긴 생명력으로 오랫동안 비슷하게 이야기되는것일터. 이 이야기도 그런 로망을 모티브로 삼은 작품인데 뭐 인연이란게 쉽게 그리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현실적인 면도 느끼게 했다. 

마지막 작품인 '골목길'도 어떻게 보면 나도 모르는 나의 '흠모자'가 어디에 있지 않을까하는 보통 사람들의 상상을 모티브로 삼은 글이 아닐까싶다. 자신도 모르게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 구조가 재미있었다. '사랑이라는 이데올로기에서 고백이 의미하는 것은 사랑의 시작이거나 사랑의 종말이다'라는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이런 종류의 단편집을 접해본적이 잘 없어서 뭔가 허전한 느낌도 들기도 한 책이다. 주로 장편소설을 읽은 사람이라면 결말부분에서 답답함을 느끼게 될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이 아마 이 책의 지은이의 글쓰기 방식인거 같다. 뭔가 묘한 여운을 느끼게 하는 끝말이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이색적인 서정집이다. 크게 부담되지 않게 편하게 읽을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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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의 아이들 (양장) - 히로세 다카시 반핵평화소설, 개역개정판
히로세 다카시 지음, 육후연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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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 소련의 체르노빌이라는 곳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났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때는 나이가 어려서 그것이 얼만큼 큰일인지도 몰랐고 당시 냉전하 공산국가였던 소련에서 일어난 일이어서 정확한 정보를 얻는것도 불가능했다. 그냥 안좋은일이 일어났구나 하고 넘어갔었다. 우리와는 멀리 떨어진곳에서 일어난 아무 상관없는 일이려니 했을것이다. 

그런데 올해 일본에서 지진해일에 의한 원전사고가 일어났다. 지진에 의한 해일도 참 무시무시했지만 더 큰 문제가 그 여파로 원자력 발전소가 파괴된것이었다. 수십년전의 그 체르노빌 발전소 폭발사건이 바로 생각났다. 그런데 이번엔 먼 소련땅이 아니라 바로 우리 이웃나라 일본에서 일어난 일이다. 완전 발등에 불이 떨어진격이 아니겠는가. 

원전이 파괴되어 흘러나온 방사능이 대체 어디까지 어떻게 영향을 끼칠까를 예측조차할수도 없다는게 더 큰 공포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숨쉬는 공기, 마시는 물, 먹는 음식들, 쓰는 공산품 모두가 방사능에서 자유로울수없다는 사실이 정말 소름을 끼치게 만든다. 

이 책은 체르노빌의 사건이 일어나고 그 거대한 소용돌이에 아무것도 모르고 죽어간 어린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어렸을때 방사능과 관련된 책을 읽어서 그 영향이랄까 그런것을 잘 기억이 안났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방사능이 얼마나 무서운것인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마 어쩌면 여기서 설명한 여러가지 증상들은 빙산의 일각이 아닐까. 눈앞에 보이는 것만 해도 끔찍한데 눈앞에 보이지 않고 우리 몸 속 깊숙한 곳에서 독버섯처럼 자랄 암적인 존재들에 대한 생각을 하면 더욱더 끔찍해진다. 

이 책은 체르노빌의 사건을 낱낱히 밝힌 르뽀가 아니다. 체르노빌의 아이들을 보면서 과연 핵이란것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는 짧지만 강력한 메시지다. 소설 형식이지만 여기에 나온 아이들이 바로 우리가, 우리의 아이들이 될수도 있는것이다. 원자력이란것이 얼마나 큰 위험성을 갖고 있는지를 이 책을 보면 여실히 느낄수가 있다. 

사실 원자력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오랜 기간 그 안정성에 대해서 논란이 있어왔다. 점점 확대해왔던 우리나라와는 달리 선진국에서는 점차 축소하는 분위기였는데 최근에 유가급등등의 문제로 다시 확산하는 추세였기도 했다. 원자력이란것이 그 효율성면에서는 다른 에너지원보다 잇점이 있는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효율적인 에너지를 얻기위해서 치루어야할 댓가가 너무 크다는 것이 문제다. 원전을 짓는데도 돈이 많이 들지만 그 운영을 위해서도 적지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이 그 하나다.  

원자력 발전을 하면 필수적으로 나오게 되는 방사성 폐기물이 있는데 그것의 처리비용이 보통 큰게 아니다. 단순히 폐기물 매립지에 건물을 짓는게 아니라 그 매립지를 결정하기 위한 비용이 엄청나다는 것이다. 최근에 수년간 끌어온 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장으로 경주가 결정되었다. 참 우여곡절끝에 결정되었지만 여기는 말그대로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폐기물의 처리장인데 만일 '고준위' 폐기물의 처리장을 정해야한다면 누가 받아들일것인가. 일방적으로 정한다면 민란이 일어날 일일지도 모른다.  

원전의 또 하나의 문제점은 원자력 발전의 특성상 물을 많이 사용해야 하기에 해안지역에 짓는 경우가 많다는것이다. 그런데 그 결과가 바로 지난 일본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다. 자연 재해에는 속수무책인것이다. 우리나라 원전도 동해안에 집중해서 건설되어있는데 일본 원전 사고를 생각하면 뒷골이 서늘해진다. 게다가 우리나라 원전은 내구연한을 지나서 계속해서 쓰고 있는 원전도 있다. 새로운 발전소를 만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 그런거 같긴 하지만 이 얼마나 불안한가. 그리고 각종 발전 사고 소식에 더욱더 불안감을 떨칠수가 없다.  

원전이 다른 에너지원보다 안전하다고 하지만 그건 그냥 숫자놀음일뿐이다. 언제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다는 생각도 든다. 2만분의 1 확률이라고 하지만 그게 한번 사고가 터지면 그때는 나라 전체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러시아같은 땅떵이가 넓은 나라도 아닌 이 좁은 국토에서 대체 어디로 도망갈것인가. 그땐 그냥 소설속의 아이들처럼 이유도 모른채 죽어가지 않겠는가.  

그럼 이 위험하기짝이 없는 원전을 쓰지 않으면 안될까? 전력수요 자체를 줄일수는 없는것이 이미 사회 자체가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구조로 바뀌었기에 화력이나 수력으로 에너지를 충당하기는 어렵다. 많은 부분을 원전으로 대체하고 있는 셈인데 과연 원전말고는 답이 없을까. 

지은이는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있다. 일본만 해도 지금의 원전을 다 없애고 천연가스만 이용해도 충분히 에너지를 다 공급할수가 있다고 한다. 원전은 우리가 모르는 독점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는데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수 없어서 아쉬웠다. 사실 다른 대체 에너지원에 대한 개발을 게을리한것은 맞다. 그거 손쉬운 방법만 계속 쓰고 있는것이다. 들어가는 여러 사회 경제적 비용을 생각하면 그리 싼것도 아닌데 효율성이 높은 싼 에너지원이라는 이유로 원전에만 의존하는 우리나라가 참 답답하다.  

당장 원전을 없앨수는 없을것이다. 하지만 왜 많은 나라들이 원전을 줄였는가에 대한 생각도 해봐야할때가 아닐까. 원전만능주의에서 벗어나서 무엇이 진실로 안전하고 좋은 에너지인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 선상에서 결국 원자력 발전이란 것은 인간과 오래 갈수 없는 모델이란것에 생각이 미칠것이다. 

지은이인 '히로세 다카시'는 1인 대안 언론으로 유명하다. 제1권력이라는 책에서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검은 세력의 정체를 이미 오래전에 밝힌바있는 대단한 저널리스트이다. 그가 쓴 책이기에 더 큰 신뢰감이 들기도 한다. 

책은 짧다. 담담하면서도 사실적이고 극적이지도 않고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긴 내용의 이야기보다도 더 강렬하고 무서운 경고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다.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났을때 소련 정부가 보인 그 모습에 분노하고 원전 사고의 끔찍함에 무서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결국 남는것은 '슬픔'이었다. 인간이 이렇게 무기력할수가 있을까를 느끼게 할만큼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수밖에 없었던 그 사실이 너무나 슬펐다.  

일본 원전 사고로 새삼 원전의 무서움에 대해서 느낀 가운데 이 책을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현실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책이었다. 너무 불안해 할 필요는 없지만 원자력 발전이란것이 인간에겐 결국 재앙으로 다가올수도 있다는 점은 분명히 인식해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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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38
율리 체 지음, 이재금.이준서 옮김 / 민음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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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서평 쓰기도 애매한 책을 만난지도 오랫만인거 같다. 대체 뭐라고 써야 하지? 책 자체도 쉽게 읽는게 아니지만 읽은 내용 자체가 기억이 잘 안 났기 때문이다. 뭔가 잘 쓰여진 책이라고 느끼긴 했지만 내용이 좀 복합적인 형식인탓인지 금방 마음에 와 닿은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책, 특색있고 흥미로운 책이긴 한거 같은 생각이 든게 다시 읽어보고 싶게 하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책 내용은 그리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기본적으로 추리적인 기법을 적용하고 있다. '추리소설'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배경은 독일의 한 도시다. 그런데 석연치 않은 의료사고로 환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그리고 물리학자 제바스티안은 어느날 아들 리암을 캠프에 데려다주다가 납치되는 사건을 당한다. 곧이어 “다벨링은 제거되어야만 한다.”라는 의문의 전화를 받게 된다. 고민끝에 다벨링을 살해하는 제바스티안. 그러나 리암은 납치된적이 없다고 밝혀지고 제바스티안은 대혼란에 빠진다. 그런 중에 실프라는 노련한 형사가 나타나서 사건을 추리해가는것이 이야기의 축이다. 

언뜻보면 아이의 납치를 빌미삼아 살인을 조장하고 그 뒤에 큰 음모가 숨은 그런 줄거리를 연상케한다. 게다가 주인공이 물리학자니까 뭔가 큰 과학상의 비밀과 관련된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런 사건 이야기는 이 책에서 추구하는 면이 아니다. 그저 지은이가 원하는 주제에 하나의 끌어내기위한 장치로써 기능하는 것이다. 그래서 추리소설은 아닌것이다. 기본적으로 이 책에서 지은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것은 철학적이고도 물리학적인 인간의 삶에 대한 것이다. 인간의 삶은 어떠한가, 그리고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하는것인가에 대한 지은의 생각이 담긴 책이라고 이해하면 될꺼 같다.(나만 그렇게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이 책에 나오는 평행 우주론이나 양자 역학 이런것이 쉬운 개념은 아니다. 물리학과 동떨어져서 물리학의 용어 하나도 잘 접하지 못하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런 용어 자체가 책에 대한 거리를 느끼게 한다. 하지만 사실 이 책은 물리학적인 이론이 잔뜩 나오는 책은 아니다. 간단하지만 의문의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도 있다. 그러나 진짜로 이 책에 어렵다고 여기게 하는것은 서술형식이다. 사건에 대한 진술보다는 곁가지에 많은 내용을 서술한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고나 할까. 그래서 글 내용 자체가 좀 산만한편이다. 한 주제를 이야기하다가 그 주제에 관련한 다른 이야기로 또 다른 샛길로 빠지는 형국이랄까. 

그러나 전체적으로 봤을땐 그런 서술 구조가 어떻게보면 많은 정보를 주고 있는것이다. 바로 코앞에 어떤 이야기를 던져주는것이 아니라 이쪽 저쪽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주면서 전체적인 맥락에서 바라보게 하는것이 이 책의 서술 형식인거 같다. 따로 생각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유기적인 관계속에서 이해해야한다는...확실히 다른 책들보다는 읽기가 수월한 건 아니다.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큰 끈기와 노력을 요구한다. 

쉽지 않은 책이지만 그렇다고 재미없어! 하고 막 던질말한 책은 아니었다. 이야기 서술이나 내용이 기존에 접했던 스타일과는 다른 신선한 감이 있다. 빠른 전개와 재미난 내용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재미없을것이다. 추리적인 내용이 나오지만 추리소설은 아니니 추리소설팬들은 접근하지 않는것이 좋겠다. 하지만 편안하진 않지만 뭔가 영양가 있는 듯한 책을 원한다면 이 책이 맞을것이다. 그냥 목에 넘기기 보다는 몇번 씹으면 맛이 나는 음식처럼 이 책도 되새김질을 하면 참 특색있고 재미난 책이 될거 같은 느낌이 든다. 오랫만에 서평쓰기가 애매할 정도로 생각을 깊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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