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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황진이
김탁환 지음, 백범영 그림 / 푸른역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티비방송에서 드라마로 요즘 인기를 끄는 것이 황진이다. 왜 새삼스럽게 황진이인지는 모르겠으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제작중이라고 하니 가히 황진이 열풍이 일어나는거 같다.
그런데 황진이는 누구일까?
편하게 불러왔고 많이 아는듯 했지만 실제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시원하게 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황진이란 인물에 대해서 진득하게 알고 있는것이 아니라 몇가지 인상적인 에피소드만을 알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그런 가운데 황진이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 나왔으니 이름하여 '나,황진이'란다.
황진이 스스로를 소개하는 듯한 이 도발적인 제목으로 나온 책은 탁월한 이야기꾼인 '김탁환'의 역작이다.
책의 형식은 참 독특하다.
보통 소설 형식이 아니라 황진이 스스로가 다른 사람에게 구술하듯이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1인칭의 자전소설 형식인것이다.
그러나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이런 형식을 지은이는 섬세한 문장과 여러 시들, 그리고 내용을 압축해주는
수십점의 동양화 그림으로 황진이를 생생하게 살려내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기생'으로서의 황진이의 모습은 여기서 보이지 않는다.
신분은 기생이었으되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사람이었고 또한 당대의 거유였던 서경덕의 당당한
제자로 자리메김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황진이는 요즘으로 치면 아주 탁월한 '탈랜트'다.
기본적으로 아름다운 얼굴과 빼어난 몸매를 가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황진이를 규정하는것은 그녀를 오히려 욕보이는 것일 것이다.
그녀가 더 돋보이고 멋지게 보이는 것은 그 내면에 가진 마음씨와 여러 재능들이다.
노래는 물론이요 춤도 멋들어지게 추고 시에도 능하면서도 아무한테나 스스로를 보이지 않는 자존심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댓가도 바라지 않고 정을 주는 다정함을 보이기도 한다. 그녀의 진면목은 바로 그런점에서 외적인 것을 능가하는 것이다.
한편. 이책에서는 황진이를 당시 유명한 학자였던 서경덕의 큰 제자로 묘사하고 있다.
이야기의 시작도 동문 수학했던 '허태휘'의 부탁을 받고 글을 쓰는 것으로 한 것만 봐도 제자의 한 축을 인정받고 있음이 드러난다.
사실 황진이가 활동하던 시절은 조선의 사상적인 면에서 풍부한 인물들이 배출되었던 시기였다.
그녀의 스승인 서경덕을 비롯하여 우리가 잘아는 퇴계 이황, 그리고 경상도의 또다른 대학자였던 남명 조식 등의 학파들이 생겨나서 당대의 학문을 살찌웠던 시절이기도 하다.
16세기를 마감하는 대 사건이었던 임진왜란때문에 상대적으로 이 시기가 크게 조명받지 못하고 연구가 덜 되어 있는 차에 지은이는 황진이를 통해서 이 시대의 화려했던 문화를 부분적으로나마 살려내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은 황진이의 그 '자유스러움'을 절절히 보여준다.
그녀의 그 뛰어난 재능과 외적인 아름다움도 현재를 관통하는 그녀의 그 자유로운 마음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보다 훨씬 엄격한 신분사회에서, 그것도 여자의 몸으로, 가장 천하게 여겼던 기생의 신분으로 그녀가 행한 그 많은 일들은 요즘에서 생각해도 감히 따라하기 어려운 자유스러움을 보여준다.
그녀는 바로 시대를 벗어나서 그녀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는것일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이유로 현실에 안주하고 더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비춰봤을때 그녀의 모습은 정말 멋지면서도 용감하다고 하지 않을수 없었다.
원래 이 소설은 처음에 출판되었을때 일반판과 더불어 주석판이 같이 나왔다.
주석판은 소설 창작 과정에 관련된 수백개의 주석과 작가의 의견, 참고 문헌등이 소설 본 내용보다도 더 많이 실려있어서 황진이를 좀더 입체적으로, 학문적으로 접근하게 해준다.
물론 주석판도 흥미가 있겠지만 편안히 황진이의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기엔 일반판이 더 적격이라고 할수있겠다. 지은이의 의견이 아닌 황진이의 이야기가 담담하지만 열의를 가진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의 품격을 높여주는것은 이 책을 위해서 따로 그린 그림이다.
1인칭에서 오는 단조로움과 상상의 결여를 방지하기 위해서 적절한 삽화를 넣었는데 그것이 더욱더 책의 격을 높이고 있다.
문체 자체도 산문과 시가 적당한 탬포로 이어지면서 곱고 단아한 느낌을 받았다. 여성이 서술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보였을수도 있지만 그만큼 지은이의 낱말 선택과 문장력이 돋보였다고도 할수 있을것이다.
아무튼 황진이의 삶을 새롭게 볼수 있었던 독특하고 신선한, 고품질의 소설 한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