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희의 신 유대인 이야기 - 자본주의 설계자이자 기술 문명의 개발자들
홍익희 지음 / 클라우드나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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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제목은 숨은 손이라고 했지만 경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유대인이 얼마나 세계 경제계에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지 알 것이다.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유대인은 여러 경제 분야의 중요한 부분에서 정책을 결정하고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오랫동안 나라 잃은 민족으로 살았던 유대인들에게 가장 확실한 생존 수단은 돈이었기에 상업에 집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는 좀 더 과장을 보태면 유대인들이 다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지금의 경제 시스템에 유대인이 끼친 영향은 크다. 그렇다면 어떻게 유대인들이 이렇게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끼치게 된 것일까. 이 책은 고난과 역경을 뚫고 경제를 장악한 유대인들의 경제 역사에 대해서 잘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기본적으로 유대인은 오랜 세월 나라가 없었다. 고대 이스라엘 왕국이 무너진 이후에 이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라 없이 떠돌았다. 나라는 없었지만 유대교라는 종교와 관습으로 정체성을 유지했다.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박해를 받았고 여러 제약이 있었는데 그래도 그들을 지킬 수 있는 것은 돈이기에 일찍이 상업에 종사했던 것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도 지독한 구두쇠 고리대금업자로 유대인으로 설정했을 정도다. 유대인들이 단순히 상업에만 종사를 했다면 이토록 오랫동안 영향력을 유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은 경제를 장악하면 권력도 따르고 결과적으로 자신들의 안위를 지킬 수 있다고 봤다. 그래서 어디를 가던 그 지역의 경제를 부흥시키는데 재능을 발휘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유대인이 움직이는 곳에서 경제가 발전했고 최종적으로 영국으로의 이주가 이후 산업 혁명과 자본 주의의 발전에 밑바탕이 되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유대인이 나라를 이루고 살았다면 이렇게 발전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쫓기고 쫓겨서 정착한 곳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더 큰 발전을 이룬 것을 보면 대단한 민족이긴 하다.


유대인은 스페인에서 잘 정착했는데 어느 날 스페인의 왕에게 추방을 당해서 이주를 하게 된다. 그렇게 정착한 곳이 네덜란드. 네덜란드에서 여러 경제 시스템을 안착시켰던 유대인은 프랑스와 영국의 침략에 막대한 전비를 마련해서 네덜란드의 왕 빌럼 3세를 돕게 된다. 누구라도 뻔하게 예상했던 전쟁에서 네덜란드가 승리한 배경에는 유대인의 전비 조달 능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 영국에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나고 명예혁명으로 네덜란드 왕 빌럼 3세가 영국 왕 윌리엄 3세가 되어 양국을 동시에 통치 하게 된다. 윌리엄 3세가 영국으로 떠나면서 많은 유대인들이 영국으로 따라가면서 영국의 경제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은 영국에서 네덜란드식 주식 시장을 도입하고 은행을 만들고 영국의 금융, 세제, 행정 전체를 개혁하게 된다. 그야말로 시스템을 선진적으로 바꾸게 된 것이다. 비교적 후발 주자였던 영국은 이로써 강대국으로 발돋움할 밑바탕을 마련하게 된다. 막강한 금융 산업이 만들어지고 저금리가 지속되자 자본이 축적되고 이것이 결국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흔히 돈이 돈을 만든다고 하는데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원인 중에 하나가 바로 유대인의 돈이었고 이들의 돈이 산업을 일으키고 또 그것으로 돈을 벌게 되었다. 


책은 유대인이 스페인에서 추방당해서 네덜란드로 이주하게 되고 또 영국으로 건너가면서 어떻게 경제를 부흥시키고 여러 경제적인 혁신을 이루게 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공통적인 것은 유대인을 중용하면 결국 그 나라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유대인의 박해는 이런 유대인들의 뛰어난 능력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도 없고 기댈 곳이 없는 민족이 능력은 뛰어났으니 처음에는 관용하다가 나중에는 두려워한 나머지 시기, 질투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금융이나 경제쪽에 많은 유대인이 진출했지만 그 머리가 한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과 의학 분야에도 유명한 사람이 많다. 그 유명한 아인슈타인을 필두로 수소 폭탄 발명의 폰 노이만, 소아마비 백신을 만든 조너스 소크 등 뛰어난 능력으로 인류사에 큰 업적을 남긴 유대인이 많은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가 일제에 패망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인 러일전쟁에 유대인이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쟁의 승패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전쟁 비용 즉, 돈이 많아야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당시 일본은 러시아와 싸우면 대부분 진다고 봤다. 실제로 러시아가 힘이 약해지긴 해도 일본과 비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그 많은 전쟁 비용을 바로 유대인이 빌려줬던 것이다. 러시아에서 유대인을 박해하고 억압하자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 제이콥 시프라는 유대인 금융인이 일본 국채를 사서 전비를 마련해준 것이다. 당시 러시아는 혁명의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는데 여기에도 지원을 한다. 결국 러시아는 압도적인 전력에도 불구하고 전략의 차이와 부족한 전비, 그리고 어수선한 국내 정세 등으로 인해 일본에게 지고 만다. 그리고 그것은 곧 당시 조선의 패망이나 마찬가지였다. 유대인이 조선의 멸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셈이니 역사란 참 알 수가 없다. 


책은 유럽과 미국 경제계에서 어떻게 유대인이 성공하고 영향력을 떨치게 되는지 역사적 사실을 들어서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경제뿐만 아니라 세계 최강국 미국의 정치계도 많이 진출해서 경제와 정치 모두에 큰 힘을 가지고 있다. 세계 정책에는 유대인의 입김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 것이다. 


책은 현대에 새로운 국가를 세울 때까지 이 천 년이 넘는 긴 세월을 박해와 고난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부를 축적하고 미래를 만들어 냈는가를 잘 알려주고 있다. 나라를 잃은 시기는 짧지만 수 많은 침략을 받고 역경을 헤쳐온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거대 아랍 국가에 둘러싸인 이스라엘같이 강대국들에 둘러 쌓이고 분단 까지 되어 있는 우리나라로써는 이스라엘의 생존 방식이 우리의 생존에 하나의 좋은 실마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쉬운 점은 전반적으로 유대인 찬양만 하는 내용이라서 균형 있게 읽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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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의 나라 조선 - 그 많던 조선의 모자는 왜 그렇게 빨리 사라졌을까?
이승우 지음 / 주류성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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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안경은 주로 시력 보정을 위한 목적으로 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하나의 패션으로 많이 착용을 한다. 옷 이외에 다른 착용물들이 나를 좀 더 돋보이게 하는 요소가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모자도 단순하게 방한용이나 작업용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패션의 한 형태로 쓰는데 실제로 모자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인상이 달라 보이기도 한다.


사실 평소에 모자를 많이 쓰지 않아서 모자가 얼마나 종류가 많은지 잘 몰랐었다. 단지 세계적인 모자 제작 회사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그것이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조선이 바로 세계적인 모자 천국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이 모자 천국이라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면 우리 나라에 모자가 종류가 참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역사극을 많이 보는데 거기 나오는 인물들이 신분에 따라서, 직업에 따라서, 성별에 따라서 각기 다른 모자를 썼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렇게 많던 모자가 오늘에 계승되고 있는가? 답은 아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찬란했던 그 모자들의 역사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안타깝게도 모자의 역사는 세세하게 기록된 것이 없고 관련된 연구도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나온 이 책은 모자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반추 하게 하면서 잃어버린 전통을 다시 보게 하는 것 같다.


제목은 조선의 모자인데 여러 기록의 한계로 인해서 조선, 그 중에서도 중-후반기의 모자만 이야기할 수 있는데 모자를 쓰는 것이 갑자기 조선에 들어와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전의 왕조에서도 비슷하게 모자를 많이 썼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삼국 시대 중국 당나라에 조공하러 갔던 고구려, 백제, 신라 사신들의 그림을 보면 다른 나라와 다르게 특이한 모자를 썼음이 드러난다. 많은 사례는 아니지만 조선의 풍습에 견주어 봤을 때 삼국 시대에도 모자를 애용했다는 것을 예상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에서는 왜 그렇게 모자를 많이 썼을까. 지은이는 대체로 네 가지의 원인을 살피고 있다. 그것은 조선의 전통적인 상투 문화 , 머리를 중요시하는 존두 사상 , 문화가 장기간 이어진 왕조, 유교 계급 사회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각각의 원인들은 다른 원인과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먼저 상투는 당대 남자들의 머리를 대표하는데 단지 조선에서만 한 것이 아니라 한민족을 나타내는 표시라고 할 만큼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고구려 고분 벽화에 상투와 관련된 그림이 나오고 신라 시대는 가마인물형 토기에서 확인이 된다. 이것을 보면 상투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관습인데 이것은 왕조가 장기간 이어져야 전승이 되는 것이다. 


조선 시대가 되면 상투는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서 더 중시 되었다. 그러기에 이 상투를 보호하기 위해서 모자를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머리 자체를 중시하는 존두 사상과 의관

정제 의식과도 연결이 된다. 머리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효와 직결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정갈하게 모자를 쓰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의미에서 의관 정제와도 통하는 것이 있다.


신분제는 모자의 종류가 다양해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화려하고 값 나가는 재료로 만든 모자는 아무나 쓰지 못하고 귀한 신분에서만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모자만 봐도 양반인지 상인인지 천민인지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신분과 계급에 따라서 모자가 달랐다. 따라서 낮은 신분의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좋은 모자를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옷이던 모자던 좋은 것을 입고 쓰고 하려는 욕망은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다르지 않다. 엄격하게 규제를 했다고 해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규정의 틈을 찾아내었고 다른 사람과 다르게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고자 모양과 장식을 조금씩 달리해서 착용했던 것이다. 그것은 신분의 상하가 따로 없었다. 이것이 조선이 수많은 종류의 모자가 진화하게 된 원인이다.


책은 조선의 모자가 발달하게 된 배경 설명을 한 다음에 모자의 종류를 여러 사진과 함께 설명하고 있는데 정말 생각도 못한 수 많은 모자가 소개된다. 왕이 쓰는 모자도 시기에 따라서 다양하게 있고 양반 선비가 쓰는 모자도 여러 종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선인들은 평상시에 집안에 있을 때도 모자를 쓰고 있었고 평상 모자라고 해도 여러 모양의 모자가 있었다. 진짜 요즘 말로 패션 아이템이 풍부했던 것이다.


상투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모자를 썼다고 하지만 추운 겨울에 대비해서 방한용 모자도 많이 썼다. 이른바 난모라고 불렀는데 이 난모가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부작용을 낳았다. 난모의 재료가 되는 것은 중국에서 생산되었기에 이 난모를 수입하면서 국부 유출이 심각했다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명품 가방을 수입한다고 무역 적자 폭이 커졌다는 것과 비슷하겠다. 무역이 제한되어 있던 조선 시대는 이런 일종의 사치품으로 인해서 나라 경제에 큰 문제가 될 정도였다니 조선 시대 사람들의 모자 사랑은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다양하게 발달했던 조선의 모자는 다 어디로 갔나? 기본적으로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사라진 많은 관습이나 유물 중에 하나겠지만 그 이전에 모자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 조선 말 고종의 단발령 시행 이후로 상투를 벗어나면서 상투를 보호하기 위한 모자의 효용성이 떨어진 탓이다.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외국 문물은 모자를 많이 쓰지 않는 문화였다. 고종 황제조차 단발을 하면서 양복을 입으니 정식 왕관을 쓸 일이 적어지게 되고 이것이 점차 퍼지게 되니 모자도 종류가 급속도로 줄어들게 되었다. 


책은 이외에 최근 외국에서 주목 받는 갓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재료는 무엇이고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썼으며 이것이 어떻게 쇠퇴하게 된 것인지 잘 설명하고 있다. 갓을 포함한 조선의 모자가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인 강압이 있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이 있는 한국인의 기질에도 있다. 이른바 빨리 빨리 문화가 있는 우리에게 편리하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다 보니 모자의 영광도 사라지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은 조선의 모자에 대한 전반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이렇게 다양한 모자가 있을 줄 몰랐다. 그리고 모자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더 놀랍다. 모자가 실물로 남아있기 어려운 물건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애용되다가 몇 년 안에 급속도로 사라지게 되어서 미처 살필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도 이해하지만 이런 연구 광복이 된 지 70년이 넘도록 많이 되지 않은 부분은 안타깝다. 하긴 조선이 망하고 일제가 들어서면서 잃어버린 우리 일상의 생활사가 어디 모자뿐일까만. 


이 책은 갓이나 왕이 쓰는 관모 등 몇 개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화려하고 다양한 조선의 모자 세계를 잘 소개해준다. 외국에서 우리 나라 옛 모자에 대해서 감탄 하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이 오랫동안 이어져 온 모자의 관습이 발전적으로 계승되었다면 더 멋진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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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 20세기 제약 산업과 나치 독일의 은밀한 역사
노르만 올러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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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은 개전 초기 영국이나 프랑스의 생각과 다르게 전개 되었다. 독일의 군사력이 강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초반에 그렇게 기세를 일으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연합군은 패전에 패전을 거듭했고 전 유럽이 나치의 군화 아래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이런 빠르고 성공적인 전투 작전의 중심에 '전격전'이 있었고 그런 전략에 연합군은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격전의 내용을 보면 빠른 진군이 특징인데 병사들이 잠도 안 자고 연속해서 행군을 하고 전투를 치뤘다고 한다. 정상적이라면 있기 힘든 일이었다. 처음에는 독일군이 사기가 높고 정신력이 대단해서 그런건가 했는데 알고 봤더니 마약의 힘이었다! 당시 독일은 독일의 주적으로 피로를 꼽고 어떻게 하면 피로를 줄일수 있을까를 연구하다가 마약을 사용한 것이었다. 본래 예상은 48시간을 자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무려 17일을 견뎠다고 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17일간 그렇게 자지도 쉬지도 않고 전투를 벌일 수 있겠는가.


이 책은 2차 세계 대전의 숨은 존재인 마약에 대한 이야기다. 전쟁과 히틀러에게 마약이 중요하게 쓰였고 이것이 전쟁의 향방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인데 여러 공개된 문서와 그 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결론 내 볼 때 타당한 이야기다. 전쟁은 하면 할수록 병사들이 지쳐가는데 그런 피로를 없애고 기계처럼 전투를 수행한다는 것은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치는게 아니겠는가. 마약은 단순히 잠만 안 자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분도 좋게 하고 흥분시키며 감정을 단순하게 만들어서 병사들을 그야말로 전쟁 기계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책은 처음 메스암페타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마약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지금 만큼의 지식이 없었던 그 당시에는 다양한 질환과 다양한 증상에 광범위하게 쓰였고 그 대상은 갓난아기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무분별하게 처방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전체적으로 금지 약물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그 동안에는 그야말로 '국민 마약'이었다. 이것이 나치가 들어서면서 강력하게 금지하기 시작했고 반 유대 정책이나 반소수자 정책과 맞물려서 더 철저히 금지하게 되었다.


독일에 유일한 마약은 히틀러뿐이었기에 히틀러를 충성하는 마음만이 허용되어야 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고 그 효용성을 생각한 나치는 병사들에게 마약을 먹였다. '각성제'라는 이름으로. 그래서 전투를 잘 치르고 진군도 잘 하게 되었지만 더욱 더 마약에 의존하고 마약에 물들게 되어 각종 부작용과 후유증도 만만치 않게 일어나게 되었다. 히틀러라는 마약 이외에 철저히 금지하던 나치가 정작 전쟁이 일어나자 병사들에게 먹였다는 사실은 그들이 얼마나 독일 국민을 기만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히틀러는 마약에서 자유로왔는가. 책은 모렐이라는 주치의를 이야기하면서 그가 히틀러를 위해 어떤 약을 처방했는가를 보여준다. 처음에 만성 위염 증세로 모렐의 치료를 받았던 히틀러는 효과가 크자 나중에는 아예 그를 주치의로 임명한다. 그로부터 히틀러가 죽을 때까지 모렐은 가장 가까이에서 모든 정책에 그를 위해서 주사를 놓는 최측근이 되었다.

최고 지도자의 건강이 중요하던 당시에 모렐은 입 무겁고 실력 있는 듯한 의사였다. 초기 그의 처방은 효과가 있었다. 만성적으로 아프던 배는 씻은 듯이 나았고 기분도 좋아지게 했다. 그 처방은 호르몬 제재와 스테로이드, 비타민을 섞은 일종의 칵테일 요법이었다.


히틀러는 결코 건강한 체질이 아니었고 위염으로 인해서 건강을 위한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는데다가 강박증이나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서 수시로 아팠다. 이것을 모렐은 여러 주사 요법으로 다스리긴 했지만 가면 갈수록 쉽징 않은 상황이 되었고 나중에는 어떤 칵테일 요법도 듣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바로 마약이었다. 히틀러의 통증을 진정시키고 원기를 돋아줄 약물! 그것은 '오이코달' 이라는 마취제였다. 이 약의 강력한 작용물질은 천연 성분의 아편으로 합성한 '옥시코돈'이라는 이름의 아편 유사체였는데 의사들 사이에서 유명한 약물이었다. 이 약물은 진통 효과도 더 쎄고 신속하면서 강력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작용을 했으니 모델이 최후로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기력하던 히틀러가 크게 고무되어서 각종 회의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이면서 강인한 지도자로 각인시켰다. 이 모든 것이 마약의 힘이었다. 그러나 마약은 한번 맛보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법. 히틀러는 끊임없이 요구하고 또 요구했다. 마약 없이는 제국이 돌아가지 않았고 전쟁은 질 수 밖에 없었다.


책은 마약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유행과 나치의 억제책, 전쟁을 위해 독일군에 사용되었던 것과 그런 마약에 결국 중독되어 마약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게 된 히틀러의 이야기까지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에 대해서 여러 자료를 분석해서 이야기 해준다. 


물론 마약이 히틀러의 죄상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히틀러는 마약이 없었어도 악행을 저질렀을 것이고 전쟁도 상관없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마약이 전쟁을 촉진하고 수 많은 사람에게 더 나쁜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새삼 마약이 얼마나 위험한지 느끼게 되었다.

아무튼 2차 세계 대전의 배후에 마약이 있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여러 각도에서 알게 되어서 좋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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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이야기 - 2022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박동희 지음 / 미진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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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에 여행을 간다면 무엇보다 앙코르 와트를 구경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곳이다. 앙코르 와트는 당대의 사원으로 오랫동안 방치되다시피 하다가 100여 년 전에 서구에 소개되어 전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알려지기로는 1860년 프랑스의 식물학자 앙리 무오가 밀림을 탐색하던 중 '발견'하여 유럽에 전했다고 하는데 사실 이 말은 지극히 서구 중심적인 말이다. 지금의 미국도 원래 있던 것인데 자기들이 발견했다고 신대륙이라고 하지  않는가. 앙코르 와트가 진짜 버려졌다면 발견이 맞을지도 모르겠지만 앙리 무오를 비롯한 서구 사회가 몰랐을 뿐 당시 살던 사람들은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외부인들이 앙코르 와트를 인식하기 어려웠던 면은 있다. 이 엄청난 건축물이 세워져서 계속 사용되고 사람들이 왕래한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버려지다시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밀림 속에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났으니 놀랄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수백 년 전에 내륙 한복판에서 돌로 세운 거대한 건축물. 그런데 사람이 사용하거나 사는 흔적은 오래 전에 없어진 이 신비한 사원의 비밀은 무엇일까.


이 책은 그 유명한 앙코르 와트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떻게 버려졌는지를 포함한 앙코르 문화 자체에 대한 책이다. 앙코르 와트는 앙코르 왕국에서 만들었다. 지금의 캄보디아는 과거에 크메르인들이 살았고 이들은 강력한 크메르 제국을 세웠는데 그 수도가 앙코르였던 것이다. 크메르는 주위의 베트남이나 태국, 미얀마 등과 경쟁을 하면서 어떨 때는 영토가 축소되고 어떨 때는 확대되면서 명맥을 이어갔는데 앙코르 와트가 세워질 때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때였다. 


사실 이 정도 건축물을 세우려면 엄청난 재정이 필요한 데 당시 크메르는 잘 발달된 관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근처 시엡립강의 물을 적절하게 이용한 것이다. 이 강의 수로와 운하를 이용해서 물을 다스렸던 것이다. 수로망과 저수 시설들은 우기의 강물이 체류하는 시간을 길게 만들면서 농사를 짓는데 적절하게 이용했다.


이런 정교하면서 방대한 치수 시설을 토대로 농업이 발달했고 그것으로 국부가 쌓이면서 앙코르 와트 같은 대형 건축물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수로망을 유지 관리하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이것은 식량 생산량의 감소로 나타났으며 그만큼 국력은 쇠퇴했다. 게다가 야유타야 같은 주의 신흥 강국이 앙코르를 위협하면서 결국 오랫동안 수도였던 앙코르를 떠나서 다른 곳으로 옮기게 된다. 이후 점점 쇠퇴하면서 결국 멸망하게 되는데 앙코르 와트는 이 와중에 천천히 그 빛을 잃어가게 된 것이다.


책은 앙코르 왕국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있다. 앙코르 와트가 이 나라를 대표하기는 하지만 그밖에 대단한 건축물들이 많다. 앙코르의 붉은 보석 반띠아이 스레이 사원, 케오 사원, 바푸온 사원, 바이욘 사원 등은 앙코르 와트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신선한 놀라움을 느끼게 할 것이다. 앙코르는 802년에서 1431년까지 630년간 존속한 나라인데 우리로 치면 통일 신라 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해당된다. 


이 때 앙코르에는 정교하면서도 거대한 건축물을 세웠던 것이다. 당시의 기술 수준을 생각할 때 엄청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원들은 힌두교와 불교를 반영한 종교 사원인데 이런 건축물을 통해서 문명을 꽃 피웠던 것이다. 우리는 석굴암 같은 돌로 만든 부처상이나 고려 청자 같은 자기류로 문화를 만들었다면 앙코르는 종교 사원들 통해서 그들의 삶과 생각을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책은 그런 많은 사원들의 배치나 여러 장식, 회랑 등의 건축 요소를 여러 사진과 함께 설명하고 있는데 적절한 설명과 함께 곁들여서 앙코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리고 이 사원 건축물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당대의 역사를 사원의 비문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앙코르 왕국의 역사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그나마 이 비문으로 역사를 알 수가 있는데 600년이 넘게 이어진 한 나라의 역사가 온전히 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고 슬프다. 이토록 찬란한 문명을 이룩한 나라의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기에 아직도 신비한 나라로 느끼게 된다.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앙코르를 완전히 복원하기는 힘들지만 대신 그들이 만든 석조 건축물이 있다. 단순히 보면 그냥 쓸모없는 듯한 돌멩이 같겠지만 이 자체가 수 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산 역사다. 이 돌 하나 하나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고 본다면 그 옛날 앙코르의 영화를 좀 더 가까이 짐작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책은 참 좋다. 지은이는 공적개발원조로 앙코르를 복원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이다. 앙코르에 대한 진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직접 답사 하고 찍은 사진으로 앙코르라는 나라와 문화에 대해서 제대로 알려주고 있다. 앙코르 와트를 여행하려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 보면 좋을 책이다. 앙코르로 가는 친절하면서도 상세한 길잡이 같은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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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전쟁 - 전쟁이 끝나면 정치가 시작된다 임용한의 시간순삭 전쟁사 2
임용한.조현영 지음 / 레드리버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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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미국의 가장 큰 관심 지역은 우크라이나다. 러시아가 침공을 해서 전쟁을 한지 조금 있으면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렇다면 미국이 수 십 년 동안 우선 순위 관심을 기울인 지역이 어디라고 묻는다면 단연코 중동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스라엘이겠지만. 중동은 지리학적인 중요성도 있겠지만 석유 생산과 관련된 곳이기에 이 곳의 평화가 미국의 이익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에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고 하겠다. 


미국의 입장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평화롭게 살기를 바라는 것이지만 어디 그것이 쉬운 일일까. 이미 여러 차례 전쟁까지 치루었고 기나긴 협상 끝에 팔레스타인이 독립을 하긴 했지만 심심하면 이스라엘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중동은 언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화약고 같은 곳이다.


중동 전쟁을 알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우선 이스라엘. 수 천 년 동안 떠돌아 다니면서 자신 만의 국가가 없었던 민족.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여러 민족들이 독립 국가를 만드는 분위기에 자신들만의 국가를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국가를 세우려고 했던 지역은 옛날 성경에 나오는 그때와 상황이 바뀌었다. 그때는 이스라엘 민족이 강성했을때였지만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고 뿔뿔이 흩어진 동안 그 땅은 다른 민족이 들어와서 살게 되었다. 그렇게 산 지도 오래 된 것이다. 바로 팔레스타인. 이 지역에 여러 왕조가 통치 할 때는 사실 큰 문제가 없었다.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도 그냥 그 나라의 신민으로 살면 되었을테니까.


그런데 이 지역에 나라를 세워준다고 한다고 한다. 누가? 이 모든 문제의 원흉인 영국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게 약속을 한다. 당시 영국은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에게 밀리고 있었다. 그래서 뒷일은 생각도 안 하고 무턱대고 양 진영에 국가 설립을 약속했던 것이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영국이나 프랑스의 힘이 떨어지면서 그들의 식민지에서도 독립 바람이 불었는데 문제는 팔레스타인 지방이었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인들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있었고 여기는 유대인들의 마음의 고향이었다. 한편으로는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살아 온 팔레스타인인들에게도 영유권을 주장할 만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에게 전쟁의 이익을 얻으려는 영국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이 지역에서 영국군이 철수 하고 난 뒤 양 진영의 전쟁이 시작되는데 이것이 중동 전쟁의 시발이다. 물론 이 지역에 평화를 보장하기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UN에서 마련한 지역 분할론 부터 신탁 통치론 까지 여러 방안이 강구 되었으나 어느 하나 강제 되지 않았고 어영부영 지나면서 결국 전쟁을 하게 되었다. 결국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 이었으나 이스라엘은 너무 약했다. 인구도 군대도 상대보다 약했다. 팔레스타인 자체는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주위 아랍 국가들이 종교적, 지리적 유대감으로 함께 힘을 합쳐 이스라엘과 싸우게 되는 형국이었다.


전쟁은 수 십 년에 걸쳐서 4번이나 일어나게 되지만 최종 승자는 이스라엘이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단결해서 이스라엘을 도왔고 통합된 아랍을 마땅치 않게 여겼던 미국이나 유럽의 은근한 지원 등이 더해져서 이스라엘이 이기게 된 것이다. 이에 비해서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아랍 국가들은 영토나 인구, 군대 등이 압도적이었다. 아무리 이스라엘군이 강하다고 해도 전력차가 뚜렷했다. 특히 전쟁의 가장 큰 축을 담당했던 이집트는 나세르의 지도 아래 위협적이 국가가 되어 가고 있었다.


아무리 한 쪽의 전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싸워봐야 아는 것은 전쟁이다. 이스라엘은 여러 가지 불리한 상황이었지만 하나로 똘똘 뭉쳐서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게 된다. 반면 아랍은 훨씬 많은 수적인 우위에 있었지만 단결하지 못했고 이스라엘에 일격을 당했다. 특히 3차 전쟁에서는 단 6일 만에 모든 것이 끝나 버릴 정도로 이스라엘이 아랍을 압도했다.


그러나 아랍이 늘 지고 있을 수는 없는 법. 이집트는 새롭게 군대를 개편하고 군비를 정비해서 강한 군대를 만든 다음 기습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한다. 초기에는 이집트의 공격이 성공해서 이스라엘은 패퇴 하게 된다. 하지만 저력의 이스라엘은 다시 전력을 가다듬어서 반격을 하고 결국 이집트를 몰아내는데 성공한다. 이것이 4차 전쟁인 욤 키푸르 전쟁이다.


이집트를 위시한 아랍이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이들도 제대로 준비해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게 되었고 이스라엘에게도 늘 자기들이 승리할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많은 전상자들을 대하면서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언젠가 질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것이다. 아랍에 둘러싸인 이스라엘이 자꾸 이런 소모적인 전쟁에 내몰린다면 결국 무너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듯. 아랍과 이스라엘은 여러 번의 희생을 통해서 평화에 대한 길을 모색하게 되고 오랜 협상 끝에 팔레스타인을 인정하고 평화 협정을 맺게 된다.


책은 이러한 수 십 년에 걸친 정치, 군사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 지역 분쟁의 원인 제공자인 영국이 그렇게 멋대로 하지만 않았어도 이 지역에는 진작 평화가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중동이 우리 나라에서 멀기도 멀고 아랍 국가와 이스라엘 모두와 교류가 있는 처지에 북한을 상대하고 일본, 중국을 곁에 두고 있는 우리로써는 중동 문제에 관심을 갖기가 힘들다. 중동 지역에 대한 정부의 오래된 공식 입장도 평화와 중립이다. 그러나 결국 이 지역이 안정되어야 세계 평화가 안정이 되고 우리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본다면 중동 지역과 전쟁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고 하겠다.


책 내용은 좋다. 전쟁사를 쉽고 재미있게 쓰기로 유명한 임용한 작가가 영상에서 했던 내용을 보강해서 책으로 펴냈는데 술술 잘 읽힌다. 각 전쟁을 아주 세밀하게 설명한 책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중동 전쟁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내용이다. 이 책 정도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어떤 연원을 거쳐서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지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관련된 내용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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