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의 나라 조선 - 그 많던 조선의 모자는 왜 그렇게 빨리 사라졌을까?
이승우 지음 / 주류성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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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안경은 주로 시력 보정을 위한 목적으로 꼈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하나의 패션으로 많이 착용을 한다. 옷 이외에 다른 착용물들이 나를 좀 더 돋보이게 하는 요소가 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모자도 단순하게 방한용이나 작업용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패션의 한 형태로 쓰는데 실제로 모자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인상이 달라 보이기도 한다.


사실 평소에 모자를 많이 쓰지 않아서 모자가 얼마나 종류가 많은지 잘 몰랐었다. 단지 세계적인 모자 제작 회사가 우리나라에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을 보니 그것이 우연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조선이 바로 세계적인 모자 천국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이 모자 천국이라고?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차분히 생각해보면 우리 나라에 모자가 종류가 참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역사극을 많이 보는데 거기 나오는 인물들이 신분에 따라서, 직업에 따라서, 성별에 따라서 각기 다른 모자를 썼던 것이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렇게 많던 모자가 오늘에 계승되고 있는가? 답은 아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찬란했던 그 모자들의 역사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안타깝게도 모자의 역사는 세세하게 기록된 것이 없고 관련된 연구도 거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나온 이 책은 모자를 통해 우리의 모습을 반추 하게 하면서 잃어버린 전통을 다시 보게 하는 것 같다.


제목은 조선의 모자인데 여러 기록의 한계로 인해서 조선, 그 중에서도 중-후반기의 모자만 이야기할 수 있는데 모자를 쓰는 것이 갑자기 조선에 들어와서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전의 왕조에서도 비슷하게 모자를 많이 썼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삼국 시대 중국 당나라에 조공하러 갔던 고구려, 백제, 신라 사신들의 그림을 보면 다른 나라와 다르게 특이한 모자를 썼음이 드러난다. 많은 사례는 아니지만 조선의 풍습에 견주어 봤을 때 삼국 시대에도 모자를 애용했다는 것을 예상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에서는 왜 그렇게 모자를 많이 썼을까. 지은이는 대체로 네 가지의 원인을 살피고 있다. 그것은 조선의 전통적인 상투 문화 , 머리를 중요시하는 존두 사상 , 문화가 장기간 이어진 왕조, 유교 계급 사회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각각의 원인들은 다른 원인과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다.


먼저 상투는 당대 남자들의 머리를 대표하는데 단지 조선에서만 한 것이 아니라 한민족을 나타내는 표시라고 할 만큼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고구려 고분 벽화에 상투와 관련된 그림이 나오고 신라 시대는 가마인물형 토기에서 확인이 된다. 이것을 보면 상투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관습인데 이것은 왕조가 장기간 이어져야 전승이 되는 것이다. 


조선 시대가 되면 상투는 성리학의 영향을 받아서 더 중시 되었다. 그러기에 이 상투를 보호하기 위해서 모자를 쓸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머리 자체를 중시하는 존두 사상과 의관

정제 의식과도 연결이 된다. 머리를 귀하게 여기는 것은 효와 직결된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리고 정갈하게 모자를 쓰는 것은 어른이 된다는 의미에서 의관 정제와도 통하는 것이 있다.


신분제는 모자의 종류가 다양해지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화려하고 값 나가는 재료로 만든 모자는 아무나 쓰지 못하고 귀한 신분에서만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모자만 봐도 양반인지 상인인지 천민인지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신분과 계급에 따라서 모자가 달랐다. 따라서 낮은 신분의 사람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좋은 모자를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옷이던 모자던 좋은 것을 입고 쓰고 하려는 욕망은 오늘날이나 옛날이나 다르지 않다. 엄격하게 규제를 했다고 해도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규정의 틈을 찾아내었고 다른 사람과 다르게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내고자 모양과 장식을 조금씩 달리해서 착용했던 것이다. 그것은 신분의 상하가 따로 없었다. 이것이 조선이 수많은 종류의 모자가 진화하게 된 원인이다.


책은 조선의 모자가 발달하게 된 배경 설명을 한 다음에 모자의 종류를 여러 사진과 함께 설명하고 있는데 정말 생각도 못한 수 많은 모자가 소개된다. 왕이 쓰는 모자도 시기에 따라서 다양하게 있고 양반 선비가 쓰는 모자도 여러 종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조선인들은 평상시에 집안에 있을 때도 모자를 쓰고 있었고 평상 모자라고 해도 여러 모양의 모자가 있었다. 진짜 요즘 말로 패션 아이템이 풍부했던 것이다.


상투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모자를 썼다고 하지만 추운 겨울에 대비해서 방한용 모자도 많이 썼다. 이른바 난모라고 불렀는데 이 난모가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 부작용을 낳았다. 난모의 재료가 되는 것은 중국에서 생산되었기에 이 난모를 수입하면서 국부 유출이 심각했다는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명품 가방을 수입한다고 무역 적자 폭이 커졌다는 것과 비슷하겠다. 무역이 제한되어 있던 조선 시대는 이런 일종의 사치품으로 인해서 나라 경제에 큰 문제가 될 정도였다니 조선 시대 사람들의 모자 사랑은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닌 것 같다.


이렇게 다양하게 발달했던 조선의 모자는 다 어디로 갔나? 기본적으로 일제 시대를 거치면서 사라진 많은 관습이나 유물 중에 하나겠지만 그 이전에 모자에 대한 개념이 바뀌었다. 조선 말 고종의 단발령 시행 이후로 상투를 벗어나면서 상투를 보호하기 위한 모자의 효용성이 떨어진 탓이다.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게 되었는데 상대적으로 외국 문물은 모자를 많이 쓰지 않는 문화였다. 고종 황제조차 단발을 하면서 양복을 입으니 정식 왕관을 쓸 일이 적어지게 되고 이것이 점차 퍼지게 되니 모자도 종류가 급속도로 줄어들게 되었다. 


책은 이외에 최근 외국에서 주목 받는 갓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재료는 무엇이고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썼으며 이것이 어떻게 쇠퇴하게 된 것인지 잘 설명하고 있다. 갓을 포함한 조선의 모자가 점차 사라지게 된 것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적인 강압이 있었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이 있는 한국인의 기질에도 있다. 이른바 빨리 빨리 문화가 있는 우리에게 편리하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다 보니 모자의 영광도 사라지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책은 조선의 모자에 대한 전반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말 이렇게 다양한 모자가 있을 줄 몰랐다. 그리고 모자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은 더 놀랍다. 모자가 실물로 남아있기 어려운 물건이기도 하고 오랫동안 애용되다가 몇 년 안에 급속도로 사라지게 되어서 미처 살필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도 이해하지만 이런 연구 광복이 된 지 70년이 넘도록 많이 되지 않은 부분은 안타깝다. 하긴 조선이 망하고 일제가 들어서면서 잃어버린 우리 일상의 생활사가 어디 모자뿐일까만. 


이 책은 갓이나 왕이 쓰는 관모 등 몇 개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화려하고 다양한 조선의 모자 세계를 잘 소개해준다. 외국에서 우리 나라 옛 모자에 대해서 감탄 하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이 오랫동안 이어져 온 모자의 관습이 발전적으로 계승되었다면 더 멋진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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