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과 전쟁의 시대 - 20세기 제약 산업과 나치 독일의 은밀한 역사
노르만 올러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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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 대전은 개전 초기 영국이나 프랑스의 생각과 다르게 전개 되었다. 독일의 군사력이 강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초반에 그렇게 기세를 일으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연합군은 패전에 패전을 거듭했고 전 유럽이 나치의 군화 아래 들어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이런 빠르고 성공적인 전투 작전의 중심에 '전격전'이 있었고 그런 전략에 연합군은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전격전의 내용을 보면 빠른 진군이 특징인데 병사들이 잠도 안 자고 연속해서 행군을 하고 전투를 치뤘다고 한다. 정상적이라면 있기 힘든 일이었다. 처음에는 독일군이 사기가 높고 정신력이 대단해서 그런건가 했는데 알고 봤더니 마약의 힘이었다! 당시 독일은 독일의 주적으로 피로를 꼽고 어떻게 하면 피로를 줄일수 있을까를 연구하다가 마약을 사용한 것이었다. 본래 예상은 48시간을 자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무려 17일을 견뎠다고 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17일간 그렇게 자지도 쉬지도 않고 전투를 벌일 수 있겠는가.


이 책은 2차 세계 대전의 숨은 존재인 마약에 대한 이야기다. 전쟁과 히틀러에게 마약이 중요하게 쓰였고 이것이 전쟁의 향방에도 영향을 끼쳤다는 주장인데 여러 공개된 문서와 그 문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결론 내 볼 때 타당한 이야기다. 전쟁은 하면 할수록 병사들이 지쳐가는데 그런 피로를 없애고 기계처럼 전투를 수행한다는 것은 승패에 큰 영향을 끼치는게 아니겠는가. 마약은 단순히 잠만 안 자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분도 좋게 하고 흥분시키며 감정을 단순하게 만들어서 병사들을 그야말로 전쟁 기계로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책은 처음 메스암페타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마약의 위험성에 대해서는 지금 만큼의 지식이 없었던 그 당시에는 다양한 질환과 다양한 증상에 광범위하게 쓰였고 그 대상은 갓난아기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무분별하게 처방이 되었다. 그리고 이것이 전체적으로 금지 약물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그 동안에는 그야말로 '국민 마약'이었다. 이것이 나치가 들어서면서 강력하게 금지하기 시작했고 반 유대 정책이나 반소수자 정책과 맞물려서 더 철저히 금지하게 되었다.


독일에 유일한 마약은 히틀러뿐이었기에 히틀러를 충성하는 마음만이 허용되어야 했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고 그 효용성을 생각한 나치는 병사들에게 마약을 먹였다. '각성제'라는 이름으로. 그래서 전투를 잘 치르고 진군도 잘 하게 되었지만 더욱 더 마약에 의존하고 마약에 물들게 되어 각종 부작용과 후유증도 만만치 않게 일어나게 되었다. 히틀러라는 마약 이외에 철저히 금지하던 나치가 정작 전쟁이 일어나자 병사들에게 먹였다는 사실은 그들이 얼마나 독일 국민을 기만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히틀러는 마약에서 자유로왔는가. 책은 모렐이라는 주치의를 이야기하면서 그가 히틀러를 위해 어떤 약을 처방했는가를 보여준다. 처음에 만성 위염 증세로 모렐의 치료를 받았던 히틀러는 효과가 크자 나중에는 아예 그를 주치의로 임명한다. 그로부터 히틀러가 죽을 때까지 모렐은 가장 가까이에서 모든 정책에 그를 위해서 주사를 놓는 최측근이 되었다.

최고 지도자의 건강이 중요하던 당시에 모렐은 입 무겁고 실력 있는 듯한 의사였다. 초기 그의 처방은 효과가 있었다. 만성적으로 아프던 배는 씻은 듯이 나았고 기분도 좋아지게 했다. 그 처방은 호르몬 제재와 스테로이드, 비타민을 섞은 일종의 칵테일 요법이었다.


히틀러는 결코 건강한 체질이 아니었고 위염으로 인해서 건강을 위한 음식을 충분히 섭취하지 못하는데다가 강박증이나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서 수시로 아팠다. 이것을 모렐은 여러 주사 요법으로 다스리긴 했지만 가면 갈수록 쉽징 않은 상황이 되었고 나중에는 어떤 칵테일 요법도 듣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바로 마약이었다. 히틀러의 통증을 진정시키고 원기를 돋아줄 약물! 그것은 '오이코달' 이라는 마취제였다. 이 약의 강력한 작용물질은 천연 성분의 아편으로 합성한 '옥시코돈'이라는 이름의 아편 유사체였는데 의사들 사이에서 유명한 약물이었다. 이 약물은 진통 효과도 더 쎄고 신속하면서 강력한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작용을 했으니 모델이 최후로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무기력하던 히틀러가 크게 고무되어서 각종 회의에서 활발한 모습을 보이면서 강인한 지도자로 각인시켰다. 이 모든 것이 마약의 힘이었다. 그러나 마약은 한번 맛보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법. 히틀러는 끊임없이 요구하고 또 요구했다. 마약 없이는 제국이 돌아가지 않았고 전쟁은 질 수 밖에 없었다.


책은 마약의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의 유행과 나치의 억제책, 전쟁을 위해 독일군에 사용되었던 것과 그런 마약에 결국 중독되어 마약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게 된 히틀러의 이야기까지 우리가 잘 몰랐던 사실에 대해서 여러 자료를 분석해서 이야기 해준다. 


물론 마약이 히틀러의 죄상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히틀러는 마약이 없었어도 악행을 저질렀을 것이고 전쟁도 상관없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마약이 전쟁을 촉진하고 수 많은 사람에게 더 나쁜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새삼 마약이 얼마나 위험한지 느끼게 되었다.

아무튼 2차 세계 대전의 배후에 마약이 있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여러 각도에서 알게 되어서 좋았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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