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머지는 지금 얘기하는 것은 고사하고, 생각하거나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하버드 시절의 기억은 마음 한구석에 꼭꼭 잘 숨긴 상태였다. 잊었다기보다는 언젠가 그 기억을 되살릴 만한 힘과 여유가 있을 때 다시 꺼내 보려고 꽁꽁 얼려놓았다고 하는 게 맞겠다.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지금 내가 꺼내고 싶은 것은 그 이후의 사랑, 그 오랜 세월내가 품어온 사랑, 너무나 그립지만 돌아가 다시 살고 싶다. 는 생각은 단 일 분도 들지 않는 그 시절로 기어코 나를 잡아끄는 마법과도 같은 그 이후의 사랑이었다. 아마도 그 사랑이나로 하여금 아들과 함께 캠퍼스 투어의 대장정을 시작하게만든 것 같다. 나는 내 방패이자 보호막이자 대리인인 아들을데리고 케임브리지에 다시 와보고 싶었다. - P18
이 작은 지하 카페에 있던 모든 것이 내가 떠나왔고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중동의 어느 곳을 연상시켰고, 나는 내가떠나온 곳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적어도 아직은 아니었다. 하버드나 미국, 혹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 심지어 언젠가 낳을 아이를 위해서도, 내가 떠나온 곳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나는 케임브리지에있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았고, 그들 중 한 명이 아니었으며, 시스템에 들어 있지 않았고, 들어 있었던 적도 없었다. 이곳은 내 집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내 집이 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이 사람들은 내 동포가 아니었고, 앞으로도 내 동포가되진 않을 것이었다. 여기는 내 삶의 터전이 아니었고, 내 고향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나 자신이 아니었고, 내가 될 수없었다. 1977년 여름의 케임브리지가 그랬다. - P23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티파자 포스터를 보면 언제부터 잊고 있었는지도 모를 바다와 해변의의식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카페 알제의 모든 것이 나를 알렉산드리아로, 칼라지를 튀니스로, 알제리인 모우모우를 오란으로 데려갔다. 우리가 매일 카페 알제에 들르는 건 아마도우리가 북아프리카에 두고 온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우리는 삶이 길을 잘못 든 바로 그 순간으로 돌아가려고 애를 썼고, 그것은 마치 골절과 뼈에 간 금, 탈구가 치유되고 뼈가 완전히 붙을 때까지 부목을 대고 기다리는 것과 같았다. 우리는 오전의 태양을 피해 카페 알제로 들어와 강한 커피 향과 세제 냄새를 맡으면서, 자기 어머니에게로 돌아가는길을 찾았다. - P63
목소리를 높인 적이 없었지만 그는 하버드 광장에서 목소리가 가장 컸다. 나는 속 좁고 조심스럽고 소심한 반면 그는 무모하고 잔인하며 작은 불씨에도 곧 터질 화약고 같았다. 그는 자기 마음을 솔직히 말했지만 내 마음은 수장고에 있었다. 그는 항상 정면에 대고 말했지만 나는 상대방이 돌아설 때까지 기다렸다가 구시렁거렸다. 그는 그 무엇도 지지하지 않았고 일절 타협하지 않았으며 모두를 가차 없이 비판했다. 나는모두를 포용했지만 단 한 사람도 사랑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을 솔직하게 표현했지만 내 사랑은 마음속 깊은 곳에 묻혀 있었다. 그는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벌써 케임브리지에 사는 거의 모든 주민과 말을 튼 반면, 나는 하버드 대학원에서 사 년째 공부했지만 그해 여름에는 거의 모든 날을 아무하고도 말하지 않은 채 보냈다. 그는 기분이 상하거나 지루할 땐 발끈해서 안절부절못하다가 폭발했지만 나는 그야말로평정심의 화신이었다. 그는 모든 일에 대해 확고한 자기 의견을 갖고 있었지만 나는 타협이란 이름과 평정심이란 별명을갖고 있었다. 그가 무슨 일을 시작하면 아무도 그를 막을 수없었지만 나는 누가 조금만 얼굴을 붉혀도 아무것도 못 했다. - P72
우리 둘 다 돈이 없었지만 내가 그보다 훨씬 더 가난했이 있다. 그 기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가난했던과기를 숨기지 않았다. 나는 자의식보다 부끄러움을 더 많이. 대 깊이 느꼈다. 수치심은 언제나 내 목숨과 내 영혼을 쉽게배앗고, 내 마음 깊숙이 파고들어 나를 헌 양말 뒤집듯 뒤집어서 내가 결국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 보여줄 수 있었다. 스스로에게 더 보여줄 것이 없고 나 자신을 더 참아줄 수도 없으며, 다른 모든 사람을 경멸함으로써 못난 내 모습을 만회하려 하는 지경까지 나를 끌고갈 수 있었다. 그는 나를 안다는걸 자랑스러워 했지만 나는 그 작은 카페를 나오면 그와 함께있는 모습이 남들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택시운전사였고 나는 아이비리그 학생이었다. 그는 아랍인이었고 나는유대인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우린 즉시 역할을 바꿔서 살아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의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등 떠밀려 시작한 방랑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행성에 속해 있었지만 나는 이행성에 속해 있다는 확신이 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세상을 사랑했고 사람들을 이해했다. - P73
나는 그를 부러워했다. 그에게서 배우고 싶었다. 그는 진정한 남자였다. 나는………. 나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그는 목소리였고, 내 과거와의 잃어버린 연결고리였으며, 내가 다른길을 택했다면 나의 롤모델이 되었을 사람이었다. 그는 야성적이었지만 나는 길들여지고 억눌려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나를 강력한 용액에 담가서 내가 학교에서 배운 모든 습관과미국에 양보한 모든 것을 내 피부에서 벗겨낸다면 내가 아니라 그가 발견될 것이다. 내가 처음 카페 알제에서 용기를 내그의 테이블로 걸어가 침묵을 깼을 때 그가 내게 불쑥 다가온것처럼, 별안간 푸른 지중해가 펼쳐질 것이다. 다른 나라, 다른 도시, 다른 시대에 있었다면 나는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을 것이고, 그가 내게 말을 걸었을 것이다. - P74
케임브리지에서 <스타워즈>를보지 않았고 보기를 거부했으며 그해 여름 갑자기 불어닥친스타워즈 열풍을 경멸하고 개탄한 사람은 나와 칼라지밖에없었다. 오비완 케노비와 다스 베이더와 루크 스카이워커가세익스피어의 희곡에 나오는 유명한 등장인물이라도 되는 듯이, 그리고 R2-D2와 C-3PO가 그들을 따라다니는 어릿광대나 아부하는 신하라도 되는 듯이 모두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칼라지에게는 그 모든 것이 특대형 대용품의 상징일 뿐이었다. 처음에 내가 칼라지에게 끌린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심술궂은 육감이나 생존본능,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기 전까지 상대방의 숨통을 죄는 고약한 성질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많은 사람을 떨어져나가게 한 짐짓 거친 척하는 그의 태도도 아니었다. 내게는 그 태도가 너무나 익숙하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건 한 아이가 다른 아이의 엄마를 욕하면 그 다른 아이도 질세라 상대방 아이의 엄마 욕을 하고, - P75
그는 나의 대리인이었을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잃어버린 원시적인 모습의 나. 나의 그림자, 나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다락방에 숨어 사는 미친 형제, 나의 하이드 씨, 나의 아주 아주 거친 초고, 가면을 벗고 속박의 쇠사슬에서도 벗어난, 완성되지 않은 나, 속박받지 않는 나, 누더기를걸친 나, 격분한 나, 책을 들고 있지 않은, 세련된 매너가 없는, 영주권이 없는 나, 칼라슈니코프를 들고 있는 나. 내가 그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 이유는 그가 날마다. 카페 알제에서 떠들어대는 이야기를 믿거나 존중해서가 아니었고, 옛날 잡동사니를 뒤지는 듯한 그의 음색과 어조에서 내가 됐어야 했던, 그러나 운명을 거스르고 되지 않은 어떤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가 날마다 늘어놓는 미국 비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그가 통렬히 비판하는 대상이 실은 미국이 아니었고, 그의 목소리가 막강한 서구 세계를 막아내려고 애쓰는 중동의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들은 것은 나이 든 인간의 거칠고 쌕쌕거리며 겁먹은 목소리, 인류애처럼 보이고 그것을 표방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아닌, 새로운 흐름을 거부하고 비판하는 모었다. - P76
그게 바로 그가 브뤼똥", 즉 천도복숭아를 싫어한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천도복숭아처럼 달콤해지고있었다. 친절함과 진심은 없이 달달한 말만 하고, 조작되고, 꿰매지고,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지만, 단 한 번도 진짜로 태어나지 못한 천도복숭아. 머리는 자두 모양, 엉덩이는 복숭아 모양, 고환은 초콜릿 과자 모양. 과일 왕국에 사는 실제 친적은 단 하나도 없는 천도복숭아, 그들의 모든 것이 접붙여진거였다. "우리처럼 말이죠?" 어느 날 카페 알제에서 칼라지가 카터 대통령에 대해 웃는 꼴은 물론이고 얼굴 자체가 천도복숭아처럼 달달하고 가식적이라며 비난하는 말을 듣고서 내가그에게 물었다. 나도 카터 대통령의 얼굴이 천도복숭아 같다는 점에 동의했다. 하지만 우리라고 뭐 다른가? 우리도 그와다르지 않았다. 세 개의 대륙에서 살아본 우리야말로 진정으로 접붙여진 천도복숭아가 아닌가? - P77
어땠든 처음부터 우리의 우정을 공고히 해준 것은 프랑스와 프랑스어에 대한 사랑, 아니 프랑스라는 이데아에 대한사랑이었다. 사실 우리에게 진짜 프랑스는 더 이상 쓸모가 없었고, 마찬가지로 우리도 프랑스에게 쓸모가 없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죄책감이 깃든 비밀로 간직했다. 이 사랑을 버릴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믿지도 않았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성스럽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우리가 북아프리카 식민지령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물려받은 이제는 초라해지고 빛이 바랜 가보처럼 우리의삶을 맴돌고 있었다. 우리가 사랑한 것은 프랑스도, 프랑스의설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프랑스는 우리가 삶에서 필사적으로 붙잡으려 했던 단단한 무언가에 붙인 별명이었다. 우리가 꼭 붙들어야 했던 가장 단단한 것이 과거였고, 그 과거가프랑스어로 쓰였을 뿐이었다. - P79
내가 그를 도운 것은 실제로 그의 이민국 인터뷰 준비를 몇 시간 도와준 적이 있었다 - 단순히 별 생각 없이 한 일이거나 요청을 거절할 좋은 핑계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잠깐 머리를 식히기 위해서, 다시 읽는 일이 절대로없을 그 모든 책을 읽는 것 말고도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는나 자신을 보고 싶어서였을 수도 있다. 그는 굉장히 고마워했고, 살면서 도움을 거의 받지 못해 조금이라도 도와주는 사람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한지 안다고 말했다. 나는 그런 말 말라고, 별일 아니라고 답했다. 그는 내 말이 틀렸다면서, 자신이 얼마나 좋은 친구인지 모르는 것이 좋은 친구의 특징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그 점을 두고 논쟁을 벌일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내 몸짓은 너무 쉽게, 어떤 위험이나 의무, 양심의가책, 망설임, 극복해야 할 어려움 없이 나왔다. - P83
그가 그랬고, 내가 그랬다. 사방에 실수들이 있었고 각각의 실수는 작고 은밀한 방식으로 곪아 터지고 있었다. 실수와 헛소리, 헛소리는 우리만의 저항이었다. 상처가 덧나지 않게 하려고 알코올을 들이붓듯이 그는 ‘헛소리‘와 ‘개소리‘를 외쳐댔다. 처음 한 대를 맞을 때 ‘헛소리‘를 외쳤고, 마지막에도 ‘헛소리‘를 외쳤다. 더 많은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남들 앞에서 기죽지 않기 위해 헛소리‘를 외쳤다. 또한 우리자신을 향해서도 ‘헛소리‘를 외쳤다. 욕지거리는 우리의 자존감을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였고, 존엄성이라는 흔들리는 매립지에 세워진 마지막 정거장이었다. 그다음에는 울었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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