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드레 애치먼 Andre Achimain
1951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프랑스어를 쓰는 유대인 부모 밑에서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아랍어 등 다양한 언어를 접하며 성장했다. 1965년, 반유대주의를 비롯한 정치적 문제로 이집트를 떠났고 로마를 거쳐 뉴욕에 정착했다.
1995년 이집트에서의 어린 시절과 고국에서 추방된 후의 성찰을 담은 회고록 (아웃 오브 이집트)를 발표, 화이팅어워드논픽션 부문을 수상하며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비교적 늦은나이에 작가가 된 것에 대해 애치먼은 긴 잠복기를 가졌을뿐이라며, 자신에게 글쓰기는 직업이 아니라 사명이라 밝히기도 했다. 2007년 발표한 첫 소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람다 문학상을 수상한 것은 물론 영화로도 만들어져 널리사랑받았다. 여덟 밤Eight White Nights 파인드 미 등의장편소설과 연작소설집 수수께끼 변주곡, 논픽션 (폴스 페이퍼 False Papers) 알리바이) 등을 출간하며 전방위적인 작품 활동을 이어가는 한편, 뉴욕시립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마르셀 프루스트 과목을 맡아 강의하고 있다.
(하버드 스퀘어는 방황하는 하버드 대학원생과 거친 택시운전사의 이야기로, 애치먼의 자전적 소설이라 평가받기도한다. 실제로 하버드에서 약 7년간 학업에 정진하던 애치먼은 전문적인 연구가 오히려 문학에 대한 개인적인 사랑을 짓누른다고 느끼고 학교를 떠나 증권사에 입사했다가 되돌아와 비교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작가 스스로 ˝하버드에서의 나날은 증오와 사랑의 시간˝이라고 밝혔듯, 자기애와 자기혐오가 뒤섞인 청춘의 기록이 아련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활화산처럼 분노를 표출하고 인류 전체에 대해 과장된비난이나 쏟아냈을 뿐 그는 조금도 성장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자신이 성장했다고 생각하거나 성장한 척했다. 우리가 그에게 가할 수 있는 최악의 폭력은 그에게서 열일곱 살 소년을발견하는 것이었다. 그의 삶이 멈춰버린 시기가 바로 그때였다. 그 이후로는 실수와 헛소리로 점철된 삶을 살아왔을 뿐이었다. - P87
하지만 차이점도 분명히 있었다. 그는 실험에서 대조고.. 이었고 나는 실험군이었다. 그에겐 가짜 약이, 내게는 진가약이 주어졌다. 나는 신약의 효과를 경험한 반면 그는 왜약이 효과가 없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둘 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지만, 내겐 버티고 설 땅이 있었고 그는 언제나 방랑자였다. 내게는 영주권이, 그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있었다. 그는 날마다 벼랑 끝에 서 있었지만 나는 벼랑 밑을 내려다봐야 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게는 그 심연을 가릴 담장이나 생울타리가 항상 있었던 반면 그에게는 그런 것이 주어지지 않았다. 한편 또 다른 차이도 있었다. 그는 그 벼랑에서 물러서서 살아나올 방법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벼랑과 나 사이에 그를 세워놓았다. 그는 내 가림막, 내 스승, 내 목소리였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추구했던 삶이 그의 삶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P96
문득 내가 칼라지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라지는 아랍인 사이에서는 베르베르인이었고, 프랑스인 사이에서는 아랍인이었으며, 스스로를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여겼다. 마찬가지로 나는 아랍인 사이에서는 유대인이었고, 낯선 이들 사이에서는 이집트인이었으며, 지금은 와스프사이에서 철저한 외계인, 라크로스팀이나 폴로팀에 지원하는 멍청한 잡역부였다. 나는 대서양 이편에 있는 모든 것을 증오했다. 그러고 보니 대서양 저편에 있는 것도 증오했다. 나는 미국과 유럽과 북아프리카를 증오했고, 지금 이 순간은 프랑스를 증오했다. - P133
그때야 비로소 나는 부모님이 이집트에서 사시던 마지막해에 얼마나 힘들었을지 이해하게 되었다. 추방되지 않기를간절히 바라면서, 추방되기를 기다리며 사는 것, 재산이 몰수되기를 기다리고, 끔찍한 소식을 가진 누군가가 초인종을 누르기를 기다리고, 조작된 혐의로 체포되기를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기 - P163
볼륨을 아주 작게 해서 듣기를 좋아했다. 그 테너 색소폰의 연주를 듣고 있으면 모든 나한 감정들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 그 서정적인 선율에 맞춰여자와 합을 맞대고 춤추던 무더운 여름밤이 떠오른다고, 그음악은 자신에게도 사랑이 찾아올 거라는 걸 민지 않기로 결심한 후에도 사랑을 원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그는 메모리얼거리와 스토로우 거리를 달리면서 그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 했고, 비컨 힐과 백 베이와 에스플러네이드 공원을 따라 늘어선 반짝이는 작은 불빛들을 보며 거리를 달리는 것을 좋아했다. "밤에 운전을 하면 미국인이 된 기분이야. 마치 누아르영화에서 페도라를 비스듬히 눌러 쓰고 차를 몰면서 담배를피우는 악당이 된 것 같아." 한번은 승객이 음악을 바꿔달라고 요구했지만, 칼라지는 그의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승객이다시 요구하자 칼라지는 록스베리 한복판에서 급브레이크를밟았고, 그 백인 신사에게 내리라고 말했다. - P167
유대인에 대해서는 험한 말을 한 번도 한 적 없는 칼라지였지만, 아랍 음악을 듣는 아랍인 택시운전사에겐 팁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유대인 승객에게는 그의 할머니와 당시에 아기였을 그의 아버지가 가스실로 직행하지 않아서 유감이라고, 만일 그랬다면 자신이 기꺼이 오븐에 불을 켰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어디를 공략하면 상처를 줄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나의 어디를 공략하면 내가 상처를 받을지도 정확히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곳을 절대로 건드리지 않았다. - P168
그는 세상을 모욕하기 위해, 사물을 보고 부르는 다른 방법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모든 것이 불로써세례를 받아 모든 위선과 신앙심을 깨끗이 씻어내야 자신의세계에 들어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주변의 모든 것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그것은 그가 자신의 모습으로, 혹은 그가 바라는 세상의 모습으로 세상을 재창조하는 그만의방식이었다. 이 춥고 척박하고 대용품이 넘쳐나며 천박한 도시를 몇 단계 끌어내려, 친절하고 친밀하고 잘 도우며 더 밝은 곳으로 바꾸는 그만의 방식이기도 했다. 이렇게 바뀐 도시는 그에게 비밀 통로를 열고 웃으면서 그를 따를 것이다. - P172
은 여기니까. "라고 말해주기를그는 카페 알제에서 만난 모든 사람을 자신의 비좁고 일 시적인 세계에 꽉꽉 밀어 넣었지만, 단 한 사람에게는 공기가잘 통하는 제일 좋은 방을 주었다.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는 피를 나눈 형제이자 공범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는 끝내 알지 못했다. 그가 다양한 삶의 방법을 내게보여주기 위해 다른 세상의 문을 더 열어젖히고 케임브리지에서 나를 끌어내려 하면 할수록, 나는 하버드가 내미는 작은특전과 잠정적인 약속을 더 절박하게 붙들고 늘어졌다는 사실을, - P173
멀어져가는 그의 택시를 바라보면서, 우리를 친하게 만든 요인은 상상 속 프랑스와의 로맨스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건 그냥 가림막, 착각이었다.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어디서도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없는 우리의 극단적인 무능력이었다. 우리는 평범하게 사랑하고 평범한 집에서 살며 평범한 일을 하고 평범한 텔레비전을 보고 평범한 식사를 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심지어우린 평범한 친구를 갖거나 유지할 수도 없었다. - P199
케임브리지로 돌아오는 길에 칼라지는 모파상은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스탕달도 좋았고, 발자크는 천재라고 했다. "근데 그 사드라는 친구는 역겨워. 그의 책은 돌려줄 테니까 - P226
가 그런 책을 빌려줬다는 건 잊어버리자고." 나는 삶의 경험이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그토록 쉽게 충격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진짜로 불쾌해하고 있었다. 개망나니같이 사는 줄 알았는데 순진한 구석이 있었다. - P227
나는 먼저 식당을 나와 연구실로 돌아가서 몇 시간이고그곳에 처박혀 있었다. 미국인은 정말로 그토록 신비한 통찰력으로 타인을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그전까진 그런 의문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미국인이 인간의 본성을 더군다나 한 개인의 성격을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않았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내가 왜 지금 이런 의문을 품고 있겠는가? 어쨌든 아까 그 여학생의 통찰력과, 그통찰력을 말로 풀어내는 솔직함과 침착함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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