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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
다니엘 글라타우어 지음, 김라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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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는 내내 떠올랐던 그림, 르네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실제 파이프와 똑같이 생긴 그림이라고 해도 그것은 실제 파이프가 될 수 없다. 그 그림은 평면이기 때문에 담배를 피울 수 없지 않은가? 그것은 단지 종이 위에 그려진 그림, 단순히 파이프를 닮은 이미지일 뿐이다. 결국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명제에는 오류가 없다.

 우연에 의해 메일 파트너가 된 에미와 레오. 그들은 현실이 아닌 가상의 공간에서 서로를 알아가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서로의 마음까지 꿰뚫어 보는 시각, 섬세하고 자극적인 언어, 한 치의 양보도 없는 밀고 당김, 그 사이에서 싹튼 ‘사랑’의 감정은 미지의 세계를 향하는 끝없는 갈망처럼 종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만 간다. 그 욕망은 에미와 레오의 현실을 위협할 만큼 강렬해진다.

 사실 모든 ‘사랑’은 환상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플라톤의 말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데아의 세계가 아닌 이상, 모든 것은 이데아의 속성을 닮고 있을 뿐 완벽한 이데아는 아닐 수도 있는 것처럼, 현실에서의 사랑 역시 사랑의 이데아의 속성을 지닌 이미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현실’이라는 전제에서 생각해보면, 에미와 레오의 ‘현실’은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 된다. 그것은 거짓된 것이며 허구의 세계이다.

 분명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데도 그것이 거짓이라니, 분명 존재하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 아니 존재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그것이 거짓이라니, 서로를 미치도록 원하는 두 남녀에게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다. 그들이 환상 속에서 만들어낸 서로의 이미지는 현실을 은폐하고 변질시킬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서로를 현실 속으로 끌어들이지 못 한 채, 영원히 ‘바깥 세상’에 둘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런데 그것이 서로의 사랑을 지킬 수 있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니었을까? 비록 그것이 그들이 존재할 수 있는 ‘바깥 세상’에서만 가능할지라도 말이다.

“우린 미몽에서 깨어나는 지난한 과정을 밞아야 해요. 우리가 쓰는 글이 우리의 실제 모습, 실제 삶일 수는 없어요.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며 그렸던 많은 이미지들을 우리의 실제 모습이 대신할 수 없어요.” 
                                                                                                                           - P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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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1-12 08: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와~ 읽으셨군요! 이 책, 정말 엄청나게 재미있죠? :)

가시장미(이미애) 2009-01-12 11:51   좋아요 0 | URL
네.. 재미있더군요. 단숨에 다 읽어버렸습니다. 크크 :)

프레이야 2009-01-12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미의 절묘한 대사가 기억나요.
레오! 결혼은 모순 형용사에요.
작년에 녹음도서 낭독하며 읽었는데 신선하고 충격적이더군요.
결미에서 완전 쿵 때려서 책장을 못 덮고 벙벙했어요... 추천^^

가시장미(이미애) 2009-01-12 11:51   좋아요 0 | URL
결말.. 예상하긴 했었는데.. 벙벙하긴 하더라구요. ^^
근데 전 그 결말이 더 마음에 듭니다. 가슴 아프지만...

무해한모리군 2009-01-12 20:25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결말이 마음에 들었어요. 다른 결말이었다면 구태의연했을 듯 해요.

가시장미(이미애) 2009-01-12 20:27   좋아요 0 | URL
다른 결말이였다면- 그들의 사랑이 변질되어 버릴까봐.. 두렵던데요. ^^

2009-01-13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1-14 16: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개밥바라기별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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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됐어 이제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그걸로 족해 족해 매일 아침 일곱시 삼십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놓고 전국 구백만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모두가 널 그리곤 덥석 우릴 먹어 삼킨 우릴 먹어 삼킨 이 시커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긴 너무 아까워"   
                                                                            
  - 서태지와 아이들 3집, <교실이데아> 中 -

 이 책을 덮고 나서 떠오른 노래 한 곡. 교실이데아. 그리고 그 노래를 핏대 세워 부르던 친구들과 나의 모습. 우리는 방황하고 싶었고, 스스로 생각하고 싶었고, 스스로 알아가고 싶었다. 사회나 학교가 하라는 대로 하는 꼭두각시 인형이 아닌, 우리의 의지로, 우리의 생각으로 마음껏 고민하고, 마음껏 탐구하고 싶었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것을 ‘비행’이라 하였다. 그것은 나쁜 것이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처벌받아 마땅한 것이라 말했다. 그렇게 말하던 이들은 과연 내 삶의 무엇을 책임져 주었던가? 

 등장인물 준과 그의 친구들도 그런 시간을 보낸다.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누구나 거쳐야 하는 시간동안, 그들은 스스로가 누구인지를 생각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것이 누군가에게는 ‘비행’이라고 여겨질지라도, 삶의 낙오자라고 손가락질을 당할지라도,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자신의 삶을 책임져 주지도 못하는 다른 이들의 시선보다는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스스로를 모니터링 하고 객관화하려고 노력하며 ‘자아’를 탐색한다.

 황석영의 자서전의 성격을 띠고 있는 이 책은 ‘준’이라는 등장인물을 통해 그의 지난 시간을 엿보게 한다. 누군가에게 쉽게 이해받거나 인정받지 못 했지만, 준의 자신의 재능을 알고 있었다. 아니- 즐기고 싶었다. 하고 싶지 않은 것, 잘 하지 못 하는 것, 그것들에 투자하는 시간이 아까웠고,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꼭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주어진 시간을 즐기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것만큼 어려운 것이 없었다. 학생의 신분으로 남들과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은 ‘일탈’이 되고, ‘문제아’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나이가 조금 어릴 뿐인데, 단지 남들보다 일찍 자신을 알았을 뿐인데도 말이다.

 저자가 살고 있었던 시대는 지났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되었지만 여전히 청소년들은 똑같은 문제와 난관에 직면해야 한다. 예순이 넘은 거장이 들려주는 성장의 진통, 그것은 많은 청소년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 해주고, 자신의 문제와 자신이 처한 상황이 자신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큰 위안을 준다. 그리고 좌절하지 말라고, 슬퍼하지 말라고, 누구든 당신의 삶을 온전히 책임져 주지 못 하고, 미래의 당신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는 격려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그 목소리는 ‘저항’하라는 질책의 회초리가 아니라 그 섭리를 ‘수용’하고, ‘포기’하지 말라고 내밀어준 따뜻한 손이 되었으리라.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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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레시피
다이라 아스코 지음, 박미옥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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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는 일본 문학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많은 문학작품을 접해본 것은 아니지만, 문화의 이질감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벼운 재미 이상의 감동이나 즐거움을 느끼는 게 어려웠다. 그런 경우 대부분 등장인물을 이해하거나 감정이입을 하는 것이 어려웠는데- 이번에는 다르다. 다이라아스코의 소설은 <멋진 하루>를 먼저 읽었는데, 작가후기를 보고 또 다른 작품 <오늘의 레시피>를 안 읽을 수가 없었다.

‘책을 사주신 독자님, 고맙습니다. 다이라 아즈코, 이 바닥에서 마구 설칠 예정이오니, 오래오래 사랑해주세요. 서점에서 후기를 읽고 있는 당신, 듣기 싫은 말 하지 않을 테니 우선 사서 읽어주세요. 그냥 돌아가면 말이죠. 당신 나쁜 사람이에요. 잘 부탁해요.’

이 겸손하고 솔직하고 유머 있는 후기를 보라. 독자의 심리를 단번에 파악하고 소비를 하도록 속삭이는- 이 작가. 참 매력적이지 않은가. 이런 작가에게 현혹되거나 유혹되어 충동구매를 하는 것일지라도 다른 작품을 더 접해보고 싶었다. 때마침 신혼이라 밤낮으로 요리연습을 하던 나에게 <오늘의 레시피>라는 제목도 참 친근했다. 음식과 식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실감하고 있었던 터라 음식을 통해 들여다보는 사랑과 사람이야기-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리라 여겼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참 즐거웠다.

식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다. 그래서 본능의 모습을 하고 있고, 의식 안에서 다양하게 표현되는 것이 가능한 소재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식욕을 통해 억누르고 있거나 억압할 수밖에 없는 많은 것들을 표출한다. 그런데 그것은 본능의 속성은 지닌지라 쉽게 드러나지 않기 마련이다. 억압하는 것과 표출되고자 하는 것의 균형이 깨지면- 의식의 반작용에 의해 회피, 합리화, 부인, 투사 등 다양한 방어기제의 형태로 표출한다.

그래서 여섯 가지 요리에 얽힌 연애 스토리는 단순하고 식상한 이야기로 치부될 수 있지만 그 안에 등장한 주인공들의 행동을 분석하고 그들의 심리를 추리하다보면 결코 단순하고 식상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아주 복잡하고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리고 유머와 위트, 섬세한 관찰력으로 상황이나 심리를 잘 풀어내준 작가의 시선을 쫒다보면 소설이 아닌 내 안에 꿈틀대는 본능적인 측면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한다.

참 많은 사람을 만났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고, 참 많은 생각을 했었던 지난 시간들을 되돌려보면 그 안에는 소설속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다양한 주인공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모습은 각기 다르지만 인간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녀서인지 닮은 부분도 많았다. 그때는 몰랐던 것이나 그때는 마냥 혼란스럽기만 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이해가 되고 정리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은 나에게 그런 기회를 주었다. 내 자신과 지난 시간을 들여다보기! 그리고 그것을 유머와 웃음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분명 그럴 것이다. 죽기 전에 다시 한번 먹고 싶은 게 있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곧바로 대답할 수 있을 그런 맛. 그 맛을 찾는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축복받은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으리라.'
(p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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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이란 소설
주이란 지음 / 글의꿈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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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란의 단편집 <혀>는 수년 동안 작가가 고심해서 쓴 단편들을 하나로 묶어 낸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표절논란 때문인데, 내가 궁금한 것은 그것의 사실 여부보단 주이란의 작품 그 자체였다. 문단과 언론이 침묵하는데도 꿋꿋하게 자신의 주장을 내세울 수 있는 신인작가, 그 정도의 소신과 열의라면 종래의 작가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특별함이 있으리라 기대했다. 역시-그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녀의 소설은 화려한 토밍이 없어도 아주 맛있었다!

그 특별함이 뛰어남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녀의 소설이 담고 있는 특별하고 독특한 맛은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것이라 판단된다. 그것은 내용 자체에 쉽게 드러나지 않고 그 이면에 숨겨진 채로 오감을 더 강하게 자극한다.  또, 간결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문체는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새로운 형식의 스토리 전개는 책장을 넘기는 독자의 호흡을 빠르게 만든다.  한 편의 독립영화나 예술영화를 보고 난 후에 남는 여운과 강렬하면서도 짜릿한 충격을 동시에 전할 수 있는 것은 그녀만의 재능이리라.

그러나 맛이라는 것은 자극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에- 독자의 감각에 의한 자발적인 반응인지 그녀가 준 자극에 대한 반사적인 반응인지 분명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그녀가 애매모호한 자극으로 독자의 의식이 투사될 여지를 충분히 남겨놓았기에 가능한 것이다. 화려한 토핑이 지닌 아주 세밀하고 섬세한 자극과 촘촘한 문체로 독자에게 ‘이 맛은 그 맛이야.’ 라고 강요하는 소설은 자발적인 반응을 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화려한 토핑이 없는 대신 독자의 의식을 재료로 사용한다.

더군다나 그녀의 소설은 여러 가지 사회문제와 맞닿아 있다. 각각의 단편들은 모두 다른 내용과 다른 구성으로 전개되지만 그 이면의 공통점은 바로 사회문제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엽기적이고 몰상식한 일들이 판을 치는 사회 속에서 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그것에 순응하는 자들과 그것에 반항하는 자들의 모습을 통해 다양한 상황을 연출시켜 독자의 의식과 감정을 이입시키고, 그녀 자신조차도 반항하는 ‘촛불 소녀’로 출현한다.

결국 그것은 가상과 현실의 경계조차 애매모호하게 만드는 마력으로 이어진다. 사회문제를 분석하거나 어떤 원론적인 이유나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전문가의 영역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 아니 문제라도 느끼는 것은 개인의 영역이다. 수많은 사건들과 문제에 직면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그것에 의문을 품거나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여유나 이유를 잃은지 오래다. 그런 독자에게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한, 애매모호한 자극으로 가득한 그녀의 소설은 의식의 발상이나 전환을 선사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를 응원한다. 그녀의 상상력과 영혼이 현실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수 있도록, 그것이 또 다른 소설의 탄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그녀가 용기를 잃지 않을 수 있도록, 가슴으로 응원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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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8-10-29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게 그 책이로군요. 조경란... 이라는 작가였나요? 두 작품을 읽어 본건 아니지만, 왠지 자꾸 조경란씨가 표절을 했다는 생각이 굳어져 가네요. 이와 관련해서 쳐보니, 신경숙씨가 표절의혹이 많은 편에 속하더라구요. 또 하나 생각나는게, 권지예씨가 박경철씨의 글을 무단인용(?)했을때 보였던 반응을 보자면... 정식사과 같은건 안한 것 같더라구요. 여튼, 표절이 상당히 의심되는 (유명작가의)작품이 있다는게 괘나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도 참 쿨하지 못해서 눈길이 가더군요.

특히 정나미가 떨어졌던 건 권지예씨의 반응이였죠.ㅎㅎ

가시장미(이미애) 2008-10-30 03:36   좋아요 0 | URL
음 이 책을 보면 주이란씨의 주장이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조경란씨의 주장도 읽어 봤는데- 그녀는 전혀 인정하지 않더라구요. 사실 제가 조경란씨의 소설을 사서 정독하지는 않았거든요. 서점에서 대충 보고 말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주이란씨의 주장대로 주제, 소재, 결말, 사건의 구성이나 흐름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고 포장하느냐는 다를 수 있죠. 그리고 그 부분에서 조경란씨가 확실히 강점을 지닌건 사실인 것 같아요. 그녀는 화려한 토핑을 지니고 있으니깐요.

하지만 소설은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생명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을 창조하는 것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피나는 노력. 그리고 재능이 있어야 가능하지 않나해요. 그런 점에서 주이란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고 싶은거죠. 아마 조경란씨도 주이란씨가 자신과 같은 토핑을 창조할 능력이 없다는 건 인정했을지라도 자신이 갖지 못한 재능이 있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깐 도용할 생각을 했겠죠. 근데 원고조차 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건. 그것도 아주 특이한 내용과 소재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죠.

내달에 귀국해서 입장을 밝히겠다고 하니- 기다려보려구요. 그녀가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요. ^^

노이에자이트 2008-10-30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이 소설이 바로 조경란 씨와 싸움이 벌어진 그 문제의 작품이군요.

가시장미(이미애) 2008-10-31 16:50   좋아요 0 | URL
아 네.. 이 소설이에요. ^^ 아직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죠. 전 조경란씨가 빨리 귀국해서 어떤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어요. ㅋㅋ 싸움구경하려는 건 아니구요.. -_-;; 어떤 반응을 하던 주이란씨가 용기내서 싸워줬으면 좋겠거든요.
 
사이더 하우스 1
존 어빙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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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인트 클라우즈- 그곳은 생명을 시작되거나 끝나는 곳. 그곳에서 생명이 시작된 호머는 세 번의 입양이 실패로 끝나 결국 그곳에 ‘속한’ 소년이 된다. 자신의 부모를 알 수도 없고, 자신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지만 호머는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세인트 클라우즈의 삶에 충실하게 된다.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쾌쾌한 냄새가 진동하는 그곳에는 버림받은 생명들이 새로운 부모를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삶은 외부세계와 단절되어 있기에 자유롭지만은 않지만 그들만의 규칙이 있기에 위험하지도 않다. 닥터 라치는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의 규칙에 반기를 들어 그곳을 탄생시키고 그곳을 위해 자신을 헌신한다. 

 라치가 기독교적 규칙에 반기를 든 이유는 모든 생명이 환영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환영받지 못한 생명을 지우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위태롭게 만드는 산모들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권리를 생각하게 되지만 태아의 권리 또한 존중하였기에 고아원을 운영하는 동시에 출산과 낙태를 담당하는 의사로 활동한다. 그는 산모와 태아의 권리를 모두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기독교적 규칙에 반기를 들지만 그것은 산모의 권리를 태아의 권리보다 우위에 두었기 때문이다. 그의 그런 신념은 자신이 외면했던 암울한 삶을 살았던 창녀 산모의 죽음과 부유한 처자의 낙태를 비밀리에 거금을 주고 시행해 주었던 경험에 의해 다져진 것- 죄책감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는 몸부림이었다.

 고아들에게 삶의 터전을 제공해 주었으나 사랑의 눈길을 주지 않았던 그의 마음을 움직인 소년 호머. 호머는 특별한 재능과 인품을 소유한 것은 아니었지만 특유의 따뜻함과 성실함으로 닥터 라치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 하게 된다. 라치는 그를 자식처럼 여기게 되고 그에게 자신의 능력을 전수해주길 소망한다. 그것은 호머가 낙태에 대해 거부의 의사를 밝히기 전까지는 희망적 이였으나 태아의 권리를 산모의 권리보다 우위에 둔 호머는 라치가 만들어 놓은 규칙에 반기를 들게 된다. 그가 세상에 반기를 들었던 것처럼. 호머의 신념은 버림받은, 환영받지 못한 생명으로 시작된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과 존중이었다. 그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꼭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것을 모든 생명이 원초적으로 지니고 있을법한 성질이나 속성으로 여긴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세인트 클라우즈를 떠나게 된 그는 앞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한다. 그곳이 세인트 클라우즈거나 다른 곳이라고 해도 그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그 시간, 그 순간에도 자신을 애타게 그리워하고 자신과 함께 하기를 바라는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는 처음부터 '필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그곳이 어떤 곳이든, 그곳이 어떤 규칙의 지배를 받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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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0-22 16: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존 어빙 좋아하시는구나.저는 호텔 뉴햄프셔 있어요.외국에선 엄청난 인기를 모았던 작가라고 하네요.성장소설 전문이죠?

가시장미(이미애) 2008-10-24 03:35   좋아요 0 | URL
아 그렇군요. ^^ 사실 전 존어빙 책을 처음으로 읽었어요. 참 촘촘한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라는 인상이 강했구요. 이 책도 2권까지 읽어야 하는데, 솔직히 한 권의 책으로 어떤 판단을 하기에는 힘든 것 같네요. 글을 쓰기 위해 많은 경험과 연구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의학적인 혹은 전문지식을 요하는 내용도 많은데- 작가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기회가 되면 존어빙의 책을 더 읽어보려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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