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슨 계획을 가지고 또 무슨 목적을 추구하고 있었던 것일까? 도대체 처음부터 그러한 계획과 목적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던 것일까? -1쪽
물론 전쟁이란 반드시 계획과 목적이 갖추어져야만 시작되는 정치적 행동은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언제나 합리적인 정책 결정에 의해서 전쟁이 시작된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되기 불과 4년 전까지 미국은 베트남에서 계획도 목적도 없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인도차이나의 독립운동에 대해서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판단으로는 이성적이라고 생각되는 대응을 했지만 결국은 합리와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 약소국에 대한 무력개입을 시도한 냉전시대의 양 초강대국의 모습으로부터 기묘한 유사성을 발견해 낼 수가 있다. -3쪽
현실주의자들은 국가가 전쟁을 결정할 때에는 언제나 최상의 합리적인 판단을 전제로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상황논리의 왜곡된 형태가 될 수도 있다. 즉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합리라고 하는 것은 얼마든지 비합리로 변할 수 잇는 것이다. ..... 자신들이 취한 행동에 의해서 얼마나 비합리적인 결과가 초래될 수 있는지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은 없었던 것일까?-6쪽
주권국가의 세계에서 각 국가는 자국의 이익의 증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 뿐이며,단지 비난받을 만한 것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범한 실책에 한하는 것이지 범죄에 대한 것은 아니다. 어떤 전쟁은 계획적으로 그리고 어떤 전쟁은 오산에 의해서 발생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17쪽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이 어떠한 실수와 오산이 축적된 결과였던가 하는 문제의식보다는 소련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출병의 결단을 내렸는가, 혹은 어떠한 안보에의 우려에 의해서 촉발되었는가 등등의 문제의식하에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결과적으로는 그로미코와 포노마료프의 출병정당화와 서방의 여러 연구들의 결론은 그다지 크게 다르지 않다. -23쪽
최근의 일들이나 지난 날의 사건들을 살펴보면 누군든지 같은 욕구와 같은 욕정이 여기저기 존재하는 모든 정치체제와 모든 인민을 지배하고 있으며, 또 현재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그러므로 과거의 사건들을 규명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그 지식에 의해서 앞으로 어떤 나라에도 반드시 일어날 사건을 예지하고, 고인들이 사용했던 대첵을 여기에 펼처서 또는 지금까지 선례가 없다면 유사한 사건을 생각해 내서 새로운 대책을 강구해 내는 일 등은 아무런 수고가 들지 않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아무래도 이와 같은 관찰을 태만히 하고 있으며, 간혹 이것을 행하는 자가 있어도 중요한 정책을 펴는 자가 전혀 그것을 모르는 채 지나고 있는 형편이기 때문에 결국 똑 같은 소동이 어느 곳에서나 반복되는 것이다. -346쪽
소련군은 카르말정권의 요청을 받아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들어갔고, 아프간인들을 대신해서 아프가니스탄 정국의 안정을 위해서 피를 흘렸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아프간 출병은 이것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주문(呪文)에 의한 출병' 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소련은 타라키, 아민의 주문(呪文), 그리고 카불 정국의 급변에서 발생하는 주문에 의해서 출병을 강요당했던 것이다. 물론 소련지도부가 암묵적인 전제로 하고 있던 고정관념이 그것을 집요하게 공략한 카불정권의 정치적 테크닉보다는 선행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말하자면 그것은 '주문(呪文)'에 의한 출병'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강박관념이라는 주문(呪文)에 걸려 있던 모스크바를 카불로부터의 주문(呪文)이 움직였던 것이다. -3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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