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은 끊임없이 이해 받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살아간다. 때로는 가족들에게, 때로는 오랜 친구들에게, 때로는 이미 지나간 애인에게조차도, 그러나 정작 우리가 이해받고 인정받고 싶은 건 어쩌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아니었을까. - 굿바이 솔로 中 -
작가도 아닌 드라마 작가, 그녀가 그녀의 삶을 담은 에세이를 썼다. 아주 사적이고 아주 개인적인 그것이 어쩌면 자신의 치부를 들어내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가 대중에게 자신의 가장 아픈 부분을 들어낸 것은 자기 자신에게 인정받고 이해받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사실 그녀의 드라마를 많이 보지는 않았다. 그녀의 드라마는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고 시청률이 높지 않았기에 마니아는 많았지만 좋은 평을 받지 못했다. 이번에 종영된 <그들이 사는 세상>또한 그랬다. 그러나 난 그 드라마를 통해 지난 내 시간을 돌아보게 되었고,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가슴에 박혀 울기도 많이 울었고, 웃기도 많이 웃었다.
그렇다. 그녀의 드라마는 ‘치유력’이 있었다. 그것이 비록 많은 이들에게 전해지지 않았을지라도 그녀와 비슷한 아픔과 비슷한 상처를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는 그녀가 아픔과 상처를 승화시켜 만든 드라마를 통해 위안을 얻고 평온을 얻고 다시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과 다시 행복해질 수 있다는 다짐을 할 수 있도록 ‘치유’해 주지 않았을까?
그녀는 한 때 순정적인 여자로 자신을 다 바쳐 사랑을 했고, 그 첫사랑이 끝났을 때 다시는 순정적인 사랑을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고 했다. 그리고 문득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니 그녀에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아서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고 한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미치도록 보고 싶어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더니 다른 사람들도 딱 그만큼만 자신을 사랑해 주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한다. “어느 날 말로만 글로만 입으로만 사랑하고, 이해하고, 아름답다고 소리치는 나를 아프게 발견한다. 이제는 좀 행동해보지. 타일러보다.”라고. 그것이 이 책을 쓴 동기가 아니었을까?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이것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고 자신과 같이 상처받아 아픔이 두려워 사랑을 믿지 않고, 사랑을 두려워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는 말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그래서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보자고.
사랑은 누구에게나 두렵다. 사랑만큼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도 없다. 하지만 사랑은 사람을 아름답게 하고 충만하게 만들고 사람답게 만든다. 그런데도 똑같은 아픔과 똑같은 상처가 반복되는 것이 두려워 ‘사랑’을 믿지도 않고, ‘사랑’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 또한 지난 20대를 그렇게 소비했으리라.
그녀가 지긋지긋하게 하는 한국드라마의 ‘순정’ 그리고 그 뻔하고 뻔한 이야기를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람들. 어쩌면 그녀는 그런 드라마가 너무 흔하고 쉽게 여겨졌으리라. 그리고 사람들은 그녀의 드라마가 어렵다고 말한다. 좀 더 쉽게 써보라고. 아마 사람들은 그녀에게 ‘순정’을 이해하라고, 자신의 내면의 상처와 나약함을 인정하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책이 그녀에게 그런 기회를 열어주지 않았을까?
“남의 상처는 별거 아니라 냉정히 말하며 내 상처는 늘 별거라고 하는, 우리들의 이기(p113)” 그것을 인정해야 할 때, 비로소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행복할 수 있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