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생각: 먼지와 쓰레기]

 


오늘은 아침부터 정말 분주한 하루였다. 결혼하면서부터 설거지는 본인이 책임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큰소리쳤던 신랑이 손목터널증후군으로 고생하는 바람에 한동안 설거지를 회피하기 시작했다. 설거지는 자연스럽게 최근에 재택근무를 많이 했던 나의 차지가 되었고, 딱히 아픈 사람을 탓하지는 않았지만, 눈치가 보였던 신랑은 어느 날, 식기세척기를 사야겠다며 설레발이었다. 알아서 잘 사주길 바랐지만, 생각보다 너무 컸던 식기세척기를 받고 나서야, 그가 사이즈를 확인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싱크대는 이미 가전제품이 빼곡하게 차 있고, 가전제품에 맞춤형으로 짰던 싱크대였기에 식기세척기를 둘 공간은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방치되었던 식기세척기를 큰맘 먹고 오늘 싱크대 수납장에 넣기로 하고, 오늘 드디어 대공사가 시작되었다. 싱크대 수납장의 칸을 넓히는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신랑은 이미 일터로 출근을 했고, 아시는 목수님과 나는 싱크대 수납장을 분리하기 위해서 냉장고 두 곳에 있는 모든 짐을 빼고, 냉장고 두 대를 모두 끄집어내야 했다. 그리고 수납장을 분리하기 위한 작업 공간을 마련한 후, 수납장에 있었던 모든 집기를 모두 꺼내고 배수관을 만들기 위해 위 상판과 옆 상판에 큰 구멍을 내고, 식기세척기가 들어갈 수 있도록 공간을 배치하고 다시 싱크대 수납장을 조립했다. 물론, 목수님이 해주셨지만,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그가 떠나고 난 후, 난장판이 된 부엌을 정리하는 일은 오롯이 내 몫이라는 사실에 암담했다.


싱크대 수납장이 적절하게 조립되고 식기세척기의 자리가 정해진 후, 나는 전쟁터와 다름없는 부엌을 바라보며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던 먼지와 쓰레기를 응시했다. 버려야 할 음식과 버려야 할 집기는 너무 많았고, 미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빼곡하게 쌓인 먼지들은 솜사탕처럼 몽실몽실 모여서 커졌다. 정신없이 쓰레기봉투에 담고, 닦고, 정리하고, 또 닦았다. 모든 집기와 물건들이 자리를 잡으면 큰 쾌감을 느끼지만 급격하게 밀려오는 피로감 또한 만만치 않았다. 불현듯, 비워야 채울 수 있다는 식상한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면서 비워야 하는 것이 과연 먼지와 쓰레기뿐일까, 라는 생각에 이내 숙연해졌다.


한 해의 끝자락에 서서 변화가 많았던 한 해를 되돌아보면 참 안쓰러웠던 한 해였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내려놓거나 버리지 못했던 아집과 미련함이 기억 곳곳에 숨어있었다. 그것들도 먼지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 켜켜이 쌓여서 털어내지 않으면 몽실몽실 자라난다. 한때는 꽤 쓸모가 있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낡거나 불필요해서 쓰레기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생각과 감정도 쓰레기처럼 주기적으로 버리고 털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붙들고 있으면 새로운 감정이나 행동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하고, 늘 그대로인 것 같은 나도 변한다.


그 변화에 순응하기 위해서, 아니 그 변화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새롭게 주어지는 시간에 새로운 감정과 변화된 상황에 집중하며 매 순간 새로운 경험을 할 준비를 해야만 한다. 그 시작은 켜켜이 쌓여온 과거의 기억이나 감정에서 벗어나는 일, 현재가 과거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변화를 모든 감각을 일깨워 받아들이는 일이 아닐까. 그렇게 과거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고,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그려가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나 자신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 그렇게 켜켜이 쌓였던 먼지와 쓰레기들을 뚝딱 정리해 버린 것처럼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이나 정서를 정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아지고 있음을, 나아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으리라. 그러므로 앞으로 기필코 과거보다 나아질 것이고, 내가 원하는 미래로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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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01-15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장미님 반가워요^^
 

인간은 살아가면서 때론 사소한 것으로부터 때론 감당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끊임없이 받고 산다. 마음의 상처는 무엇일까? 어쩌면 그 상처는 삶 자체는 고해다.” 혹은 상처 또한 자신의 일부이고, 불행 또한 삶의 일부라는 것을 수용하지 못 해서 생겨난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삶이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 자신만큼은 남에게 상처받지 않으려는 마음, 혹은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을 보호하려는 마음. 그런 방어 심리가 사실은 상처를 만들어내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일 수도 있다.

 

나는 남보다 행복해야 하는데, 나는 나 자신에게 인정받아야 하는데, 나는 나의 자존심을 지켜야 하는데, 나는 반드시 사랑받아야 하는데,’ 그런 경직된 생각들은 어쩌면 진정한 자아의 모습을 마주하기 두려워서 거짓된 자아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생성된 것들이며 많은 심리학자들이 그것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유년시절의 경험, 가장 친밀한 대상과의 관계에 의해 형성된 것들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스스로가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거짓된 자아를 만들어 내는데 소비하는 시간보다 자신의 과거를 이해하고, 아직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린 자아를 껴안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부터다. 프로이트의 말처럼 0세에서 5세 이전의 기억들이 무의식에 잠재되어 생에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고 하자. 그 과정에서 술 먹는 아버지, 엄격한 어머니, 때리는 부모, 방치하는 부모, 비판적인 부모 등의 성숙하지 못 한 부모와의 관계에서 어린 자아의 상처가 무의식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았고, 그것을 적절히 치료하지 못 한 채로 성인이 되어 억압하고 마음 한 구석에 그 상처를 묻어두었다면, 어른이 되어서 도대체 어떻게 그것을 치료할 것인가?

 

설사 자신을 학대했던 부모가 늙고 힘이 없어지고, 지난 시절의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사과한다고 한 들, 이미 깊어질 데로 깊어진 상처가 치유될 수 있을까? 사실 그 상처를 돌이켜 기억하려고 해도 이미 잘 떠오르지 않을 만큼 의식적으로,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기에 잘잘못을 따져 묻는 것은 치유책이 되지 않는다. 가장 좋은 방법은 우선 스스로가 어떤 이유로, 어떤 경험에 의해 상처를 받았는지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성인이 된 이상 부모가 아닌, 다른 대상(부부 혹은 연인)을 통해 이해 받고, 수용 받고, ‘거짓된 자아본래 자아의 모습으로 사랑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참 쉽지 않다. 상처가 있는 사람들,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하는 눈으로, 그들과 나눈 경험의 기억으로 타인을 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 혹은 새로운 가정을 이룬 가족들에게도 억압된 상처는 전이되거나 투사하게 된다. 편안하고 불안하지 않은, 자아가 건강한 상태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문제에 직면하고, 불안하고, 자아가 혼란에 빠졌을 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발동하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을 보호하여 타인에게 자신의 것을 떠넘기지 않으면 스스로가 견딜 수 없다고 판단될 때, 자신의 상처는 타인의 잘못으로 둔갑하게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신경증이나 성격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탓하지는 않는 다는 것이다. 분명 타인이 자신의 상처를 건드렸다거나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도록 이끈 촉발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다. 그러니 자신의 상처를 건드린 것은 타인에게도 일정부분 책임은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같은 인격체가 아닌 이상 아무리 가깝고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본인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타인이 미리 알고 있었을 리 없다. 그러므로 타인이 어느 정도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할지라도 그 이상의 분노를 표출하고, 원망을 한다면 그것은 과거의 대상에 대한 것까지 분풀이를 할 뿐인 꼴이 된다.

 

그러므로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대상과도 싸우고, 원망하고, 미워하고, 상대를 아픈 자신을 더 힘들게 한 대상으로 폄하시킨다면 결국 자신의 상처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는 악순환의 늪으로 빠지고 만다. 자신의 기억, 자신의 상처를 기꺼이 기억하고, 그 원인이 과거에 있음을 즉시하고, 더불어 그런 과거로 인해 자신이 어느 행동이나 에 상처를 잘 받는지 상대에게 이해시켜야 하며 그 과정에서 적절한 소통과 마음을 나누는 것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때, 비로소 새로운 대상과 자신의 노력으로 스스로의 상처가 치유될 가능성이 열린다.

 

그러므로 기꺼이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고, 자신의 아픈 기억을 들춰내야 하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스스로의 치부까지 보여주고, 이해를 구할 수 있을 때, 상처를 치유하는 첫 단추를 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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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lash of clans hack
    from clash of clans hack 2014-02-17 00:38 
    [드림하이 학욵상담 센터] "책과 통하뚔 블로그, 앜라딘 서재!"
 
 
숲노래 2013-06-25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분풀이를 하고 나서,
왜 '화'가 나한테 찾아왔는지를 곰곰이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스리면
다음에는 화가 찾아오지 않겠지요.
그러나, 마음을 다스리는 틈을 내는 사람이 너무 적어,
나중에도 다시 화가 찾아오고 마는구나 싶어요.

가시장미 2013-06-25 16:31   좋아요 0 | URL
자기 분석이 그래서 꼭 필요한데 스스로 자신의 내면을 알아가는 것 또한 참 힘들인인 것 같아요. ^^' 함께살기'님 첫 댓글 감사합니다 ㅎㅎ 몇 년만에 들어왔더니, 이 곳이 참 많이 달라져 있더라구요. :)


프레이야 2013-06-25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므낫, 가시장미님! 그동안 어케 지내셨어요? 물론 잘지내셨겠죠. ^^ 아들 많이 자랐겠어요.

가시장미 2013-06-26 15:2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언니! ^^ ㅎㅎ 잘 지내셨어요? 저야 이런 일 저런 일 겪으면서 자라기도 하고, 주춤하기도 하면서 지냈죠. 반겨주셔서 감사해요! 언니의 글이 그리웠어요. :)
 

 

1.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 누군가의 실체에 대해 혹은 그 실체를 대면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떠올릴 수 있다면, 이 세상이 아닌 마음 속에서 존재한다는 것. 그것에 대해 생각한다. 이 세상을 떠난 그녀를 한번도 본 적이 없더라도, 그녀의 글을 통해 그녀가 나와 같은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느껴왔고, 여전히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면, 비록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 할 수 없지 않을까? 나와 같은 사람들이, 이따금씩 그녀를 떠올리고, 그녀와 나눈 글을 생각하고, 그녀가 남긴 글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이상, 그녀는 분명 존재할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 속에, 기억 속에서...

2.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것을 희망하는지도 모른다. 무한하지 않은 삶을 살더라도, 아주 오랜시간이 지나 자신의 유골조차 흔적 조차 없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그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해주길, 그래서 영원히 존재할 수 있기를.. 영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서 어떤이는 업적이 연연하고, 명예와 권력을 갈망하고,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창작물에 열정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물론,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닐지라도... 그러나 어떤 분야에서 성공하여 그 업적과 훌륭함을 인정 받은 사람만이 누군가의 하나의 '의미'로 기억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이 자신의 삶의 향기를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듯, 소시민적인 삶을 살고, 평범한 삶을 살아도,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노력하고,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가고, 이웃과 소통함으로써 자신이 실존함을 증명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누군가에게 하나의 '의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일상에서 생기는 모든 불안의 근원, 도취상태에서 도피하려고 하는 것,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는 그 불안감의 정체가 '죽음'이라고 말했다. 인간에게 그 불안감은 숙명적이며,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다고 주장하며, 그는 죽음의 불안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실존을 되찾는 길이라고 했다. 즉, 죽음을 앉아서 기다리거나 그 불안에 허덕이고만 있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앞질러 그 죽음을 떠안으면 '죽음의 불안'은 오히려 '죽음으로 부터의 자유'가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웃으로 그녀의 글을 엿보면서, '죽음의 불안'이 아닌, '죽음으로 부터의 자유'를 보았다. 그래서 무례할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마지막도 그렇게 자유로웠으리라 확신한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이와같은 생각을 하도록 한다는 것은 그녀의 삶, 그것의 의미를 증명하는 것이리라.   

4. 꽃-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나도 그에게 가서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인간은 '나'와 '너'의 관계로 규정할 수 있다. 그것은 관계를 맺을 때 비로소 인간은 현실 속에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는 우리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수도 있지만, 피상적인 관계가 아닌, 서로를 알아가려고 노력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서로를 염려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관계'로 이어지고, 그것은 가상공간과 현실의 괴리를 극복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녀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었던 기억들이 결코 가상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나에게 '언니'라는 호칭을 허락해주고, 슬픈 일이 있었을 때, 새해가 되었을 때, 먼저 와서 안부를 물어주던 그녀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낸다.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더 좋은 세상에서, 더 건강한 모습이길....부디 편안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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