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맹검사’라는 제목으로 돌아다니는 그림입니다.
“이걸 본 순간 5초 내에 당신의 눈에 ♡ 모양과 ‘LOVE’가 나타나지 않으면 당신은 사랑에 관한 한 색맹이랍니다.”라는 설명이 덧붙여 다닙니다.

실제, 이 그림을 가만히 바라보면 ♡모양과 ‘LOVE’라는 글자가 눈에 보입니다. 그러나 간혹 "하트모양만 보이고, ‘LOVE’ 글자가 안보인다"는 네티즌들도 몇몇 있습니다.

그 애가 접니다 ㅜ.ㅜ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ㅜ.ㅜ

 

하지만 나는 사랑에 색맹이 아닙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가 있습니다. 다만 아름다운 자연을 혼자 볼려고 하니,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랍니다. 우리 집, 아니 동내에는 커다란 저수지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물안개가 피어나는 모습을 보곤하는데, 그리고 가을 빛에 물든 저수지는 푸른 하늘이나 뫼 보다 더 아름답니다.동네 꼬마가 돌멩이라도 하나 던지면 단풍빛으로 물든 저수지는 잔잔한 파란을 일으킨답니다. 그저 보잘 것 없는 듯 보이지만 자연은 자연빛으로 물들어가는 것을 나는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몇 몇 뒤섞인 색깔 속의 숫자가 보이지 않을 뿐, 난 아름다연을 볼 수가 있으며,

사랑에도 색약이 아니니, 누가 제발 쫌 꼬셔줘요~~

출처 : 도깨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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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10-27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열린사회의적 2004-10-29 0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절 꼬셔주는거에요~~ ^^ 아이조아라~~
단풍잎이 곱게 물드는 가을입니다. 이번 주말에는 책을 작은 가방에 넣고, 뫼나 바다로 놀러 가심이 어떨는지... 좋은 하루 되세요~~
 
채링크로스 84번지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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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그
스티브 앨튼 지음, 신현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1997년 7월
평점 :
절판


어머어마한 화석 생물이 살아온다.

 

실리캔스라는 물고기가 있었다. 이 고기는 "실러캔스류는 총기류 중에서도 특수화한 그룹으로 일찍이 민물에서 바다로 이주하였다. 해산(海産)의 실러캔스류 화석은 고생대 후기부터 중생대에 걸쳐 발견되었지만, 신생대의 퇴적물 중에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러캔스류는 대체로 7000만 년 전에 절멸된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그런데 1938년 12월 22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남동부의 이스트런던 서쪽 앞바다에서 살아 있는 실러캔스가 저인망에 걸렸다.(출처 : 엠파스 백과사전")  아마도 7000만 년 전에 사라진 물고기가 아직 살아있다라고 말한다면 과연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이는 사라졌다고 생각하는 공룡이 어느 섬(쥬라기 공원)에선가 생존하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요? 하지만 여기에는 중요한 금(線)이 긋어져 있습니다. 실러캔스는 눈으로 확인이 되었고 공룡은 확인이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라는 말은 할 수가 없습니다. 어디에선가 그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을 수가 있으니.. 공룡이 죽지 않고 살아있다. 그들이 외부와는 끊긴체 살아있어서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인간의 모둠을 들어오게 된다면...?

 

마이클 클라이톤은 『쥬라기 공원』에서 죽었다는 생물체를 호박에서 호르몬을 부활시켰습니다. 그리고 외딴섬에 공원을 만들고, 돈을 벌어들이려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발생하는 연출을 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지은이가 살려낸 『메그』라는 작품도 닮은 꼴이 많습니다. 클라이튼이 살려낸 공룡이 닫혀진 공간에 있다면 지은이가 살려낸 메그는 바다를 휘어잡는다는 점이 다릅니다.

 

바다를 떠돌아디니는 메그, 그를 뒤쫓는 조나스라는 인물간의 긴밀감과 갈등은 책을 읽어가는데 재미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더 무엇을 적어야 할까요? 이게 전부인데,

 

실리캔스는 큰 동물이 아니기에, 아니 정확하게 우리에게 위협적이지 않기에 크게 다루어지지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룡이나 메그는 이와는 다릅니다. 충분히 위협적이면서 생태계를 파괴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지은이의 연출이 조금은 아쉬워 보입니다. 메그라는 화석의 생물을 살려내어, 큰 시간을 뛰어넘어 동시대에 같이 생존하게 될 경우 어떻게 될 것인가라는 것에는 큰 고민이 없이, 흥미유발로만 쓰여졌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메그는 줄기차게 먹이를 잡기 위해 고래를 쫓습니다. 먹이를 먹기 위해 사냥을 하는 메그를 우리는 이해하지 않고 사냥꾼으로, 언론은 뉴스거리로 취급합니다. 이는 최고의 동물이라는 자기인식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사고에 젖은 경우가 아닐까요? 고등동물이면 동물들의 지배자로 군림하고픈 인간, 그들은 자기보다는 더 위협적이거나 큰 동물을 인정하지 않을려고 합니다.

 

극한 상황으로 연출하는 지은이의 모습은, 물량으로 많은 것을 소화하려는 것이 아닌지... 제가 느끼기에는 정말 재미있다는 점입니다. 책의 절반까지!! 하지만 절반을 지나고 나면 윤곽이 잡히고 지은이의 반전을 노리는 꼼수도 없기에 차분히 읽으가다보면 조금 지루함마저도 느낄 것입니다. 나에게는 절반의 재미..일 뿐입니다.

 

덧붙임: 이 책을 읽으며서 메그라는 생물체를 알게 된 점은 좋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만은 종에 비하면 너무 미미하겠죠. 열심히 다른 책을 읽어나가야겠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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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 혁명 메디컬 사이언스 1
피터 너대니얼스·크리스토퍼 본 지음, 차광렬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총각이 태교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것을, 어떤 마이리뷰를 읽었다면 충분히 눈치 챘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총각이 태교에 관심을ㅋㅋ 저 참 별종이죠~~

 

굳이 태교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BBC의  Human Body (EP2 An Everyday Miracle)은 볼만하죠. 왜 태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막연합니다. 하지만 제가 걸어온 길이,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통한 혹은 형이나 누나가 있어 도움을 받아 좀 더 쉽게 무엇을 얻은 것이 아닌, 홀로 이루어 내는 동안 너무 힘겨웠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 아버지가 무조건 공부를 시키는 마음이, 제게는 또 다르게 생기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공부해라 공부해라라는 말이 분명 내게는 좋은 의미인줄 알면서도, 스스로의 판단을 뺏어버리는 말이 싫었는데 난 벌써 우리아기에 이런 닮고 싶지 않다는 모습을 주입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참 결혼도 안한 총각, 아니 여자 손목도 한번 못 잡아 본 놈이 태교 걱정을 하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죠. 김치국을 마셔도 너무 많이 마셔 취하였나 봅니다. 아무튼 제가 태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분명 앎이 지식이라는 생각에, 태아에게 좀더 낳은 행복을 줄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

 

태교 혁명? 혁명이라는 말은 가희 위협적이죠. 우리는 개혁이라는 말과 혁명이라는 말을 종종 쓰고 합니다. 『개혁이냐 혁명이냐』라는 책도 있지만, 저는 혁명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개혁이 지니는 보수성과 무딘 날은 세월을 네월하고 보내기 때문입니다 혁명의 가장 안좋은 경우가 피를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그 추진성과 힘은 일을 결단력있게 처리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개혁이 진보를 위장한 보수가 될 수 있지만 혁명은 진보를 위장한 극좌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태교 이야기에 혁명이라니쯧쯧, 분위기에 맞지가 않군요. 아무튼 혁명이 지니는 의미는 급격한 의미의 변화를 나타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지은이가 왜 [태교 혁명]이라는 제목을 달았는지는 충분히 공감하실 수가 있을 듯합니다.

 

배란이 되고 정자와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체인 수정란이 되는 순간부터 건강한 아기로 태어날 때까지의 280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이로운 현상이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그 과정이 궁금하시지 않으세요? 저는 궁금하여 이 책을 들었답니다.

 

신생아는 자신이 뱃속에 있을 때 많이 들었던 음악에 더욱 친숙하게 반응하고 임신 중 엄마가 많이 들려준 이야기에도 먼저 반응한다.(68쪽)

 

우리의 몸은 출생 전에 태교에 의해 프로그램되고, 이 프로그래밍은 생후에도 계속 연속적인 상관성을 갖고 진행된다.(27쪽)

 

태아기의 프로그래밍의 두 번째 원리는 아기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태아가 자궁에서 어떻게 성장하느냐와 신생아의 키 간의 관계는 이를 입증하는 매우 좋은 보기이다. 만일 자궁에 영양소가 부족하면 세포의 분화률이 떨어질 것이고, 그 결과 신생아의 전체적인 세포수도 줄어들 것이다. 즉 임신 초기에 자궁의 환경이 나쁘면 태아는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에너지를 쓰게 되어 나중에 태아의 크기가 작다는 것이다. 태아의 크기가 작다는 것은 전체적으로 작다는 것이지 특정 부분만 작다는 뜻은 아니다.(47쪽)

 

즉 이 책의 요지는 한마디로 태아기에 모든 프로그래밍이 결정되어 평생동안 좌우된다라는 조금은 무서운 내용입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는 동안 조금 부족한 부분이 눈이 띕니다.

 

태아기의 프로그래밍에 관한 몇 가지 궁금점

l       태아기의 프로그래밍은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가?

l       기계적인 고찰 외에 자연과 인공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가?

l       바커의 추론(32쪽-바커의 가설 참조)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우연성은 아닌가?

l       태아에서 모든 것이 잠재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은 프로이드의 이론과 큰 차이가 없는 듯  한데, 이는 인간의 잠재성을 축소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는가?

l       태아가 발달하는 기간에 열악한 환경은 위기 대처 내지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은 될 수 없는가? (절대없다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이와는 반대의 결론을 내린다. 스트레스 117~ 146쪽 참조)

l       태아기의 병이 성인이 될 때 까지, 내 몸 안에서 기생하는가? 자기 조절능력이나 정화기능을 통해 사라질 가능성은 없는가?(47~ 48쪽, 없다고 확신함)

l       나는 분명히 이러한 내 식성을 자극하는 것이 태어나기 전 몸 속에서 이미 결정되었다(55쪽)는 것은 새로운 음식과의 만남을 연계시키지 못한다. 한국사람을 김치만 좋아해야지 패스트푸드와는 입맛이 달라야 하는데,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l       만일 초음파를 통해 아기를 본다면(56쪽)이라는 가정이지만, 초음파는 태아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가?

 

지은이는 태아기의 프로그래밍을 중요성과 이를 실천 할 수 있는 방법을 반복적인 글쓰기를 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세뇌 되다시피 태아기의 프로그래밍이라는 단어가 따라 다닙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행동체계나 일관성이 조금 부족합니다. 건강식단을 위한 특수한 성분들(96쪽 ~ 115쪽까지)에서 비타민 A처럼 어떤 비타민은 많이 섭취하면 아기에게 치명적이므로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97쪽)라고 경고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어떻게 섭취를 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대안이나 보충설명이 있어야 할 듯 한데,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또한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은 하루 약 8컵의 물을 섭취하기를 권한다. 이 양은 대부분의 책에서 권하고 있는 양인데 대부분의 큰 겁은 360밀리리터 정도이므로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것은 힘들다. 매일 마시는 물이나 주스를 컵으로 계산하지는 말아야 한다.(101쪽)" 태아기의 프로그래밍이 누구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지은이가 왜 지키지 힘든가에 대한 의문과 지켜도 되지 않을 만큼 중요하지 않은가에 대한 보충 설명도 없이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앞서서 태아의 프로그래밍에 대해 때론 협박처럼 때론 어머니의 자상함으로 이야기하더니, 지킬 수 가 없으니 하지마라라는 말은 의외입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앞서서 말했듯이, 태아기의 프로그래밍이 전부이다라는 내용의 반복입니다.(소제목에 나타난 내용들과 너무나 반복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학적 근거 지식은 많이 부족하거나 제게는 믿음의 결핍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칠태도에 귀기울이는 것은 어떨까합니다.

 

임신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쁜 자궁 환경은 영원할 것이다(135쪽)라는 지은이의 충고를 심리적 부담 없는 선에 가슴속에 담아 둡니다

 

덧붙임 :  이 책은 5장- 180쪽까지 읽고 리뷰를 적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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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 72인에게 지혜를 구하다
김갑동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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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 서평은 책의 모든 내용을 다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닌, 297~ 309쪽 까지 읽은 다음에 적은 글입니다. 책에 대한 접근은 모두가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작은 참고만 되었으면 합니다.

 

민왕비를 만나다.

내가 민왕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마도 10여년이 되어가는 듯합니다. 의무교육이 되어버린 듯한 정형화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유를 만끽할 때에 보수동에 놀러 가서 무명인, 지은이가 쓴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7권의 책을 읽고 난 다음부터 입니다.  

 

나는 조선의 국모다] 조금은 도발적인 제목이지요? 저에게는 상당히...^^; 희미하게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여인은 말 없이 서 있습니다. 언제 사진인지는 자세한 설명이 없는 듯하네요. 나는 한 여인보다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문구에 혹하여, 7권이라는 책을 들었습니다. 제목처럼 책의 편집도 전략인지, 고무줄처럼 줄줄 늘여, 장정일의 유년시절을 장식한 삼중당이나 내 서고에 꽂힌 70년 동서문화사판에 비하면 2권 분량 밖에 되지 않는데 장장 7권을 만들어 놓았더군요...

 

하지만 시간을 넘어 내 기억을 지배하는건, 책의 편집에는 피 식~~ 하고 선웃음이 머무르지만, 지은이의 노고로 인하여 민왕비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국정교과서에 실린 모습이 아닌 단아한 그는 아직도 내 기억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때 처음 만난 민왕비는 인형왕후의 직계자손이며, 교활한 여우가 아니라 한나라를 걱정하는 엄현한 국모였습니다.

 

비극적 혹은 지은이의 세계관

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지은이의 세계관이 지배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민왕비가 속 좁은 여인네인지 조선의 국모인지 어깨너머로 몇 줄의 지식을 습득한 저는 아직 서투른 판단 밖에 내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기존의 관념을 뒤엎은 [나는 조선의 국모다]가 내 스무살에 깊이 각인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싹튼 민왕비에 대한 조그마한 관심은, 비록 가는 실처럼 얇지만 쉬이 끊어지지는 않고 아직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사람 72에게 지혜를 구하다]라는 책을 잡는 순간...

 

참 지은이는 운이 없나 봅니다. 이런 저에게 딱 걸렸으니...

 

나는 지혜를 생각한다.

지혜(智慧·知慧)[―혜/―헤][명사]

1.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 슬기. ¶삶의 지혜.

2.불교에서, 미혹(迷惑)을 끊고 부처의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힘을 이르는 말.

 

엠파스에서 지혜를 검색하니 아가씨가 위쪽에 뜨네요^^ 난 언어의 의미를 알고 싶었는데...

智慧, 제가 생각하는 지혜는, 지식이 단지 앎이라면 지혜는 책이든 일에서든 혹은 삶에서 얻은 혜안(慧眼)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단순하게 옳다 그르다라고 말하지 않고, “왜 일어났는가? 지금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가?” 등을 파악하여, 사람과 자연에 최선의 선택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건을 놓고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이나 사람을 단선적으로 평가를 내리기보다는 통찰적 시야를 가져야 된다고 봅니다.

 

엇나간 시선은 나에게 선입관을 심어준다.

제가 이 책을 들고, 접은 이유도 옛사람들을 통해 혜안을 얻고 싶어서입니다. 하지만 지은이의 시선과 제 시선은 너무도 엇나가 있었습니다.

 

[쇄국과 개방의 줄다리기] (297~ 309쪽)

민왕비에 대한 조그마한 관심이 선대의 사람들을 뛰어넘어, 그 앞에 섰습니다. 지은이는 민왕비와 흥성대원군에 대해 어떻게 기술하였을까라는 호기심으로 글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10여 쪽에 두 사람을 담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듯 하였나 봅니다.

 

국정교과서에 실린 사건을 빠짐없이 정리한 글, 흥선대원군이 몇 년 동안 개망나니 살이를 하고 거름뱅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양반의 가랑이 사이로 지나간 것을 “왕권을 차지 하겠다는 남모를 야망(298쪽)”이라고 하는 지은이의 모습은 귀엽기만 합니다. 1851년(철종2년) 여흥민씨 민치록의 외동딸-정실부인의 소생이 아니라 후처 이씨가 어머니-18세에 아버지 여임, 민왕비에 대한 지은이의 세계관은 “이렇듯 불우한 민비의 성장과 젊은 그가 얼마나 눈치 빠르고 그때그때 상황에 잘 대처하였는지 역설적으로 설명해준다. 그러나 겉으로는 부유하고 지체높은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이 흔히 갖고 있는 오만이나 편견 없이 평민적인 소박함을 가진 것으로 보였으리라.(303쪽)”라며 민왕비를 평가합니다. 눈치 빠른 민왕비는 평민적인 소박함으로 위장하여 왕비에 간택되었다고 지은이는 말하고 있습니다. “가문이 번성한 세도가 집안의 딸도 아니었기에 이러한 점들이 대원군의 구미에 맞아 고종의 왕비로 간택받은 것이다.”

 

민왕비와 대원군의 시국 및 국제 정세에 많은 차이가 있는데, 대원군은 “국제 문제에는 문외한(300쪽)”이며, 민왕비는 개방할 수 밖에 없다 생각만 하여 “기민한 수완을 발휘하여 자기 세력을 규합(304쪽)”하여 참모들은 “대원군과 미묘한 갈등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이러한 갈등관계는 “1895년 8월 2일 미우라三浦 공사의 지휘 아래 낭인들이 건천궁에서 민비를 살해하고 시신은 궁궐 밖으로 운반해 불태웠다. 이로써 민비는 44세에 처참한 죽음을 당함으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하였다. 그 뒤 그녀는 폐위되었다가 광무 光武 1년(1897) 명성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물론 이 사건의 배후에는 대원군의 동의와 지시도 있었다.(308쪽)” 대원군이 민왕비가 청의 세력을 빌어 자신을 납치한 일에 보복한 것으로 판단을 내린다는 끝마무리는, “민비와 대원군은 나름대로 정치철학을 가지고 개혁을 하려했다(309쪽)”는 교과서적인 마무리와는 불협화음을 이룹니다. 과연 지은이는 어떤 나름대로의 정치철학을 읽었는지 궁금합니다.

 

지은이는 대원군을 국제 문외한, 민왕비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요부로 밖에 보여주지 않습니다. 동시대를 살고, 시아버지와 며느리, 그리고 나라의 통치를 동시에 한 사람들에게서 나름대로의 정치철학을 찾지 못하고, 갈등관계만 부각시키는 이런 글쓰기가 과연...

 

제가 이 책을 들은 동기는, 옛어른들을 통해 오늘의 나를 돌아보고자 함인데 나만의 고집으로 책을 읽어내려가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채우고 있습니다. 교과서적인 사건을 기록한 것도 크게 점수를 주지 못하겠지만 인신공격적인 글쓰기에 대해서는 학자로서의 조금은 많이 다듬어야 할 듯한 글이라는 생각밖에 들지가 않네요. 많이 아쉬운 글입니다.

 

추신: 이렇게 소제목이 확연하게 눈에 띄는 작품들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몇 군데 무작위 혹은 자기가 마음에 드는 곳을 읽어보고 판단을 하시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제목 속의 내용이 뒤로 갈수록 일신우일신(新又一新) 될 수도 있지만, 눈에 띄게 좋아지지는 않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마음에 드는 소제목을 몇 군데 읽어보고 지은이의 세계관에 조금 다가간 다음에 책을 고르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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