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 72인에게 지혜를 구하다
김갑동 지음 / 푸른역사 / 200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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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 서평은 책의 모든 내용을 다 읽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닌, 297~ 309쪽 까지 읽은 다음에 적은 글입니다. 책에 대한 접근은 모두가 다르다고 생각하기에, 작은 참고만 되었으면 합니다.

 

민왕비를 만나다.

내가 민왕비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아마도 10여년이 되어가는 듯합니다. 의무교육이 되어버린 듯한 정형화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자유를 만끽할 때에 보수동에 놀러 가서 무명인, 지은이가 쓴 [나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7권의 책을 읽고 난 다음부터 입니다.  

 

나는 조선의 국모다] 조금은 도발적인 제목이지요? 저에게는 상당히...^^; 희미하게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여인은 말 없이 서 있습니다. 언제 사진인지는 자세한 설명이 없는 듯하네요. 나는 한 여인보다는 조선의 국모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문구에 혹하여, 7권이라는 책을 들었습니다. 제목처럼 책의 편집도 전략인지, 고무줄처럼 줄줄 늘여, 장정일의 유년시절을 장식한 삼중당이나 내 서고에 꽂힌 70년 동서문화사판에 비하면 2권 분량 밖에 되지 않는데 장장 7권을 만들어 놓았더군요...

 

하지만 시간을 넘어 내 기억을 지배하는건, 책의 편집에는 피 식~~ 하고 선웃음이 머무르지만, 지은이의 노고로 인하여 민왕비에 대한 애착이 생겼다는 점에 대해서는 고맙다는 느낌을 가집니다. 국정교과서에 실린 모습이 아닌 단아한 그는 아직도 내 기억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이때 처음 만난 민왕비는 인형왕후의 직계자손이며, 교활한 여우가 아니라 한나라를 걱정하는 엄현한 국모였습니다.

 

비극적 혹은 지은이의 세계관

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지은이의 세계관이 지배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민왕비가 속 좁은 여인네인지 조선의 국모인지 어깨너머로 몇 줄의 지식을 습득한 저는 아직 서투른 판단 밖에 내릴 수가 없습니다. 다만 기존의 관념을 뒤엎은 [나는 조선의 국모다]가 내 스무살에 깊이 각인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싹튼 민왕비에 대한 조그마한 관심은, 비록 가는 실처럼 얇지만 쉬이 끊어지지는 않고 아직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옛사람 72에게 지혜를 구하다]라는 책을 잡는 순간...

 

참 지은이는 운이 없나 봅니다. 이런 저에게 딱 걸렸으니...

 

나는 지혜를 생각한다.

지혜(智慧·知慧)[―혜/―헤][명사]

1.사물의 도리나 선악 따위를 잘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 슬기. ¶삶의 지혜.

2.불교에서, 미혹(迷惑)을 끊고 부처의 진정한 깨달음을 얻는 힘을 이르는 말.

 

엠파스에서 지혜를 검색하니 아가씨가 위쪽에 뜨네요^^ 난 언어의 의미를 알고 싶었는데...

智慧, 제가 생각하는 지혜는, 지식이 단지 앎이라면 지혜는 책이든 일에서든 혹은 삶에서 얻은 혜안(慧眼)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단순하게 옳다 그르다라고 말하지 않고, “왜 일어났는가? 지금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가?” 등을 파악하여, 사람과 자연에 최선의 선택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하나의 사건을 놓고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이 존재할 수 있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이나 사람을 단선적으로 평가를 내리기보다는 통찰적 시야를 가져야 된다고 봅니다.

 

엇나간 시선은 나에게 선입관을 심어준다.

제가 이 책을 들고, 접은 이유도 옛사람들을 통해 혜안을 얻고 싶어서입니다. 하지만 지은이의 시선과 제 시선은 너무도 엇나가 있었습니다.

 

[쇄국과 개방의 줄다리기] (297~ 309쪽)

민왕비에 대한 조그마한 관심이 선대의 사람들을 뛰어넘어, 그 앞에 섰습니다. 지은이는 민왕비와 흥성대원군에 대해 어떻게 기술하였을까라는 호기심으로 글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10여 쪽에 두 사람을 담는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듯 하였나 봅니다.

 

국정교과서에 실린 사건을 빠짐없이 정리한 글, 흥선대원군이 몇 년 동안 개망나니 살이를 하고 거름뱅이들과 어울려 다니며, 양반의 가랑이 사이로 지나간 것을 “왕권을 차지 하겠다는 남모를 야망(298쪽)”이라고 하는 지은이의 모습은 귀엽기만 합니다. 1851년(철종2년) 여흥민씨 민치록의 외동딸-정실부인의 소생이 아니라 후처 이씨가 어머니-18세에 아버지 여임, 민왕비에 대한 지은이의 세계관은 “이렇듯 불우한 민비의 성장과 젊은 그가 얼마나 눈치 빠르고 그때그때 상황에 잘 대처하였는지 역설적으로 설명해준다. 그러나 겉으로는 부유하고 지체높은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이 흔히 갖고 있는 오만이나 편견 없이 평민적인 소박함을 가진 것으로 보였으리라.(303쪽)”라며 민왕비를 평가합니다. 눈치 빠른 민왕비는 평민적인 소박함으로 위장하여 왕비에 간택되었다고 지은이는 말하고 있습니다. “가문이 번성한 세도가 집안의 딸도 아니었기에 이러한 점들이 대원군의 구미에 맞아 고종의 왕비로 간택받은 것이다.”

 

민왕비와 대원군의 시국 및 국제 정세에 많은 차이가 있는데, 대원군은 “국제 문제에는 문외한(300쪽)”이며, 민왕비는 개방할 수 밖에 없다 생각만 하여 “기민한 수완을 발휘하여 자기 세력을 규합(304쪽)”하여 참모들은 “대원군과 미묘한 갈등관계에 있었던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이러한 갈등관계는 “1895년 8월 2일 미우라三浦 공사의 지휘 아래 낭인들이 건천궁에서 민비를 살해하고 시신은 궁궐 밖으로 운반해 불태웠다. 이로써 민비는 44세에 처참한 죽음을 당함으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하였다. 그 뒤 그녀는 폐위되었다가 광무 光武 1년(1897) 명성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물론 이 사건의 배후에는 대원군의 동의와 지시도 있었다.(308쪽)” 대원군이 민왕비가 청의 세력을 빌어 자신을 납치한 일에 보복한 것으로 판단을 내린다는 끝마무리는, “민비와 대원군은 나름대로 정치철학을 가지고 개혁을 하려했다(309쪽)”는 교과서적인 마무리와는 불협화음을 이룹니다. 과연 지은이는 어떤 나름대로의 정치철학을 읽었는지 궁금합니다.

 

지은이는 대원군을 국제 문외한, 민왕비는 태생적 한계를 지닌 요부로 밖에 보여주지 않습니다. 동시대를 살고, 시아버지와 며느리, 그리고 나라의 통치를 동시에 한 사람들에게서 나름대로의 정치철학을 찾지 못하고, 갈등관계만 부각시키는 이런 글쓰기가 과연...

 

제가 이 책을 들은 동기는, 옛어른들을 통해 오늘의 나를 돌아보고자 함인데 나만의 고집으로 책을 읽어내려가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채우고 있습니다. 교과서적인 사건을 기록한 것도 크게 점수를 주지 못하겠지만 인신공격적인 글쓰기에 대해서는 학자로서의 조금은 많이 다듬어야 할 듯한 글이라는 생각밖에 들지가 않네요. 많이 아쉬운 글입니다.

 

추신: 이렇게 소제목이 확연하게 눈에 띄는 작품들은, 도서관이나 서점에서 몇 군데 무작위 혹은 자기가 마음에 드는 곳을 읽어보고 판단을 하시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제목 속의 내용이 뒤로 갈수록 일신우일신(新又一新) 될 수도 있지만, 눈에 띄게 좋아지지는 않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마음에 드는 소제목을 몇 군데 읽어보고 지은이의 세계관에 조금 다가간 다음에 책을 고르는 것도 하나의 방편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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