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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교 혁명 ㅣ 메디컬 사이언스 1
피터 너대니얼스·크리스토퍼 본 지음, 차광렬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3년 9월
평점 :
절판
총각이 태교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것을, 어떤 마이리뷰를 읽었다면 충분히 눈치 챘으리라 생각을 합니다. 총각이 태교에 관심을…ㅋㅋ 저 참 별종이죠~~
굳이 태교에 대한 것은 아니지만 BBC의 Human Body (EP2 An Everyday Miracle)은 볼만하죠. 왜 태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는 막연합니다. 하지만 제가 걸어온 길이,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통한 혹은 형이나 누나가 있어 도움을 받아 좀 더 쉽게 무엇을 얻은 것이 아닌, 홀로 이루어 내는 동안 너무 힘겨웠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 시대의 어머니 아버지가 무조건 공부를 시키는 마음이, 제게는 또 다르게 생기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공부해라 공부해라라는 말이 분명 내게는 좋은 의미인줄 알면서도, 스스로의 판단을 뺏어버리는 말이 싫었는데… 난 벌써 우리아기에 이런 닮고 싶지 않다는 모습을 주입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참 결혼도 안한 총각, 아니 여자 손목도 한번 못 잡아 본 놈이 태교 걱정을 하니 참 기가 막힐 노릇이죠. 김치국을 마셔도 너무 많이 마셔 취하였나 봅니다. 아무튼 제가 태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분명 앎이 지식이라는 생각에, 태아에게 좀더 낳은 행복을 줄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
태교 혁명? 혁명이라는 말은 가희 위협적이죠. 우리는 개혁이라는 말과 혁명이라는 말을 종종 쓰고 합니다. 『개혁이냐 혁명이냐』라는 책도 있지만, 저는 혁명이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개혁이 지니는 보수성과 무딘 날은 세월을 네월하고 보내기 때문입니다 혁명의 가장 안좋은 경우가 피를 부르는 경우가 있지만 그 추진성과 힘은 일을 결단력있게 처리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개혁이 진보를 위장한 보수가 될 수 있지만 혁명은 진보를 위장한 극좌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태교 이야기에 혁명이라니…쯧쯧, 분위기에 맞지가 않군요. 아무튼 혁명이 지니는 의미는 급격한 의미의 변화를 나타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지은이가 왜 [태교 혁명]이라는 제목을 달았는지는 충분히 공감하실 수가 있을 듯합니다.
배란이 되고 정자와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체인 수정란이 되는 순간부터 건강한 아기로 태어날 때까지의 280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경이로운 현상이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그 과정이 궁금하시지 않으세요? 저는 궁금하여 이 책을 들었답니다.
신생아는 자신이 뱃속에 있을 때 많이 들었던 음악에 더욱 친숙하게 반응하고 임신 중 엄마가 많이 들려준 이야기에도 먼저 반응한다.(68쪽)
우리의 몸은 출생 전에 태교에 의해 프로그램되고, 이 프로그래밍은 생후에도 계속 연속적인 상관성을 갖고 진행된다.(27쪽)
태아기의 프로그래밍의 두 번째 원리는 아기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계속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태아가 자궁에서 어떻게 성장하느냐와 신생아의 키 간의 관계는 이를 입증하는 매우 좋은 보기이다. 만일 자궁에 영양소가 부족하면 세포의 분화률이 떨어질 것이고, 그 결과 신생아의 전체적인 세포수도 줄어들 것이다. 즉 임신 초기에 자궁의 환경이 나쁘면 태아는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에너지를 쓰게 되어 나중에 태아의 크기가 작다는 것이다. 태아의 크기가 작다는 것은 전체적으로 작다는 것이지 특정 부분만 작다는 뜻은 아니다.(47쪽)
즉 이 책의 요지는 한마디로 “태아기에 모든 프로그래밍이 결정되어 평생동안 좌우된다”라는 조금은 무서운 내용입니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는 동안 조금 부족한 부분이 눈이 띕니다.
태아기의 프로그래밍에 관한 몇 가지 궁금점
l 태아기의 프로그래밍은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가?
l 기계적인 고찰 외에 자연과 인공이 태아에 미치는 영향은 없는가?
l 바커의 추론(32쪽-바커의 가설 참조)이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우연성은 아닌가?
l 태아에서 모든 것이 잠재적으로 결정된다는 것은 프로이드의 이론과 큰 차이가 없는 듯 한데, 이는 인간의 잠재성을 축소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다 주지 않는가?
l 태아가 발달하는 기간에 열악한 환경은 위기 대처 내지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은 될 수 없는가? (‘절대없다’ 한다. 하지만 스트레스는 이와는 반대의 결론을 내린다. 스트레스 117~ 146쪽 참조)
l 태아기의 병이 성인이 될 때 까지, 내 몸 안에서 기생하는가? 자기 조절능력이나 정화기능을 통해 사라질 가능성은 없는가?(47~ 48쪽, 없다고 확신함)
l “나는 분명히 이러한 내 식성을 자극하는 것이 태어나기 전 몸 속에서 이미 결정되었다(55쪽)”는 것은 새로운 음식과의 만남을 연계시키지 못한다. 한국사람을 김치만 좋아해야지 패스트푸드와는 입맛이 달라야 하는데,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l “만일 초음파를 통해 아기를 본다면(56쪽)”이라는 가정이지만, 초음파는 태아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가?
지은이는 태아기의 프로그래밍을 중요성과 이를 실천 할 수 있는 방법을 반복적인 글쓰기를 합니다. 책을 읽는 내내 세뇌 되다시피 태아기의 프로그래밍이라는 단어가 따라 다닙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행동체계나 일관성이 조금 부족합니다. 건강식단을 위한 특수한 성분들(96쪽 ~ 115쪽까지)에서 “비타민 A처럼 어떤 비타민은 많이 섭취하면 아기에게 치명적이므로 미리 알아두는 것이 좋다(97쪽)”라고 경고합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어떻게 섭취를 하여야 하는가에 대한 대안이나 보충설명이 있어야 할 듯 한데,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또한 “일반적인 가이드라인은 하루 약 8컵의 물을 섭취하기를 권한다. 이 양은 대부분의 책에서 권하고 있는 양인데 대부분의 큰 겁은 360밀리리터 정도이므로 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것은 힘들다. 매일 마시는 물이나 주스를 컵으로 계산하지는 말아야 한다.(101쪽)" 태아기의 프로그래밍이 누구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지은이가 왜 지키지 힘든가에 대한 의문과 지켜도 되지 않을 만큼 중요하지 않은가에 대한 보충 설명도 없이 마무리를 짓고 있습니다. 앞서서 태아의 프로그래밍에 대해 때론 협박처럼 때론 어머니의 자상함으로 이야기하더니, 지킬 수 가 없으니 ‘하지마라’라는 말은 의외입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앞서서 말했듯이, 태아기의 프로그래밍이 전부이다라는 내용의 반복입니다.(소제목에 나타난 내용들과 너무나 반복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학적 근거 지식은 많이 부족하거나 제게는 믿음의 결핍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칠태도에 귀기울이는 것은 어떨까합니다.
“임신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나쁜 자궁 환경은 영원할 것이다(135쪽)”라는 지은이의 충고를 심리적 부담 없는 선에 가슴속에 담아 둡니다.
덧붙임 : 이 책은 5장- 180쪽까지 읽고 리뷰를 적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