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의 진수 보여준 여인들
김수현·송지나·노희경·인정옥, 자기만의 세계 구축…여배우와 ‘찰떡궁합’
 
연합뉴스.이강빈.KBS제공.한겨레신문.MBC제공
1_김수현 작가(왼쪽)와 김희애(오른쪽)씨는 <완전한 사랑>과 <부모님전상서>에서 연이어 호흡을 맞추었다. 김희애씨는 김수현 드라마를 통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2_멜로 드라마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준 송지나 작가(2번 작은사진)는 <모래시계>에서 고현정(2번 큰사진)을 지성미가 넘치면서도 청순미를 겸비한 외유내강형 인물로 그렸다.

3_작품성과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노희경 작가(3번 작은사진)는 배종옥씨(3번 큰사진)에게 강한 듯하면서도 한없이 약한 내면 연기를 맡겨,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바라보도록 만들었다.

4_인정옥 작가(4번 작은사진)는 이나영씨(4번 큰사진를 <네멋대로 해라>와 <아일랜드>를 통해 자기 세계가 분명한 배우로 만들었다. 이나영의 캐릭터는 젊은 세대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새해 벽두부터 안방극장의 공기가 심상치 않다. 절대 강자를 가리지 못했던 2004년의 아쉬움을 떨쳐버리겠다는 듯 방송사마다 회심의 카드를 던지면서 안방극장의 분위기를 달구고 있기 때문이다. 초반 레이스에서 <해신>과 <봄날>이 앞서가고는 있지만, 그 가운데 어떤 드라마가 절대 강자의 위치를 차지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한 편의 드라마가 시청자의 지지를 받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으뜸은 역시 완성도 높은 극본이다. 그러나 최근 드라마는 짜임새 있는 극본에 탄탄한 연출력과 연기력이 더해졌을 때 시청자의 절대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망각한 채 출생의 비밀이나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의 안타까운 사랑, 혹은 신데렐라와 캔디 같은 정형적인 모티브를 단순 복제하면서 스타 시스템으로 승부수를 던지는 경우가 많다.

엉성한 극본과 얄팍한 스타 시스템의 결합은 한류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우리 드라마의 경쟁력을 좀먹는 악이다. 이것이 왜 문제인지는 김수현과 송지나, 노희경과 인정옥 등 완성도 높은 극본과 각기 다른 색깔을 보여주는 작가의 경우와 비교해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탄탄한 극본과 자신의 의도를 100% 구현해주는 ‘아바타’와 같은 배우와의 찰떡 궁합으로 완성도 있는 드라마를 만들어냈다.

40여 년에 이르는 세월 동안 변함없이 시청자의 절대 지지를 받고 있는 김수현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방송작가로 <새엄마> <신부일기> <사랑과 야망> <사랑과 진실> <사랑이 뭐길래> <청춘의 덫> <완전한 사랑> 등을 통해 일일 연속극과 주말 연속극의 전형을 만들어냈다. 숨 돌릴 틈 없이 긴박하게 전개되는 이야기, 속사포처럼 쏘아대는 짧고 간명한 대사, 저마다의 처지를 고루 대변하는 주변 인물 배치와 삶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 사회적 의제 설정 등은 김수현 드라마만이 가진 색깔이라고 할 수 있다.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은 연기파 배우 제조기

김수현은 배우들에게 혹독한 작가로도 유명한데, 배우의 연기까지 직접 지시하는 극본 때문에 김수현 드라마를 거쳐 간 배우들은 대부분 연기파 배우로 거듭 태어났다. 1980년대의 차화연과 1990년대의 심은하, 그리고 2000년대의 김희애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를 통해 스타급 작가로 발돋움한 송지나는 정치·사회적인 문제들을 멜로 드라마 구조에 녹여냄으로써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절제된 대사와 영상미를 강조한 극본으로 텔레비전 드라마와 영화의 경계를 흔들었던 송지나는 이후 <카이스트>를 통해 과학 드라마의 전형을 만들고, <대망>과 같은 작품을 통해 퓨전 사극의 길을 모색하기도 했다. 한 편의 멜로 드라마에서도 얼마든지 사회적인 발언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작가 송지나의 분신은 고현정·이은주·이요원 같은 배우들이었다. 이들은 자기 주장이 강한, 그래서 지성미가 넘치면서도 동시에 청순미를 겸비한 외유내강형 인물들로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MBC <베스트 극장> <엄마의 치자꽃>을 통해 안방극장에 입성한 작가 노희경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과 <내가 사는 이유>로 작품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이후 <거짓말>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바보 같은 사랑> <슬픈 유혹> 등의 드라마가 높은 완성도와 달리 시청률 면에서 그리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노희경을 자기 세계가 분명한 작가로 자리 잡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노희경 드라마의 매력은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인 일상을 섬세한 시선으로 포착해 마치 한 편의 시와 같은 대사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노희경은 강한 듯하면서도 한없이 약한 내면 연기에 탁월한 배우 배종옥을 통해, 익히 알고 있으면서도 똑바로 바라보는 것이 두려워 애써 외면하고 싶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쇠락한 청춘에서 길어 올린 순수를 표현할 줄 아는 배우 배종옥은 드라마에 스며든 노희경의 분신이라 할 수 있다. 2004년 최고의 화제작 가운데 하나인 <꽃보다 아름다워>는 노희경의 장점이 유감없이 발휘된 드라마로 오랫동안 우리 가슴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인정옥, 기존 드라마의 뒤통수 때리다

쿨하게 변한 세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여전히 질퍽한 이야기에 머물러 있던 기존 드라마의 뒤통수를 치며 등장한 <네 멋대로 해라>는 2000년대 변화한 청춘의 모습을 담아내면서 새로운 마니아 층을 형성했다. 이 드라마 한 편으로 양동근은 고만고만한 청춘 스타에서 자기만의 연기 색깔을 가진 배우로 거듭 태어났고, 이나영 역시 CF 요정 이미지에서 벗어나 자기 세계가 분명한 배우로 도약했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든 작가 인정옥은 2004년 <아일랜드>를 통해 자기 색깔을 더 분명히 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다른 일상의 속살을 헤집으면서도 결코 질척거리지 않는 인정옥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젊은 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그 반응이 극히 일부에 머물러 아쉬움을 남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옥의 스타일이 한국 드라마의 다양성을 담보하는 증거임은 분명하다.

김수현과 송지나, 노희경과 인정옥처럼 각기 다른 색깔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거나 구축해가고 있는 작가들의 드라마는 최근 블록버스터급의 화려한 볼거리에서 한 발짝 비켜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텔레비전 드라마는 분명 영상 예술이다. 그런 만큼 아름답고 화려한 볼거리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짜임새 있는 극본이다. 구성이 탄탄한 극본을 만나야 감각적인 영상과 스타 시스템도 빛을 발할 수 있다. 이 평범한 진리를 잊지 않을 때 드라마를 통한 한류 열풍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다. 안방극장에 쏟아지기 시작한 새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의 시선이 불안한 것도 이들 드라마가 극본의 짜임새보다 화려한 영상과 스타 시스템에 기대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윤석진 (충남대 교수·국어국문학) | 797호 | 등록일 : 2005/01/24 14:10 | 수정일 : 2005/01/24 14:10

드라마를 보지 않는 나로써는 왈가불가할 수가 없지만.... 한국 드라마가 보여주는 삼각관계만으로 승부수를던지기에는 무리수가 있지 않을까?

욘사마라 불리우는 광풍을 만들어낸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내가 처음 티비를 보고 느낀 것은 드라마 한편으로 일본을 삼키는 줄 알았다. 하지만 드라마의 점유률은 과반수를 넘기지 않은 듯 했는데, 왜 그리 열광을 하는지.. "이탈리아 오페라, 러시아 발레, 영국 뮤지컬, 할리우드 영화, 재패니메이션과 함께 한국 드라마"라는 어느 기자의 말은 조금은 흥분되었다. 한국 드라마라.... 말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에 물어보라. 무슨 철학이 기초바탕이 되는지? 철학이 없는 컨텐츠를 만들어 내어 세계시장에 경쟁을 하겠다고. 외모지상주의에서나 어울리는 상술로 세계를 통일시키겠다고... 꿈이 가당차다!!

조금 돈이 되니 드라마에 환장을 하는 기세가 보기에 좋지 않다. 내적 비판과 성찰을 먼저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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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1 - 스완네집 쪽으로 - 콩브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1
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스테판 외에 각색 및 그림, 정재곤 옮김 / 열화당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지난 시절의 풍분한 감성이여, 나를 바람이 부는 곳으로 데려다 주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샀다!
어제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티비에서 보여지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네들에게 명품을 왜 좋아하냐고 물으니, 명품을 통해 자기를 들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를 안정화-외부적이든 내부적이든 그들은 스스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위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제, 오후 늦게 도서관을 향하면서 자랑을 했습니다.
" 이 만화책 15000원인데……. 정말 비싸다"
" 비싸면 싸지 말지."
이 책이 초판이 찍혀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 초판이 한 3000부이니, 즉 우리나라에 이 책을 가진 사람은 3000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소리. 그 중에 내가 하나라는 거야. 그리고 출판사의 이미지는 아무리 어렵거나 얇아서 비싼 책이라도 가치를 보장하거든"

티비를 보면서 난 명품을 사는 사람들을 머리가 비었거나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다라고 알게 모르게 금(線)을 그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나 역시 남들이 그어 놓은 금을 넘지 않는 곳에서 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친구가 보기에는 이런 내 행동이, 내가 본 티비 속의 인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는군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미 익숙한 제목만으로 내게 다가왔지만, 내용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서야 되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형성된 이미지의 조합은 책을 잡는 순간부터 그 가치가 높다고 선입관을 한층 형성하였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높아서일까요? 책을 잡고 나서 덮은 다음의 마음이, 어디 들어갔다 나온 뒤의 느낌이라고 할까나……. 물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극히 일부분을 읽었기에, 전체적인 내용을 말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잠에서 깨면,
나는 잠을 충분히 잘 수가 없고, 깊은 밤중에 홀로 깨는 습관이 있습니다. 밤에 일어나면 내 머리를 어지럽히는 것은 수많은 별들만큼의 지난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 그리고 알 수 없이 흩어진 별 무리처럼 내 기억들의 단상도 흩어져 있습니다.

나는 어린 소년이며, 우리 가족들은 저녁 만찬을 즐기고 나서는 이야기 만찬을 다시 피웁니다. 내 그리움의 어머니는 단꿈을 꾸기 위한 키스를 어른들과의 만찬으로 바꾸어버립니다. 어머니는 내가 얼마나 키스를 기다리는지 알지 못합니다.(-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정신적 그리움이 다른 무엇인가로 표현되지 않을까?) 할머니는 만찬이 끝나면 정원을 돌면서 내 앞날에 대한 일들과 건강을 비손합니다. 어떤 날은 스완씨가 만찬에 오곤합니다. 이렇게 잠에서 깨어나면 저녁 7시의 소년이 되며, 어머니의 키스를 그리워하며, 어른들의 풍요로운 만찬의 밤에 있습니다.

꽁브레의 시절, 그의 곁에 머무르는 세계는 불순성. 세상에 순수함은 없으며 오직 드러냄과 숨김이라는 커튼을 통해 스스로를 가두는 현실이 존재합니다. 스완씨에 대해서도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하지만 스완씨에 딸에는, 봄날에 고개를 내민 새순처럼 사랑이 싹틉니다.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지내며, 어른들의 드러냄과 숨김을 가만히 엿보고 있습니다. 사랑의 감정이 환상을 가졌을 때 얼마나 허망한가를 게르망트 쪽을 산책하면서, 게르망트 저택의 공작 부인에 대한 환상에서 잘 보여집니다.

지은이의 자서전이 아닌, 소설적 플롯으로 접근할 경우 몇 몇의 복선이 깔려져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옮긴이가 잠시 언급을 하였듯이 두 산책길-스완씨네 집과 게르망트 쪽이 지니는 의미, 스완씨와의 알게 모르게 부딪히는 점, 벵테이유 씨가 죽고 나서 자기 딸이 보여준 행동, 분홍색 주근깨를 한 여자아이와 만남, 게르망트 저택 공작 부인에 대한 환상 등등……. 무수한 복선을 안고 가는 작품.

소설적 플롯, 혹은 운명의 곡예
나는 우리가 운명의 실이라는 길 위에서 곡예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내 의지로서 앞길을 나아가지만 이 모든 것이 운명의 실에서 한치 앞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운명을 거부하기 위한 몸부림마저 곡예일 뿐이며, 모든 것은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의지를 믿든 안 믿든 모든 것은 운명이며, 이를 개척하든 안하든 자기만의 곡예를 타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삶 역시 이러한 운명의 금(線)위에 놓여져 있고, 줄타기를 한다면 단순한 플롯이 아닌 운명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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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 교수, 미국 박사는 3.2%
일본, 유럽 박사 비중 높아.... "번역이 일본 지성을 키웠다"
 
일본은 끈질기게 학문 토착화에 힘써 오늘날 세계적 명문 대학을 만들었다. 왼쪽은 도쿄 대학 정문.
일본인들은 미국인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미국 박사 학위를 많이 따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최근 발표된 미국 대학 박사 학위 취득자 출신 조사에서 일본 대학은 상위 25개 명단에 단 하나도 오르지 않았다. 일본 대학에서 미국 박사 학위 소지자는 소수이기 때문이다.

<시사저널>과 <스누나우>는 일본 최고 학부인 도쿄 대학 본부 인사계획과의 도움을 받아 도쿄대 교수 4천1백65명의 박사학위 취득자 명단을 입수했다. 통계 처리 결과 2004년을 기준으로 외국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겨우 5.2%인 2백17명에 지나지 않았다. 대다수(63.5%) 교수가 일본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대학 전체 교수 가운데 미국 박사 학위 소지자는 3.2%에 불과하다(도표 참조)

물론 일본은 이미 세계 수준에 도달한 대학이 많기 때문에 굳이 외국에 유학할 필요가 없다고 해석할 해석할 수도 있다. 영국의 <더 타임즈>가 조사한 세계 대학 교육 평가 순위에서 일본은 12위를 차지한 도쿄 대학과 29위인 교토 대학 등 상위 200 위 안에 6개 대학이나 올렸다. 하지만 특히 미국 박사 학위 취득자가 적은 데는 여러 가지 역사적·문화적 이유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출처 : 도쿄대 인사계획과
총 4천1백65명
유럽 유학생들이 근대화 역군

먼저 일본은 근대화 과정에서 미국 이외에 유럽 국가의 영향도 많이 받았고 그 '흔적'이 아직까지 일본 학계에 남아있다. 도쿄 대학의 경우 외국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2백17명 가운데 미국 박사 학위 취득자는 1백37명으로 한국에 비해 미국 편중도가 훨씬 덜하다. 유럽 대학에서 박사를 받은 사람은 65명인데 영국·독일·프랑스 등 다양하다. 이런 미국에 편중되지 않는 일본의 유학 문화는 도쿄 대학 뿐만 아니라, 게이오 대학나 와세다 대학처럼 서울대보다도 국제 평가 순위가 낮은 다른 일본 대학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특이할 만한 사실은 일본 대학에는 박사학위가 없는 교수가 많다는 점이다. 도쿄대 교수중에는 박사학위가 없는 사람이 1천3백2명(31.4%)이나 된다. 도쿄 대학 동양문화연구소 오자키 후미야키 교수는 "도쿄 대학은 교수 임용에 박사 학위라는 것을 전혀 결정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나은 정도다"라고 말했다.

일본은 근대화 초기에 국가 정책에 따라 유학생을 외국으로 많이 보냈는데, 이 유학생들은 귀국한 후 외래학문을 자기화하는 데 애썼다. 대표적인 것이 ‘번역의 힘’이다.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서울대 언어교육원 임명신 선임연구원은 “일본은 근대국가 초기부터 외국 서적과 논문을 일본말로 번역해 자기 학문을 축적했다. 스스로 학문을 발전시킬 인프라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굳이 외국까지 가지 않아도 외국 논문, 서적, 연구물을 접하기 쉽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요즘에는 일본 학계 내부에서 국내 박사 학위자가 지나치게 많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 정근식 교수는 “일본식 학위는 도제 방식과 비슷하다. 학계 거물이 자기 제자를 보증해주는 방식이다. 요즘 들어서는 미국식 학위제도와 미국 박사 학위 취득자를 차츰 인정해주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다양성을 추구하려는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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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꼬 2005-01-26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놀랍군요... 우리가 일본을 많이 모방한다고 하지만 학문의 세계에서는 모방을 못했네요.. 또 웃기는 것은 제가 아는 한 한국 교수 임용엔 일본 박사가 잘 안먹힌다는 것. 심사하는 박사들이 다 미국출신이라 일본학위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일본은 논문 위주로 글을 잘 안쓰더군요.. 제가 아는 학문 분야에 한해서 말이죠..

sayonara 2005-01-27 14: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여옥씨의 책을 통해 일본 학계의 폐쇄성에 놀랐는데... 아무래도 착각이었던듯... ㅎ

balmas 2005-01-27 1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추천하고 퍼가겠습니다. 감사.^^
 
아이의 엉뚱한 질문, 엄마의 현명한 대답 100가지 - 창의력과 사고력을 키워주는 Q&A
이영호 지음 / 프리미엄북스 / 2000년 4월
평점 :
절판




["어른의 눈높이에서, 아이를 바라보기"]

아이들의 엉뚱한 질문…….
아직 총각인 내게, 아이들의 질문이 가지는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한때 친구의 아기와 잠시 생활을 한 적이 있지만 아직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아서인지-그냥 재미나게 지내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광고 방송에서처럼 “엄마, 이건 모에요?”라고 묻어온다면, “넌 그런거 몰라도 돼“라고 대답하기에는 곤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물어올 때면 ”넌 그런거 몰라도 돼“라고 말할 때 마다 아이들은 다른 방향을 찾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아기는 엄마한테 물어도 대답을 얻을 수가 없으며, ‘난 이런 것을 몰라도 되는구나’라는 자기 억압적인 사고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세상에 눈 뜬 아이가 처음 하는 것은 무엇이든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며, 두 번째로는 무엇이든 물어보는 것이라 생각을 합니다. 내가, 우리가, 우리 선조들이 그리고 우리 엄마아빠가 이런 시기를 걷쳤지만 난 아직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나름대로의 가치관이 설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권 한권 책을 읽으가면서 총각, 아빠 예비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

지은이는 3~8세 까지의 아이를 둔 부모님의 실생활에서 얻은 경험-질문을 100가지 애기합니다. 아이들은 묻습니다. “학교를 가야 해요?”, “하면 안 되는 일이 왜 이렇게 많아요”, “착한 아이란 어떤 아이죠”, “난 왜 예쁘지 않아요”. “이름은 왜 있나요”, “위인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

아이들의 호기심이 하나 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은 어깨 너머로 보아왔습니다. 난 그럴 때면 어떠한 대답을, 어느 눈높이에 서 있어야할까, 나에게 묻어보곤 합니다. 책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일어날 수 있는 물음에 대해, 상세하게 그리고 도덕적인 대답을 해 주고 있습니다.

“엄마, 위인들은 다 어디로 갔나요 지금 살아 있는 위인은 없어요?”
“왜 없겠니? 지금도 세상 곳곳에는 훌륭한 일을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단다.”
“그런데 왜 위인전 책에 나와 있지 않아요”?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알아주건 알아주지 않건 신경을 쓰지 않는단다. 오히려 알려지는 것을 귀찮아할지도 모르지. 세상에 널리 알려지려고 일부러 그런 일을 한다면 훌륭하다고 할 수 없지.”
“엄마, 나도 위인이 될 수 있을까요?”
“.......”(
38쪽 지은이의 대답 부분 생략)

내가 아빠라면 난 무엇이라 말하지, 님께서 엄마라면 아빠라면 무엇이라 대답을 하겠습니까?

난 지은이이의 대답을 보면서, 지은이의 세계관을 짐작해버리고 몇 번 더 읽어 내려가면서 이 책의 깊이를 다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행동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지은이의 사고가 다양한 현상을 담고 있다면 충분히 탐구해 볼 만 하지만, 이 책 내용은 한 줄의 사고금(線)이 그어져 있어, 어느 부분을 펼쳐도 똑같은 사고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 못써.” “그건 해선 안돼.”
온통 해서는 안 되는 말뿐입니다. 이 세상에 해선 안 되는 일이 그렇게 많은 건가요.

“엄마, 해선 안 되는 일이 왜 이렇게 많죠?”
“세상에 해야 할 일도 많고 해선 안 될 일도 많단다. 넌 아직 어리기 때문에 그걸 배우는 거야. 이렇게 한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해선 안 될 일이보다는 꼭 해야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22쪽)

아이의 물음에 정확한 대답을 해 주지 못하며, “넌 아직 어리기 때문에” 배워야 한다는 논리는, ‘넌 어리기 때문에 몰라’라는 의미와 크게 다름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아이들이 왜 이런 물음을 묻는가에 대한 눈높이가 없으며, 지은이의 대답이 일목요연하게 도덕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은이는 어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짐작하기가 힘들게 다가옵니다. 내 대답이 아이의 호기심과 눈높이, 가치관 형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 나름대로의 고민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덧붙임 : 서점에서 잠시 서서, 책을 펼쳐 보고 난 다음에 선택을 하심도 늦지 않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지은이는 어떠한 세계관으로 아이의 시선에 다가갖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지은이의 노고에는 고마움을 표합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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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5-01-27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의 질문이 줄어든다면 안좋은 신호라고 하더군요. 상당부분은 부모의 NO라는 답변에 원인이 있다고 합니다. 호기심을 계속 살려주는 훌륭한 육아가 되시기를.
 
꿈하늘
신채호 지음, 송재소 엮음 / 동광출판사 / 1990년 12월
평점 :
절판




<<팔만대장경>>은 석가의 혼이요, <<사서삼경>>은 공자의 혼이다. 그래서
                [" 석가와 공자의 혼이 우리나라의 왕 노릇을 하고 있다."]

단재의 소설선으로 묶인 『꿈하늘』에는 몇 편의 소설이 엮여 있습니다. 어떤 것은 단편적이며, 어떤 것은 인물을 부활시키고, 어떤 것은 끝이 없는 것도 있습니다. 그 중에 몇 편에 대한 짧은 감상입니다.

『일목대왕 철퇴』
일목대왕은 힘으로써 다른 여러 나라를 정복하여, 홀로 위대하다(獨不將軍)고 생각을 합니다. 그의 무력에 대한 숭상은 각별합니다. 하지만 나라를 둘러보고 나서 시름에 잠깁니다.

해군 대장 왕건이 "백제국과 싸워서 백제국의 군함 수백 척을 격파하고 천여 명의 군사를 사로잡고 뚝딱뚝딱 승전고 울리며 서울로 돌아(49쪽)"와도 한량없이 기쁘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대왕은 왕건과의 만남에서 "너는 오늘에 승전하고 돌아왔다마는 나는 간밤에 패전하고 돌아와 병이 났다"고 합니다. 즉 대왕이 궐문 밖에 나와 돌아다녀 보니, '아미타불'은 소리와 '공자曰'하며 칭송하는 집 뿐입니다. 아무도 일목대왕 궁예왕의 공덕을 논(論)하는 사람이 없음에 안타까이 여기는 것입니다. 궁예왕은 석가여래와 공자는 죽었지만 살아있는 사람을 사로잡고 있어 마음이 안쓰러워, " 글 28자모를 만들어 그 글로 경문 20권을 지어 이름을 <<궁예 대왕경>>(弓裔大王經)(53쪽)하고 반포합니다. 하지만 '궁예 대왕경'을 반포하고 나서, 다시 궁궐 밖으로 나가보지만 그의 귀에 들리는 것은 '궁예 대왕경'이 아니라 '아미타불'과 '공자曰'뿐입니다. 그리하여 궁예왕은 자기의 위엄과 권위를 과시한다는 명분하여, 토론을 할 것이라 하며 만백성을 궁궐 안으로 불러들입니다. 스스로를 합리화할 수 있으면 대왕은 용서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막무가내로 만인의 앞에서 철퇴를 휘두릅니다. 그리고는 '내 말이 진리이니, 내 말을 듣으면 천궁에 갈 것이요, 그러하지 못하면 철퇴를 맞아 지옥에 갈 것이다'라고 강권합니다. 이렇게 피 난리를 치고 침실에 들어오니 황후가 깜짝 놀라 대왕을 맞이합니다.

왕후 "나라가 망하려 대왕폐하가 이십여 년 물 속이나 불 속으로 드나들며 죽을 판, 닦아 놓은 공업이 허사로 돌아갈까 하여 웁니다."하며 메인 목소리를 간신히 대답한다."
대왕 "왜?"
왕후 "사람을 칼로 정복합니까? 덕으로 정복합니까? 대왕……."
대왕 "칼과 덕을 아울러 써야지요."
왕후 "아니올시다. 적국을 정복하려면 칼로 하려니와 백성의 마음을 정복하려면 덕으로 하는 것이올시다."
대왕 "……."
(61쪽)

대왕은 한동안 왕후와 실랑이를 한다. 그는 한나라에 한 임금, 즉 세상에는 한나라가 있어야 하며, 한 나라 안에는 하나 임금만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여러 나라를 창이나 칼로 쓰서 무찌를 수 있지만 나라 안의 임금은 덕(德)과 도(道)로서만 된다고 왕후는 말합니다.
왕후는 오직 "사랑"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자 대왕은 '사랑을 받지 하면 어떻게 하냐'고 반문을 하자. 왕후는 "사랑이 깊으면 아니 받지 못합니다.(63쪽)"라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대왕은 "성인이나 '미리'가 계집의 말로 될 수 있을까요?"로 묻자, 왕후는 "동명성왕이나, 신라 시조나, 중국의 요순이나, 주문왕.무왕이 다 내조로 되었고, 석가도 그 도를 닦으려 산으로 들어갈 때에는 아비는 몰랐으되 그 아내 '아유타'"는 알았다 하며, "내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왕은 무력으로 백성을 정복하려 하였지만 간곡한 왕후의 설득에 오직 "사랑"뿐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 책은 편집자가 미완이라는 말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끝이 어떠한지 모르지만, 여기에 글로 된 것으로 본다면 다음과 같지 않을까 합니다.

일목대왕의 철퇴는 한번 휘들러졌습니다. 그는 오직 힘으로 상대방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고서, 힘을 썼지만 왕후 강씨의 베개송사로 인하여 마음을 돌렸습니다. 즉 힘이 힘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이 힘으로 나올 때뿐이며, 마음을 정복하려면 '사랑'뿐이라는 것을 깨달아, 후세에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즉 『일목대왕의 철퇴』는 일목대왕의 힘에 의해 죽어간 600여 명의 희생자에 대한 깨달음과 사죄의 글이 아닐까 합니다.

『백세 노승의 미인담』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
" 두만강 물에 말을 씻고 백두산 돌에 칼을 갈아 적국을 토평하리라. / ......
"

남이(南怡)장군이 이웃의 친구들과 호국사라는 절에 놀러가, 아내 자랑을 할 때에 늙은 중이 끼어들어 "서방님들은 어여쁜 아내를 믿지 마시오."라고 합니다. 그러고서는 예쁜 아내 때문에 중이 된 사연-"송도(松都) 말년의 조선, 몽고, 중국 세 민족의 이목을 놀래우던 대사건"을 풀어냅니다.

노승은 재상 황모의 딸과 결혼을 하고 행복한 나날을 보냅니다. 그러던 중에 "북방의 몽고족이 강성하여 국경의 방어가 날로 급하여 노승이 귀주(貴州)의 수정장이 되어 오천 명 군사를 거느리고 부임(85쪽)"합니다. 그는 아내 황씨와 여종 예쁜이를 데리고 부임한 지 삼삭 만에 몽고병 수만 명이 쳐들어 옵니다.

앞뒤 겨를 것도 없이 황망하던 중에, 예쁜이 曰,
'"오천 명의 군사 중에 노예군과 잡류군(雜類軍)이 5분의 4나 되며, 또 이것을 이 가장 용감하나 매양 노예라, 잡류라 하는 이름을 싫어하며 힘을 다하지 아니하오니, 이 위급한 때를 당하여 명분만 지키려다가는 나라의 강토를 잃고 포로의 치욕을 면하지 못할지니, 먼저 노예와 잡류의 문서를 불사르고 싸움을 이긴 뒤에 도등의 대우를 한다는 명령을 내리시소서. 이것이 오늘의 국경을 보존하는 다시 더 없는 방법이올시다.(86쪽)"

싸움에서 이기고 돌아온 노승은, 예쁜이의 전략보다는 밤낮으로 빌기만 한 아내 황씨의 은덕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복도 잠시, 몽고의 다시 침입으로 아내와 예쁜이가 북경으로 끌려갑니다. 아내를 밤낮으로 잊지 못하는 노승은, 북경으로 찾아가 아내를 구해 오려합니다. 1년 동안 북경에 있으면서 보고듣은 것은 "황제의 충신으로 유명한 몽고의 장수 차손다다의 부인이 되어 고국 생각을 잊을 만치 된 안락"에 젖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노승은 긴긴밤을 아내 생각만 하다 월장을 감행합니다. 아내는 그를 기쁘게 맞이하는 대신에, 장수 차손다다에게 옛남편이 쳐들어왔다하며 강박 지우길 바랍니다. 예쁜이의 말류에도 대문을 들어선걸 후회해도 늦은 것. 감옥에 갇혀 오직 분개만 할 때에 예쁜이가 먹을 것을 주며 빗장 문도 열어줍니다. 노승은 단박에 두 내외를 죽이고는 담을 넘습니다. 하지만 예쁜이는 혼자 도망가기에도 힘들다하며, 자결을 합니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잘렸습니다. 다만 뒷장에는 예쁜이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것을 어릴 때의 일화가 조금 실려 있습니다. 굳이 드는 의문 하나가, 왜 남이 장군이 호국사라는 절에 놀러 가서 노승의 환담을 듣었는가 하는 점입니다. 남이 장군의 깨달음, 지은이의 나에 대한 울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단재의 글-몇 편의 글 속에는 '궁예'에 대한 칭송이 자자합니다. 『일목대왕 철퇴』, 『일이승』등. 궁예, 과연 단재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요?

『일이승』에 정을진이라는 이와 노승 함허가 나누는 대담에서 살짝 엿볼 수가 있습니다. 정을진이 보기에 궁예는 "신라 헌안왕의 아들로서 헌안왕의 화상을 칼로 치고 또 신라를 멸"하려 하였으며, "처자를 사납게 죽이고", "관심법(觀心法)(74쪽)" 통해 걸물이 되지 아니하고 불효자라 합니다. 이에 함허는 "천고의 사책(史冊)은 매양 그 가운데서 대세"만 보기를 권합니다. 세세한 것은 이기 자가 진 자에 대해 짐 지우는 누명이며, 이로 인해 자기의 덕을 더 높게 보이려는 권세화일뿐입니다. 그리고는 못된 짓을 하고도 어떻게 '이십팔년' 동안 "제왕이 되어 위엄과 호령이 천하에 진동하였겠느냐" 묻습니다.

" 궁예의 공덕은 무엇입니까?"
" 궁예가 패망하여 그 평생 삶의 경영이 물거품같이 사라져 버렸으므로 그 공덕이 무엇이라고 들어 말할 것이 없으나, 그러나 궁예가 신라 이후에 죽어 가는 조선의 인심을 진작시키려던 걸물됨은 의심 없는 바니라."
" 궁예 이후 고려 사백칠심삼 년 동안에는 누가 칠 만한 인물입니까?"
" 고려 일대에는 이지백(李知白).곽원(郭元).왕가도(王可道).최영(崔瑩) 등이 다 비상한 대인물이나, 그러나 뜻대로 사업을 성취하지 못하였는데 그 가운데 나의 가장 통분히 여기는 바는 최영의 일이로다.(
75쪽)"

『일이승』은 홍경래의 난을 이야기합니다. 정을진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함에 복수심을, 홍경래는 잘못된 나라를 거꾸로 세우기 위한 역성을... 이 둘의 야합은 원래부터가 맞지 않았나 봅니다. 홍경래가 정을진을 죽이는 것은, 소탐대실을 원하지 않아서일까 합니다.

그리고 여자에 대해 흩으로 듣지 않습니다. 『일목대왕 철퇴』에서 궁예왕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왕후이며, 『백세 노승의 미인담』에서 노승을 꾸짖을 때, 구구관주(句句貫珠) 자자비점(字字批點)이라 함에서 충분히 볼 수가 있습니다. 또한 부모도 모르는 아이를 놓고, 그 말귀가 대단함에 "여개소문"이라 하는 점은 인재를 보는 단재의 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동국(東國) 거걸(巨傑) 최도통전(崔都統傳)』
처음에는 동국 거걸이 누군인지? 최도통?이라 생각을 하다, 책을 펼치는 순간에 최영이라는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내가 아는 최영은 고려의 마지막 무장으로 이승계에 패(敗)해 죽임을 당한 애절한 장수쯤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단재가 부활시킨 최영은 한 나라를 얼마나 사랑한 사람인지, 과연 저 위에 있는 의사당의 무리는 누구를 위해 있는지, 세월이 반천 년이 지났지만 변한 것은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져 주었습니다.

최영,
우리가 우리 국사를 읽다가 단군 35세기 고려 원종(원종) 이래로부터 근세 이르기까지 무릇 7백야 년 사이의 일을 보면, 부아가 터져 머리털은 뻗쳐 일어서고 울분으로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떨며 한 권의 역사책을 장장이 갈기갈기 찢어 불구덩이에 처넣고자 하는 것이 한두 번(210쪽)"이 아닐 때, 홀연히 나타나 그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민족의 나아갈 길을 밝힌 이.

단재의 한은 이민족을 끌여 들여 동족을 죽인 것과 발해 이래로 잃어버린 국토에 대한 애한일 것입니다. 그가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에서 묘청의 서경천도에 대한 한을 드러내듯이, -원나라 정부가 각지의 소란을 평정하기 위해 우리 군사를 징벌하기 위한 조서를 내릴 때, 공민왕은 갈팡질팡하고 신하들은 고개 숙여 빨리 받들어 모셔야 한다고 합니다. 이에 홀연히 호통을 치는 있었으니 " 안됩니다. 원은 정령이 쇠약해져 망할 날이 멀지 않았으니, 우리가 돕는다 해도 이익될 것이 없고, 설령 우리 도움으로 망하려 하는 저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 해도 우리는 돕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무엇보다 먼저 저들은 우리의 원수입니다. 고종(고종) 원종(원종)께서 저들에게 무릎을 꿇고 성하의 맹약을 맺었던 것이 어찌 그 마음에 기꺼워했겠습니까? 단지 힘이 달렸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는 장면에서, 난 반 천년을 훌쩍 뛰어넘어 오늘을 보는 듯합니다. 제국주의의 침략에 협력하는 이 나라를 보면서 살아있는 최영의 호통을 듣는 듯합니다. 스스로 힘이 없으니, 힘이 있는 나라에 가서 아부를 하며 도움을 요청하고 서는 일 다 했다는 듯이 우쭐되는 모습. 필요하면 언제든지 자국의 군인을 타국으로 보내 총알바지가 되는 것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는 나라. 힘이 없다 하면서 힘을 기를 생각조차 하지 않은 나라. 최도통이 꿈꾸었던 야망은 모진 풍진 세월에 흩어져 기억조차 없는가 봅니다. 최도통은 원의 징발에 대해 일곱가지 경하할 일과 다섯 가지 슬퍼할 일이 있다고 아룁니다.

" 일곱 가지 경하할 일이란 무엇입니까? 군사를 기르고 군량을 저축하여 나아가 공략해 취할 힘이 충부하고 물러나 보전해 지킬 힘이 충분하다면, 이에 대병(大兵) 혹 경병(經兵)을 출동시켜 일차 요동을, 이차 심양을 취해 고구려와 발해의 옛 강토를 수복할 것이니, 경하할 일입니다. 그런 뒤 의무려산(醫巫閭山)의 험난한 곳에 웅거하여 우리의 훈련되고 절도 있는 군사로 한 곡식으로 저 서로 헤어져 떠돌아다니는 백성들을 거두어 모은다면 국위를 떨치 수 있고 중국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니, 경하할 일입니다. 그리고 몽고와 관계를 끊어 제양공(齊 公)처럼 구세(九世)의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니 경하할 일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 나라도 또한 대국이 될 것이니 경하할 일이며, 이렇게 하면 차후로 중국도 감히 눈을 똑바로 뜨고 우리 나라를 노려보지 못할 것이니 경하할 일입니다. 옛날 우리 태조 신성대왕(神聖大王)께서 거란의 사신을 거절했던 것은 고의로 사단을 일으켜 저들을 정복하고 발해의 옛땅을 수복하려 한 것이었는데, 불행하게도 하늘이 수를 내려 주지 않아 중도에 돌아가셨으니, 이는 사백 년 이래 신하된 자의 지극한 한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선왕의 뜻을 이어 대업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니, 경하할 일입니다. 고구려가 항상 중국을 집어삼키려고 하다가 능히 하지 못하였는데, 지금 우리 조정이 이 일을 이루면 천고의 역사에 빛이 날 것이니 경하할 일입니다. 이것을 일곱 가지 경사라 하는 것입니다.(234쪽)"

단재의 위상은, 우리 나라가 일제의 식민지 시대에 있지만 그 기상은 발해의 옛 땅에 대한 수복에 있다는 점입니다. 하루하루가 힘들면 오늘을 생각하게 되지 내일을 생각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최도통이 신하된 도리로서 임금님에게 아뢸 때, 괜시리 눈이 붉어집니다. 그리고 또다시 최도통이 인당과 북벌을 단행할 때, 원나라의 사신이 황급히 조선의 조정에 들어와 허풍을 치며 하루바삐 최도통을 불러들이지 않으며 80만 대군을 일으켜 무너뜨린다는 말에 놀라, 국왕은 나몰라하고 만 신하는 어서 불러들여서 역적의 무리를 다스리라 하는 장면에서는 울컥 울분이 나도 모르게…….

단재의 글은 아직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하기에는 조금 다른 길에 서 있습니다. 문학이 아닌 과연 우리에게 조선이라는 나라는, 국가는 무엇인가 혹은 일제 식민지 시대에 그를 떠올려 본다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설픈 울분,
예나 지금이나 나라를 망치는 것은 쓸데없이 겉멋만 든 먹물 든 무리가 아닌가? 힘들지 않게 먹물로서 무장한 그네들은 모든 이론적 근거를 동원해 상대방을 무력케 한다. 하지만 홀로 싸움에 나가 싸워보지 않으니 진정 싸움을 알지 못하고, 가진 것이 많으니 하나라도 잃을까봐 절절 매는 모습이……. 싸움에서 가장 무서운 자는 맨 손으로 오는 자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가진 것이 없으니 그의 의지는 결단코 생(生) 아니면 사(死) 둘 중에 하나에 놓여있는 배수진의 형상인 것이다. 죽기로 싸움은 사람을 싸워 과연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인가?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틀을 바꾸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을 것이다.

내가 홀로 마음속으로 숭상하는 이가 둘이 있는데, 한 명은 약산이며 다른 한 명은 단재이다. 남의 나라 '체'라는 이는 옷에 무슨 형상을 그리며 쫓지만 내 나라 영웅은 골방에서 죽어가니 슬프다. 슬프다. 어찌 통탄하지 않으리오. 단재의 기상과 약산의 울림을 언제 다시 듣을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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