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1 - 스완네집 쪽으로 - 콩브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만화) 1
마르셀 프루스트 원작, 스테판 외에 각색 및 그림, 정재곤 옮김 / 열화당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지난 시절의 풍분한 감성이여, 나를 바람이 부는 곳으로 데려다 주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샀다!
어제 명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티비에서 보여지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네들에게 명품을 왜 좋아하냐고 물으니, 명품을 통해 자기를 들어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를 안정화-외부적이든 내부적이든 그들은 스스로 보호받을 수 있다는 위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제, 오후 늦게 도서관을 향하면서 자랑을 했습니다.
" 이 만화책 15000원인데……. 정말 비싸다"
" 비싸면 싸지 말지."
이 책이 초판이 찍혀있는 것을 이야기하고,
" 초판이 한 3000부이니, 즉 우리나라에 이 책을 가진 사람은 3000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소리. 그 중에 내가 하나라는 거야. 그리고 출판사의 이미지는 아무리 어렵거나 얇아서 비싼 책이라도 가치를 보장하거든"

티비를 보면서 난 명품을 사는 사람들을 머리가 비었거나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다라고 알게 모르게 금(線)을 그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나 역시 남들이 그어 놓은 금을 넘지 않는 곳에서 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친구가 보기에는 이런 내 행동이, 내가 본 티비 속의 인물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하는군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이미 익숙한 제목만으로 내게 다가왔지만, 내용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서야 되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형성된 이미지의 조합은 책을 잡는 순간부터 그 가치가 높다고 선입관을 한층 형성하였습니다. 하지만 기대가 높아서일까요? 책을 잡고 나서 덮은 다음의 마음이, 어디 들어갔다 나온 뒤의 느낌이라고 할까나……. 물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의 극히 일부분을 읽었기에, 전체적인 내용을 말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간혹 잠에서 깨면,
나는 잠을 충분히 잘 수가 없고, 깊은 밤중에 홀로 깨는 습관이 있습니다. 밤에 일어나면 내 머리를 어지럽히는 것은 수많은 별들만큼의 지난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 그리고 알 수 없이 흩어진 별 무리처럼 내 기억들의 단상도 흩어져 있습니다.

나는 어린 소년이며, 우리 가족들은 저녁 만찬을 즐기고 나서는 이야기 만찬을 다시 피웁니다. 내 그리움의 어머니는 단꿈을 꾸기 위한 키스를 어른들과의 만찬으로 바꾸어버립니다. 어머니는 내가 얼마나 키스를 기다리는지 알지 못합니다.(-아마도 어머니에 대한 정신적 그리움이 다른 무엇인가로 표현되지 않을까?) 할머니는 만찬이 끝나면 정원을 돌면서 내 앞날에 대한 일들과 건강을 비손합니다. 어떤 날은 스완씨가 만찬에 오곤합니다. 이렇게 잠에서 깨어나면 저녁 7시의 소년이 되며, 어머니의 키스를 그리워하며, 어른들의 풍요로운 만찬의 밤에 있습니다.

꽁브레의 시절, 그의 곁에 머무르는 세계는 불순성. 세상에 순수함은 없으며 오직 드러냄과 숨김이라는 커튼을 통해 스스로를 가두는 현실이 존재합니다. 스완씨에 대해서도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하지만 스완씨에 딸에는, 봄날에 고개를 내민 새순처럼 사랑이 싹틉니다.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지내며, 어른들의 드러냄과 숨김을 가만히 엿보고 있습니다. 사랑의 감정이 환상을 가졌을 때 얼마나 허망한가를 게르망트 쪽을 산책하면서, 게르망트 저택의 공작 부인에 대한 환상에서 잘 보여집니다.

지은이의 자서전이 아닌, 소설적 플롯으로 접근할 경우 몇 몇의 복선이 깔려져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옮긴이가 잠시 언급을 하였듯이 두 산책길-스완씨네 집과 게르망트 쪽이 지니는 의미, 스완씨와의 알게 모르게 부딪히는 점, 벵테이유 씨가 죽고 나서 자기 딸이 보여준 행동, 분홍색 주근깨를 한 여자아이와 만남, 게르망트 저택 공작 부인에 대한 환상 등등……. 무수한 복선을 안고 가는 작품.

소설적 플롯, 혹은 운명의 곡예
나는 우리가 운명의 실이라는 길 위에서 곡예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내 의지로서 앞길을 나아가지만 이 모든 것이 운명의 실에서 한치 앞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내가 운명을 거부하기 위한 몸부림마저 곡예일 뿐이며, 모든 것은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의지를 믿든 안 믿든 모든 것은 운명이며, 이를 개척하든 안하든 자기만의 곡예를 타고 있는 것입니다. 주인공의 삶 역시 이러한 운명의 금(線)위에 놓여져 있고, 줄타기를 한다면 단순한 플롯이 아닌 운명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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