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지구적 변환
데이비드 헬드 외 지음, 조효제 옮김 / 창비 / 2002년 12월
평점 :
품절
여기에 적는 글은 책을 읽고 나서, 감동을 받아 적는 감상문이 아닙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내 머리속에 놀고 있는 숱한 물음과 그 해답을 불러와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물입니다. 그렇기에 이 세계관은 내 얇은 머리에 토대를 두고 있기에, 자칫 나에게 함몰하지 않도록 유의를 해야할 것입니다. 물론 나 역시, 내 비극적 세계관이 다양성을 품고, 넓은 시선을 담을 수 있도록 항상 열려 있어야 됨을 알고 있습니다.
서론에 대해.
"지구화에 대해서는 3개의 학파들이 3가지 색깔이 있다."(15쪽)
과대지구론자(19쪽)
그들의 눈은 기업체 혹은 낭만적이다. 즉 '네오맑스주의자와 급진주의자가'가 '낙관적 견해(18쪽)'로 보는 것은 정당하다고 보여진다. 이런 점에서 내 눈은 색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되는군...음.
"'단일가격법칙'이 지배하는 완벽하게 통합된 전세계 경제를 전제"(20쪽)
회의론자들은 "일국 정부가 국제적 상황에서 무력화 되기는 커녕 국제적 경제 활동을 규제하고 촉진하는데 점 점 더 중심적 역활을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21쪽)"한다. 이는 거대국가, 비만국가, 힘의국가, 강패국가인 미국을 볼 때에 상당한 설득력을 지닌다고 생각 되어진다.
지구화의 개념과 지구화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한 점은 현 상황에 대한 '직시'가 중요하다. 즉 한미 FTA에서 보여지듯, 그들의 자유무역협정이 상대방에 대한 이익의 배려인가, 자국의 이익 우선인가를 점을 읽으면 된다. '과대지구론자들' '변환론자'처럼 지구화가 새로운 대안체제라면 지금 이루어지는 모든 협의나 행위가 공공의 이익(지구촌 다수의 사람이나 훨씬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들에대한 배려)으로 논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제1 장 영토국가와 지구적 정치.
여기에는 어떤 시선이 들어가지 않는 객관적인 듯 해 보이지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지구화에는 주관적(힘의 논리)위협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본다. 지은이는 이런 점에 대해서는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며-제 학파의 개념에 대한 세계관을 잉태하지 않은 체, 물 위의 흐름만 읽어낸다. 이는 양비론적 입장에 서서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자기 색을 던져주지 않기에, 치열하게, 책을 읽으면서 내 눈에 비친 현실을 불러 넣어야 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내 눈은 이런 점에서 '회의적 시야'에 가깝다)
"국제기구와 국제조직의 발전이 세계 정치의 우선 결정 구조에 중요한 변환을 가져왔다.(중략) 그뿐만 아니라, 1946~75년 사이에 정부관에 효력을 미치는 국제조약의 수가 6,351개에서 14,061개로 2배 이상 증가하였고, 정부간 기구를 포함하는 국제조약의 수 역시 623개에서 2303개로 늘어난 점도 흥미롭다."(95쪽)
수의 늘어남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행위의 주체가 누구이며 조약이 이루어졌을 경우 혜택을 보는 입장은 누구인가가 대단히 중요하다. 브레진스키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미국이 상대적 혹은 절대적 우위에 놓인 조약에 대해 이야기 했다. 즉 무늬는 국제적 조약이지만 힘의 주체는 미국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서로 간의 협약이지만, 그 힘의 논리에서는 미국이 장악하고 있으며 여타의 나라는 들러리가 된다는 것이다. 이는 UN이라는 국제 조직 기구를 허수아비로 만들고,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을 보면 국제 조약의 의미는 평화시에만 유효함을 알 수가 있다.
지은이는 [전지구적 변환]을 논의하면서 역사적, 실증적 논의를 풀어내고 있다.
"이런 모든 변화상은 순수한 국가중심적 정치에서 벗어나 다층화된 지구적 공치의 새로운 복합형태로 나아가는 변화추세를 명백히 보여준다. 현재의 역사적 국면에서는 다중적, 중복적 정치활동이 진행되고 있다"(138쪽)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는 내 마음의 문제이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냉철한 시선을 딛지 않고 맹목적으로 내가 바라보려는 곳으로 보는 것은 개인적 행복을 가져다 줄지 몰라도 사회적 책임은 남겨두게 된다. 나는 현실이 어떻한지 명확하게 인지하고 그 위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런 점에서 지은이의 시선과 닮았지만 현실에 대한 '세계관'은 조금 차이가 난다고 느겨진다. 그는 스스로 말하지 않고 있지만 '과대지구론자'와 '변환론자'적 색채를 머금고 있다.
* 인권 부분(112-118쪽)에서 상당한 '희망적 논의'를 펼친다.
제2장 무기 수출에 따른 역학 부분
"이로써 세 가지 중요한 정치적 결과각 초래되었다. 첫째, 자원만 있으면 모든 나라에서 최신식 무기씨스템을 비교적 손쉽게 확보할 수 있었다. 둘째, 무기구매자는 끊임없이 무기공급처의 다변화를 꾀하게 되었다. 셋째, 무기거래의 효과적 통제를 위해서 국제적 협력이 필요하게 되었다."(177쪽)
지은이는 무기수출에 따른 집중도를 나타내지 않고 있다. 산별적으로 "무기를 수입하는 나라가 60개국, 그 밖에 보호령 또는 식민지가 60여곳(178쪽)"이라고 말한다. 즉 이는 아주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무기 수출에 따른 비중이 독과점수준이라면 어떻게 볼 것인가, 그리고 한 나라의 무기 수출과 정치와의 관계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를 수입하는 나라가 제 3세계이거나 개발도상국인점? 독과점으로 인해, 국제 정세가 끌려가지 않는가하는 논의 등이 빠져있다.
그는 현상황의 흐름만 그려내고, 그 밑(-토대)에 깔린 역학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음이 보여진다. "무기공급 상위 6개국(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 러시아, 독일)"은 "25개국"에 90%이상의 무기를 팔아먹고 있다.(184쪽) 과연 상위 6개국의 무기 수출과 25개구의 무기 수입관계 속에 지구화가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가?
역사를 데리고 와서, 길게 이야기를 풀어놓지만 지구화가 누구의 손에,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라는 점은 때어놓고 '이루어지고 있다'는 실증적 논증만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그렇기에 내가 읽어가는 그의 책은 계속적인 '실증적 논증'의 서술과 반복으로 인해 지루해진다. 그람시의 말을 빌리자면, 지구화는 누구의 헤게모니로 가속화 되고 있는가 궁금하다.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 회원국이 전세계 무기지출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했고, 두 초강대국만 따져보아도 전세계 군사지출 총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180쪽)
* 1960년대 ~1990년, 소련의 해체전 시기까지
"양대전 중간시기에는 무기 이전 체계의 범위가 분명히 지구적이었지만 현대에는 그 체계가 훨씬 집중적이고 다자간 규제의 대상이 되며 무기확산의 특유한 매커니즘을 반영하면서도 고도로 제도화된 국가간 외교와 외교정책 양상을 보인다."(208쪽)
모든 논의는 위에서 한 발 짝도 나오지 않고 있음이 보여진다. 안타깝다. 이런 시선이 무역에서도 이어진다는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혹시라도 내 눈이 너무 치우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원칙적으로 무역은 한 나라의 복지에 순익을 가져오므로, [일국내에서]이익이 손해를 벌충하고도 남는다. 이런 점에서 더 개방된 경제권이 일반적적으로 더 큰 규모의 복지국가라는 사실은 놀라울게 없다."(285쪽)
그의 입장은 보호무역에 상당한 거부와 친자유무역에 대한 깊은 호감을 보인다. 보호무역은 '파편화'되었고, '무역자유화를 향한 전세계 추세'가 진행되고 있음을 역설한다. 이러한 논의는 친자유무역이 '복지국가'라는 공식으로 다가선다. 솔직히 이 부분에서 의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앞서도 논의 했지만, 과연 자유무역을 요구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은체, 자유무역으로 인해 3차 산업으로 전략하고, 금융 서비스는 선진국, 강대국에 독점되는 모순적 상황은 논외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장하준 교수의 『사다리 걷어차기 』에서 보여지는 강대국들의 보호무역에서 자유무역의 갈아타기에 대한 비판이 전혀 없음을 인지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다 읽지는 않았다. 분명 위에 논의한 부분까지 읽었음을 밝힌다. 아울러 지은이의 기술 방식이 역사적, 실증적, 논증적, 객관적인 관계로 보여지지만 간혹 지구화가 필연적이며, 자유무역이 복지국가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로 표현함에는 견해를 달리한다. 나는 그의 실증적, 논증적, 학문에 대해서는 높은 평가를 하지만 학자가 아닌 나는 그 많은 숫자가 부담스럽고 거추장스럽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러한 전지구적 변화를 주도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궁금하다. 하지만 지은이는 함구하고 있다.
추신 : 책을 읽는 또 하나의 방법.
① 옮긴이의 말을 유심히 따라가본다. 그는 전체의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요약하고 긍정적인 면을 상세히 그려넣었다.
② 내가 가장 관심가는 분야의 글을 읽어본다. 그와 나와 치열한 머리싸움을 벌인다.
③ 읽어가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답을 얻은 다음 진행을 한다.
나는 생각한다. 아무리 대학 교수가 칭찬해도, 세계 석학이 옳다고 해도 내 머리가 작아 그들의 말을 받아 들이지 못하면, 내게 맞는 책이 아님을. 어린이에게 세계 명작이나 수학 정석을 주면 무리가 아닌가. 다음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집을 볼 요량으로 책꽃이 한 구석에 놓아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