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8개월이나 여행을 하고 있는데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건 아니가, 사회에서 이탈해 있는건 아닌가 고민한 적은 없어?
가끔 그런 회의가 들곤해.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문제가 있는건 아닌가 하는, 하지만 그런 불안과 혼란은 내 안에서 스스로 생기는 건 아니야. 여행을 마치고 독일에 돌아간 다음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이냐고 묻는 사람들 때문에 생기지. 그런데 그런 문제를 그다지 걱정하지는 않아. 그건 사람들이 내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일 뿐이지. 나는 나 자신을 믿어. 전과는 다른 모습이겠지만 돌아가야 할 때가 오면 언제든지 돌아갈 거야.”(140쪽)
1.
여행 좋아하나요?
어디가서 무엇을 볼 건가요?
가면은 어느 정도 머무르나요?
내 나이 빵빵 되도록 여행에 동경을 하고, 그 그리움을 책으로 달래고, 부산 앞바다에 물장구 치는 것으로 다했다는 듯이 지내곤 했다. 즉 여행, 늘 꿈꾸는 일탈이지만 벗어나서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을까? 왔을 때 너무 늦거나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 가서는 무엇을 볼까라는 걱정. 이러저러한 일들이 그물코 마냥 촘촘하게 짜여 내 발길을 막는다. 어디든 발딛는다는게 조심스럽다. 하지만 이 두려움을 꾹 누르고 낯선 길로 발을 디디면 분명 ‘낯설다’. 그런데 이 낯설음이 설레임과 충만함으로 다가온다. 뭐든 할 수 있는 자유, 뭐든 하지 않을 자유, 숨 쉬는 것 조차 내 의지에 달렸다. 모든 건 내 의지에 따라 움직이며, 그 의지는 행복과 친구이다. 떠나고 나서야, 두려움 뒤에 펼쳐진 꽃밭을 보았다. 이 두려움의 돌문을 열기가 어려웠지, 그 너머에는 T.V에서 보여주지 않던 무릉도원이 있었다. 현실에서 돌아와서는, 내가 열었던 그 돌문을 그리워 하며, 내 발은 언제나 그 길을 향해 있었다.
나는 나처럼 깊은 병에 걸려, 거리를 방황하는 이들을 만났다. 분명 그들은 다수의 눈에는 ‘비(非)’가 붙는다. 어찌 집과 가족, 일자리 그리고 무엇보다 앞날에 대한 착실한 설계를 접고 다닐 수가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나는 조금 맛을 안다. 그리고 같은 병을 갖고 있다. 나는 내 친구와 같고 선생과도 같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난 시절의 여행을 되새김질 하고, 여행의 지혜를 관찰한다.
2.
길 위에서의 만남,
왜 여행을 하는가?
여행을 하면 뭐가 좋은가?
기억에 남는 장소는…
후회는? 지금 이 순간 행복한가?
수 없이 줄을 세워라. 그리고 내가 생각하지 못한, 화석화된 겁먹었던 얘기를 선생(先生)의 입을 통해 들어라. 이런 면에서 지은이는 충실한 길잡이가 된다. 그는 여러 사람을 모아놓고 ‘여행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렇다면 지은이가 가진 여행에 대한 세계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가 묻지 않는 이야기를 여행객이 밤낮을 세워가며 이야기해 줄리도 없기에. 또한 그의 울음이 얼마만큼 다양하고 깊은가도 중요한 문제로 남을 것이다.
여행, 그는 선생-여행객-을 통해, 여행으로 초대한다. 여행에 대한 동경과 성찰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과연 잡을 수 있을까?
지은이는 ‘카오산 거리’를 그리워한다. 전세계 여행객이 모이고, 여행객의 물품이 돌고 도는 곳, 한 자리에서 전세계의 사람을 볼 수 있다니. 이 자체로도 흥미만발!! 그런데 그는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않는다. 카오산의 성역, 즉 [소도]는 거리를 벗어나서는 안된다. 헌데 이 거리는 ‘소도’이면서 ‘세탁소’이다.
“도로변에는 여행에 필요한 가짜 학생증이나 신분증을 만들어 주는 노점상도 버젓이 있다. 만오천원이면 그럴싸한 가짜 신분증을 만들 수 있다.”(22쪽)
기념품으로 간직하는 물건이 아니다. ‘소도’로서의 공간이 아닌, ‘세탁소’로 전이된다. 가오산에 가면, ‘흑이 백이 되고, 백이 흑이 된다’ 뭐가 옳고 그름이 흐려지는 무질서와 혼란이 존재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 거리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풀어낸다. 물론 가오산의 거리에서 통용되면, ‘소도’로서의 성역을 지니지만 그 학생증이 카오산의 거리를 벗어나면 질서를 빨아 들이는 블랙홀로서, 무질서를 흩날리게 되는 자리가 된다.
이런 아쉬움을 안음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다. 주제는 길 위에서 만난 사람이며(-카오산 거리에서 만난 사람!) 몇 해를 여행 한 것을 알짜배기만 가려뽑아 재미나게 들려준다. 이렇게 이렇게 하는 게 ‘정답 ‘이라고 할 때, 여행은 성립 되지 않는다. 그냥 떠나고,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면 된다. 이런 점에 이 책이 지니는 미덕은 다양한 사람들의 여행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거리의 손님들이 건내는 이야기 속에 깊은 성찰이 담겨져 있다는 점이다. 지은이가 바라보는 시선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가르켜준다.
3.
그 거리에서면 나도 그들을 만날 수 있을까?
배낭을 하나 사야겠다. 사진기를 준비해야겠다. 고추장을 담가야겠다. 연필을 두 개 사야겠다. 속옷도 두 장, 신발은 한 켤레… 이 병은 약국이나 방에서 몸보신 한다 해도 고칠 수가 없음을 나는 충분하 안다. 책장에 꽃힌 책을 볼 때 마다, 왠지 모를 가슴에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