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묻힌 여성 - 여성의 눈으로 본 선사시대, 젠더 고고학의 발견
마릴렌 파투-마티스 지음, 공수진 옮김 / 프시케의숲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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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고고학 자료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젠더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깨뜨리고자 한다. 그러나 거기서 얻어진 결론은 새로울 게 없었다. 저자가 그동안 투쟁해온 여성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하려는 점은 이해했으나 그럼에도 핵심의 비중이 적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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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1-18 1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기대한 책이었는데.. 어쨌든 저도 끝까지 읽어볼게요!!

거리의화가 2023-11-18 20:1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제가 원래 점수를 짜게 주는 편이라! 읽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3-11-18 1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려요! 저도 부지런히 읽어가고 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11-18 20:15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께서는 저보다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던져주실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청아 2023-11-18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완독 수고하셨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11-18 20:16   좋아요 1 | URL
미미님도 완독 축하드려요^^
 

4장

저자가 가부장제 등에 의한 여성들의 지난한 싸움에 대한 역사를 왜 다루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선사학과 고고학에서의 여성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함임을 어느정도 이해했다.

남자는 물론 여자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특히 역사와 선사시대에서 각자의 역할을 복원해야 한다. 지난 60여년간 여성사 연구에서 전념하는 과제는 ‘여성들을 보이게하라‘는 것이다. 여성 역사가 미셸 페로의 주장처럼, 여성사는 이러한 "특수성의 실체에 관해 연구해야 할 것이다." 1960년대까지 여성에 대한 가설은 대부분이 남성들이 작성한 것이었다. 그래서 철학가이자 심리분석학자인 모니크다비드-메나르의 표현을 가져다 쓴다면, "놀랍도록 반역사적‘이었다. 이는 극소수 여성이 학문 분야의 연구자나작가"가 될 수 있도록 해주는 대학 교육을 받았던 것과 분명 - P277

히 관련이 있다. 20세기가 될 무렵 아주 조용히 등장한 여성사는 영미 역사가들의 연구와 1960년대 말에 일어난 사회운동 덕분에 미국에서 먼저 발달했고 뒤이어 유럽에서도발달하게 된다. - P278

조앤 스콧 이후 거의 30여 년이 지났을 때, 여성역사학자 이사벨 에르노는 "여성사와 젠더사는 역사를 변화시키지 못했고, 그 공헌에 대해서도 인정받지 못했다"고하면서, 이 작업에 맞부딪히는 저항이 너무 세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 작업은 너무 유토피아적인 걸까, 아니면 저항 요소가 너무 강해서 실현되기 어려운 걸까?" 역사에 대한해석은 우리가 놓인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기에 에르노가 제안한 것처럼, "하나로 통제된 것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류학적 접근과 학제 간 접근을 기반으로 반론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연구할 필요가있다. 우리는 에르노의 주장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미력하나마 우리가 이 책에서 하려는 일이기 때문이다. - P280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에 더가까운 성차별주의자들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것은 특히나젠더 고고학이 해야 할 작업이다.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이제 틈이 벌어졌다. 그 틈은 여성이 역사 안에서 올바른 자리를 되찾기 전에는 닫히지 않을 것이다.
선사학은 이 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가부장제가 - P281

근본적인 명분을 찾고자 하는 먼 과거의 심연을 선사학이탐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고학은 이에 대한 어떤 정당성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지식이 많아질수록 가부장제에 인류학적 근거가 전혀 없음이 드러난다. 가부장제는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 만큼 깊이 뿌리 내리고 있지만, 기준을 바꿔서 가장 오래된 사회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젠더 사이의 위계화가 사실은 편견에 근거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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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로 3장까지 읽었다. 특히 2장이 많이 아쉬워 솔직히 실망스러웠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니 기존에 해왔던 이야기를 답습하는데다가 책의 주제와도 크게 관련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음을 먹고 3장을 읽었는데 다행스러웠고 읽기 잘했다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3장이 이 책의 가장 핵심이 담겨있는 듯하다.


내가 선사시대 여성들에 가졌던 생각은 여신의 이미지, 다산과 출산, 여성성과 아내의 표상, 풍요로움과 비옥함의 이미지였다. 특히 신석기 시대 이후는 말이다. 왜 그런가 생각해보았는데 이는 역사 공부를 하면서 배웠던 자연스런 수용과정의 일환이었던 것 같다. 

'신석기시대 농경과 목축을 시작했고 기존의 이동생활에서 정착생활로의 전환이 이루어짐으로 인해 여성은 아이를 돌보고 가정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라는 틀이 내 머릿속에 잡혔다. 

대부분 우리들이 가진 선사시대 여성에 대한 이미지는 구석기 때는 동굴 생활을 하면서 무리 생활을 하고 거기서도 남성이 주로 사냥을 하고 여성은 채집을 한다 라는 식으로 정의되어 있고 신석기 때는 정착 생활을 하며 여성에게 가정을 안전하게 보살피는 역할이 강조된다는 식으로 자리잡혀져 있을 것 같다. 거기에 우리 머릿속에 18, 19세기 이후 여성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 덧붙여지면서 여성이 특정한 일을 담당한 것으로 규정되고 강화된 것이 아닐까. 여기에 페미니스트들이 선사시대 여성에 대한 편견과 가설에 대한 해석을 폄하하는 경향도 불에 기름을 부은 것이라 여겨진다. 저자는 특히 보부아르의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결국 저자가 말하는 바는 이것이다. 구석기시대에 여성이 사회, 경제, 문화적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다고 배제할만한 고고학적 증거는 전혀 없다.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진화에 공헌했다. 


"처음부터 원래 그랬다"라는 내용을 자주 읽지만, 신화는 원초적인 모습 그대로 전해지지 않는다. 새로운 버전이 나와 옛것을 덮어쓰고 대체하는 것이다. [P217]


새롭게 발굴되는 고고학 자료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끊임없는 새로운 연구가 발견되면서 기존의 가설이 뒤집히기 때문이다. 과학에 '반증가능성'이라는 용어가 있는 것처럼 말이다. 


기존에 가부장제의 창조를 잘 읽었는데 이 책은 거기에는 담겨 있지 않은 최근 고고학의 발견을 통해 재정의된 여성의 모습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이 값진 점이 거기 있는 것 같다. 


재미를 보장하기는 어렵지만 역사,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3장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사라 바트만의 이야기였다. 3장은 내용이 길기도 길어서 읽는데 시간이 제법 걸릴 수 있다. 나는 자료를 찾아보면서 이미지를 확인하며 읽느라 더 걸렸지만 그만큼 충분히 값진 경험이었다. 


대다수 인류학자와 선사학자는 성별 노동 분업이 이미 구석기시대의 공동체에서도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성별 노동 분업을 인간 사회에서 최초로 등장하는 사회적 노동 분업의 형태로 생각하는 연구자가 많지만, "사실 선사시대 노동의 대부분은 체력이 기본으로 되는 일은 거의 없고, 남녀 상관없이 기술적 능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P152]


성에 따른 노동의 분화는 신석기시대 초기의 예술에서 꽤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그림에서는 여성들이 채집만 담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의 뼈를 연구해보니 다른 활동도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신석기시대 중부 유럽의 여성의 팔은 현대의 여성 스포츠 선수보다 더 강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에도 몸집이 다부지고 근육이 발달한 여성들이 확인되므로, 이들이 이 시기에 담당했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P193,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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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1-17 23: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랙 비너스라 불렸던 그 사라 바트만이요? 고고학책에서 의외네요. 화가님, 저도 이 책 읽는다 읽는다 하다 미루고 있었는데 제목과 표지보고 제가 짐작했던 방향인것 같아요 올려주신 글을 보니^^ 저도 천천히 화가님 따라 읽어야겠네요

거리의화가 2023-11-18 10:09   좋아요 1 | URL
네 맞아요. 마치 동물원의 동물 취급하는 것 같아 기분이 무척 불쾌하더라구요. 저는 이 책이 고고학 비중이 클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여성사에 대한 분량이 많았습니다. 3장은 사례가 많아 읽기가 지치기도 하는데 고고학적 사례가 많아서 저는 좋았어요. 알라님께 새로운 지식을 얻게 되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다락방 2023-11-18 09: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거리의화가 님도 2장 재미 없으셨군요!! 어휴 저는 읽느라 미치는 줄 알았어요. 기대하며 3장 읽어볼게요.

거리의화가 2023-11-18 09:42   좋아요 1 | URL
ㅎㅎ 다락방님이 재미있을만한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3장 때문에 일단 이 책에 점수를 줬어요! 화이팅입니다.

책읽는나무 2023-11-19 07:4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넘나 길게 나열된 2장의 자료 수집용 인용 예시들이 꽤나 지루해서 시간이 좀 더뎠던 것 같아요.
3장부터는 좀 괜찮았어요.
살짝 생각의 관점도 바뀌었구요.
3장이 가장 핵심이로군요.
아직 3장에 머물러 있어요.^^

거리의화가 2023-11-19 16:37   좋아요 1 | URL
2장은 우리가 기존에 익히 읽어왔던 여성 혐오의 역사여서 지루하게 느꼈을 것 같아요. 처음 접하면 새롭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그동안 쌓인 지식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겠죠?
역시 나무님도 3장이 더 나으셨나봐요. 다행입니다. 3장이 길기도 하고 여기도 마찬가지로 사례가 많아서 자료 검색하고 하는데 꽤나 걸리더라구요. 사실 포스팅에 그 내용까지 적을까 하다가 너무 길어져서 다 뺐습니다. 나무님 남은 분량 화이팅이에요!

dollC 2023-11-19 1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2장 너무 지루했어요. 사례만 나열되다보니 좀처럼 집중하기 힘들더라구요. 그래도 꾸역꾸역 읽긴했지만요;;
최근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을 다시보고 있는데요. 출연자 중 한 분이 하는 말이, 선사시대부터 남자는 사냥하고 여자는 동굴청소하고 어쩌고... 그러더라구요. 하하. 동굴청소라니ㅋ
어쨋든 지금의 상식이나 일반적 지식이 편향된 것일수도 있고, 자기 의견의 근거로 삼기 이전에 재확인할 필요성은 충분한 것 같아요. 하... 동굴청소...

거리의화가 2023-11-19 16:39   좋아요 1 | URL
2장이 지루하셨다는 분들이 많네요^^ 사실 저도 하품하며 읽었어요ㅠㅠ
동굴청소ㅋㅋ 누군가요?
아무튼 고정 관념을 깨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이겠죠.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그런 발언 자체를 덜 하거나 말하기 전에 조심스럽게 내뱉을 것 같습니다^^
 

[B.C.53]

한나라 효선제가 황태자가 유약하고 유학을 좋아하기만 하여 등용한 관리들이 ‘문’에 치우쳐 있어 비판하였더니 이에 온공이 대답한 말이다.

온공이 말하였다.
왕도와 패도는 도가 다르지 않아서 옛날 삼대가 융성할 때에 예약과 정벌이 하늘로부터 나오면 이것을 왕도라 이르고, 천자가 유약하여 제후를 다스리지 못하는데 제후가 동맹국들을 거느려서 함께 조회하지 않는 자들을 토벌하여 왕실을 높이는 자가 있으면 이것을 패자라 일렀다.
왕자나 패자가 행하는 것은 모두 인에 근본하고 의를 원조로 삼으며 어진 이에게 맡기고 능력 있는 이를 부리며 선한 자를 상 주고 악한 자를 벌주며 포악한 자를 막고 난을 일으키는 자를 주벌하니, 다만 명성과 지위에 높고 낮음이 있고 덕택에 깊고 얕음이 있으며 공업에 크고 작음이 있을 뿐이요. 흑색과 백색, 단맛과 쓴맛처럼 서로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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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쓴 5백년 고려사 - 박종기 교수의 살아있는 역사 읽기
박종기 지음 / 푸른역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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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묵힌 먼지를 털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집의 먼지가 하루만 지나도 쌓이는데 세월이 훌쩍 지나간다면 어떻겠는가. 이 책도 언제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묵힌 것이었다는 이야기다. 확인차 뒷면을 보니 2013년 6쇄본이라고 적혀 있었다. 책 제목으로 검색을 해보니 신판이 2020년에 나와 있었다. 신판이 나온지도 몇년 전인데 구판을 읽으려니 민망했지만 그렇다고 책을 폐기하는 것은 예의가 아닐 것이기에 집어들었다. 내용에 변화가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앞으로 집에 있는 책들을 너무 묵히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이 책은 5백년에 가까운 고려사를 한 권에 담고 있다. 저자인 박종기 교수는 고려사 전공자로 관련 책들을 많이 내신 분이라 어느 정도 믿음이 갔다. 조선사는 사료가 많아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역사를 접할 수 있고 고대사는 사료는 적지만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으로 인해 오히려 역사가 제법 다뤄진다. 그러나 고려는 상대적으로 소략하게 가르치는데다가 그것도 외교와 문화 분야에 치중되어 아쉬운 점이 많다. 


저자는 역사와 현실을 어떻게 일치시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고려의 역사와 전통을 대한민국 사람들이 더 친근하게 느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이 책을 썼다. 저자는 한국의 역사학이 식민주의 근대화론도 아니고 민족주의론도 아닌 제3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은 전쟁으로 인한 분단 이후 이념의 고착화로 여전히 이분법적 논리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고려의 역사를 확인하면서 오늘의 현실에 투영해야할 메시지는 특히 ‘다양성’이라는 것에 방점을 찍어야 할 것 같다. 


고려왕조는 매우 다원적인 사회였습니다. 중앙에 외척이나 문벌집단과 같은 폐쇄적인 정치집단이 존재하면서도, 끊임없이 향리와 같은 지방세력을 중앙으로 흡인하여 새로운 관료집단인 사대부집단을 형성해 다양한 정치사의 전개가 가능했습니다. 또한 군현 지역과 부곡 지역 등 복합적이고 차별적인 지방제도를 통해 민에 대한 국가의 지배력을 강화해나가는 한편, 청자와 불화로 대변되는 고도의 질을 추구하는 고급문화와 거대한 불상∙성황신앙∙향도신앙 등 지방세력의 독자적인 지방문화가 병존하는 사회였습니다.

고려가 이처럼 다원적인 사회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고구려와 백제의 인적∙문화적 자원을 흡수하여 최초의 실질적인 민족통일을 완성했기에 가능했습니다. (P44)


고려왕조는 지방의 호족세력이 주축이 되어 세웠기 때문에 왕건은 그들을 포섭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호족의 근거지를 본관으로 삼고 성씨를 부여해주면서 그 지역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 본관제가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덕분에 도망하는 민도 줄어들었고 토지를 개간하여 농업 생산량이 향상되어 향촌이 안정될 수 있었다. 


고려의 기본적인 토지제도는 ‘전시과’였는데 이는 개인, 관청이 독자적으로 재정을 운영하도록 하고 국가세입지만 필요한 예산을 지급하고 국가가 조세를 직접 수취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직역(직업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토지가 1:1로 지급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역 간 발전 격차가 컸기 때문에 균형적인 발전이 필요해서였다. 다만 사전의 독자적인 운영이 소유권 분쟁을 일으키거나 탈점(오늘날의 ‘먹튀’라고 할까)까지 일으켜 항쟁과 민란의 원인이 되고 말았다. 


고려 신분제는 양천제로 양인에는 직역을 부담하는 정호, 일반 요역을 부담하는 백정, 기능직을 담당한 잡척이 있었고 천인에는 노비가 있었다.

고려는 전국을 경기, 5도, 양계로 나누었다. 경기는 개경을 포함한 중심 지역이고 5도는 지방 중심 구역, 양계는 군사 중심 지역이었다. 지방은 군현-주현-속현-향/소/부곡으로 명칭이 구분되었다. 주현은 중앙에서 지방관이 파견되는 곳이고 속현은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점이 달랐다. 총 500 여개의 군현 중 370개의 속현, 130개의 주현이 존재했는데 고려 말, 조선 초가 되면 대부분의 군현이 해체가 된다.


고려의 외교를 보통 실리 외교라 부른다. 이 때 강동6주를 포함한 압록강 유역은 고려 뿐 아니라 부근의 국가들에게 중요한 위치였는데 방어적으로 요충지여서만은 아니고 교역의 중심지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여러 외침이 있기는 했지만 고려는 몽골이 등장하기 전까지 실리적 외교를 펼쳐 나갔으나 그 이후에는 불가능해진다. 몽골은 쿠빌라이가 집권하면서 국호를 원으로 바꾸었고 국가의 성격도 바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 고려의 대외정책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었으며 고려는 원의 내정 간섭을 받게 된다. 


고려 문화 하면 팔만대장경, 불화, 석불, 청자 정도만 떠올렸는데 나전 기술과 팔관회 문화가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특히 팔관회는 고려가 천자국임을 과시하고 다양한 민간 신앙을 국가에 녹여내어 통합력을 높이는 구심점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다양성을 추구하는 고려 사회에 대표적인 문화가 아니었나 싶다.

고려 사회는 균분상속, 윤행봉사, 여성도 호주가 될 수 있는 등 남성에게만 권위가 주어지지 않는 문화였다는 것도 다시 새겨두고 간다.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Korea라는 명칭은 고려를 외국이 부르던 이름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공교롭게도 2주 전인가 <역사저널 그날> TV 프로그램에서 이 주제를 다루었는데 ‘고려’라는 명칭은 궁예가 먼저 쓴 것이라고 하더라. 물론 이것도 가능성이 높은 추측이나 가설일 뿐 알 수 없다. 


고려의 역사는 우리에게 전쟁과 외교, 화려한 문화 정도만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그게 다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조차도 시험 공부를 할 때는 핵심만을 공부하듯 해당 부분에만 집중한 것이 아닐까 싶어 반성의 마음이 일었다. 역사는 끊임없이 보이지 않는 측면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필요한 학문인 것 같다. 


얇지만 꽤나 알찬 책이다. 책의 각 페이지에는 고려의 역사적 사건이 연도별로 적혀 있어 센스를 더했고 거의 매 챕터마다 저자의 메시지가 담겨 있어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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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1-14 0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사둔 책이지만 지금이라도 보셨군요 얼마전에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을 보셔서 이것도 보신 게 아닌가 싶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11-14 08:49   좋아요 1 | URL
네. 고려사 읽기를 다시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부터 <고려거란전쟁> 사극이 시작된 것도 있어서 겸사겸사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