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3 - 만적에서 배중손까지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3
KBS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이익주 감수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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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민‘의 힘을 믿는 편이다. 우리 역사상으로도 ’민‘은 많은 역할을 해왔고 때로는 주도적인 힘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어왔다.
3권은 특히나 민의 힘이 돋보이는 주제들이 많아서인지 지금 나라 꼴이 엉망이어서이기도 하지만 힘이 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주제 파악 좀 하시지.‘라는 말을 우리는 많이 듣고 산다. 그런데 주제 파악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계급이나 신분을 뛰어넘는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것임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어쩌면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박차고 일어난 ’민‘들을 생각하면 전율이 인다. 그 세세한 이름들을 알 수 없어 더욱 그렇다.

3권은 민란을 일으킨 주인공들을 다루며 시작한다. 먼저 만적은 최충헌의 노비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왜일까? 고려사에서 ‘만적의 난‘ 사건은 최초의 신분해방운동의 성격을 가진다. 그는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를 주장하며 신분해방을 꿈꿨다. 하물며 주인인 최충헌이 무신시기 집권자인 상태에서 말이다. 물론 그 전에 이의민이 소금장수 출신의 천민으로 무신 집권자가 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입장에서는 본보기가 있다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삼국 시대에도 신분 차별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며 봉기가 일어난 경우가 있지만 만적은 신분 해방을 꿈꿨다는 측면에서 그 경우가 달랐다.
공주에서는 망이, 망소이의 난이 일어났다. 당시 공주는 ‘부곡‘에 속하던 곳이었는데 이곳은 ‘향‘과 마찬가지로 농산물을 생산했다(‘소‘는 수공업품이나 광물, 수산물을 생산). 고려 시대 지방 체계는 주현-군현-향소부곡 구조로 주현만 지방관이 직접 파견되는 형태였다. 처음 교과서에서 향소부곡을 배울 때 잘못 배웠는지(그 이후에 바뀐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에 사는 이들이 천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해였다. 고려 시대에 천민은 국역을 지지 않으면 천민이고 나머지는 다 양인이다. 향소부곡도 국역을 지기 때문에 당연히 양인이다. 다만 주현이나 군현의 주민들보다 조금 천한 일을 하는 것 뿐이다. 이번 기회에 향소부곡민이 양인이라는 것을 재확인하고 넘어간다.

최충헌 집권 시기는 길었던 만큼 자기 손으로 두 명의 국왕을 폐위시키고 두 명의 국왕을 옹립시켜서 결과적으로 여러 임금을 모셨다. 앞서 2권 후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최충헌은 개인에 대한 권력욕과 탐욕이 많았던 인물이었던 만큼 왜 스스로가 왕이 될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궁금했을 수 있다. 그래도 하극상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여겨서일 수도 있겠지만 민심의 눈치를 살폈던 이유가 아무래도 더 클 것 같다(생각은 했지만 감행을 안 한 것일지 모르나 이것은 기록에도 없고 추측일 뿐이다).
최충헌의 권력이 끝모르게 비대해지자 희종은 그의 권력을 견제하기 위해 암살을 시도한다(최충헌은 이를 비롯하여 여러 차례 암살 시도를 받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암살은 실패했고 희종은 유배길에 오른다. 그런데 이후에도 희종은 최충헌에 대한 견제를 멈추지 않았고 최충헌은 결국 희종을 폐위시키고 강화도에서 명종의 맏아들인 왕숙을 데려와 강종으로 옹립시키게 된다. 앞선 의종은 망나니였다고 쳐도 희종의 암살 시도가 성공했다면 어땠을까. 아들인 최우가 있었다지만 아버지가 살해당한 만큼 최씨 집권이 더 이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어쩌면 무신 정권 자체가 종료되었을수도 있지 않을까.

몽골은 앞선 거란과 여진의 침입과 다르게 고려에 큰 피해와 영향을 주었다. 그렇지만 몽골이 침입한 국가엔 흔적 하나 남지 않았다는 역사를 보면 고려는 왕조를 지켜냈고 얻을 것은 얻어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후손으로서 감사하면서도 뿌듯함을 느끼게 한다.

몽골군은 고려 땅에 언제 들어오게 되었을까. 1218년 12월 거란이 침입했을 때 거란군을 따라 몽골군이 떠밀려 내려온 것이 그 시작이었다. 몽골군도 처음에는 형제 관계를 요구하였으나 앞선 거란과 여진과 달리 지나친 공물과 보상을 요구하면서 고려에 부담을 주게 되었다. 어느 날 몽골 사신인 제구예가 들어왔다 피살되자 양국 교류는 단절된다. 범인은 고려일 수도 있고 몽골(의 자작극)일 수도 있고 동북쪽에 있던 동진이라는 나라일 수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추정 세력일 뿐이고 정확하지는 않다. 어쨌든 몽골군의 1차 침입의 명분은 이 사건(이라고 주장) 때문에 발생한다. 1차 침입(1231.9) 때는 귀주성에서 큰 전투가 있었다. 여기서 정주 지방의 장군을 맡고 있던 김경손이 불과 12명의 군사를 데리고 성문을 나와 몽골군을 기습 공격하면서 긴장시킨 덕분에 무려 4개월 동안 성을 지키며 전투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고종은 더는 전투를 이어가는 것은 피해를 키우는 일이라 보았기 때문에 지휘관인 박서에게 항복을 종용하면서 몽골과 화친(1232.1)을 맺게 된다.

1232년 7월 최씨 정권이 강화도로 천도하면서 40여년 가까운 강화도 시대가 시작된다. 최씨 조정은 강화도에 있었으나 와중에도 산성이나 섬으로 대피하는 방식으로 몽골군과의 전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산성에는 산성방호별감이라는 관리자를 파견하여 수령을 지휘하게 하고 백성을 위한 구휼 사업도 하였다. 문제는 강화도 최씨 정권의 탐욕이다. 병사들과 백성들은 전투로 다치거나 죽어가고 있는데 그들은 세금으로 연회를 열고 펑펑 놀았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왜 집권자들이 되면 이리 엉망이 되는지 모르겠다. 인간의 욕심이 결국 발현되는 것이겠지.
1232년 8월 몽골이 2차 침입을 단행하자 처인성(지금의 용인)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승려인 김윤후가 주연급 활약을 하였는데 그는 백성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면서 전투를 승리로 만들었기 때문에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처인은 원래 부곡이었으나 주현으로 2단계나 승격되었다). 기억해야 할 인물이 있다면 홍복원인데 그는 몽골에 귀부해 관리가 되고 세력을 얻어 이후 몽골 침입 때마다 길잡이 노릇을 한다. 고려판 앞잡이로 보면 되겠다. 사람의 선택은 한 순간이지만 역사에 어떻게 이름을 남기는가는 그조차도 몰랐을 것이다.
몽골의 3차 침입은 1235년에 시작해서 무려 5년 간 이어졌고 경상, 전라 지역까지 몽골군이 밀고 내려오면서 문화재까지 소실되는 등 피해가 극심했다. 1241년 우구데이 칸이 사망하고 1246년 구육 칸이 즉위하면서 몽골 내정이 혼란했기 때문에 전쟁은 잠시 멈추어졌으나 다시 1247년 4차 침입이 이어지고 1248년 구육 칸이 사망하여 다시 휴지기를 갖다가 1253년에 5차 침입이 이어진다. 5차 침입 때는 몽골이 철저히 준비를 하고 나와 공성 무기와 발화 무기를 사용하여 방어에 주력하던 고려군이 힘에 부칠 수 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충주성 전투에서는 2차 침입 때 처인성 전투에서 활약한 김윤후가 다시 백성들을 이끌어내며(노비 문서를 소각해주겠다라는 명분) 활약한다.

쿠빌라이와 원종의 만남은 고려 시기를 좌우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사건이었다. 태자였던 원종은 신의 판단력으로 당시 즉위 순위 1위인 아릭 부케를 만나러 가지 않고 쿠빌라이를 만났고 쿠빌라이가 칸에 즉위하면서 원종은 고려를 안정적으로 이끌 동력을 얻게 된다.
1254년 몽골이 6차 침입 후 고려 땅을 떠나지 않으면서 더는 몽골과 싸우는 것이 불가능해진 고려는 강화 후 쌍성총관부를 설치하고 몽골과 책봉-조공 관계를 맺게 된다. 몽골은 ‘6사‘를 요구했는데 고려의 대응이 놀라울 정도로 멋지다(지금도 왜 이렇게 외교를 못하는 건지...).
참고로 몽골이 요구한 ‘6사‘는 다음과 같다.
1.인질 보낼 것 2.군사 파견 요청 시 올 것 3.수량과 군량 수송 4.성역과 역참 개설 5.호구조사 보고 6.다루가치를 둘 것
특히 5, 6번 원칙은 고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었다. 고려의 원칙은 단 한 가지였는데 고려를 지킨다는 것이다.
무신정권이 원종을 폐위하자 그는 쿠빌라이 딸과 결혼하고 몽골군의 힘을 빌린다(이 지점이 두고 두고 아쉽다). 결국 1270년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정권이 개경으로 환도하면서 고려 내 몽골의 영향력이 강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개경 환도 세력에 맞서 배중손 지휘 하에 삼별초가 자신들의 조정을 세우고 강화도, 진도와 제주도로 옮겨 가며 몽골군과 항쟁한다. 삼별초는 본래 무신정권의 핵심군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몽골군과 대결하기로 하면서 백성들은 이에 힘을 실어준다(몽골군에 맞서길 원했고 또 호적 문서를 불태워준다는 약속이 있었음). 특히 진도에서 싸울 때는 전라도 남부를 석권할 정도로 그 세력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1273년 제주도에서 아쉽게도 삼별초 항쟁은 막을 내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별초의 대몽항쟁은 몽골을 괴롭혔고 고려의 자주성을 보여주는 기회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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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0-15 0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몽골이 고려에 쳐들어오다니 그런 게 전라 지역까지 밀고 내려 온 적도 있었군요 삼별초 생각나기도 하는데, 삼별초가 몽골과 끝까지 싸우다니... 잘 안 됐다 해도 그런 사람이 있었기에 나라를 다 빼앗기지 않았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10-15 16:06   좋아요 1 | URL
몽골은 고려에 여러 모로 큰 피해를 입혔고 또 많은 영향을 주었죠. 시기가 긴 것도 있었고요. 6차까지 침입을 했던 걸 보면 백성들의 피해는 알만합니다.
삼별초가 전라도 지역을 한 때 장악했었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 그리고 개경 정부와는 달리 정부를 새로 세웠다는 것도 새로 인식하게 되었고요. 삼별초가 그냥 단순한 반란군이 아닌 셈이죠!
 



[ Ch 20 ] Greece Gets Civilized Again


Greece Gets an Alphabet

The Dorians와 the Sea People이 그리스에 수백 년간 살면서 약탈이 아닌 자급자족 경제로 정착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성들은 가부장적 체제 하에 들어가며 집안에만 갇히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초기 그리스인들은 지금과 같은 알파벳을 사용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문자를 사용했다. ⍺(alpha), K(kappa), T(tau), β(beta),  ψ(psi), θ(theta) 등이 있다. 현재의 알파벳은 그리스 문자들에서 가져온 것이 많다. 


The Stories of Homer

그리스의 최초 위대한 작가로 기록된 인물은 호머이다. 호머는 눈이 보이지 않아 이야기를 듣고 그리스 알파벳을 사용하여 글을 썼다고 한다. 호머는 트로이 전쟁을 다룬 <일리아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나서 귀환하는 오디세우스의 여정을 다룬 <오딧세이아> 유명한 두 작품을 남겼다.

이 책에서는 <오딧세이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오디세우스는 절벽에 새겨진 거대한 동굴이 있는 섬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양과 어린염소를 발견한다. 동굴 주인은 이마에 눈이 하나 달린 괴물 키클롭스가 있었다. 오디세우스는 그곳을 빠져나가야겠다 직감하고 키클롭스에게 자신은 여행자이며 배는 바다에 빠져서 없다고 거짓말을 한다. 오디세우스는 꾀를 내어 우유 대신 와인을 주면서 마시게 한다. 달달한 향기에 취해 와인을 마시고 키클롭스를 잠에 빠지게 하여 오디세우스는 동굴을 빠져나와 무사히 귀환할 수 있었다고. 


The First Olympic Games

오늘날 올림픽 경기는 올림푸스 산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이 올림푸스산에 살고 있다 생각하여 신을 위한 경기를 개최했고 여기서 우승하는 사람들은 올리브 관을 쓰는 영광을 얻었다. 경기 종목은 달리기, 말 경주, 복싱, 레슬링, 5종 경기, 원반 던지기, 투창 던지기, 멀리 뛰기 등 다양했다고 한다. 우승자는 영웅으로 대접을 받았고 연회를 참석할 자격을 얻었으며 집으로 돌아가면 보상금과 평생동안 공짜 음식을 얻어 먹을 수 있는 특권이 있었다. 

오늘날에 올림픽 경기는 4년마다 열리며 수백 종의 경기가 열린다. 오늘날 여성들도 경기에 참여하며 그리스만이 아닌 전세계의 사람들이 참여한다. 그들은 여전히 그리스인들처럼 힘, 지혜, 용기를 겨룬다. 


[ Ch 21 ] The Medes and the Persians


A New Empire

바빌로니아인들이 메디아라는 국가와 친교를 맺고 함께 아시리아를 멸망시킨다. 아시리아인들은 두 국가에 충성하게 되었으나 이도 오래 가지는 않았다. 더욱 강한 국가가 나타났으니 페르시아다. 페르시아인들은 양을 치면서 메디아 근처에 살던 유목민들이었다. 페르시아 목동들은 Astyges(아스티아게스)라는 통치자의 지배를 받았는데 그는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고 자신의 왕권 유지에 혈안이 된 왕이었다고. 어느 날 아스티아게스 꿈에 손자가 그의 자리를 뺏게 될 거라는 예언을 듣게 된다. 그는 핵심 참모인 Harpagus에게 손자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는데 다행히 Harpagus는 찔렸는지 죽이지 못하고 근처에 있던 목동에게 “왕이 아이를 없애길 원하네. 그치만 차마… 당신이 받게.”라고 해서 아이를 키우게 된다. 아이는 잘 자랐고(Cyrus: 영어 발음으로는 사이러스인데 키루스임) 어느날 양을 팔러 나갔다가 아스티아게스의 눈에 띠게 된다. 그는 육감적으로 자신의 손자를 알아봤고 분노하여 Harpagus 일족을 몰살시켜버리려했고 도망친 Harpagus는 Cyrus에게 요청하여 Cyrus가 페르시아인들의 민심을 얻어 페르시아의 왕이 된다. 키루스 대왕은 3년간 전투 끝에 메디아와 페르시아를 통합한다.


Cyrus the Great

키루스 대왕은 더 강한 제국을 만들기를 원했다. 인더스 강을 넘어 소아시아와 인도까지 손에 넣어 페르시아 제국은 더 넓어지게 된다. 페르시아인들은 그가 선하고 공평한 정치를 행하는 왕이었기에 좋아했다. 하지만 키루스는 바빌론이라는 산을 만났다. 바빌로니아인들은 자신들의 왕을 싫어하여 아들인 Belshazzar(벨사살)로 하여금 그들을 통치하도록 시켰다. 그러나 그는 망나니였고 바빌로니아인들의 신임을 얻지 못한다. 키루스 대왕의 군대가  쳐들어왔지만 국경을 그냥 열어주는 바람에 키루스는 바빌론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었다. 키루스는 이어서 가나안까지 접수한 뒤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에 들어오게 하고 유일신을 그대로 믿게 하면서 그들에게도 신임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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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2 - 강감찬에서 최충헌까지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2
KBS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이익주 감수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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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2권은 거란의 2차 침입부터 무신 정권의 지도자인 최충헌이 들어설 때까지를 다루고 있다. 책이 두껍지 않기 때문에 <무신 정변>을 깊이 다루어주지 못할거라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대중들이 사건의 배경과 전개 과정, 결과를 충분히 살펴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고려의 역사를 처음으로 배울 때 ‘무신 정변‘(과거에는 무신의 난이라고 하기도 했었던)이 흥미로운 사건이라 생각했음에도 지도자가 바뀌는 과정이 복잡하거나 어려워서 오히려 공부를 등한시했었다. 하지만 ‘무신 정변‘은 고려 시대의 전기와 후기의 분수령이 되는 사건이며 무려 100년간 이어진 이 시기에 몽골의 침입이 있었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1. 우리는 거란의 침입에 대처한 고려의 인물로 보통 ‘서희‘는 알고 있어도 2차 침입 때 협상을 주도한 하공진과 후방 공격에서 활약한 양규는 잘 알지 못한다. 거란이 2번째로 침입하자 현종은 강감찬의 권유에 따라 나주로까지 피난길에 오르게 된다. 비슷한 것으로 조선 임진왜란 때 선조가 피난길에 행차한 게 떠오르지만 이 때 고려는 하공진을 사신으로 보내 협상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전쟁을 끝내기 위한 노력도 동시에 했다. 양규의 활약은 알고 있었으나 거란과 협상한 하공진은 훨씬 덜 알려져 있기에 안타깝다. 그는 그 때 인질로 잡혔는데 거란으로 귀부할 것을 종용받았으나 거절하면서 살해되고 말았다. 꼭 기억해두어야 할 분이 아닐 수 없다.

2. 현종이 거란의 침입으로 피난하던 중 공주절도사인 김은부를 만나 눈도장을 받게 되는 일이 있었다. 당시 외부인의 침입으로 민심이 흉흉했기 때문에 현종의 피난길은 아주 험악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김은부가 대접을 잘해주니 현종 입장에서는 없던 총애도 생길 수밖에 없다. 김은부의 세 딸이 왕실과 혼인하게 되면서 그는 문벌 귀족 세력의 하나(안산 김씨)로 올라서게 된다. 또 하나의 문벌 세력인 인주 이씨는 김은부의 처조카인 이자연(이자겸의 아버지)의 딸이 문종의 왕비가 되면서 성장하게 되는 세력이다. 김은부 딸이 왕실과 혼인하게 된 사건이 왜 중요하냐면 최초로 외부 세력이 왕실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기존까지 고려 왕실의 결혼은 왕실 근친혼이었다).

3. 12세기에는 북쪽에서 힘을 키운 여진이 고려에 침입한다. 1차 침입 때 윤관의 활약(기만 전술)에도 불구하고 고려가 패배하였으나 3년 간 별무반을 만들어 열심히 기병을 보강한 뒤 2차 침입 때는 여진족이 점령하고 있었던 영토에 9성을 쌓아올리는(동북9성) 쾌거를 거둔다(동북9성의 위치는 일반적으로는 두만강 북쪽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확실하지 않아 학계적으로도 의견이 분분하다). 아쉽게도 2년 만에 동북9성을 다시 여진에 내어주게 되면서 윤관은 그 책임을 지고 관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여진이었을 때도 힘이 만만치 않았지만 금나라는 차원이 다르게 막강했다. 금은 처음에 형제 관계로도 만족했으나 나중에는 군신 관계를 요구하였고 실리상 이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아쉽게 느껴지겠지만 그 때 사람이라 생각해보면 최선이 아니었나 싶다.

4. 이자겸은 딸을 예종에 보내고 그 아들인 인종이 왕위에 오른 후 다른 두 딸도 인종에 시집을 가면서 그는 외조부이자 장인으로 명실상부 최고의 권력자가 된다. 그 시기 인종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인종은 이자겸의 권력이 강해지자 이를 견제하고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자겸을 공격한다. 또 이자겸이 오른팔인 척준경과 틈이 벌어지는 것을 알고 이 갈등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자겸이 오히려 조연이고 인종이 주인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자겸이 워낙 유명한 문벌귀족세력의 대표 수장이어서 위세가 등등해서 인종의 행동이 뒤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5. 묘청이 ‘서경천도운동‘(수도를 서경으로 옮기고 금나라를 정벌하며 왕을 황제로 칭하고 연호를 사용하자 주장) 사건을 일으킨다. 금나라를 정벌하자는 주장은 ‘국가의 자주권‘를 원하는 백성들에게 먹히는 점이 있었다. 서경천도운동을 김부식이 진압하면서 두 세력은 충돌했다. 묘청의 주장 자체는 그럴싸 했지만 결정적으로 신룡의 침(기름을 넣은 떡을 물에 던져 놓고 물에 떠오른 기름이 무지개처럼 나타난 효과를 보고 이는 상서로운 일이니 서경으로 천도해야 한다)으로 무리수를 두며 자멸의 빌미가 된다.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은 신채호 선생님의 말인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 대사건‘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 문장만 보면 묘청의 서경천도운동이 위대한 혁명 운동처럼 비쳐지지만 그것은 분명한 오해다. 묘청이 자충수를 두면서 이후 진취적인 개혁이 더 이상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안타까움을 담은 것이다. 백성들은 호응했지만 당시 금국 정벌이 현실적으로 가능했다고 보이지 않을 뿐더러 무리한 서경천도운동 주장으로 그 운동은 실패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

6. 무신정변은 하위 지배층인 무신들이 고위 지배층인 문신들을 누르고 집권 세력으로 올라선 사건이지만 그렇게 단순하게만 볼 수 없다. 왕인 의종의 정치적 무능과 고려 초기 이후 계속된 무신들의 지위 상승, 지배층의 분열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일어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의종은 책에서 말하길 고려판 연산군이라고 패널들이 이야기하는데 에피소드를 보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게 한다. 정사는 돌보지 않고 향락과 유흥에 빠져 있었으며 대간들을 쫓아내고 환관과 내시를 주변에 두어 측근정치를 강행했으니 지금으로 보아도 언제 탄핵되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황이었다. 이의방이 의종을 폐위하고 문신 세력을 모두 몰아내면서 단독자로 올라선다. 이후 정중부(권력욕이 강했음)->경대승(복고를 표방)->이의민(행동대장 스타일)으로 집권자가 변화되지만 그들은 자신들끼리의 투쟁, 살육, 파괴를 이어가면서 백성들에게도 명분을 얻지 못했다. 경대승은 무신정변에 참여하지 않은 세력이었던데다가 그나마 도방을 세우고 문신 인사들을 등용하려고 노력했지만 안타깝게도 잘 되지는 않았다.
이후 최충헌이 집권하면서 무신정권의 최씨 집권기가 시작된다. 그는 백성의 눈을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권력을 독점하면서 사병을 강화하는 등 국가를 위한 힘이 아닌 사적인 힘을 키우는 데 골몰했다.

3권은 남은 무신집권의 시기와 몽골과의 투쟁기가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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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0-11 02: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역사를 배우기는 했지만, 하나도 생각나지 않네요 그래도 조선 시대는 여기저기에서 보기도 했는데... 고려는 잘 모르는군요 여러 사람 이름은 생각나기도 합니다 고려는 왕족이 친척끼리 결혼을 했군요 어쩐지 조선 시대에는 그걸 아주 안 좋게 여긴 듯도 합니다 옛날 드라마 보면 상사병으로 죽는 사람이 나오기도 했는데, 어떤 책을 보다 그건 친척을 좋아해서 그런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10-11 09:10   좋아요 1 | URL
고려 왕실은 기본적으로 자기들끼리만 인연을 맺는 근친혼이었는데 문벌귀족세력이 등장하면서 이때부터 외척 관계를 맺게 됩니다. 고려 역사는 조선에 비해서 사료나 유물이 부족하다보니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고 등한시하는 경우가 많죠. 참 아쉽습니다. 저는 고려에서 특히 유연한 외교 철학은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지난주 금요일 휴가를 내고 1박2일 구례-하동 여행을 다녀왔다. 마음으로는 지리산 둘레길을 걸어보고 싶었으나 옆지기의 무릎이 안 좋은 관계로 많이 걷는 것은 자제하고 그냥 쉬엄쉬엄 돌아다녔다.



먼저 구례대나무숲길이라는 게 있다길래 가 보았다. 대나무가 연식이 오래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대나무 모양이 일렬로 쭉 늘어서 있으니 길쭉길쭉하여 시원하게 느껴졌다. 아랫동네라 낮 즈음이 되니 약간 덥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곳에 들어오니 서늘했다. 


대나무숲에 들어가서 하늘을 보면 이런 모습이다. 숲 안은 마치 무협 영화의 배경인 것처럼 느껴진다. 칼 들고 싸워야 하나 읊조리고 있는 걸 보니 내가 참 무협영화에 많이도 빠져 있네 싶어 순간 웃음이 나왔다ㅋㅋㅋ



그리고 잠시 목을 축이러 찻집에 갔다. 

평소 녹차나 홍차를 잘 마시지는 않지만 하동하면 역시 차 아니겠는가. 한국 최초의 찻집이 있었던 곳이라는데 요즘 스타일에 맞춰 단장을 해 놓았다.

차주전자, 따라놓는 잔도, 마시는 잔도 정갈하고 예뻐서 보는 것만으로 눈이 즐거웠다. 기본 녹차를 시켰는데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세작이라고 한다. 역시 녹차는 세작이 맛있는 것 같다^^ 녹차 아이스크림도 서비스로 주셔서 먹었는데 전혀 달지 않고 쌉싸름한 맛이 개운하게 느껴졌다.




사실 본 목적지는 쌍계사였는데 찻집이 근처에 있어서 그 김에 갔던 것이었다. 쌍계사 올라가는길! 담장에 핀 꽃이 이제 지는 중이었지만 이 곳에서 보니 다르게 느껴졌다.



드디어 도착한 쌍계사 입구에는 '쌍계사'임을 알리는 비석이 떡 하니 있었다.


쌍계사는 삼신산쌍계사로 불린다. 쌍계사는 신라시대에 진감선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며 '삼신산'은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일컫는 말이다. 일주문 현판 글씨는 그 유명한 해강 김규진 선생님이 쓰신 글씨라고 한다. 얼마 전 기사로 일주문이 국가지정 보물 문화재로 승격되었다는 것을 알았는데 그래서인지 남다른 감회가 있었다.

9층석탑과 범종루의 범종, 대웅전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쉬는 날이 아니어서 경내를 여유롭게 즐길 수 있어 편했다.








얼마 전 토지를 완독해서인지 '하동'하니 <토지>가 자동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이 곳에 박경리문학관이 있다는 소리를 듣기도 해서 가보기로 했다. 

근처에 토지 세트장이 있어서 함께 둘러볼 수 있을 뻔 했으나 아쉽게도 최참판댁은 내부를 들어가볼 수가 없었다(촬영중이라고...). 용이네, 임이네만 보았는데 임이네 건물은 세트장인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인물을 생각하니 괜히 미움이 드는 것이 참 사람 마음이란.



문학관 내부는 이렇게 토지 주요 인물들을 형상화하여 그린 인물화가 배치되어 있었다. 상상하던 모습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모습인데 읽어보신 분들은 이 그림에 감정이입을 하실 수 있을것 같다.


여러 전시물이 있었으나 개인적으로 박경리 선생님이 책에 둘러싸여 있는 이 사진이 가장 좋았다. 역시 선생님은 책과 함께 있는 모습이 자연스럽구나 느끼게 된다. 

문학관 외부에는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 있는데(액자 모형이 세워져 있음) 전망도 좋고 기념도 되니 사람들이 모두 사진을 찍더라. 

산세도 멋지고 널찍하니 마을이 한 눈에 들어와서 전망이 굿!!!


최참판댁은 들어가보지 못하고 이곳에서 찍은 드라마나 영화들을 이렇게 나열해놓고 있다. 못 들어가서 아쉬운... 발걸음이 차마 안 떨어졌다.



펜션에 도착해보니 물줄기가 들리길래 어디지 돌아보다가 뒷 편에 이런 계곡이 있었다. 여름에는 특히나 인기가 많은 곳일 것 같다. 약간 날이 흐리고 늦은 오후 시간이라 후디만 입고 있기에는 살짝 추웠지만 그래도 잠시 멍타임을 가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먹자 타임!!!

이어지는 술-술-술 그리고 고기 파티. 청명주는 정말 부드럽고 깔끔한 것이 일품인 술이다. 살짝 비싸서 그렇지.


고기 냄새를 맡았는지 냥이가 등장했다. 고기 한 점을 던져줬는데 냅다 달려와 먹고는 도망갔는데 더는 주지 않으니 어디론가 가 버려서 보이지 않았다(아침에 일어나보니 식은 고기들을 다 해치우고 갔다). 


간만에 캠프파이어 하는 느낌으로다가... 불멍 타임 좋았다. 추웠는데 불피우니 따뜻해서 좋고 음악도 살짝 틀어놓고 오래도록 재미나게 놀았다.


이튿날 과음의 후폭풍으로 심신이 애매한 상태에서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겨우 일어났다. 


해장 전 그래도 유명하다는 빵집에 가야지 해서 빵에 커피를 먹어주고...?



올갱이 맑은 해장국...이 날 살렸다!ㅎㅎ 해장국도 일품이었지만 반찬도 맛있었다. 아... 해장엔 올갱이!!!



1년 여만에 지방으로 놀러다녀온 거였는데 즐거웠다. 길게 놀고 즐겼으니 이제 일상을 사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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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0-10 14: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박경리 선생님 사진 보니, 나따위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책 더 사도 되겠습니다. 껄껄.

잘 다녀오셨다니 다행이에요. 우리 열심히 일하고 읽고 쓰고 조만간 또 여행 다녀옵시다!! 즐겁게 살도록 해요!

잠자냥 2023-10-10 16:52   좋아요 1 | URL
엥? 결론이.....????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10-10 17:1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왠지 다락방님은 그런 결론을 내실 줄 알았습니다!ㅎㅎ 책은 사고 사도 왜 살 것이 넘쳐나는지 모를일이에요ㅋㅋㅋ
2주 후에 집안에 행사가 있어서 놀러다녀올 것 같지만 이번 여행 같은 느낌은 아니겠죠!ㅎㅎ 간만에 산멍물멍 시간 좋았습니다^^

자성지 2023-10-10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향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까지 다녀오셨군요.
외가가 있어 구례는 어렸을 적 남매가 방학 때면 사나흘씩 다녀오곤 하였답니다.
최참판 댁에 드라마 촬영 중인 모양입니다.

거리의화가 2023-10-10 17:17   좋아요 0 | URL
외가가 그쪽이시군요^^ 자주 들락날락하셔서 친근한 곳이실 듯합니다. 저는 제대로 여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쌍계사도 처음이었어요. 단풍철에 갔으면 화려한 절을 구경했겠지만 사람이 너무 많았을 것 같아서 이번에 간 것으로 만족합니다.
최참판 댁이 촬영중이라 못 들어가본게 아쉬워요ㅠㅠ 언제 다시 가볼 기회가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책읽는나무 2023-10-10 1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미나게 잘 놀다가셨군요^^
최참판 댁...아쉬웠겠습니다.
거기 대청마루에 올라서 평사리 들녘 바라보면 참 좋았을텐데요. 우린 애들 어릴 때 설 연휴 무렵 하동 최참판댁에 들렀었는데요. 한복 입은 어르신이 곰방대를 물고 안방에 앉아 계시더군요. 그러곤 애들한테 빨리 세배를 하라고 막 으름장을?! 애들이 눈치 보며 들어가서 세배를 드렸어요. 그랬더니 애들한테 각각 천 원씩 세뱃돈을 주시더군요.ㅋㅋㅋ
퍼포먼스였나 봅니다.^^
쌍계사도 다시 보니까 겨울비 맞으며 둘러봤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리고 목월빵집!!!
저흰 구례갔을 때 빵 다 팔려서 못사먹었어요. 그래서 집에 와서 온라인으로 주문해서 먹었네요.ㅋㅋ
구례에 대나무숲길이 있었군요.
저흰 산수유 마을만 다녀왔던 것 같아요.
암튼 좋은 추억이 되셨겠어요.
좋은 술도 드시고 불멍도 보시고...
에너지 충전 잘 하시고 가신 듯해 제가 다 뿌듯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10-10 17:21   좋아요 1 | URL
최참판댁은 두고 두고 아쉬워요. 애들에게는 좋은 추억이었을 것 같은데요?ㅎㅎ 세뱃돈 퍼포먼스라니 참판댁이라 가능한 것이었나봅니다!ㅋㅋ 못 가본 것은 아쉽지만 이번만이 기회가 아니다 생각하고 아껴두자 좋게 생각하려구요^^;
이제 막 들어선 가을의 쌍계사는 아직은 초록빛이 강했습니다. 늦가을 단풍철에 오면 또 다른 근사함일 것 같더군요.
목월빵집 안 그래도 일찍 안가면 줄서거나 빵 품절된다고 얘기하더군요. 저희는 일찍 도착해서 푸짐한 빵셔틀을 할 수 있었습니다!ㅎㅎ
충전 잘하고 왔어요. 너무 먹었더니 살만 쪘습니다! 잘 먹었으니 됐죠뭐ㅋㅋㅋㅋㅋ

건수하 2023-10-10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휴를 알차게 보내셨군요... 나무님도 위에 쓰셨지만 보는 제가 뿌듯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3-10-10 17:23   좋아요 0 | URL
평소에도 나름 잘 놀고 즐기면서 시간을 보내지만 아무래도 도심에 있을 때는 이런 풍경을 자주 마주하지는 못하니까 이런 기회를 통해 즐거움을 더 느끼는 듯합니다^^

페넬로페 2023-10-10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캬, 좋은 시간 보내고 오셨네요.
저는 재작년 봄에 쌍계사 다녀왔는데, 가을에 보는 쌍계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책 독후활동까지 하시고👍👍

거리의화가 2023-10-10 17:58   좋아요 1 | URL
금요일에는 책 한 줄 안 읽었어요. 놀러갈 때 책 들고 가봐야 안 읽더라구요.
몇몇 후기를 보니 늦가을에 쌍계사가 참 근사할 듯하더군요. 저는 특히 김규진 선생님 글씨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토요일까진 시체처럼 뻗어있다가 2틀은 쭈욱 읽었어요!^^

새파랑 2023-10-10 19: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번 연휴의 진정한 승자는 화가님이시군요~! 사진만 봐도 즐거워 보입니다~!!
인문학 투어를 하셨군요 ^^

거리의화가 2023-10-10 21:27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잘 놀고 쉰 것 같습니다. 인문학투어라고 하기에는 민망합니다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ㅎㅎ

희선 2023-10-11 02: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쪽을 돌아보셨군요 구례 하동... 대나무숲 멋집니다 쌍계사에 가시고... 《토지》에 나오는 인물 그림도 있군요 가장 가운데가 서희일까 했는데, 맞았네요 다 돌아보지 못해서 아쉬웠겠지만 좋은 시간이었겠네요 즐겁고 편안한 시간 보내고 오셨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10-11 09:07   좋아요 0 | URL
구례와 하동은 바로 붙어 있어서 얼마 안 멀거든요. 함께 여행하기 좋습니다^^ 쌍계사 한산해서 쉬엄쉬엄 둘러보기 적당했어요. 여행은 원하는 대로 모두 이루어지지는 않아서 그것이 또 묘미인 듯 싶습니다. 희선님께도 사진으로나마 힐링이 되셨길 바라요^^
 

거의 4천만 명의 여성이 전 세계적으로 성매매라는 구조 안에서 학대된다고 추정됨에도 불구하고 전체 인구에 비하면 여전히 적은 수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매매를 경험한 적이 없이 성매매에 대한이야기를 한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성매매를 경험한 사람들은 수치심 때문에 이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성매매를 벗어날 정도로 운이 좋았던 여성들 중 대부분은 그저 상처를 보듬으며 삶을 살아가고 그 경험에 대해 언급하기 꺼려하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경우는 더욱 드물니다. 이로 인해 성매매가 존속되고 비밀스런 상태가 유지되며, 정확하게는 바로 그 비밀스러움이 성매매를 정상적이고 그럴듯하게 채색합니다. 또한 성매매를 그렇게 보이도록 하는 이들은 주로 국제적인 성매매에 이권이 개입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이 거짓말을 하게끔 두는 이유는 진실을 말하기가 두려워서입니다. 저는그 상황에 있는 여성들과 공감할 수 있습니다. 저 또한 진실을 말하기 두려웠지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제 자신의 두려움에 의해 조종되기를 거부했다는 점입니다. - P19

오늘날 다시 이 글을 쓴다면 사용하지 않을 단어들이 있습니다.
바로 ‘성매매 여성’과 ‘손님‘입니다. 성매매 여성이라는 용어는 사람이 실제로 자신에게 가해진 것을 체현—그들이바로 그 단어라는ㅡ했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노예‘라는 단어와 비슷합니다. 저는 더 이상 노예라는 단어를 쓰지 않고, ‘노예가 된 사람들‘이라고 지칭함으로써 다음 두 가지를 환기하고자 합니다. 첫째,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대상은 사람들이며, 노예가 된 상태는 그들에게 가해진 상황이지 그들이 노예의 본질과 같지 않다는 사실임을 강조하려 함입니다. 같은 이유로 ‘성매매된 여성‘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손님‘이라는 단어를 책에 썼다는사실에 대해서 진심으로 후회합니다. 손님이라는 말은 원래 합당한 상업적 교환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 P21

성매매를 미화하거나 선정적으로 다루는 것에 그 어떤경의나 동의도 표하지 않는다. 그건 성매매의 참된 묘사가아니며 캐리커처조차도 되지 못한다. 캐리커처는 과장된진실일 뿐이지만, 미화된 성매매는 진실과 닮은꼴이 없기때문이다. - P27

성매매 당사자였을 때에는 이상하게도 한 방향으로 친숙한 리듬이 있었다. 기존에 지니고 있던 사고방식 밖으로손을 뻗으려고 하지 않았다. 자라면서, 그리고 살아오는 동안 내 속에 지니고 있던 부정적인 자아상에도 도전하지 않았다. 물론 장기적으로 많은 고통을 야기했지만, 한편으로당시에는 나의 가능성을 인정하기가 매우 두려웠다. - P30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말은 단순히 ‘사람이 사는 방식‘을 뜻하고, 성매매는 간단히 집 문밖에 두고 들어올 수 없는 것이기에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다른 업계의 - P31

노동자는 집에 와서 직업적 역할을 벗어버릴 수 있지만, 성매매 당사자는 복잡하게 얽힌 여러 요인들로 인해 그럴 수가 없다.
첫째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기때문에 비밀에 매여 ‘평범한‘ 사회 구성원들과 거리를 두게되고 매우 구별된다. - P32

성매매 당사자는 약물이나 술에 의존하게 되면서 감정적, 심리적 측면에서 ‘평범한‘ 사회와 더욱 분리된다. 중독은 강도가 심해질수록 오직 돈만이 채울 수 있는 허기가 되어 많은 경우에 약물 의존은 성매매 유입 기간을 장기화한다. 그 여파는 자명하다. - P33

수치심은 시간이 지난다고 서서히 사그라들지 않는다. 가끔한동안 얼굴을 숨기고 시야 밖으로 살금살금 움직이는 듯하다가, 그늘에서 벗어나 당당하게 처음 본 날처럼 현실적이고도 생생하게 다시 내 삶의 무대 중앙으로 걸어 돌아온다. - P40

나는 여기서 가면을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 - P40

어떤 면에선 내가 좋아하는 가면조차도 말이다. 가면을 벗는 것이 수치심을 대면하는 나의 방식이고, 수치심 또한 그렇게 하기를 도전한다. 이것이 바로 온 세상에 내 이름이레이첼 모랜이라고 말하기로 결심한 이유이다. - P41

세상과의 분리와 사회에서의 소외 사이의 이동이 쉬워서 혼동하기가 쉽다. 사실, 이동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는 겹쳐진 채그야말로 서로 뒤섞인다. 가족의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경우내가 상상할 수 있는 한 가장 철두철미하고 철저하게 용의주도한 방법으로 사회 내 소외를 양산해내는데, 문제 가정에 아이들이 각각 태어나고 그 아이들이 세상과 전적으로분리되고 멀어진다는 사실을 인생의 매 순간들을 통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끔 훈련시키기 때문이다. - P44

나의 환경에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그 생각은 옳았지만, 내가 그 그릇됨의 한 부분이었다고 믿은 것은 실수였다. - P48

돌아보면 내 어린 시절은 마치 살아 있는 척도와도 같았다. 불안정한 마음의 진행을 재는 불가사이하게 정확한측정 방법 말이다. - P53

평범한 어머니와 딸의 유대감이란 어떤 걸까 종종 궁 - P57

금했는데 내가 처했던 환경은 그 개념과 아주 멀어서 슬프기보다는 그저 추상적으로 애석해하는 기미가 섞인 단순한호기심이다. 성인 여성이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거나 웃거나 포옹하는 모습을 볼 때, 그들이 뭘 하는지 집중하며 보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얼굴 표정을 관찰하고 몸짓을해독하려고 애쓴다. 얼떨떨하면서도 호기심이 생긴다. 그들이 경험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전혀 알지 못하는 역동을 해독하려 한다. 관심이 가면서도 울적하게 하는 모습이다.
원만하게 무르익은 정서적 성숙도 측면에서 보자면 많은 면에서 내가 소녀였을 때 어머니도 나와 같은 소녀였고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그렇다고 의심치 않는다.
책망으로 가득 찬 씁쓸한감정에서는 멀어졌다. 부모를 단순히 부모로 보지 않고 사람으로 보기 시작하게 되는 때가 온다고들 하는데, 자신에게 느꼈던 연민이 부모님에게 이동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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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0-10 0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시작하셨군요! 저도 지금 읽는 책만 다 읽으면 바로 따라가도록 하겠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10-10 17:26   좋아요 0 | URL
병행하는 책들이 많지만 더 늦게 시작하면 밀릴 듯하여 읽기 시작했습니다. 머리가 힘든게 아니라 감정적으로 힘든 책이네요. 그렇지만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다락방님도 화이팅!

건수하 2023-10-10 15: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도 첫 장 펴보긴 했는데.. 아악 글씨가.. 하며 다시 덮었습니다. 일단 시작을 해야겠어요 ^^

거리의화가 2023-10-10 17:27   좋아요 0 | URL
글자가 작아서 힘들기는 한데 그래도 각 챕터가 짧아서 다행입니다. 향후에 큰글자책으로 나와주면 좋겠어요ㅠㅠ 수하님도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