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을 이어온 봄도
가난한 자의 마당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작아진다
울타리 말목 끝에 참새 지저귀다가
가곤 없었고
두꺼운 흙을 열고 나타나는 애기상치도
금새 뽑혀가곤 없었다
둥우리에서 막 기어나온 병아리가
걷기 시작하자
장바닥에 팔려가곤 없었다
그 큰 햇볕을 져다 판 돈도
가난한 자에 이르러서는
끝전만 돌아왔다
-- 이병훈 시인(1925년~ ), 도서풀판 b <한국대표노동시집>,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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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기상치도 병아리도 미처 자랄 새가 없는 가난한 자의 마당.
탄식하지 않고 하소연하지 않고 가난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그 큰 햇볕을 져다 판 돈도, 목돈은 만져보지도 못하고 끝전만......
이런 시를 만나면 시인들이 몹시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