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었던 적막, 그러나 성취하지 못했던 적막이
내 마음을 큰 파도 속의 보트처럼 흔들리게 만들었다.
만나는 모든 얼굴들에게, 나는 작별을 고했다.
깨끗한 해안을 따라 하얗게
부서지는 커다란 파도여......
언제 내가 저 섬에 닿을까?
즐거이, 오 매니큐어 칠한 손톱들과 면도해 버린
겨드랑이들이여, 나는 너희들을 그만 보리라.
즐거이 즐거이, 나는 너희들로부터 오래도록 멀리 떨어져 있으리라.
오 인간의 소음과 악취여!
나는 작별을 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구를 떠났던가? 내 소유물들 중의
어느 것을 버리고 갈 계획인가?
단 하나도 없다. 이렇게 활짝 깨어 있으면서도
자고 있는 체하고 있는 것, 이것이
내가 달성하게 될 고독의 전부이다.
--<죽음의 엘레지>, 빈센트 밀레이, 1988년, 청하 刊
나는 이상하게 예전부터 빈센트 밀레이와 실비아 플라스가 몹시 헷갈렸다.
최승자 시인이 번역한 빈센트 밀레이의 이 시집은 아무리 훌륭한 번역이라도
시인의 시를 최대한 독자에게 전할 수 없다는 그런 느낌을 강렬하게 준다.
갑자기 '쥑이는' 시 한 편이 읽고 싶어서 알량한 책꽂이를 노려보고 있자니,
<죽음의 엘레지>가 눈에 띈다.
그리고 펼쳤더니 이 시가......
아무리 용을 쓰고 살아도, 인생이, '내가 달성하게 될 고독의 전부'로 느껴지는 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