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전, 일은 진도가 안 나가고 몹시 피곤하여 브로콜리 가루를 생수에 타서
한잔 마시려는데 난데없이 '선물'에 대해 떠들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브로콜리 가루는 지난 가을 지리산에 함께 놀러간 가족에게 선물받은 것이다.
지리산에 놀러간 세 가족 중 한 가족의 가장은 책장수님의 '선배' 뻘이고,
다른 한 집 가장은 후배 뻘.
그런데 그 후배의 아내가 두 통의 브로콜리 가루를 미리 준비해와
한 통씩 선물하는 게 아닌가!
투명한 예쁜 용기에 가득 담아 리본으로 묶은 브로콜리 가루는
시중에서 구할 수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너무 고마웠던 나머지 돌아오던 날, 큰 초코케이크를 한 상자 사서 손에 들려주었는데
뭔가 미진한 기분을 느꼈다.
그토록 성숙한 어른의 선물에, 급조한 아이의 선물이라니!
얼마 전 만리포 바닷가에 놀러갈 때 그녀는 또 깜짝선물을 준비해 왔다.
매실을 사서 먹기 좋은 뭉근한 액체 상태로 직접 달인 것.
아이들 배 아플 때 한 찻숟가락 물 반잔에 타서 먹이면 즉효라고 한다.
소주 한 병에 소줏잔으로 반 잔 정도의 매실액을 섞어서 마시면 숙취도 없다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 그의 어른스럽기 짝이 없는 선물에
무엇으로 조금이나마 보답해야할지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별 뾰족한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는 길, 도로 옆에 천막을 친 그 지역의 특산물 서산육쪽마늘에
관심을 보이는 그녀.(어쩜,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사람이 그토록 성숙하고 알뜰살뜰한지.)
서산육쪽마늘이라니, 어른의 선물 중에서도 정말로 흐벅지고 알토란 같은 선물이 아닌가.
물론 어렵게 공수한 브로콜리 가루나, 직접 달인 매실액에는 견줄 수 없겠지만......
차를 세우고, 세 접짜리 마늘을 큰 망으로 하나 사서 세 자루로 나누었다.
그리고 기세좋게 지갑을 빼들었다.
아아, 마늘 한 자루씩을 선물하고 나니 얼마나 가슴이 벅차오르는지.....
진정한 어른, 성숙한 어른의 세계에 비로소 입문한 듯한 기분.
다음이 바로 자랑하고 싶은 어른의 선물이다.
브로콜리 가루를 탄 물을 마시려다 색이 너무 예뻐서 부랴부랴 카메라를 찾아 한 컷 찍었다.
김치냉장고에 보관해둔 매실액도 덩달아 끌려나와 한 컷.
서산육쪽마늘 사진은 거시기해서 안 찍었다.
이것이 진정한 어른의 자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