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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
김연자 지음 / 삼인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남달리 험한 인생 역정을 겪은 이의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동안 이야기를 듣노라면
연민에 앞서 짜증이 솟구칠 때가 있다.
어쩜 그리도 운명은 그를 계속 희롱했는지, 그는 어이하여 그렇게 계속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살았는지,
뭐 그런 마음에서지만, 더러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니까 인생이 그 모양이지요!" 하고
고함을 지르고 싶은 경우도 있다.
특히 무명씨들의 자서전 식 자비출판 소설을 몇 번 맡아본 나로서는 교열작업을 하며 많이도 씩씩거렸다.
세상에는 왜 그리 악인도 많고 기구한 사연도 많은지.
그리고 그들은 왜 적지 않은 돈을 들여가면서까지 하나도 자랑스러울 것 없어 보이는 자신의 삶을
책으로 묶어내지 못해 안달인지......이해를 못했던 것이다.
지금이라면 10여 년 전 한창 그런 일을 할 때와는 다른 마음가짐으로 그들의 삶과 원고를 보듬을 수
있을 것 같다. 사람과 인생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기 때문이다.
주찬옥 작가와 짝을 이뤄 감성적인 드라마를 잘 만들던 연출가 황인뢰는
언젠가 씨네 21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이렇든 저렇든 모든 악다구니는 싫어요!"
그게 뭐 그리 대단한 말이라고 아직까지 기억 속에 남은 건, 당시 내가 그 말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는 제목만 놓고 본다면 내가 절대 골라들 책이 아니다.
나는 아직도 사람들이 악을 쓰는 것에 대해 무한한 두려움과 혐오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동두천과 송탄, 군산 아메리카 타운 등을 이른바 '양공주'로 전전하며 젊은날을 다 보내고
여지껏 기지촌에 남아 성매매 현장의 젊은 여성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이 책의 주인공 김연자는
특별하다.
아무리 험한 사건들과 현장 속에 있었기로 사람이 그 사건에 묻히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그의 개성과
매력과 진면목이 그대로 생생하게 전달된다.
그는 윤금이 씨 사건과 같은 끔찍한 일들이 동료 혹은 친구들에게 다반사로 벌어지는 현실 속에서
도망가거나 체념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 고발하여 이 땅에서 미군 범죄 최초의 무기징역형을 받게 한
일등공신이다.
한푼두푼 모은 돈으로 힘을 합해 천막을 짓고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된 그와 동료들의 기도 대목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깊은 병을 앓는다든지 가족에게 버림받고 만신창이가 된 그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하나님께 감사할
건덕지가 있어야 말이지.
그들은 이렇게 기도한다.
--살인하지 않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기도 내용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 이 책의 저자 김연자의 유머와 낙관과 능청은 자칫 한없이 무거울 수 있는 책 내용을
제법 경쾌하게 곳곳에서 환기시켜 주고 있다.
다음은 내가 제일 인상 깊게 읽은 대목.
--30년 가까이 기지촌에서 살아갈 때 단 한 번도 운동가들이 찾아온 적이 없었다.(...)
어떻게 의사소통을 해야 할까. 날마다 술먹고 악을 쓰며 사람을 세상을 그리워했는데,
막상 세상에 나오니 나는 서툴렀고 얘기할 수 있는 통로도 많지 않았다.
기지촌 연극이라도 해보고 싶어 여기저기 쫓아다니고 여성문화단체 같은 데 가서
연극 얘기를 들어보면 무슨 어려운 영화나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마광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이건 우리 같은 밑바닥 삶과는 별로 관계도 없고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는
얘기들이었다.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폐병이 많다던데, 내가 보기에도 폐병은
예술가가 잘 걸리는 병이고, 예술가는 자기연민에 빠진 폐병쟁이로 보였다.(본문 255쪽)
오래 전 <자기만의 방>이란 연극을 나도 무지 지루하고 재미없게 보았다.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는 건지......
너무나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점들까지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것도 이 책의 매력.
그런 사람들이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도 자기자신의 단점이나 실수를 대하는 것처럼 열려 있기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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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쓰기 무지 어려운 책이었어요.
일전에 따우님으로부터 이 책을 선물받고 감사 겸 자랑 페이퍼를 올렸을 때
하도 여러 분이 리뷰를 독려하셔서 떠듬떠듬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