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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육필 까세集 - 111인 화가들이 손끝 정성으로 그린, 작은 편지봉투 위의 大作
김성환 엮음 / 인디북(인디아이) / 2005년 9월
--엽서 한 장이나 편지봉투 한 장에 그려진 한 폭의 그림 속에도 우주만물의 삼라만상과 아름다움을 담을 수 있고 얼마든지 감동을 줄 수 있다.
고바우의 김성환 화백이 1960년대부터 수집한 편지봉투나 엽서에 그린 화가들의 그림 모음집. 까세란 프랑스 말로 우표와 연관된 그림을 봉투에 그린 것을 뜻한다.
--그 당시 절친한 화가로는 박고석 화백과 박수근 화백이 계셨다. 박 화백과 명동 모나리자 다방에 앉아 있다가 돈암동 종점까지 전차를 타고 와서는 한적한 아리랑고개를 넘어가 정릉 입구에 있는 오두막 선술집에서 국산위스키를 마시며 그림 얘기에 꽃을 피우다 헤어지곤 했었다.
1963년 김성환 화백의 화실에 놀러온 박수근 화백.
화가들의 그림 외에도 그들과의 재미있는 일화가 풍성하게 소개되어 있다.
(클릭해서 큰 그림으로 보세요!^^)
서양화가 하인두가 봉투 위에 그려준 88년도의 부처님 그림.
--그의 까세를 보고 있노라면 초췌해진 자화상과 불상은 이미 그가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예감이 든다.(70쪽)
(여기서 뒤의 '예감'은 '생각'이란 단어로 바꾸어 주는 게 적절. 한 문장에 같은 단어를 두 번 나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생활 속에서' 연작으로 유명한 이왈종 화백의 까세 두 점.
어떤 우표들을 보면 디자인은 물론, 너무나 유니크하고 예술성도 뛰어나서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권옥연 화백의 단아하고 멋들어진 연하장 글씨. 詩情畵意.
십몇 년 전 소설가 오영수 선생의 개인 화첩을 수유리 따님의 댁에서 본 일이 있다.
그 그림들과 글씨,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넘쳐나던 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런데 그때는 송구스럽게도 그의 아드님 판화가 오윤의 자취를 찾기에 바빴으니 민중미술에 관심이 갈 때였다.
--어느 뙤약볕이 내리쪼이는 여름철에는 화백의 화실에서 서로의 캐리커처를 그려 교환하기도 했다.(146쪽)
1970년 혜원 신윤복의 우표그림을 가지고 봉투 위에 그린 운보 김기창 화백의 까세.
김성환 화백이 교유한 분들의 연세가 워낙 높다보니 이 책에는 까세 소개와 함께 그 그림을 그린 화가의 '별세 소식'이 자주 나온다. 김기창 화백의 별세 소식을 뉴스로 듣고 깜짝 놀랐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년이 넘었다니!
왼쪽 이종상 화백의 까세와 오른쪽 페이지 남관 화백과의 일화를 그린 김성환 화백의 재미있는 스케치. 1951년 1,4후퇴 직후의 국방부 정훈국 미술대가 자리잡고 있던 피난지 대구의 미니빌딩.
화가들의 캐리커처나 당시의 풍경을 소소한 소품을 통헤 보는 것만 해도 아주 재미있다.
절친했던 화가 장욱진 화백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1954년도에 처음 다방에서 우연히 동석하여 만났다니 참으로 낭만적이다. 이중섭 화백이 장욱진 화백 옆에 앉아 있고 화장실에 갔다 오시는 듯한 이원수 동화작가의 꾸부정한 모습도 멀찌감치 보이니 무지 반갑다.
서양화가 황주리가 김성환 화백의 캐릭터 고바우를 등장시킨 까세. 이 책에는 111인의 화가들의 작품이 실려 있다, 유명 화가들의 교유록 혹은 그들의 일화와 함께 감상하는 편지봉투 위의 그림 구경 재미가 아기자기하고 건건찝질하고 달콤새콤하다.